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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브디프의 역사는 유명한 로마 유적보다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땅속에는 선사시대 정착민부터 트라키아인과 로마인이 남긴 흔적이 여러 겹으로 쌓여 있습니다.
플로브디프 고고학 박물관은 그 긴 시간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곳입니다.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정교한 신화 장면이 새겨진 트라키아 황금 보물. 이제 7천 년 전 선사시대에서 출발해 황금 리톤과 전사의 투구, 로마 필리포폴리스의 유물까지 차례로 만나보겠습니다.

1. 황금보다 먼저, 7천 년 전 플로브디프를 만나보자
도시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플로브디프를 이야기할 때 흔히 로마 원형극장부터 떠올립니다. 하지만 고고학 박물관에서는 시계를 훨씬 더 뒤로 돌려야 합니다.

플로브디프와 주변 지역에서는 신석기시대와 동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돌과 뼈로 만든 도구, 토기, 작은 인물상처럼 얼핏 수수해 보이는 물건들이 그 시대의 생활을 전합니다.

여기서는 금빛보다 흙빛이 먼저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전시가 중요합니다. 뒤에서 만나게 될 트라키아의 화려한 왕실 문화도 아무것도 없던 땅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돌노슬라프 유적, 벽에 그림까지 그렸던 선사시대 사람들
특히 눈여겨볼 것은 플로브디프 지역의 돌노슬라프(Dolnoslav) 로프키 취락 유적에서 나온 자료들입니다. 이곳의 유물은 초기 신석기시대부터 초기 청동기시대까지 긴 시간을 아우릅니다.

돌노슬라프 후기 동기시대 성소에서는 벽면을 장식한 회화적 표현과 다양한 의례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단순한 선과 색으로 남은 장식은 이 공간이 일상적인 주거지와는 다른 특별한 장소였음을 보여줍니다.
약 6천 년 전 사람들이 단순히 집을 짓고 음식을 저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특별한 공간을 만들고 벽면을 장식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흔적입니다.

토기와 직물 생산 흔적, 사슴뿔을 가공하던 흔적까지 보고 있으면 선사시대라는 말이 갑자기 훨씬 가까워집니다. 이들은 막연한 '원시인'이 아니라 재료를 고르고 물건을 만들고 공간을 꾸몄던 숙련된 생활인이었습니다.
2. 트라키아인은 왜 금으로 술잔을 만들었을까?
판기우리스테 황금 보물, 박물관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인다
이제 박물관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흙과 돌 사이를 걷다가 갑자기 강렬한 금빛과 마주치게 됩니다.

플로브디프 고고학 박물관을 대표하는 이름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판기우리스테 황금 보물(Panagyurishte Treasure)입니다. 1949년 판기우리스테 인근에서 발견된 이 보물은 기원전 4세기 말에서 3세기 초 무렵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며, 모두 9점의 순금제 그릇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무게를 모두 합치면 약 6.1kg. 하지만 이 앞에서는 금값을 계산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훨씬 재미있는 것은 그릇을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만들어야 했던 이유입니다.
암포라 리톤, 술병 하나에 신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가장 먼저 찾아볼 것은 두 개의 손잡이를 지닌 금제 암포라 리톤입니다. 단순한 저장용 항아리가 아니라 액체를 따르고 의례에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특별한 그릇입니다.
표면에는 인물과 신화적 장면이 세밀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트라키아 귀족의 연회에서는 무엇을 마시느냐만큼 어떤 그릇으로 마시느냐가 중요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황금 피알레, 얼굴이 빼곡하게 둘러싼 의례용 접시

