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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레브의 미마라 박물관에서는 몇 걸음마다 시대가 바뀝니다. 르네상스 회화를 보고 돌아서면 왕실 초상화가 나타나고, 조금 더 걸으면 중세 조각과 고대인의 생활용품이 기다립니다. 한 건물 안에서 유럽과 고대 세계를 빠르게 건너는 여행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곳의 재미를 유명 화가의 이름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회화와 조각, 고대 유물과 유리, 도자기와 아시아 미술까지 수집 범위가 놀라울 만큼 넓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에는 평생 여러 지역의 예술품을 수집한 안테 토피치 미마라(Ante Topić Mimara)가 있습니다.
작품의 이름표만 확인하고 지나가기보다 그림 속 옷 한 벌, 조각에 남은 색의 흔적, 고대인이 손에 들었을 작은 생활용품까지 살펴보겠습니다. 미마라에서는 사소해 보이는 물건 하나가 다음 시대의 문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1. 한 수집가의 보물창고가 박물관이 되다
미마라는 도시가 아니라 한 수집가의 이름이다

처음 방문한다면 박물관 이름부터 궁금해집니다. 미마라는 자그레브의 옛 지명도 어느 왕가의 이름도 아닙니다. 박물관 컬렉션의 토대를 마련한 수집가 안테 토피치 미마라의 이름입니다.
그가 기증한 컬렉션은 한 가지 취향으로 묶기 어렵습니다. 유럽 회화와 중세 조각은 물론 고대 문명의 유물, 유리, 도자기와 가구, 직물과 카펫,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미술까지 여러 분야가 한 박물관 안에 모였습니다.
그래서 미마라를 볼 때는 한 시대를 깊숙이 파고드는 미술관과 조금 다른 방식이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무엇이 나올까 하는 마음으로 다음 전시실을 여는 편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르네상스 그림을 보고 내려가다가 고대 이집트 유리를 만나고, 다시 아시아의 검 앞에 서게 되는 곳이니까요.
19세기 학교 건물이 세계미술의 무대가 되다
박물관이 자리한 건물도 그냥 지나치기 아깝습니다. 자그레브 루스벨트 광장을 마주한 웅장한 건물은 19세기 후반에 세워진 옛 학교 건물입니다. 길게 펼쳐진 정면과 중앙부의 장중한 구성이 먼저 관람객을 맞습니다.
1987년 미마라 박물관이 문을 열면서 이곳의 역할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학생들이 오가던 공간에 수백 년, 때로는 수천 년의 시간차를 가진 예술품들이 들어왔습니다.

2020년 자그레브 지진은 이 건물에도 큰 피해를 남겼습니다. 예술품을 보존하던 박물관 자체가 이번에는 보존과 복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오래된 작품을 지키려면 그것을 담는 건물 역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건물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작품 앞으로 가보겠습니다. 미마라의 성격은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훨씬 선명해집니다.
2. 르네상스에서 근대까지, 유럽 회화를 따라 걷다
카테나는 고통보다 얼굴을 가까이 보여준다

첫 작품은 베네치아 르네상스 화가 빈첸초 디 비아조 카테나(Vincenzo di Biagio Catena)가 1525년에 그린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입니다. 48×34.5cm의 목판화로, 생각보다 아담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작은 화면이 오히려 관람객을 가까이 끌어당깁니다. 거대한 군중이나 복잡한 배경보다 상반신과 얼굴에 시선이 모이기 때문입니다. 큰 역사적 사건을 펼쳐 보이기보다 한 인물의 표정에 이야기를 압축한 그림입니다.
여기서는 오래 머물 필요도 없습니다. 얼굴과 손, 어깨를 가로지르는 십자가의 방향만 천천히 살펴보고 다음 작품으로 이동해보겠습니다. 미마라의 회화실은 한 장르에 오래 머무르지 않습니다.

