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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케도니아 고고학 박물관에는 선사시대의 석기와 토기부터 황금 장신구, 로마의 유리 공예, 초기 기독교의 테라코타 아이콘까지 이 땅을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이 층층이 놓여 있습니다.
스코페의 바르다르강을 건너면 고전 건축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시간은 꽤 과감하게 뒤로 움직입니다. 몇 세기가 아니라 수천 년입니다.

1. 스코페 한가운데서 수천 년 전 발칸으로 들어가다
작은 토기 하나가 역사의 시작을 알린다

첫 전시실에는 왕도 제국도 없습니다. 화려한 황금도 아직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돌을 깨뜨려 만든 도구와 흙으로 빚은 그릇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북마케도니아 지역에서 확인되는 인간 활동의 흔적은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석핵과 박편, 타제석기를 보고 있으면 역사의 시작이 얼마나 소박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지금은 유리 진열장 안에 얌전히 놓여 있지만 당시에는 사냥하고, 자르고, 긁고, 살아남기 위해 손에 쥐었던 첨단 도구였습니다.
신석기시대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사람들이 한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고 마을을 이루면서 토기의 종류가 늘어나고, 사람과 동물을 형상화한 작은 소상과 제단도 등장합니다.

여기서 잠시 걸음을 늦춰보겠습니다. 진열장 속 작은 인물들은 얼굴과 몸이 놀랄 만큼 단순합니다. 사실적인 초상을 만들려 했다기보다 사람에게 중요했던 무엇인가를 압축해 놓은 듯합니다.


특히 툼바 마자리에서 발견된 인물형 토제 제단은 사람의 몸과 집을 하나의 형태로 결합한 독특한 유물입니다. 흔히 대모신과 관련된 유물로 소개되지만, 정확한 의미와 사용법을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풍요와 생명,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와 연결해 해석할 수 있지만 고고학에서는 모르는 것을 억지로 채우지 않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수천 년 전 사람이 사용 설명서까지 함께 남겨주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작은 유물들은 신석기 사람들이 먹고 자는 일만 고민했던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집을 짓고 곡식을 재배하면서 가족과 공동체, 생명과 죽음,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문명은 거대한 궁전보다 이런 작은 생각에서 먼저 자라났는지도 모릅니다.
철기시대 진열장에서 만나는 파이오니아인의 독특한 청동

시간을 조금 더 앞으로 옮기면 진열장의 색부터 달라집니다. 흙과 돌 사이에서 금속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기억해둘 이름이 파이오니아인입니다.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이 세력을 넓히기 전부터 오늘날 북마케도니아를 포함한 바르다르강 유역에는 파이오니아계 공동체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남긴 유물 가운데 특히 독특한 것이 이른바 마케도니아-파이오니아 청동 유물입니다.

새를 연상시키는 장식, 방울이 달린 펜던트, 둥근 몸체와 기하학적 구조가 결합된 청동품은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목걸이나 귀걸이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입니다. 장식품인 동시에 신분과 공동체의 정체성, 의례적 의미까지 담았던 물건으로 해석됩니다.

작은 청동 펜던트 하나를 유심히 바라보면 고대 발칸의 역사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우리가 이 지역의 고대를 이야기할 때 곧바로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드로스 3세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들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이곳에는 서로 다른 공동체가 살았고 저마다의 상징과 신앙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 박물관은 유명한 왕부터 서둘러 보여주지 않습니다. 먼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토기와 청동 장식을 보여줍니다. 역사는 왕이 나타나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흙과 청동을 지나자 황금빛 고대 마케도니아가 나타난다
죽은 사람의 얼굴을 황금으로 덮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진열장의 색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청동빛 사이로 금이 등장합니다.
오흐리드와 그 주변에서 발견된 고대의 금제 장례 가면은 이 지역 엘리트의 장례 문화를 보여주는 강렬한 유물입니다. 얇은 금판을 두드려 눈과 코, 입을 만들고 죽은 사람의 얼굴을 덮었습니다. 사진으로는 묵직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얇은 금판을 정교하게 가공한 물건입니다.
가면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사실적인 초상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눈과 눈썹, 코와 입은 실제 얼굴을 복제하기보다 상징적으로 강조되어 있습니다. 죽은 이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남기려 했다기보다 장례 의례 속에서 그를 특별한 존재로 표현하려 했던 것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왜 하필 금이었을까요. 금은 쉽게 부식되지 않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특유의 빛을 간직합니다. 희소성과 권위를 나타내는 재료이면서 변하지 않는 성질 때문에 죽음 이후의 세계와 연결하기에도 특별한 금속이었습니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얼굴의 주인은 사라졌지만 그 얼굴을 덮었던 금은 여전히 빛납니다. 고대인이 금이라는 재료에서 보았던 영속성이 무엇이었는지, 이 작은 가면 앞에서는 꽤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디오니소스의 춤이 청동 손잡이에 남았다

