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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벨렝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에는 대항해 시대보다 훨씬 오래된 포르투갈의 시간이 숨어 있습니다. 그 흔적을 모아 놓은 곳이 바로 포르투갈 국립고고학박물관(Museu Nacional de Arqueologia, MNA)입니다.
선사시대의 장신구와 문자 비석, 로마 시대의 제단과 모자이크를 따라가다 보면 아직 ‘포르투갈’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던 이베리아 반도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번에는 놓치기 아까운 대표 유물과 그 뒤에 숨은 이야기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 현재 포르투갈 국립고고학박물관은 전면적인 리노베이션과 전시 개편을 위해 휴관 중입니다. 따라서 아래 내용은 박물관이 소장한 대표 컬렉션과 기존 전시를 중심으로 소개하며, 재개관 일정과 관람 정보는 방문 전에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1.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고고학 박물관을 만나다

국립고고학박물관은 1893년 고고학자이자 언어학자였던 호세 레이테 드 바스콘셀루스(José Leite de Vasconcelos)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왕과 전쟁의 역사만이 아니었습니다. 땅속에서 발견되는 토기와 석기, 오래된 비문과 장신구처럼 평범해 보이는 물건도 과거 사람들의 삶을 설명하는 중요한 기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고고학자는 조금 독특한 역사학자입니다. 왕이 남긴 연대기보다 깨진 그릇 한 조각을 들여다보고, 멋진 궁전보다 땅속에 묻힌 쓰레기 구덩이를 더 반가워하기도 합니다. 글로 남지 않은 시대를 알아내려면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버리고 묻었던 물건이 훨씬 솔직한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스콘셀루스는 포르투갈 곳곳에 흩어진 이런 흔적을 수집하고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작업은 오늘날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고고학 컬렉션으로 성장했습니다. 박물관에는 선사시대부터 로마 시대와 중세에 이르는 유물뿐 아니라 고대 이집트 컬렉션까지 방대한 자료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역사를 왕조 순서로 외우기보다 사람들이 남긴 물건을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으로 바라보는 편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2. 로마보다 오래된 이베리아 사람들의 흔적
선사시대라고 하면 거친 돌도끼와 동굴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국립고고학박물관의 컬렉션을 들여다보면 이런 이미지가 금세 달라집니다.
대표 유물
청동기 시대의 금팔찌

박물관에는 포르투갈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금제 장신구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이 청동기 시대의 금팔찌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름입니다. '청동기 시대'라고 부르지만 당시 사람들이 청동만 다룬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금을 가공해 몸을 장식할 만큼 상당한 금속 기술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금은 농사를 짓는 데도, 사냥을 하는 데도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많은 시간과 기술을 들여 금으로 장신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물건에는 단순한 아름다움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부와 지위, 집단 안에서의 권위 또는 의례와 관련된 상징이었을 수 있습니다.
수천 년 전에도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만 만들며 살지는 않았던 셈입니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것을 원했고, 누군가는 자신의 위치를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 반짝이는 금팔찌 하나가 선사시대 사람들을 갑자기 우리와 조금 가까운 존재로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이 금을 가진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평범한 구성원이었을까요, 아니면 공동체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을까요?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답은 알 수 없습니다. 바로 그 빈칸을 유물로 추적하는 것이 고고학의 재미입니다.
수수께끼 같은 석판과 남서부 문자 비석