베카푸미의 그림은 왜 둥글까

바로 다음 작품에서는 내용보다 먼저 그림의 모양을 보겠습니다. 이탈리아 화가 도메니코 베카푸미(Domenico Beccafumi)가 1532년에 제작한 성가족과 세례자 성 요한입니다.
사각형 액자에 익숙한 눈에는 둥근 화면부터 낯설게 느껴집니다. 지름 91cm의 원형 그림으로, 르네상스 미술에서는 이런 형식을 톤도(tondo)라고 부릅니다.
모서리가 없는 화면에서는 인물의 몸과 시선도 원을 따라 움직입니다. 누가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는지 찾은 뒤 다른 인물들의 얼굴과 손이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 따라가 보세요. 그림은 멈춰 있는데 시선은 원 안에서 계속 움직입니다.
앞의 카테나 작품이 한 인물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면 베카푸미는 여러 인물을 하나의 둥근 공간 안에서 연결합니다. 비슷한 시대의 이탈리아 회화 두 점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화면을 구성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우아한 여왕의 손에는 키루스 왕의 머리가 있다

세 번째 그림에서는 분위기가 갑자기 바뀝니다. 독일 르네상스 화가 게오르크 펜츠(Georg Pencz)가 1541년경 그린 키루스 왕의 머리를 든 토미리스입니다.
처음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여왕에게 시선이 갑니다. 그런데 작품 제목을 확인하는 순간 그림의 온도가 달라집니다. 토미리스가 들고 있는 것은 장식품이 아니라 페르시아의 정복자 키루스 2세의 머리입니다.
헤로도토스가 전한 이야기에서 마사게타이의 여왕 토미리스는 키루스와 전쟁을 벌입니다. 키루스의 계략으로 아들을 잃은 뒤 이어진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을 물리쳤고, 죽은 키루스의 머리를 피가 담긴 자루에 넣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배경을 알고 다시 그림을 보면 우아한 궁정 장면처럼 보이던 화면이 복수와 권력의 이야기로 변합니다. 박물관에서 작품 제목을 먼저 읽을지, 그림을 먼저 볼지 고민된다면 이 작품에서는 그림부터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두 번째로 볼 때 완전히 다른 작품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왕실 초상에서는 얼굴보다 옷이 더 많은 말을 한다

이제 스페인 합스부르크 궁정으로 이동합니다. 후안 판토하 데 라 크루스(Juan Pantoja de la Cruz)의 오스트리아의 인판타 카탈리나 미카엘라입니다.
왕실 초상화에서는 얼굴만 보고 지나가면 절반을 놓칩니다. 진주와 보석, 정교한 레이스, 형태가 단단하게 잡힌 궁정 의상은 단순한 패션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이 옷을 입을 수 있는지 자체가 신분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진을 확대해 볼 수 있다면 얼굴보다 옷깃과 소매부터 살펴봐도 좋습니다. 직물의 질감과 보석의 반짝임을 붓으로 재현해야 했던 화가의 노동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왕실 초상화는 사람의 얼굴을 남기는 그림인 동시에 권위를 정교하게 연출하는 이미지였습니다.
루벤스가 그린 거대한 역사보다 작은 가족의 얼굴

이번에는 이름만 들어도 화면이 요란해질 것 같은 화가가 등장합니다. 바로크의 거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입니다. 그런데 미마라에서 만나는 작품은 거대한 전쟁도 신화 속 신들의 소동도 아닙니다. 1634~1635년경 그린 화가의 아들 니콜라스 루벤스의 초상입니다.
화려한 바로크 대작을 그리던 화가가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자 화면의 목소리도 낮아집니다. 검은 모자와 어두운 의상 사이에서 얼굴만 부드럽게 떠오르고, 눈과 입 주변의 미세한 표정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붙잡습니다.
거장의 이름을 잠시 잊고 한 사람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며 바라봐도 좋습니다. 박물관에서 유명 화가를 만나는 재미는 때때로 우리가 예상한 모습과 전혀 다른 작품을 발견하는 데 있습니다.
18세기 사람들은 음악을 듣고 가발을 손질했다

18세기로 넘어가면 그림 속 공기가 한결 가벼워집니다. 샤를조제프 플리파르(Charles-Joseph Flipart)의 콘서트입니다.
왕과 전쟁, 종교의 세계를 지나 악기를 연주하고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첼로와 바이올린, 사람들의 옷차림과 자세를 살펴보면 당시 상류층의 실내 사교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같은 화가가 비슷한 시기에 제작한 가발 제작자(Vlasuljar)를 바로 이어서 보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음악을 즐기고, 다른 쪽에서는 머리를 손질합니다.
역사책에서는 전쟁과 왕의 이름이 먼저 나오지만 사람들은 그 시대에도 음악을 듣고 옷을 고르고 머리를 꾸몄습니다. 이런 풍속화는 거대한 사건 사이에서 사라지기 쉬운 일상의 역사를 슬쩍 끌어내 보여줍니다. 작은 개까지 화면에 끼어 있으니 찾아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회화실의 끝에서는 저녁 종소리를 상상해본다