황금빛의 엄숙한 장례 세계를 지나 조금 옆으로 이동하면 분위기가 단숨에 달라집니다. 두 팔을 들고 금방이라도 몸을 돌릴 것 같은 작은 청동 인물이 기다립니다. 기원전 약 520~51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테토보 출토 청동 마이나스입니다.
마이나스는 포도주와 황홀경, 연극의 신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여성 신도입니다. 고대 미술에서 이들은 얌전히 서 있기보다 춤추고 몸을 비틀며 축제의 열기에 빠진 모습으로 자주 표현됩니다.
테토보의 작은 청동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팔과 다리, 옷자락의 선이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정지된 금속인데도 몸 안에 리듬이 남아 있습니다. 조금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진열장 안에서 음악이 들릴 것 같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 마이나스는 처음부터 독립된 작은 조각상으로 감상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대형 청동 크라테르의 손잡이를 장식했던 부착 조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크라테르는 고대 그리스의 연회에서 포도주와 물을 섞는 데 사용하던 큰 그릇입니다. 위의 데르베니 크라테르는 테토보 마이나스가 붙어 있던 원래 그릇은 아니지만, 당시 고급 청동 크라테르가 얼마나 화려하게 장식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비교자료입니다.
생각해 보면 꽤 절묘한 조합입니다. 포도주를 담는 그릇에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마이나스가 춤추고 있었으니까요. 장식은 단순히 예쁘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릇의 용도와 신화적 의미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묶었습니다.
고대인은 생활용품과 예술품 사이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선명한 선을 긋지 않았습니다. 좋은 그릇은 쓰는 물건인 동시에 보여주는 물건이었고, 신화와 신앙을 담는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작은 청동 마이나스 한 점이 당시의 연회와 술, 종교와 예술을 한꺼번에 불러내는 이유입니다.
3. 왕과 신들의 시대, 고대 마케도니아의 얼굴을 만나다
물병 하나에 디오니소스의 세계가 펼쳐진다

고전기 전시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다시 달라집니다. 이제 유물에서는 마케도니아 지역과 남쪽 그리스 세계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는지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대표적인 유물이 데미르 카피야에서 출토된 적회식 히드리아입니다.

히드리아는 본래 물을 담고 운반하는 그릇입니다. 그런데 이 그릇의 표면에는 단순한 장식 대신 디오니소스와 연결되는 신화적 장면이 펼쳐집니다. 물병 하나가 일상용품이면서 동시에 이야기를 담는 화면이 된 것입니다.
검은 바탕을 남기고 인물의 피부와 옷자락을 붉은색으로 드러내는 적회식 기법은 고대 그리스 도기의 대표적인 표현 방식입니다. 이런 도기가 데미르 카피야 같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은 이곳이 변방에 고립된 공간이 아니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도기와 장식 기법뿐 아니라 신화와 취향도 함께 이동했습니다. 물건이 오가면 문화도 따라 움직입니다. 전시실 한편의 그릇이 고대 지중해 세계의 교류 지도를 대신 그려주는 순간입니다.
금세공 장인은 작은 장신구에도 기술을 아끼지 않았다