금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박물관에서 유심히 볼 만한 유물이 또 있습니다. 선사시대의 새김무늬 신석기 석비와 이베리아 반도 남서부에서 발견된 문자가 새겨진 비석입니다.
특히 신석기·동석기 시대 무덤에서 발견되는 석판에는 삼각형과 지그재그, 눈처럼 보이는 무늬 등이 반복해서 새겨져 있습니다. 단순한 장식인지, 특정한 신이나 조상을 나타낸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돌 위에 진짜 '글자'도 등장합니다. 포르투갈 남부와 스페인 남서부에서는 기원전 1천년기 전반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남서부 문자(Southwest Script)가 새겨진 비석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글자가 남아 있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자의 음가와 언어에 대해서는 지금도 연구와 논쟁이 이어지고 있어, 비석을 바라보면 마치 수천 년 전에 도착한 메시지의 일부만 읽을 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박물관이 보유한 남서부 문자 비석 컬렉션은 그래서 특별합니다. 돌 위에 몇 줄 남은 문자는 이베리아 반도에 로마인이 오기 훨씬 전부터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수천 년 전에도 사람들은 죽은 이를 잊지 않기 위해 돌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사람의 모습을 새기고 그 주위를 문자로 둘러싼 석비에는, 한 사람을 기리고 오래 기억하고 싶었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문자의 정확한 뜻은 아직 모두 밝혀지지 않았지만, 누군가를 기억하고자 했던 마음만큼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3. 로마가 와도 사라지지 않은 이베리아의 신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로마의 영향력이 이베리아 반도로 깊숙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도로가 놓이고 도시가 성장했으며 라틴어와 로마의 법, 종교와 생활문화도 퍼져 나갔습니다.
그렇다고 이 지역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버리고 로마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 사실을 아주 흥미롭게 보여주는 존재가 있습니다.
대표 유물
엔도벨리쿠스 신에게 바친 제단

엔도벨리쿠스(Endovélico)는 로마에서 건너온 신이 아닙니다. 로마 지배 이전부터 이베리아 반도 서부에서 숭배되었던 토착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가 이 지역을 지배한 뒤에도 엔도벨리쿠스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늘날 포르투갈 알렌테주 지역의 상미겔 다 모타(São Miguel da Mota)에는 이 신을 위한 중요한 성소가 존재했고, 그곳에서 수많은 제단과 비문, 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국립고고학박물관에는 이 성소에서 나온 엔도벨리쿠스 관련 유물군이 보존되어 있으며, 박물관을 대표하는 로마 시대 컬렉션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제단에 새겨진 글입니다. 토착 신에게 바친 제단인데도 비문에는 라틴어와 로마식 봉헌 방식이 사용되었습니다.
신은 이베리아 출신인데 그에게 편지를 쓰는 방식은 로마식으로 바뀐 셈입니다.

이 작은 제단 하나가 로마 시대의 문화가 어떻게 섞였는지를 아주 잘 보여줍니다. 정복했다고 해서 이전 문화가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니라, 토착 신앙과 로마 문화가 서로 섞이며 새로운 형태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엔도벨리쿠스는 치유와 보호, 죽음 이후의 세계와 관련된 신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은 병이 낫기를 바라거나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빌며 이 신을 찾아갔을 것입니다. 제단과 비문은 결국 거대한 제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디 나와 가족을 지켜 주세요”라고 빌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엔도벨리쿠스의 머리 조각

엔도벨리쿠스 관련 유물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대리석으로 만든 신의 머리 조각입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역설이 있습니다. 로마 이전부터 숭배되던 신인데, 우리가 오늘날 만나는 그의 모습은 로마 시대 조각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믿어 온 신을 버리지 않았지만 그 신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로마 문화가 스며들었습니다. 로마의 신과 토착 신을 완전히 따로 구분하기보다 서로 연결하고 받아들였던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이 조각 앞에서는 단순히 “로마 시대 신상”이라고 보고 지나가기보다 한 번 더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얼굴은 로마 조각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로마보다 오래된 이베리아의 신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로마인들의 집 안으로 들어가 볼 차례입니다. 신에게 소원을 빌던 사람들이 어떤 집에서 살고 무엇으로 공간을 꾸몄는지 보여주는 놀라운 유물이 남아 있습니다. 다음으로 만나게 될 토레 드 팔마(Torre de Palma)의 로마 모자이크입니다.
4. 로마 귀족의 바닥에는 신화와 말이 살았다
엔도벨리쿠스에게 소원을 빌던 사람들의 시대, 이베리아 반도의 도시와 농촌에는 로마식 생활문화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가장 화려하게 보여주는 곳 가운데 하나가 포르투갈 알렌테주의 몬포르트(Monforte)에서 발견된 토레 드 팔마(Torre de Palma) 로마 빌라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빌라는 우리가 휴양지에서 떠올리는 작은 별장이 아닙니다. 넓은 주거 공간과 농업 시설을 갖춘 대규모 영지의 중심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집과 농장, 사업장이 하나로 합쳐진 로마 시대의 대저택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집의 주인에게 바닥은 단순히 걸어 다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부와 취향, 교양을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전시장이기도 했습니다.
대표 유물
토레 드 팔마의 ‘뮤즈 모자이크’