회화실의 끝에서는 속도를 조금 늦춰보겠습니다. 러시아 풍경화가 이사크 일리치 레비탄(Isaac Ilyich Levitan)의 저녁 종입니다.
지금까지 화면을 채우던 왕녀와 여왕, 화가의 아들과 사교계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남은 것은 잔잔한 물과 숲, 하늘과 멀리 보이는 건축물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제목입니다. 종소리라는 청각적 경험을 그림이 직접 보여줄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물과 하늘이 가라앉은 저녁 풍경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멀리서 울리는 소리를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됩니다.
좋은 풍경화는 장소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하루 중 어느 시간인지, 공기는 얼마나 차가울지, 화면 밖에서는 어떤 소리가 들릴지까지 상상하게 합니다. 화려했던 회화실을 빠져나오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르기 좋은 그림입니다.
여기까지 오면 회화만으로도 분위기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르네상스의 인물화에서 고대의 복수 이야기로, 합스부르크 왕실에서 루벤스의 가족으로, 다시 18세기의 일상과 19세기의 풍경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미마라에서 그림만 보고 돌아서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다음 공간에서는 평평한 캔버스를 벗어나 돌과 나무, 청동이 이야기를 이어받습니다.
3. 그림 밖으로 나오면 조각과 고대 문명이 기다린다
천오백 년을 건너온 성인의 얼굴


회화실을 나서면 이제 색보다 재료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첫 작품은 6세기 초 부르고뉴 비엔에서 제작된 성 아비투스입니다. 높이 약 62cm의 채색 사암 조각입니다.
오래된 석조 조각을 보면 회색 돌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중세 조각은 처음부터 무채색이었던 것이 아닙니다. 여러 작품이 채색되었고, 지금은 오랜 세월 동안 색이 벗겨져 돌의 표면이 더 많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남아 있는 색만큼 사라진 색도 보아야 합니다. 현재의 낡고 차분한 모습 위에 한때 훨씬 선명했을 얼굴과 옷을 상상하면 천오백 년이라는 시간이 조금 실감납니다.
성 게오르기우스는 호두나무 속에서 태어났다

시간을 중세 후기로 옮기면 자크 드 바에르즈(Jacques de Baerze)의 성 게오르기우스를 만납니다. 이번에는 돌이 아니라 호두나무입니다.
높이는 약 53cm. 크기만 보면 아담하지만 갑옷과 의복, 얼굴과 신체의 굴곡을 단단한 나무에서 하나씩 끌어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보는 방법이 달라집니다.
회화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다시 덧칠할 수도 있지만 조각은 한번 깊게 깎아낸 자리를 쉽게 되돌릴 수 없습니다. 사진에서는 전체 모습만 보지 말고 갑옷 가장자리와 옷주름처럼 칼끝이 지나갔을 작은 부분을 확대해보세요. 중세 장인의 손놀림이 훨씬 가까이 느껴집니다.
클레오파트라의 마지막 순간은 청동에 멈췄다

16세기로 넘어가면 1530년경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제작된 청동 조각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이 등장합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은 르네상스 이후 유럽 미술에서 반복적으로 다뤄진 소재입니다. 이집트의 마지막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군주가 로마의 포로가 되는 대신 죽음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는 권력과 패배, 비극을 한 장면에 응축하기에 강렬한 소재였습니다.
작품의 높이는 약 43cm에 불과하지만 청동 특유의 무게감 때문에 존재감은 작지 않습니다. 회화에서 색과 빛이 감정을 만들었다면 여기서는 몸의 자세와 청동 표면을 타고 흐르는 빛이 이야기를 만듭니다. 같은 16세기라도 그림과 조각이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은 꽤 다릅니다.
왕의 보물보다 고대인의 작은 등불이 더 친근할 때

