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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국립박물관에는 초기 인류의 흔적부터 레펜스키 비르의 기묘한 석조 조각, 스타르체보와 빈차 문화의 토기와 인물상, 초기 구리 도구까지 긴 선사시대의 시간이 층층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는 청동기와 철기를 지나 로마 제국의 세계가 기다립니다.
전시실을 따라 걸으며 수십만 년 동안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무엇을 만들고, 먹고, 꾸미고, 기억했는지 하나씩 만나보겠습니다.

1. 다뉴브강보다 오래된 이야기, 세르비아에서 만난 최초의 사람들
박물관의 첫 장면은 왕관이 아니라 돌에서 시작된다

세르비아의 역사를 로마 제국이나 중세 왕국에서 시작하면 박물관의 첫 전시실을 너무 빨리 지나치게 됩니다. 이곳의 시계는 나라의 이름도 도시의 경계도 없었던 시대로 훨씬 더 멀리 돌아갑니다.
진열장에 놓인 석기는 처음에는 조금 수수해 보입니다. 금도 없고 화려한 무늬도 없습니다. 어떤 것은 그저 모서리가 깨진 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고고학자의 눈에는 그 깨진 면이 기록입니다. 돌을 어느 방향으로 쳤는지, 날을 어떻게 다듬었는지, 반복해서 사용했는지를 살피면 자연스럽게 깨진 돌과 사람이 의도적으로 만든 도구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돌 한 조각에서 오래전에 사라진 손의 움직임을 되찾는 것입니다.
박물관 여행의 첫 유물이 화려한 보물이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류의 아주 오래된 역사는 글자가 아니라 돌에 남은 행동의 흔적으로 시작됩니다.
말라 발라니차 동굴, 수십만 년 전 한 사람의 흔적


세르비아 남부 시체보 협곡의 말라 발라니차 동굴은 이 긴 시간의 깊이를 단숨에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이곳의 퇴적층에서 고인류의 왼쪽 아래턱 일부인 BH-1이 발견되었습니다.


BH-1이 발견된 지층의 연대 연구는 이 화석에 최소 약 39만7천~52만5천 년이라는 놀라운 시간표를 제시했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세르비아의 초기 구석기 연구에서 특히 중요한 자료이며, 형태에서도 전형적인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아 유럽 중기 플라이스토세 인류의 다양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습니다.
발칸반도의 지리도 중요합니다. 유럽 남동부에 자리한 이 지역은 서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길목이었습니다. 따라서 이곳에서 발견되는 초기 인류의 흔적은 세르비아 한 지역의 선사시대에 머물지 않고, 유라시아에서 인류 집단이 어떻게 이동하고 서로 다른 지역에서 변화했는지를 살펴보는 자료가 됩니다.

턱뼈에는 이름도 표정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십만 년 전 누군가가 이곳에서 살아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박물관 여행의 첫 주인공치고는 무척 조용하지만, 그가 건너온 시간은 어떤 왕의 연대기보다 깁니다.
이제 시계를 크게 앞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수십만 년의 시간이 지나고 다뉴브강 철문 협곡에는 강과 밀접하게 살아가는 공동체가 등장합니다. 집을 만들고 죽은 사람을 묻었으며, 놀랍게도 커다란 강돌에 낯선 얼굴을 새겼습니다.
세르비아 선사고고학에서 가장 잊기 어려운 이름, 레펜스키 비르입니다.
2. 물고기의 얼굴을 한 신들, 레펜스키 비르의 수수께끼
다뉴브강에서 발견된 이상한 얼굴
여기서부터 전시실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이번에는 돌이 도구가 아니라 얼굴이 되어 우리를 바라봅니다.
둥글고 묵직한 돌에 눈과 입을 연상시키는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분명 얼굴처럼 보이는데 평범한 사람의 얼굴은 아닙니다. 넓은 입과 둥근 형태에서는 물고기의 모습도 겹쳐 보입니다.
바로 레펜스키 비르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기념비적 석조 조각들입니다.

