고고학 전시실에서 수천 년 전의 세르비아를 만났다면, 이제 계단을 올라 전혀 다른 유럽으로 들어갈 차례입니다. 금빛 성모와 성인들이 나타나고, 르네상스의 인물들은 조금씩 인간다운 표정을 얻습니다. 그다음에는 베네치아의 빛과 색채가 기다리고 있지요. 세르비아 국립박물관의 외국미술 컬렉션에는 14세기부터 20세기까지 약 1,100점의 회화와 조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중 이탈리아 회화는 중세의 금빛 종교화에서 르네상스를 지나 18세기 베네치아 풍경화까지, 유럽 회화가 변해가는 과정을 따라 걷기에 좋은 컬렉션입니다. 그림 앞으로 조금 가까이 가서 얼굴을 보고, 손끝을 보고, 화가가 빛을 어디에 떨어뜨렸는지 찾아보겠습니다. 오래된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지만, 오래 바라보아야 비로소 발견되는 것도 많습니..
세르비아 국립박물관에는 초기 인류의 흔적부터 레펜스키 비르의 기묘한 석조 조각, 스타르체보와 빈차 문화의 토기와 인물상, 초기 구리 도구까지 긴 선사시대의 시간이 층층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는 청동기와 철기를 지나 로마 제국의 세계가 기다립니다. 전시실을 따라 걸으며 수십만 년 동안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무엇을 만들고, 먹고, 꾸미고, 기억했는지 하나씩 만나보겠습니다. 1. 다뉴브강보다 오래된 이야기, 세르비아에서 만난 최초의 사람들박물관의 첫 장면은 왕관이 아니라 돌에서 시작된다 세르비아의 역사를 로마 제국이나 중세 왕국에서 시작하면 박물관의 첫 전시실을 너무 빨리 지나치게 됩니다. 이곳의 시계는 나라의 이름도 도시의 경계도 없었던 시대로 훨씬 더 멀리 돌아갑니다. 진열장에 놓인 석기는..
자그레브의 미마라 박물관에서는 몇 걸음마다 시대가 바뀝니다. 르네상스 회화를 보고 돌아서면 왕실 초상화가 나타나고, 조금 더 걸으면 중세 조각과 고대인의 생활용품이 기다립니다. 한 건물 안에서 유럽과 고대 세계를 빠르게 건너는 여행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곳의 재미를 유명 화가의 이름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회화와 조각, 고대 유물과 유리, 도자기와 아시아 미술까지 수집 범위가 놀라울 만큼 넓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에는 평생 여러 지역의 예술품을 수집한 안테 토피치 미마라(Ante Topić Mimara)가 있습니다. 작품의 이름표만 확인하고 지나가기보다 그림 속 옷 한 벌, 조각에 남은 색의 흔적, 고대인이 손에 들었을 작은 생활용품까지 살펴보겠습니다. 미마라에서는 사소해 보이는 물건 하나가 다음..
크로아티아의 고대사를 만나러 자그레브 고고학박물관에 들어서면 이야기는 의외로 작은 물건에서 시작됩니다. 손에 쥘 만한 석기와 흙으로 빚은 그릇, 검은 표면에 기하학 문양을 새긴 부체돌 토기입니다. 그러나 몇 걸음만 더 옮기면 풍경이 달라집니다. 청동 무기 사이에서 황금 장신구가 빛나고, 철기시대의 호박과 유리구슬이 등장합니다. 이후에는 그리스 문자와 로마인의 보석을 지나 마지막에는 이집트 미라를 감싸고 있던 천에서 뜻밖의 에트루리아 문자까지 만나게 됩니다. 약 45만 점의 유물을 소장한 자그레브 고고학박물관은 크로아티아의 옛 물건을 모아 놓은 공간에 머물지 않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지중해와 중부유럽 사이를 오간 사람과 기술, 물건과 문화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거대한 시간의 통로입니다. 가장 오래된 흔..
탈린 구시가지 한복판, 600년 된 길드 회관의 문을 열면 은화와 브로치, 검과 오래된 상인의 흔적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에스토니아 역사박물관의 그레이트 길드 홀(Great Guild Hall)은 작은 유물을 따라 발트해의 역사를 읽기에 흥미로운 장소입니다. 선사시대 도구와 청동 장신구, 은화와 중세 상인의 물건을 차례로 보다 보면 에스토니아가 오래전부터 사람과 물건이 오가던 발트해의 교차로였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진열장 속 유물 하나를 골라 천천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작은 브로치와 낡은 토기 조각도 제대로 질문하기 시작하면 수백 년, 때로는 수천 년 전 사람들의 생활을 꽤 구체적으로 들려줍니다. 1. 발트해 북쪽에 사람들이 남긴 가장 오래된 흔적돌 하나에도 기술과 취향이 숨어 있다첫 번째 진열장에서..
북마케도니아 고고학 박물관에는 선사시대의 석기와 토기부터 황금 장신구, 로마의 유리 공예, 초기 기독교의 테라코타 아이콘까지 이 땅을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이 층층이 놓여 있습니다. 스코페의 바르다르강을 건너면 고전 건축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시간은 꽤 과감하게 뒤로 움직입니다. 몇 세기가 아니라 수천 년입니다. 1. 스코페 한가운데서 수천 년 전 발칸으로 들어가다작은 토기 하나가 역사의 시작을 알린다 첫 전시실에는 왕도 제국도 없습니다. 화려한 황금도 아직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돌을 깨뜨려 만든 도구와 흙으로 빚은 그릇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북마케도니아 지역에서 확인되는 인간 활동의 흔적은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석핵과 박편, 타제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