조각을 지나면 시간은 더 빠르게 뒤로 움직입니다. 이번에는 왕이나 성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사용했던 물건을 보겠습니다. 테라코타 램프입니다.
미마라에는 서기 40~80년의 이탈리아 램프와 2세기 중엽의 인물형 램프, 5세기의 걸이식 램프처럼 서로 다른 시대의 사례가 남아 있습니다. 모양은 조금씩 달라도 기본 원리는 간단했습니다. 기름을 담고 심지에 불을 붙여 어둠을 밝혔습니다.
화려한 왕관이나 금빛 보물에 비하면 소박합니다. 하지만 이런 물건 앞에서는 고대인의 하루가 오히려 더 가까워집니다. 저녁 식탁에서도, 글을 읽거나 일을 하던 자리에서도 누군가는 이 작은 불빛을 바라봤을 것입니다.
박물관에서 생활 유물이 재미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왕의 이름을 몰라도 등불이 필요한 밤은 쉽게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작은 등불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2부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다음 전시로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불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빛을 통과시키는 재료, 유리를 따라가겠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작은 향유병에서 로마의 푸른 유리, 시리아의 모스크 램프와 베네치아 무라노까지, 미마라의 또 다른 보물창고가 기다립니다.
4. 빛을 담은 예술, 미마라의 유리 컬렉션
3천500년 전 이집트인은 유리에도 색을 입혔다
조각과 고대인의 등불을 지나면 미마라 박물관에서 예상보다 오래 발걸음을 붙잡는 전시가 나타납니다. 바로 유리 컬렉션입니다. 작은 병과 잔이 모인 공간이라고 생각했다면 첫 유물부터 생각이 달라집니다.

눈여겨볼 유물은 기원전 15세기 이집트의 발사마리움입니다. 높이가 5.9cm밖에 되지 않으니 손바닥 안에 들어올 정도의 작은 용기입니다.
그런데 연대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 장인은 흙으로 만든 심을 중심으로 유리를 감아 형태를 만들고 청색과 황색을 조합해 표면을 장식했습니다. 유리를 불어 만드는 기술이 널리 사용되기 훨씬 전의 제작법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유리는 오늘날처럼 흔한 생활 재료가 아니었습니다. 높은 온도와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고, 이렇게 정교한 작은 용기는 귀한 향유나 화장품을 담는 데 사용됐습니다.
사진을 볼 때는 크기보다 색을 먼저 보세요. 3천 년이 훌쩍 넘은 물건에서 여전히 파랑과 노랑이 선명하게 맞붙어 있습니다. 미마라의 유리 여행은 이렇게 손바닥만 한 고대 이집트의 사치품에서 시작합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무늬까지 유리로 만들었다

시간을 기원전 1세기로 옮기면 알렉산드리아의 모자이크 유리 그릇을 만납니다. 앞의 이집트 향유병에서 색이 장식이었다면 여기서는 색 자체가 무늬를 만드는 재료가 됩니다.
모자이크 유리는 여러 색의 유리를 결합해 문양을 만드는 기술입니다. 그래서 가까이 들여다보면 붓으로 표면에 그림을 그린 것과는 느낌부터 다릅니다. 무늬가 표면에 얹힌 것이 아니라 유리 자체에 들어가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 시대 지중해를 대표하는 거대한 항구도시였습니다. 배를 따라 사람과 상품이 모였고 기술도 함께 이동했습니다. 지름 16.9cm의 작은 그릇이지만 그 안에는 고대 지중해 공예의 세련된 취향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로마인은 유리를 훨씬 자유롭게 다루기 시작했다

로마 시대로 내려오면 유리의 모습이 다시 달라집니다. 2~3세기 쾰른에서 제작된 푸른색 유리 주전자입니다.
앞에서 본 이집트 향유병과 비교하면 형태부터 훨씬 크고 자유롭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유리 불기 기술이 널리 퍼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용기를 이전보다 효율적으로 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주전자는 투명한 청색 유리를 부조가 새겨진 틀에 불어 넣어 성형하고 장식을 덧붙였습니다. 높이도 27cm에 이릅니다. 작은 향유병에서 출발했던 유리가 어느새 식탁과 생활 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당당한 그릇으로 커졌습니다.
오늘날 독일 쾰른 일대는 로마 제국 북서부의 중요한 유리 생산지였습니다. 이 한 점을 보고 있으면 로마 제국이 남긴 것이 신전과 조각상만은 아니었다는 사실도 보입니다. 생활용품의 제작 기술 역시 제국의 도시들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불을 켜면 금빛 장식이 살아나는 모스크 램프