레펜스키 비르는 다뉴브강의 철문 협곡에 자리합니다. 유적을 내려다보면 독특한 사다리꼴 평면의 건물 흔적과 화덕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강은 이곳 사람들에게 물과 이동로를 제공했고, 어류는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습니다. 뼈와 뿔을 다듬은 도구, 석기와 장신구가 함께 발견되는 것도 이런 생활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레펜스키 비르의 돌은 생활도구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커다란 사암 강돌을 옮겨와 표면에 기하학적 무늬와 사람 또는 물고기를 연상시키는 형상을 새겼습니다. 연구된 석조 예술품만 적어도 90점이 넘으며, 가장 큰 돌 가운데 일부는 무게가 50kg을 넘습니다. 그것도 약 10km 떨어진 강의 지류에서 가져온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렇다면 이 돌들은 단순히 시간이 남아서 만든 장식품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적어도 제작하고 운반하고 배치하는 데 상당한 노동과 의도가 필요했습니다.
사람일까, 물고기일까

이 조각 앞에서는 조금 오래 머물러도 좋습니다.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질문 하나가 생깁니다. 도대체 누구의 얼굴일까요?
사람을 표현한 것인지, 물고기인지, 인간과 물고기의 특징을 결합한 존재인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조상이나 신화적 존재, 다뉴브강의 물고기와 인간 사이의 상징적 관계를 읽어내려는 여러 해석이 제시되어 왔지만 어느 하나를 정답으로 고정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출토 맥락은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석조물들은 사다리꼴 건물의 바닥이나 화덕 주변에서 발견되었고, 일부 건물은 사용이 끝난 뒤 매장 공간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몇몇 석조물은 실제 인골 매장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돌들이 생활공간과 죽음, 기억을 잇는 특별한 물건이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잠시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강을 바라보면 이 조각들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다뉴브강은 지도 위의 파란 선이 아니었습니다. 먹을 것을 주고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 길을 열어주는 동시에 계절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거대한 자연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얼굴의 정체를 아직 모른다는 사실은 약점이 아니라 레펜스키 비르의 매력입니다. 고고학은 빈칸을 상상으로 채우기보다 집과 화덕, 무덤, 동물 뼈, 도구와 조각이 놓였던 위치를 함께 살피며 가능한 설명을 좁혀갑니다. 오늘 풀리지 않은 질문이 새로운 발굴과 분석을 만나 수십 년 뒤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습니다.
화려한 얼굴 옆의 작은 도구를 놓치지 말 것

강렬한 석조 얼굴을 보고 나면 작은 골각기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활사를 좋아한다면 오히려 이쪽이 더 수다스럽습니다.
동물의 뼈와 뿔을 자르고 갈아 만든 송곳과 뾰족 도구는 당시 사람들이 주변의 재료를 얼마나 세밀하게 활용했는지 보여줍니다. 석기는 자르고 긁는 일을 맡았고, 골각기는 돌로 만들기 어려운 가늘고 정교한 도구의 영역을 넓혔습니다.

그리고 장신구가 등장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먹고사는 데 직접 필요한 물건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몸을 꾸미는 데에도 재료와 시간을 사용했습니다.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겼는지, 어떤 물건을 몸에 지녔는지는 그 공동체의 취향과 관계, 정체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레펜스키 비르가 특별한 이유는 유명한 돌조각 몇 점 때문만은 아닙니다. 집과 화덕, 생업 도구, 장신구, 매장과 석조물이 한 장소에서 서로 연결되면서 당시 사람들의 일상과 죽음, 상징 세계를 함께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흙으로 사람을 만들다, 스타르체보와 빈차의 신석기 혁명
사냥과 채집의 풍경에 밭과 마을이 더해지다
다음 전시실에서는 생활의 기본 구조가 다시 달라집니다. 세르비아의 초기 신석기를 대표하는 스타르체보 문화의 세계입니다. 세르비아 국립박물관의 초기 신석기 컬렉션은 대략 기원전 7 천년기 말부터 6 천년기 중엽의 자료를 포괄합니다.
농경과 목축, 정착생활이 확산되면서 필요한 물건도 달라졌습니다. 곡식을 갈고 음식을 조리하며 남은 식량을 저장해야 했습니다. 박물관에서는 그 변화를 아주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진열장에 토기가 부쩍 많아집니다.