넓고 얕은 피알레(phiale)도 놓치기 아깝습니다. 피알레는 신에게 술이나 액체를 붓는 헌주 의식 등에 사용하던 그릇입니다.
안을 자세히 보면 작은 얼굴과 장식이 반복됩니다. 멀리서 보면 화려한 황금 접시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놀랄 만큼 치밀한 세공이 드러납니다. 트라키아의 금속공예가 단순히 금을 많이 사용한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여성의 얼굴을 한 세 개의 황금 오이노코에
다음에는 세 점의 오이노코에(oinochoe)를 비교해 보세요. 술을 따르는 주전자의 기능을 지녔지만 몸체가 여성의 머리처럼 만들어져 있어 조각 작품을 보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얼굴과 머리카락, 장신구를 하나씩 살펴보면 세 그릇이 똑같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릇에 인간의 얼굴을 붙였다고 생각하면 다소 기묘하지만, 바로 그 낯선 조합이 이 보물의 매력입니다.
세 점의 리톤, 동물과 신화가 술잔이 되다
마지막 네 점은 더욱 극적입니다. 사슴이나 염소 같은 동물을 연상시키는 몸체에 인간과 신화적 장면이 결합된 리톤(rhyton)입니다.



리톤은 액체를 담아 마시거나 의례에서 따르는 데 사용한 특수한 그릇입니다. 오늘날의 와인잔처럼 탁자 위에 얌전히 세워놓는 물건을 상상하면 곤란합니다. 손에 들고 사용하는 순간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에 가까웠을 겁니다.
네 점을 함께 보고 나면 이 황금 보물이 단순한 부자의 식기 세트가 아니라는 사실이 보입니다. 연회와 의례, 신화와 권력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왕족 또는 최상위 귀족층의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3. 황금잔 옆에 투구가 놓이면 트라키아 사회가 보인다
카메니차 고분의 철제 투구, 한 번 사라졌다 돌아온 유물
화려한 황금 그릇만 보고 트라키아인을 연회의 민족으로 기억하면 절반만 본 것입니다. 이제 무덤에서 발견된 무기와 장비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겠습니다.

특히 주목할 유물이 플로브디프 카메니차 광장 아래 고분에서 발견된 철제 투구입니다. 1905년 발견된 것으로, 사람 머리 형태를 연상시키는 은제 장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투구에는 현대사의 사연까지 있습니다. 1995년 박물관에서 도난당했다가 무려 20년 뒤인 2015년에 되찾았습니다.
고대의 무덤에서 살아남고 현대의 도난 사건까지 겪은 셈이니, 전시장에서 다시 만난 것 자체가 꽤 극적인 유물입니다.
금잔과 투구를 함께 보면 '귀족'이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보인다
여기서 판기우리스테 보물과 전사의 장비를 머릿속에 나란히 놓아보세요.
한쪽에는 신화가 새겨진 금제 술잔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전투와 지위를 상징하는 무기가 있습니다. 트라키아 지배층이 자신의 권위를 어떻게 표현했는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금은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었고 무기도 단순한 전투 도구만은 아니었습니다. 잔치와 종교의식, 전쟁과 장례가 모두 권력의 언어가 될 수 있었습니다.
4. 필리포폴리스에 들어서면 로마가 갑자기 가까워진다
도시는 사라지지 않고 이름과 주인만 바뀌었다
트라키아 전시를 지나면 이제 플로브디프의 또 다른 이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필리포폴리스(Philippopolis)입니다.

마케도니아와 헬레니즘 세계의 영향을 거쳐 로마 지배 아래 들어간 필리포폴리스는 트라키아 속주의 중요한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플로브디프 시내에 남아 있는 원형극장과 경기장이 그 규모를 보여준다면, 박물관 안의 조각과 비문은 그 도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름과 믿음을 들려줍니다.
안티노우스 봉헌판, 황제의 총애를 받던 청년이 신이 되다

