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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국립박물관에서는 진열장만 보고 걸으면 중요한 작품 하나를 놓치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반드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봐야 합니다. 그곳에는 핀란드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의 세계를 그린 갈렌칼렐라의 프레스코가 펼쳐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볼 것이 많습니다. 철기시대의 보물과 바이킹 시대 은화, 중세의 성 올라프 성상에서 독립을 기념하는 유물까지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대표 볼거리 7점을 따라 핀란드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걸어보겠습니다.

1. 핀란드의 역사는 금과 은보다 오래된 유물에서 시작된다
철기시대 장신구, 작은 금속 조각에 남은 북쪽 사람들의 흔적

핀란드 국립박물관에서 가장 오래된 시대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철기시대의 장신구와 무기입니다.

핀란드의 철기시대는 대략 기원전 수세기부터 중세가 시작되는 13세기 무렵까지 이어졌고, 이 시기에 금속으로 만든 브로치와 팔찌, 목걸이 장식, 검과 창 같은 다양한 물건이 사용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브로치나 금속 장식이 그다지 화려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늬를 자세히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단순히 옷을 여미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표면에 반복되는 기하학 무늬와 동물 형상, 정교한 금속 가공이 들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장신구를 착용했는지는 당시의 사회적 지위와 지역적 전통을 보여주는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바이킹 시대 은화와 은제 보물, 핀란드도 발트해 교역망 안에 있었다

이어서 눈여겨볼 두 번째 볼거리는 바이킹 시대에 핀란드 지역으로 들어온 은화와 은제 유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핀란드에서 바이킹이 살았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이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시 발트해는 여러 지역의 상인과 사람들이 오가던 거대한 교역 공간이었습니다.

핀란드에서 발견되는 외래 은화와 금속 제품들은 이 지역이 북유럽뿐 아니라 발트해를 거쳐 더 먼 지역과도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은화가 언제나 오늘날처럼 물건값을 지불하는 화폐로만 사용된 것도 아닙니다. 은 자체의 무게와 가치가 중요했기 때문에 잘라서 사용하거나 장신구 재료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 전시에서는 눈앞의 은화가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졌는지만 보기보다 “이 작은 은 조각은 어떤 길을 지나 핀란드까지 왔을까?”를 생각해 보는 편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핀란드는 유럽의 끝에 고립된 땅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바다와 육로를 통해 주변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2. 왕의 발아래 괴물이 있다, 성 올라프 성상
노르웨이 왕이 왜 핀란드의 교회에 있었을까

철기시대를 지나 중세 전시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무기와 장신구 대신 십자가와 성인, 교회에서 사용하던 종교 미술품이 등장합니다. 그중 꼭 찾아볼 작품이 성 올라프(St. Olaf) 목조 성상입니다.
올라프 2세는 11세기 노르웨이의 왕으로, 사후 성인으로 숭배되며 북유럽 전역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핀란드에서도 성모 마리아와 함께 널리 숭배된 성인 가운데 하나였고, 군인과 기사뿐 아니라 농작물과 가축을 보호하는 성인으로도 받아들여졌습니다.
핀란드의 유명한 성 올라빈린나(Olavinlinna)의 이름 역시 성 올라프에서 유래합니다. 핀란드 국립박물관이 소개하는 대표 성 올라프 성상은 15세기 후반 북독일에서 제작되어 펠케네(Pälkäne) 교회에 있었던 목조 조각입니다.
왕관보다 먼저 발밑을 보세요