스타르체보 문화의 토기는 생활용기에서 출발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표면을 정성스럽게 다듬고 무늬를 넣었으며, 아름답게 채색한 토기도 만들었습니다. 박물관 컬렉션에는 그릇뿐 아니라 토제 추와 방추차, 석기와 골각기, 장신구, 제의와 관련된 것으로 해석되는 제단과 인물상도 남아 있습니다.
그릇 하나를 보면서도 질문은 생깁니다. 음식을 담는 데 아름다운 무늬가 반드시 필요했을까요? 기능만 생각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굳이 시간을 들여 표면을 꾸몄습니다.
그 이유를 단순히 미적 취향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관습과 공동체의 정체성, 사용 목적, 상징적 의미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석기 토기가 단순한 그릇을 넘어 사람들의 선택과 기술이 기록된 물건이라는 점입니다.
빈차 사람들은 왜 작은 인간을 그렇게 많이 만들었을까

시간을 조금 더 앞으로 옮기면 빈차 문화가 등장합니다. 이름은 베오그라드 인근의 대표 유적 빈차-벨로 브르도에서 따왔습니다. 세르비아 국립박물관의 후기 신석기·동석기 컬렉션에서 가장 많은 유물이 바로 빈차 문화 유적에서 왔습니다.

진열장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는 것은 사람을 닮은 작은 토우들입니다. 삼각형에 가까운 얼굴과 크게 강조된 눈, 단순하게 정리된 몸, 표면에 새겨진 선과 무늬가 독특합니다. 몇천 년 전 물건이라는 설명을 잠시 잊으면 현대 조각처럼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질문이 따라옵니다. 이 작은 인물들은 누구일까요. 신일까요, 조상일까요, 특정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집 안에서 사용했던 의례용 물건이나 전혀 다른 목적의 조형물이었을까요.

과거에는 선사시대의 여성형 인물상을 풍요와 다산의 여신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형태만 보고 기능과 의미를 하나로 단정하는 데 훨씬 신중합니다. 실제로 빈차 문화에서는 인간형뿐 아니라 동물형 토우와 동물형 용기, 인간의 모습을 응용한 용기까지 다양한 토제품이 만들어졌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유물 하나의 생김새보다 어디에서 발견되었고 무엇과 함께 있었으며 어떻게 사용되었는가입니다. 모른다는 답이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천 년 전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흙을 눌러 얼굴과 몸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완성된 설명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퍼즐을 맞추고 있습니다.
돌의 시대에 금속이 모습을 드러내다