그중 흥미로운 유물 하나가 안티노우스(Antinous)에게 바쳐진 2세기 봉헌판입니다. 플로브디프의 고대 경기장 입구 앞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안티노우스는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각별히 총애했던 젊은이였습니다. 그가 갑작스럽게 죽은 뒤 황제는 제국 곳곳에서 그를 신격화했고, 그의 얼굴을 본뜬 조각과 숭배 흔적이 널리 퍼졌습니다.
그러니 플로브디프에서 발견된 이 작은 유물은 로마 제국이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로마에서 시작된 황제와 한 청년의 이야기가 발칸의 필리포폴리스까지 도착한 것입니다.
⑫ 율리아 마마이아의 조각상 받침, 돌에 새긴 정치
로마 전시에서는 조각상 자체만 찾지 말고 비문이 새겨진 받침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물관이 소장한 유물 가운데에는 로마 황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의 어머니 율리아 마마이아(Julia Mamaea)를 기리는 조각상 받침이 있습니다. 트라키아 속주 의회가 세운 것으로, 대리석 표면에는 그녀의 지위와 명예를 기록한 그리스어 비문이 남아 있습니다.
조각상은 사라졌어도 글은 남았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당시 필리포폴리스가 황제와 황실을 어떻게 기념하고 정치적 충성을 표현했는지 읽을 수 있습니다.
⑬ 아스클레피오스 봉헌판, 로마인의 병원에는 신도 있었다
조금 다른 종류의 로마 유물도 있습니다. 박물관에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에게 바친 봉헌판 조각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남아 있는 부조에는 아스클레피오스와 건강의 여신 히기에이아, 뱀이 감긴 제단의 흔적 등이 보입니다. 고대인에게 병을 고치는 일은 의학만의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치료와 종교적 믿음이 서로 맞닿아 있었습니다.
화려한 황제의 기념비 옆에서 이런 개인적인 봉헌물을 보고 있으면 로마 시대가 훨씬 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 권력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5. 로마가 사라진 뒤에도 플로브디프의 시간은 계속되었다
로마의 동전에서 비잔틴과 중세 불가리아 화폐까지
마지막 전시에서는 동전을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작은 금속 조각들이지만 도시의 주인이 바뀌는 장면을 가장 빠르게 보여주는 유물이기도 합니다.

플로브디프 고고학 박물관은 방대한 고대·비잔틴·중세 화폐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동전에 새겨진 군주와 문양을 시간순으로 따라가다 보면 로마 제국에서 비잔틴 세계를 거쳐 중세 불가리아로 이어지는 정치적 변화가 작은 원 안에 압축되어 나타납니다.
고르노슬라프 황금화 보물, 786개의 금화가 한꺼번에 발견되다

화폐에 관심이 있다면 고르노슬라프 황금 보물(Gornoslav Gold Treasure)도 기억해 둘 만합니다. 11~12세기의 금화 786점으로 구성된 대규모 화폐 보물입니다.
이 많은 금화를 한곳에 모아둔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왜 쓰지 않고 숨겼으며, 무엇 때문에 다시 찾으러 오지 못했을까요.
고고학에서 보물은 발견되는 순간보다 왜 땅속에 들어갔는가를 생각할 때 더 재미있어집니다. 전쟁, 불안, 재산의 은닉처럼 기록되지 않은 한 사람의 사정이 그 뒤에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박물관을 나오면 플로브디프 거리가 전과 다르게 보인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선사시대의 토기에서 출발해 트라키아의 황금 리톤을 보고, 전사의 투구를 지나 로마인의 비문과 신앙, 중세의 금화까지 왔습니다.
플로브디프 고고학 박물관의 재미는 '귀한 유물이 많다'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전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면 같은 장소 위에 서로 다른 도시가 계속 포개져 있었다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박물관을 먼저 보고 플로브디프의 로마 극장과 고대 경기장, 구시가지를 걷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조금 전 유리 진열장 안에서 보았던 필리포폴리스가 이번에는 도시의 거리 위에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관람 전에 알아두면 좋은 점
판기우리스테 황금 보물처럼 중요한 유물은 특별전이나 대여 일정에 따라 실제 전시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방문 직전에는 플로브디프 지역 고고학 박물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현재 전시와 운영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이 박물관은 황금 보물만 빠르게 보고 나오는 것보다 선사시대부터 시간순으로 관람하는 편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앞에서 본 작은 토기 한 점이 뒤에 등장하는 트라키아와 로마 문명을 이해하는 밑그림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