유리 전시의 분위기가 가장 화려하게 바뀌는 순간은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 찾아옵니다. 14세기 중엽 시리아에서 제작된 모스크 램프입니다.
무색 투명 유리 위에 여러 색의 에나멜과 금채 장식이 더해졌습니다. 높이는 29.4cm. 앞에서 본 로마의 주전자가 유리를 생활 속으로 끌어들였다면 이번에는 빛과 장식, 종교 공간이 하나의 물건에서 만납니다.
이런 형태의 램프는 모스크와 종교 건축물 내부에 매달아 사용했습니다. 지금은 진열장 안에서 불이 꺼진 채 바라보지만 본래 모습을 상상하면 이야기가 훨씬 풍성해집니다. 높은 천장에서 여러 램프가 내려오고 그 안의 불빛이 투명한 유리와 금빛 장식을 통과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스크 램프는 유리 자체만 보고 끝내기 아까운 유물입니다. 불이 켜지고 건축 공간 속에 놓였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공예품이었습니다.
무라노에서는 유리가 귀족의 사치품이 되었다

이제 지중해를 건너 15세기 베네치아로 가보겠습니다. 1450년경 무라노에서 제작된 자주색 유리 그릇입니다.
투명한 자주색 유리에 다채로운 에나멜과 금채, 은 장식을 더했습니다. 높이는 겨우 6.3cm지만 색과 장식만큼은 전혀 소박하지 않습니다.
베네치아는 중세 후반부터 유럽 유리공예의 중심지로 성장했고, 무라노의 장인들은 정교한 성형과 장식 기술로 이름을 높였습니다. 실용적인 그릇조차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지를 경쟁하듯 보여주는 세계입니다.
여기서 고대 이집트의 작은 향유병을 다시 떠올려보면 재미있습니다. 둘 다 작고 화려한 유리 용기지만 그 사이에는 약 3천 년의 시간이 놓여 있습니다. 재료는 같아도 그것을 다루는 기술과 아름다움의 기준은 끊임없이 변했습니다.
보헤미아에서는 유리 표면까지 그림이 되었다

17~18세기로 내려오면 이번에는 보헤미아 유리가 등장합니다. 무라노와 나란히 놓고 보면 같은 유리인데도 분위기가 확연히 다릅니다.
17세기 말의 ATM 1567 포칼에서는 투명한 유리 표면을 깎아 무늬를 만드는 장식이 돋보입니다. 18세기 전반의 ATM 1578 잔에서는 다색 에나멜과 금채뿐 아니라 두 겹의 유리 사이에 금박을 넣는 독특한 기법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라노가 색과 가벼운 형태로 시선을 끌었다면 보헤미아 유리는 투명한 표면 자체를 정교하게 가공하면서 또 다른 화려함을 만들어냈습니다. 잔 하나가 장인의 기술을 전시하는 작은 무대가 된 것입니다.
짙은 루비색 병 한 쌍이 유리 여행의 끝을 장식한다

마지막으로 시선을 강하게 잡아끄는 것은 17세기 후반 독일에서 제작된 루비색 유리병 한 쌍입니다.
짙은 붉은 유리를 부조가 있는 틀에 불어 성형하고 금도금한 청동 장식을 결합했습니다. 투명함을 즐기던 유리가 이번에는 보석처럼 깊은 색을 품습니다.
사진에서는 특히 유리와 금속이 만나는 부분을 살펴볼 만합니다. 붉은 유리만으로도 충분히 화려한데 장인은 여기에 다시 금빛 금속 장식을 얹었습니다. 실용적인 병이라기보다 작은 보물처럼 보이는 이유입니다.
뒤를 돌아보면 고대 이집트의 5.9cm 향유병에서 알렉산드리아의 모자이크 유리, 로마의 주전자와 시리아의 모스크 램프를 거쳐 무라노와 보헤미아, 독일의 루비색 유리까지 왔습니다. 유리라는 한 가지 재료만 따라왔는데도 거의 3천 년의 공예사가 펼쳐졌습니다.
5. 유럽을 넘어 아시아까지, 수집가의 시선이 닿은 곳
간다라의 미륵보살에서 지중해의 흔적을 발견하다

유리 전시를 빠져나오면 미마라의 지도가 다시 크게 펼쳐집니다. 이번에는 유럽을 떠나 동쪽으로 향해보겠습니다. 먼저 만날 작품은 3세기 간다라의 미륵보살상입니다.
불교 조각인데도 처음 보는 순간 어딘가 익숙합니다. 입체적인 얼굴과 머리카락, 몸을 따라 흘러내리는 옷주름에서 고대 지중해 조각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간다라는 오늘날 파키스탄 북부와 아프가니스탄 동부 일대를 중심으로 성장했던 문화권입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 이후 이 지역에 남은 헬레니즘 계통의 조형 전통은 이후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문화, 불교 미술과 만나 독특한 표현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이 조각은 동양 미술과 서양 미술을 각각 따로 생각하던 시선을 흔들어 놓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사람과 물건뿐 아니라 미술의 표현법도 먼 거리를 이동했습니다. 미륵보살의 옷주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 긴 문화 교류의 흔적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데칸의 검에서는 금빛 권력이 번뜩인다