빈차 문화의 진열장에서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유물이 하나 더 있습니다. 구리입니다.
플로츠니크와 벨로보데 같은 빈차 문화 유적에서는 구리 도끼와 끌, 바늘과 장신구뿐 아니라 광석과 금속 가공에 관련된 흔적도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플로츠니크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구리 유물군이 발견되었고, 도끼·끌·바늘·팔찌·구리판과 잉곳까지 다양한 금속품이 알려져 있습니다.
사진 속 플로츠니크 제2 유물군은 이 변화를 눈앞에서 보여줍니다. 돌도끼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도구를 이번에는 구리로 만들었습니다. 재료만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제작 과정은 전혀 다릅니다.
돌은 골라서 깨고 갈면 됩니다. 금속은 광석을 알아보고 채취한 뒤 열을 다루고, 금속을 얻어 다시 형태를 만들어야 합니다. 광석과 불의 성질을 이해하고 여러 공정을 이어갈 수 있는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렇다고 어느 날 갑자기 돌도구가 사라지고 금속도구가 그 자리를 모두 차지한 것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돌과 뼈, 구리는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새로운 기술은 이전의 세계를 한순간에 지우기보다 기존의 기술 옆에 자리를 넓혀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전시실에 들어가면 금속은 더 이상 작은 변화가 아닙니다. 길게 뻗은 청동검과 머리를 두르는 청동 디아뎀, 황금 장식과 기묘한 팔찌가 등장합니다. 금속은 도구를 넘어 권위와 장식, 의례의 세계로 빠르게 영역을 넓혀갑니다.
그 한가운데에서 기다리는 것은 세르비아 선사시대의 가장 독특한 유물 가운데 하나인 두플랴야 전차입니다. 이제 청동기시대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4. 바퀴 위에 올라탄 신, 청동기와 철기의 발칸
금속은 도구를 넘어 사람의 지위까지 보여주기 시작했다

빈차 문화의 작은 구리 도구를 지나 청동기시대 전시실로 들어서면 유물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금속은 이제 실험적인 신소재가 아닙니다. 검과 도끼가 길어지고 정교해지며, 몸을 꾸미는 장신구에는 청동뿐 아니라 금까지 사용됩니다.
세르비아 국립박물관의 청동기 컬렉션은 대략 기원전 2500년부터 1000년까지의 유물을 포괄합니다. 판노니아 평원과 다뉴브 유역에서 세르비아 중부·남부·서부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문화집단이 남긴 토기와 무기, 장신구가 한데 모여 있습니다.

청동기시대의 금속을 바라볼 때 흥미로운 점은 재료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물건을 만들었고, 누가 그것을 가졌으며, 죽은 뒤 어떤 물건과 함께 묻혔는지를 통해 사회의 모습까지 엿볼 수 있습니다.


국립박물관이 대표 유물로 꼽는 드름노의 샤카스타형 청동 팔찌도 그 변화를 보여줍니다. 독특한 형태와 풍부한 장식은 청동이 단순한 공구의 재료가 아니라 몸을 꾸미고 자신을 드러내는 재료로도 적극 활용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콘유샤 무덤에서 함께 발견된 청동검과 디아뎀은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나는 무기이고 다른 하나는 머리를 장식하는 물건입니다. 서로 기능은 다르지만 한 무덤에서 나온 두 유물을 나란히 보면 당시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고자 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검의 긴 칼날과 독특한 손잡이는 발달한 주조와 금속 가공 기술을 보여줍니다. 얇은 청동판으로 만든 디아뎀은 실용적인 도구와는 거리가 멉니다. 무덤에서 무기와 장신구가 함께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소유자의 사회적 위치나 역할을 추정하는 단서가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구체적인 신분까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벨리카 브르비차에서 발견된 금장식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금은 밭을 갈 수도 없고 사냥감을 잡아주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어렵게 얻은 귀금속을 두드리고 구부리고 문양을 새겨 몸을 꾸몄습니다.
바로 이런 물건에서 고고학은 생활기술을 넘어 사회를 읽기 시작합니다. 귀한 재료를 얻는 사람, 그것을 가공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 완성된 장신구를 소유하거나 무덤에 넣을 수 있었던 사람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요. 금빛은 화려하지만 그 뒤에는 재료와 기술, 교환과 사회관계라는 훨씬 복잡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청동기 전시실에는 금보다도 더 오래 눈길을 붙잡는 물건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금속도 아닙니다. 흙으로 만든 작은 수레입니다.
두플랴야 전차, 새들은 누구를 태우고 달렸을까