토레 드 팔마 빌라에서 발견된 여러 모자이크 가운데 특히 유명한 것이 뮤즈 모자이크(Mosaic of the Muses)입니다.
작은 돌과 대리석 조각을 하나씩 맞춰 만든 바닥에는 음악과 시, 예술을 관장하는 뮤즈들을 비롯해 그리스·로마 신화의 여러 장면이 펼쳐집니다.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의 싸움, 디오니소스의 승리, 메데이아와 헤라클레스의 비극적인 이야기까지 등장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거실 바닥 전체에 자신이 좋아하는 신화와 예술 작품을 정교하게 주문 제작한 셈입니다.
이 정도의 모자이크를 집에 설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인이 상당한 재력을 지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손님들에게 자신이 고전 신화와 문학을 이해하는 교양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치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화려한 모자이크에는 의외로 생활감 넘치는 문장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거친 빗자루로 모자이크를 망가뜨리지 마시오. 행복하게 사용하기를!”
모자이크 제작자 또는 집주인이 바닥에 남긴 일종의 관리 주의사항입니다.
신과 영웅들의 장엄한 이야기를 한참 바라보다가 이런 문장을 만나면 갑자기 1,700여 년 전의 집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로마 귀족의 대저택이라도 결국 누군가는 바닥을 청소해야 했고, 집주인은 비싼 모자이크에 흠집이 날까 걱정했던 것입니다.
“그 빗자루로 세게 문지르지 마세요.”
시대는 달라도 새로 깐 비싼 바닥을 아끼는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곳이 박물관을 위해 만들어진 예술품이 아니라 약 1,600년 전 사람들이 실제로 생활하던 공간이었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토레 드 팔마의 모자이크는 그래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신화 속 영웅뿐 아니라 로마 시대 부유층의 취향과 재산, 집안 살림까지 한 장의 바닥에서 읽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까지 초상화를 남겼다

토레 드 팔마에는 또 하나 재미있는 모자이크가 있습니다. 바로 말 모자이크(Mosaic of the Horses)입니다.
장식 속에는 여러 마리의 말이 등장하는데, 단순히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그려 넣은 것이 아닙니다. 각각의 말에는 이름이 함께 표현되어 있습니다.
로마 세계에서 전차경주는 오늘날의 인기 스포츠 못지않은 거대한 오락이었습니다. 뛰어난 경주마는 막대한 가치를 지녔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길러진 말들도 유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집주인이 자신이 아끼던 말을 모자이크에 남겼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반려동물 사진을 액자에 걸어 두는 것과는 규모가 조금 다릅니다. 이 사람은 아예 집 바닥에 말의 초상화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토레 드 팔마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모자이크를 보면 적어도 한 가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재산과 교양, 그리고 말에 대한 자부심을 손님들에게 꽤 보여주고 싶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5. 리스본에서 만나는 뜻밖의 고대 이집트
이베리아 반도의 선사시대와 로마 유물을 따라왔다면 이제 예상하지 못한 전시가 등장합니다.
고대 이집트입니다.
“포르투갈 고고학박물관인데 왜 이집트 유물이 있지?”
아마 처음 컬렉션을 접하면 가장 먼저 생기는 궁금증일 것입니다.
국립고고학박물관의 이집트 컬렉션은 584점에 이르는 포르투갈 최대 규모의 고대 이집트 컬렉션입니다. 기존 상설전시에서는 이 가운데 300여 점이 소개되었으며, 선사시대부터 콥트 시대까지 5,000년이 넘는 이집트 역사를 아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이집트 유물이 리스본까지 오게 된 과정에는 포르투갈 왕실의 여행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대표 유물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미라