성상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왕관을 쓴 수염 난 남자의 모습입니다. 갑옷을 입고 있으니 왕이나 기사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훨씬 이상한 장면이 나타납니다. 성 올라프가 사람의 얼굴을 한 왕관 쓴 존재 위에 서 있습니다.
성 올라프 조각에서 발아래 놓인 인물이나 괴물은 그의 도상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특징입니다. 악이나 이교를 제압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고, 올라프 자신이 극복해야 했던 과거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정면의 얼굴만 보고 지나가기보다 반드시 아래쪽까지 살펴보는 편이 좋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보여주는 문화의 이동입니다. 주인공은 노르웨이 왕이고, 조각은 북독일에서 만들어졌으며, 핀란드의 교회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작은 목조 성상 하나만으로도 중세의 핀란드가 북유럽 기독교 문화권 안으로 들어가 있던 모습이 드러납니다.
3. 핀란드는 오랫동안 다른 나라의 지배 아래 있었다
스웨덴 시대의 유물에서 핀란드라는 나라 이전의 핀란드를 본다
성 올라프를 보고 곧바로 1917년 독립으로 넘어가면 핀란드 역사의 중요한 중간 과정이 통째로 사라집니다. 핀란드 지역은 수세기 동안 스웨덴 왕국의 일부였고, 법과 행정, 종교와 도시 문화에도 스웨덴의 영향이 깊게 남았습니다.
국립박물관의 역사 컬렉션에서는 이 시기를 보여주는 무기와 화폐, 왕실 및 행정과 관련된 물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번 관람에서 네 번째로 주목할 볼거리입니다. 특별히 하나의 화려한 보물만 찾기보다 왕의 문장이 들어간 물건이나 화폐를 살펴보면 당시 사람들이 자신들이 속한 정치적 세계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이해하기 쉽습니다.
오늘날 지도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면 핀란드는 당연히 하나의 독립국가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지금과 같은 국경이나 국가 정체성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구간은 뒤에 등장할 독립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연결점입니다.
1809년 이후에는 러시아 황제가 핀란드의 군주가 되었다
1808~1809년 핀란드 전쟁을 거치면서 상황은 다시 바뀝니다. 스웨덴이 핀란드를 러시아에 넘기면서 이 지역은 러시아 제국 안의 핀란드 대공국(Grand Duchy of Finland)이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 볼거리로는 이 시대를 보여주는 러시아 대공국기의 화폐와 국가·행정 관련 유물을 주목해볼 만합니다.

러시아 황제가 핀란드의 대공을 겸했지만 핀란드는 일정한 행정 제도와 법적 전통을 유지했고, 19세기에는 핀란드어와 핀란드 문화에 대한 관심도 점차 커졌습니다.
여기에서부터 박물관의 이야기가 조금씩 바뀝니다. 앞에서는 “누가 핀란드를 다스렸는가”가 중요했다면 이제부터는 “핀란드인은 자신들을 누구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는가”가 더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질문이 1917년 독립과 《칼레발라》로 이어집니다.
4. 1917년, 핀란드는 마침내 자신의 나라가 되었다
독립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선언된 사건이 아니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 핀란드 역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가 등장합니다. 1917년 핀란드 독립입니다.
독립 과정은 조금 더 복잡했습니다. 러시아 혁명으로 제국의 정치 질서가 흔들리자 핀란드에서는 주권을 둘러싼 논의가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1917년 12월 4일 핀란드 상원이 독립안을 의회에 제출한 뒤 12월 6일 의회가 이를 승인했습니다. 오늘날 핀란드가 12월 6일을 독립기념일로 기념하는 이유입니다.
1917년, 한 장의 선언문에서 독립 직전의 핀란드를 읽는다