세르비아 청동기 유물 가운데 한 점만 오래 보아야 한다면 두플랴야 전차는 충분히 그럴 만한 작품입니다.
두플랴야 인근에서 우연히 발견된 이 토제 유물은 세 바퀴가 달린 둥근 수레와 그 위의 인간형 인물, 수레를 끄는 물새 형태의 동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국립박물관 역시 이를 청동기 컬렉션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제의적 성격의 유물로 소개합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질문이 늘어납니다. 왜 하필 새가 수레를 끌고 있을까요. 수레 위의 인물은 누구이며, 이 작은 물건은 어떤 순간에 사용되었을까요.
청동기시대 유럽에서는 새와 태양, 수레와 바퀴를 결합한 상징 표현이 여러 지역에서 발견됩니다. 그래서 두플랴야 전차도 의례와 신화적 세계관을 담은 물건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다만 이 인물을 훨씬 뒤 시대에 기록된 특정 신과 곧바로 동일시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문자가 남아 있지 않은 시대의 상징을 후대의 신화와 일대일로 맞추면 이야기는 매끄러워지지만 증거보다 해석이 앞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유물은 정답을 찾으려고 서두르기보다 눈앞의 형태부터 천천히 보는 편이 더 재미있습니다. 사람들은 흙으로 수레를 만들고 실제로 돌아가는 바퀴를 표현했으며, 그 위에 인물을 올리고 앞에는 새를 배치했습니다. 표면도 그냥 두지 않고 문양으로 장식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구성을 굳이 만들었다면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 장면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와 상징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그 이야기를 설명해 줄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고고학자가 가진 것은 완성된 책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진 몇 장의 페이지입니다. 두플랴야 전차는 그 가운데 유난히 화려하면서도 아직 앞뒤 이야기를 모두 찾지 못한 한 장입니다.
철이 등장하자 발칸의 연결망도 더 복잡해졌다

시간을 조금 더 앞으로 움직이면 철기시대에 도착합니다. 세르비아 국립박물관의 철기시대 컬렉션에는 철뿐 아니라 청동과 은, 금으로 만든 무기와 도구, 장신구, 생활용품과 무덤 부장품이 함께 남아 있습니다.
그중 눈여겨볼 유물이 기원전 5세기 중엽의 므라모라츠형 은제 벨트입니다. 철기시대라고 해서 전시실 전체가 검고 투박한 철제품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귀금속 장신구에서는 상당히 정교한 세공 기술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철의 이용이 확산되면서 무기와 도구의 제작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발칸을 하나의 민족이나 하나의 문화로 묶어 이해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세르비아 국립박물관의 철기 컬렉션에는 서로 다른 집단이 남긴 물질문화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켈트계 집단의 영향도 더해졌고, 다뉴브 유역과 중부 유럽, 남쪽의 그리스 세계와 이어지는 교류 속에서 무기와 장신구의 형태도 끊임없이 변화했습니다.

노비파자르의 화려한 귀금속 부장품은 이런 연결을 살펴보기에 특히 흥미롭습니다. 작은 피불라 하나라도 장식 방식과 제작 기술, 비슷한 유물이 발견되는 지역을 함께 비교하면 물건뿐 아니라 기술과 취향이 움직인 길까지 조금씩 드러납니다.
이때 다뉴브강은 다시 이야기의 중심으로 돌아옵니다. 레펜스키 비르 사람들에게 물고기와 이동로를 제공했던 강은 수천 년이 흐른 뒤 사람과 물자, 기술과 군대가 오가는 거대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중해에서 세력을 넓혀온 로마가 이 강에 도착합니다.
5. 로마가 다뉴브강에 도착했을 때, 싱기두눔과 제국의 유물
오늘날 베오그라드 아래에는 로마 도시가 잠들어 있다
이제 다시 현재의 베오그라드를 떠올려봅니다.
사바강과 다뉴브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도시를 지도에서 보면 왜 이곳이 오랫동안 중요한 길목이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강을 통한 이동과 교역을 통제하기 좋고, 발칸 내륙과 판노니아 평원을 연결하는 위치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시대 이곳에는 싱기두눔(Singidunum)이 자리했습니다. 군사기지가 들어서고 주변에 도시가 성장하면서 싱기두눔은 다뉴브 국경 방어체계와 연결된 중요한 거점으로 발전했습니다.
로마가 오늘날 세르비아 지역에 남긴 것은 요새만이 아니었습니다. 도로가 연결되고 도시가 성장했으며 군인과 상인, 장인과 가족들이 이동했습니다. 국립박물관의 로마 컬렉션이 군사 장비부터 보석과 식기, 작은 청동상과 비문까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이유입니다.
유적에서는 도시의 뼈대를 보고 박물관에서는 그 안을 움직였던 사람들의 물건을 만납니다. 이제 로마군의 얼굴부터 만나보겠습니다.
전투용 헬멧보다 화려한 로마 기병의 얼굴