이집트 컬렉션에서 가장 시선을 붙잡는 유물 가운데 하나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미라입니다.
고대 이집트인에게 미라는 단순히 죽은 사람의 몸을 오래 보존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사후세계에서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는 육체가 보존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미라 제작은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고고학자들이 미라를 연구하는 방식입니다.
과거에는 내부를 조사하기 위해 붕대를 풀거나 직접 해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현대에는 X선과 CT 같은 비파괴 검사 기술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에서도 리스본 미라 프로젝트(Lisbon Mummy Project)를 통해 미라를 훼손하지 않고 내부 구조와 보존 상태를 조사하는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사람에게 손을 대지 않고도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고고학과 의학 기술이 만나는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세크메트 여신상과 이집트 신들의 세계

미라 주변에서는 고대 이집트의 여러 신과 장례 문화를 보여주는 작은 유물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눈여겨볼 만한 것이 세크메트(Sekhmet) 여신상입니다.
세크메트는 사자의 머리를 한 모습으로 표현되는 강력한 여신입니다. 전쟁과 파괴의 힘을 가진 존재인 동시에 질병을 물리치고 치유하는 힘도 지닌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무서운 힘과 치료의 힘을 같은 신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가 동시에 그것을 막아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신상 하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대 이집트인들이 세상을 얼마나 다르게 이해했는지 조금씩 드러납니다.
이집트 유물 200여 점을 모은 포르투갈 왕비
그렇다면 이집트 유물은 어떻게 포르투갈까지 왔을까요?

컬렉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포르투갈의 마지막 왕비인 아멜리아 왕비(Rainha D. Amélia)입니다.
1903년 아멜리아 왕비는 두 왕자와 함께 지중해를 거쳐 이집트를 여행했습니다. 단순한 휴양 여행이라기보다는 왕자들의 교육이라는 목적도 포함된 긴 여행이었습니다.
왕실 일행은 카디스와 지브롤터, 알제, 튀니스, 몰타와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카이로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이 여행을 계기로 상당한 양의 이집트 유물이 포르투갈로 들어오게 됩니다.

박물관의 이집트 컬렉션에는 왕비가 여행을 통해 확보한 유물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후 국가 소유가 되어 국립고고학박물관의 컬렉션에 편입되었습니다.
박물관 설립자 레이테 드 바스콘셀루스 역시 1909년 이집트를 방문해 약 70점의 유물을 가져왔고, 여기에 여러 개인 컬렉션과 기증품이 더해지면서 오늘날 포르투갈 최대 규모의 이집트 컬렉션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 리스본에서 이집트 미라를 만나는 것이 완전히 우연은 아닙니다. 유물 자체의 역사뿐 아니라 20세기 초 유럽의 수집 문화와 포르투갈 왕실의 여행, 박물관이 만들어진 과정까지 함께 들어 있는 컬렉션인 셈입니다.
고고학박물관은 지금 새로운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금팔찌에서 시작해 수수께끼 같은 문자 비석을 지나 엔도벨리쿠스의 제단과 로마 귀족의 모자이크, 그리고 이집트 미라까지 살펴봤습니다.
시대도 다르고 만들어진 장소도 다르지만 이 유물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사람이 남긴 흔적이라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금팔찌로 자신의 몸을 장식했고, 누군가는 돌에 문자를 새겼습니다. 병이 낫기를 바라며 신에게 제단을 바친 사람도 있었고, 비싼 모자이크가 상할까 봐 바닥에 청소 주의사항까지 남긴 사람도 있었습니다.
고고학이 재미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돌과 금속, 깨진 도자기처럼 보이던 물건을 오래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그 물건을 사용했던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만 현재 국립고고학박물관을 여행 일정에 넣을 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박물관은 2022년 4월부터 건물 전체의 리노베이션과 전시 체계 개편을 위해 일반 관람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과거 블로그나 여행 안내서에 소개된 운영시간과 입장료를 그대로 믿고 찾아가서는 안 됩니다. 재개관 일정과 새로운 전시 구성은 방문 전에 반드시 공식 홈페이지의 최신 공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박물관의 문이 다시 열리면 가장 기대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100년 넘게 모아온 방대한 유물들이 새로운 전시 공간에서 어떤 이야기로 다시 연결될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대항해 시대의 포르투갈을 만났다면, 바로 곁의 고고학박물관에서는 그보다 훨씬 오래된 시간을 만나게 됩니다. 포르투갈이라는 이름조차 없었던 시대부터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이 이 박물관이 다시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만나보고 싶은 전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