조용한 석조상에서 몇 걸음만 움직이면 분위기가 또 달라집니다. 17세기 인도 데칸의 검입니다. 강철에 금을 장식한 길이 91.5cm의 무기입니다.
검을 볼 때 칼날만 확인하고 지나가기 쉽지만 이런 고급 무기에서는 손잡이와 금속 장식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싸우기 위한 도구인 동시에 소유자의 신분과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무기가 이렇게 화려해야 했을까 싶지만 바로 그 질문이 관람 포인트입니다. 권력은 언제나 실용성만으로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유럽 왕실 초상에서 보석과 직물이 신분을 보여주었다면 이곳에서는 강철과 금이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히말라야의 검은 복식의 일부이기도 했다

바로 이어서 18~19세기 부탄의 칼집이 있는 검을 보면 같은 아시아의 검이라도 형태와 장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유물은 이름 그대로 검과 칼집으로 구성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칼집은 오랜 세월을 견디며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지 못했고,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자료만으로는 원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진에서는 남아 있는 검 자체의 형태와 금속 장식에 먼저 눈길이 갑니다.
이런 보존 상태 역시 오래된 유물을 바라보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금속으로 만든 칼날과 장식은 남더라도, 목재나 가죽처럼 상대적으로 약한 재료로 제작된 부분은 세월 속에서 훼손되거나 사라지기 쉽습니다. 앞에서 본 데칸의 검과 비교해 보면 화려함의 차이뿐 아니라 어떤 재료가 수백 년을 살아남아 오늘날 박물관에 도착하는가라는 또 하나의 이야기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크리스는 칼날부터 평범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동남아시아까지 내려오면 형태만으로도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무기가 기다립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말레이 세계의 크리스(keris)입니다.
크리스의 칼날은 곧은 것도 있고 물결치듯 굽은 것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성질의 금속을 단조해 칼날 표면에 독특한 무늬가 나타나도록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의 손잡이와 칼집이 더해집니다.
미마라 컬렉션에서는 마두라와 관련된 크리스와 정교한 손잡이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손잡이만 따로 보면 작은 조각품처럼 느껴질 만큼 장식성이 강합니다.
그리고 크리스를 단순한 전투용 단검으로만 이해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칩니다. 말레이 세계에서 크리스는 신분과 의례, 전통과 연결된 문화적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칼날만 보는 것보다 손잡이와 칼집, 전체 형태를 하나의 작품처럼 살펴보는 편이 좋습니다.
한 박물관에서 세계의 취향이 서로 마주보다
미마라 박물관을 다 걷고 나면 가장 강하게 남는 것은 특정 작품 하나보다 컬렉션의 놀라운 거리감입니다.
고대 이집트 장인이 만든 손바닥만 한 유리병과 베네치아 무라노의 화려한 그릇이 같은 박물관에서 만납니다. 지중해 세계의 조형 전통을 떠올리게 하는 간다라 불교 조각이 등장하고, 유럽 왕실 초상의 보석과 아시아 장식검의 금속 세공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가 권위와 아름다움을 표현했던 방법을 비교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마라에서는 모든 작품의 이름과 연대를 외우려 애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대신 다음 전시실에서 무엇이 나타날지 기대하며 걸어보세요. 서로 만날 일이 없어 보이던 물건들이 나란히 놓이는 순간 뜻밖의 연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 수집가가 모은 것은 그림과 조각, 유리와 무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 귀하게 여겼던 것, 자신의 믿음과 권위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했던 물건들이 함께 남았습니다.
르네상스의 작은 초상 앞에서 시작했던 관람은 어느새 고대 이집트와 로마, 시리아와 베네치아를 지나 간다라와 히말라야, 동남아시아까지 도착했습니다. 미마라 박물관을 걷는 재미는 바로 이 예상하기 어려운 이동에 있습니다. 문 하나를 지날 때마다 시대가 바뀌고, 진열장 하나를 돌아설 때마다 세계의 다른 얼굴이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