로마 시대 전시에서 단숨에 시선을 잡아끄는 유물 가운데 하나가 얼굴 전체를 덮는 퍼레이드 마스크 헬멧입니다.
국립박물관은 코스톨과 스메데레보에서 출토된 마스크 헬멧을 로마 군사문화의 대표 유물로 소개합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실전용 철모와 달리 사람의 얼굴을 본뜬 금속 마스크가 전면을 덮고 있어 첫인상부터 상당히 극적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얼굴을 쓰고 정말 전장 한복판으로 돌진했을까요.
이처럼 장식성이 강한 마스크 헬멧은 로마 기병의 훈련 경기와 퍼레이드 같은 군사 행사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로마군의 장비는 몸을 보호하는 기능뿐 아니라 기량과 위엄을 보여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묘한 느낌이 듭니다. 사람의 얼굴 위에 또 하나의 얼굴을 씌웠습니다. 말을 탄 기병들이 이런 금속의 얼굴을 하고 움직이는 장면은 그 자체로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테키야의 은제 군용 벨트, 로마군도 자신을 꾸몄다

마스크 헬멧 옆에서 함께 기억할 유물이 테키야의 은제 군용 벨트입니다. 국립박물관도 이 벨트를 로마 제국기 컬렉션의 대표적인 군사 유물 가운데 하나로 꼽습니다.
현대인의 눈에는 벨트가 옷을 고정하는 평범한 물건처럼 보이지만 로마 군인의 군용 벨트는 복식의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버클과 금속 장식판이 달린 벨트는 기능적인 장비이면서 군인의 모습을 완성하는 시각적 요소였습니다.

테키야에서 발견된 은제품 가운데에는 중앙에 주피터의 흉상을 표현한 화려한 엠블레마도 있습니다. 정확히 어떤 물건에 부착되었는지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만, 정교한 은세공과 로마 신의 이미지를 결합했다는 점만으로도 당시 장식문화의 수준을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검과 방패만으로 로마 군인을 상상하면 절반만 본 것입니다. 어떤 벨트를 찼고 갑옷과 장비를 어떻게 꾸몄으며 말을 어떤 장구로 장식했는지도 로마 군사문화의 일부였습니다.
리토페크의 펙토랄, 갑옷 위에 제국의 이미지를 입히다

리토페크에서 발견된 펙토랄은 로마 군사 장비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국립박물관이 마스크 헬멧과 테키야의 벨트와 함께 대표적인 군사 유물로 소개하는 작품입니다.
금속판 위에는 인물과 장면이 표현되고 가장자리에는 색채를 더하는 에나멜 장식이 사용되었습니다. 전투 장비라는 말에서 떠올리는 무겁고 단순한 금속판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입니다.
로마군은 상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조직이었습니다. 군단기와 독수리, 신과 황제의 이미지, 승리를 표현하는 도상은 병사와 군대를 로마라는 거대한 정치·군사 질서에 연결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런 유물들이 오늘날 세르비아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다뉴브 국경은 단순히 제국이 끝나는 선이 아니었습니다. 요새와 도로를 따라 군인과 상인, 물자와 정보가 끊임없이 오가는 활발한 접촉지대였습니다.
비석에는 황제보다 평범한 사람의 삶이 오래 남기도 한다