러시아 지배기의 마지막에 주목할 유물은 1917년 핀란드 대공국의 헌정 선언문입니다. 핀란드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이 문서는 1917년 3월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난 직후 발표된 것으로, 핀란드의 헌법과 기존의 권리를 다시 확인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날짜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핀란드가 독립을 선언한 것은 같은 해 12월이므로 이 문서는 독립선언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러시아 제국의 지배가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에 핀란드의 정치적 지위와 권리를 다시 확인했다는 점에서 독립으로 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에 가깝습니다.
문서 위쪽을 보면 왕관을 얹은 핀란드 대공국의 국장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직 러시아 제국 안의 대공국이었던 핀란드의 위치가 한 장의 문서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과 몇 달 뒤인 1917년 12월, 핀란드는 독립을 선언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스웨덴 왕국의 화폐와 무기, 러시아 지배기의 마르카와 대공국 국장을 지나 이 문서에 도착하면 핀란드가 오랜 외세 통치에서 독립국가로 넘어가는 역사적 전환점이 한층 선명하게 보입니다.
5. 고개를 들면 칼레발라가 펼쳐진다, 국립박물관 최고의 마지막 장면
마지막 볼거리는 유리 진열장 안에 있지 않다
국립박물관에서 마지막으로 꼭 봐야 할 일곱 번째 작품은 조금 특별합니다. 전시실의 유리 진열장 안을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습니다. 중앙 홀에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봐야 합니다.
그곳에는 핀란드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악셀리 갈렌칼렐라(Akseli Gallen-Kallela)가 그린 네 점의 《칼레발라》 프레스코가 펼쳐져 있습니다. 1928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핀란드 국립박물관 건물 자체를 대표하는 볼거리이기도 합니다.




천장에는 《삼포의 제작(The Forging of the Sampo)》, 《삼포의 방어(The Defence of the Sampo)》, 《일마리넨이 독사밭을 간다(Ilmarinen Ploughs a Field of Vipers)》, 《거대한 파이크(The Great Pike)》라는 네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모두 핀란드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에서 가져온 이야기입니다.
삼포를 알면 천장 벽화가 갑자기 재미있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삼포(Sampo)입니다. 《칼레발라》에서 삼포는 대장장이 일마리넨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물건으로 등장합니다. 정확히 어떤 모습인지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지만 풍요와 번영을 가져오는 힘을 가진 것으로 묘사됩니다.
갈렌칼렐라는 삼포가 만들어지는 순간뿐 아니라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격렬한 싸움까지 천장에 옮겼습니다. 그래서 프레스코를 볼 때는 단순히 화려한 인물과 색채를 보는 것보다 무엇인가를 만들고, 빼앗고, 다시 지키려는 하나의 서사가 천장 전체에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 그림은 원래 파리에서 먼저 등장했다
이 천장 벽화에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갈렌칼렐라는 비슷한 《칼레발라》 프레스코를 이미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핀란드관에 그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핀란드는 아직 독립국가가 아니라 러시아 제국의 대공국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파리 한복판에 독자적인 핀란드관을 세우고 핀란드 신화를 대형 벽화로 보여준 일은 단순한 미술 전시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핀란드의 문화와 정체성을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국립박물관의 건물을 설계한 헤르만 게셀리우스, 아르마스 린드그렌, 엘리엘 사리넨 역시 그 파리 핀란드관을 설계한 건축가들이었습니다. 이후 갈렌칼렐라는 국립박물관을 위해 파리에서 사용했던 주제 가운데 세 장면을 다시 그리고, 네 번째 장면은 《거대한 파이크》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박물관의 마지막을 단순히 “예쁜 천장 벽화”로 끝내기보다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철기시대의 장신구에서 시작한 관람이 중세의 성 올라프와 스웨덴·러시아 시대, 1917년 독립을 지나 결국 핀란드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화와 문화를 어떻게 국가의 이미지로 만들어 갔는지 보여주는 장소에 도착하기 때문입니다.
핀란드 국립박물관을 처음 방문한다면 모든 유물을 빠짐없이 보려고 하기보다 이번에 소개한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철기시대 장신구와 무기, 바이킹 시대 은제 유물, 성 올라프 성상, 스웨덴 시대 유물, 러시아 대공국 시대 유물, 독립 기념 메달, 갈렌칼렐라의 《칼레발라》 천장 프레스코까지 일곱 가지 볼거리를 연결하면 핀란드 역사의 큰 줄기가 자연스럽게 잡힙니다.
다만 현재 핀란드 국립박물관의 역사적 본관은 대규모 개보수 공사로 휴관 중입니다. 소장 유물들은 공사 기간 동안 핀란드 문화유산청의 컬렉션 센터로 옮겨졌으며, 본관 공사는 2027년 초 완료될 예정입니다. 재개관 뒤에는 상설전시 구성과 실제 전시 유물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최신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