조금 더 걸으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진열장 한쪽에 머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금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오흐리드의 고르나 포르타 네크로폴리스에서는 두 무덤에서만 100점이 넘는 금제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디아뎀과 귀걸이, 목걸이, 반지와 작은 장식품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금의 양보다 세공 기술이 더 놀랍습니다. 가느다란 금선을 꼬거나 이어 붙이는 필리그리, 작은 금 알갱이를 표면에 하나씩 붙여 무늬를 만드는 과립 장식이 사용되었습니다.
장신구가 작다고 해서 작업이 단순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크기가 작을수록 손끝의 정확성이 더 중요했을 겁니다. 확대된 사진을 보면 고대 금세공 장인의 집중력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하게 됩니다.
이 유물들은 단순한 사치품만은 아닙니다. 누구에게 어떤 장신구가 허락되었는지, 어떤 문양을 선호했는지, 죽은 사람의 무덤에 무엇을 함께 넣었는지가 당시 사회의 신분과 취향을 보여줍니다. 금은 화려하지만 그 안에 담긴 정보는 의외로 냉정하고 구체적입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신들도 훨씬 국제적이었다
알렉산드로스 3세의 원정 이후 동지중해와 서아시아의 교류가 크게 확대되면서 사람과 물건뿐 아니라 종교와 이미지도 넓게 이동했습니다.

박물관의 헬레니즘 컬렉션에서는 이스라르-마르빈치 출토 테라코타 소상, 바르다르스키 리드의 아프로디테상, 오흐리드 지역의 이시스상, 키벨레 도상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번 출신지를 생각해보면 꽤 흥미로운 조합입니다. 아프로디테는 그리스 세계를 대표하는 여신이고, 이시스는 이집트에서, 키벨레는 아나톨리아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신들이 오늘날 북마케도니아 지역의 유적에서 함께 발견됩니다. 헬레니즘 세계가 단순히 그리스 문화가 넓게 퍼진 시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지역의 종교와 이미지가 섞이고 다시 해석되던 시대였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신들의 행렬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 뜻밖의 인물이 끼어듭니다. 오늘날 오흐리드에 해당하는 고대 리흐니도스의 무덤 58호에서 발견된 켈트계 전사의 군사 장비입니다.
투구와 장검, 창날과 방패 부속품을 보면 이곳에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문화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기원전 3세기 발칸은 여러 집단이 이동하고 충돌하며 때로는 정착하던 역동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아프로디테와 이시스 옆에 켈트 전사의 무기가 놓이는 모습. 헬레니즘 시대의 발칸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효과적인 조합도 드뭅니다.
4. 로마가 들어오자 유물의 표정이 달라졌다
정복의 역사보다 사람들의 생활이 더 재미있다
기원전 2세기 로마가 마케도니아 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어느 날 아침 모든 것이 로마식으로 바뀐 것은 아닙니다. 정치 지도는 빠르게 바뀌어도 사람의 생활과 취향은 훨씬 천천히 움직입니다.

그래서 로마 시대 전시에서는 황제의 흉상만 좇기보다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물건을 살펴보는 편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그릇과 장신구, 테라코타, 유리병과 장례 유물을 따라가면 제국이라는 거대한 이름 뒤에 있던 개인의 삶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이 복원된 로마 시대 장례·의례용 마차입니다. 무덤에서 발견된 금속 부속과 마차 관련 유물을 바탕으로 전체 형태를 복원한 전시입니다.
마차라고 하면 이동 수단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지위와 의례를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장례와 연결된 마차는 죽은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장례 행렬의 규모까지 생각하게 합니다.
유물 몇 조각만 놓여 있었다면 쉽게 지나쳤을지도 모릅니다. 복원된 형태로 마주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죽은 이를 떠나보내던 행렬과 그것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모습까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로마 사람도 좋은 그릇과 화장품을 좋아했다

옆 진열장에서는 역사가 갑자기 우리 생활 가까이 내려옵니다.
청동 아우텝사, 작은 다색 유리병, 약이나 화장품을 넣었던 것으로 보이는 목제 상자가 나란히 놓입니다. 제국의 운명을 결정했던 전쟁보다 이런 물건들이 오히려 로마인을 더 친근하게 느끼게 합니다.