화려한 군사 장비를 충분히 보았다면 이제 돌에 새긴 글자 앞에서 잠시 걸음을 늦춰볼 차례입니다.
로마의 비문에는 황제와 장군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묘비에는 이름과 나이, 가족관계가 남고 다른 비문에서는 직업과 군부대, 출신지와 종교까지 확인되기도 합니다. 국립박물관의 로마 비문 컬렉션은 당시 인구와 사회계층, 종교, 군부대의 이동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구베레바츠에서 출토된 묘비에는 클라우디아 카스타와 아우렐리아 플로라라는 두 사람의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수천 년 뒤 우리가 그들의 얼굴과 삶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이름만큼은 돌에서 다시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역사의 크기가 갑자기 달라집니다. 조금 전까지 제국의 국경과 군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죽음과 그것을 기억한 가족을 바라보게 됩니다.

동전은 정반대의 방식으로 로마를 보여줍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금속 조각 위에 황제의 얼굴과 신, 승리, 군대와 속주의 상징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비미나키움에서 주조된 로마 청동화 가운데에는 모이시아 수페리오르를 의인화한 인물과 황소·사자가 함께 등장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작은 동전 하나가 물건을 사고파는 화폐이면서 로마의 정치적 이미지를 지방 곳곳으로 운반했습니다.
한쪽에는 황제의 얼굴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역사책에 이름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박물관에서는 둘 다 같은 역사 안에서 만납니다.
전시실을 나서면 베오그라드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제 처음 들어왔던 전시실을 떠올려봅니다.
여행은 말라 발라니차의 고인류 턱뼈와 오래된 석기에서 시작했습니다. 다뉴브강에서는 레펜스키 비르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고 강돌에 기묘한 얼굴을 새겼습니다. 스타르체보와 빈차의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고 토기를 빚었으며 흙으로 작은 인간과 동물을 만들었습니다.
구리를 다루기 시작한 손은 시간이 흐르면서 청동검과 디아뎀, 금 장식까지 만들었습니다. 두플랴야에서는 새가 끄는 수레 위에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 올라탔고, 철기시대에는 무기와 귀금속 장신구가 넓은 교류망을 따라 서로 다른 지역을 연결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뉴브강에는 로마의 요새와 도시가 들어섰습니다. 기병은 금속의 얼굴을 썼고 군인은 화려한 벨트를 찼으며, 누군가는 자신의 이름을 돌에 남겼습니다.
그 사이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긴 시간이 흐릅니다. 그런데 전시를 모두 보고 나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거대한 제국이나 문화의 이름만이 아닙니다.
돌에 얼굴을 새긴 사람, 흙으로 작은 인물을 빚은 사람, 금속을 두드려 장신구를 만든 사람, 죽은 가족의 이름을 돌에 새긴 사람처럼 유물 뒤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고고학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땅에서 발견되는 것은 돌과 뼈와 토기와 금속이지만 우리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언제나 그것을 만들고 사용하고 남겨둔 사람입니다.
물론 모든 질문에 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레펜스키 비르의 기묘한 얼굴이 정확히 누구를 표현했는지, 두플랴야 전차의 인물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는 아직 완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답을 모른다는 것은 이야기가 끝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새로운 무덤 하나가 발견되고, 작은 토기 조각 하나가 기존 유물과 연결되며, 새로운 분석기술이 오래된 유물을 다시 읽어내는 순간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물건은 쉽게 낡지 않습니다. 아직 묻지 않은 질문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박물관 문을 나서 다시 베오그라드의 거리를 걸으면 조금 전과 같은 도시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발밑 어딘가에는 싱기두눔이 잠들어 있고,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는 다뉴브강을 따라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갔습니다.
박물관에서 본 것은 오래된 물건이었지만, 그 물건들이 들려준 것은 결국 이 땅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긴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