작은 유리병에는 향유나 화장품, 약품 같은 물질이 담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색과 형태도 다양합니다. 오늘날 화장대 위에 작은 병이 줄지어 놓이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국은 거대했지만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의 하루는 의외로 익숙합니다. 음식을 담고, 몸을 꾸미고, 귀중한 물건을 상자에 넣어 보관했습니다. 시대는 달라도 생활의 세부는 종종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 무덤과 연결된 기마 인물 장난감 앞에서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장난감은 시대를 단숨에 좁혀놓는 힘이 있습니다.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이름보다 그것을 손에 쥐었을 한 아이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5. 제국은 사라져도 신앙과 삶은 남았다
유리잔 하나가 로마 공예의 끝을 보여준다

관람 후반부에는 반드시 천천히 볼 유물이 하나 등장합니다. 4세기 무렵 제작된 디아트레툼(Diatretum), 흔히 케이지 컵이라 부르는 유리잔입니다.
사진만 보면 잔 바깥에 녹색 유리망을 따로 씌운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핵심은 두 부분이 하나의 구조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두꺼운 유리에서 바깥 부분을 세밀하게 깎아내 몸체와 망상 장식을 남기는 고난도의 제작 방식이 사용되었습니다.
한 번의 실수로 오랜 작업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디아트레툼은 후기 로마 유리공예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희귀한 유형으로 평가됩니다.

이 잔은 데바르 인근 타라네시의 후기 로마 시대 무덤에서 금제 피불라와 은제 식기, 다른 유리용기 등과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유리잔 하나만 보아도 귀한 물건인데 주변 부장품까지 화려합니다.
무덤은 죽은 사람의 삶을 완벽하게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무엇을 함께 묻었는지는 생전의 사회적 위치와 당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에 대한 단서를 남깁니다. 이 무덤의 주인이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만큼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테라코타에 새겨진 기독교의 새로운 이미지

그리고 마지막 전시에서는 또 한 번 세계가 바뀝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이 있던 자리에 기독교의 인물과 상징이 등장합니다.
그 변화를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 비니차 요새에서 발견된 초기 기독교 테라코타 아이콘입니다.

5~6세기경으로 보는 이 테라코타 도판들은 점토를 틀에 찍어 형태를 만든 뒤 구워 제작했습니다. 같은 형식을 반복해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조각상과도 조금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오늘날 아이콘이라고 하면 나무판 위에 그린 비잔틴 성화를 떠올리기 쉽지만, 비니차에서는 성인과 대천사, 성서의 장면이 붉은 점토 위에 부조로 새겨져 있습니다. 회화가 아니라 건축 장식과 조각 사이에 놓인 듯한 독특한 모습입니다.
성 크리스토포로스와 성 게오르기우스, 대천사 미카엘처럼 구체적인 인물이 등장하면서 전시의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몇 전시실 전까지만 해도 아프로디테와 이시스를 보고 있었는데, 이제 같은 땅에서 새로운 신앙의 시각언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근처의 스토비 초기 기독교 문양 청동 램프와 코뉴흐 초기 기독교 유적의 골각 장식품도 같은 변화를 보여줍니다. 물건을 만드는 기술과 재료는 로마 시대의 전통을 이어가지만, 그 위에 새겨지는 상징과 이야기는 이미 다른 시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보돌 바실리카의 제단부와 바닥 모자이크를 재현한 전시 앞에 서면 작은 테라코타 아이콘이 놓였던 세계를 건축 공간으로까지 확장해 볼 수 있습니다.
석제 칸막이와 기둥, 십자가 장식, 기하학적 모자이크가 이어지면서 초기 기독교 예배 공간의 분위기가 훨씬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유물 몇 점을 바라보던 관람이 어느새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들어갔을 법한 공간을 상상하는 단계까지 이어집니다.
몇 개의 전시실을 걸었을 뿐인데 수천 년이 흘렀습니다.
북마케도니아 고고학 박물관의 매력은 유명한 왕 한 사람의 이야기에 있지 않습니다. 파이오니아인의 청동 장식, 황금 가면을 쓴 고대의 엘리트, 디오니소스와 춤추는 마이나스, 헬레니즘 세계의 여러 신들, 로마인의 유리병과 초기 기독교의 테라코타 아이콘까지 서로 다른 시대가 한 공간에서 차례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마지막 전시실을 나설 때 남는 것은 왕조의 이름보다 사람들의 흔적입니다. 누군가는 금을 세공했고, 누군가는 유리잔을 깎았으며, 누군가는 작은 장난감을 아이의 무덤에 넣었습니다. 또 다른 시대의 사람들은 점토판 위에 천사와 성인의 모습을 새겼습니다.
박물관을 나와 다시 바르다르강과 스코페의 거리를 바라보면 도시가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방금 지나온 것은 전시실 몇 개가 아니라, 같은 땅 위에 겹겹이 쌓인 발칸의 시간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