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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State Tretyakov Gallery)은 러시아 미술을 가장 밀도 있게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초상화와 역사화, 풍경화, 상징주의까지 전시실을 따라가다 보면 러시아 사람들이 자신과 사회,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려왔는지가 선명해집니다.
이번 관람은 《미지의 여인》, 《소나무 숲의 아침》, 《보야리냐 모로조바》, 《앉아 있는 악마》를 비롯한 대표작을 중심으로 이어가겠습니다.

1. 한 상인의 집에서 러시아 미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파벨 트레티야코프는 유명한 그림보다 ‘러시아 미술의 역사’를 모으고 싶었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에 한 사람의 이름부터 기억해 두면 좋습니다. 화가가 아니라 모스크바의 상인이었던 파벨 트레티야코프(Pavel Tretyakov)입니다.

그는 1856년부터 러시아 화가들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수집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집에 그림을 걸었지만 작품이 빠르게 늘어나자 집 뒤편에 전시 공간을 잇달아 증축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거대한 미술관의 출발점은 한 수집가의 집이었던 것입니다.
트레티야코프의 안목은 이미 유명해진 작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당대 화가들의 전시장을 찾아다녔고, 때로는 완성되기도 전에 작업실에서 작품을 구입했습니다. 단순히 명화를 모으기보다 자신의 시대에 만들어지고 있는 러시아 미술을 기록하려는 수집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19세기 후반 러시아 미술의 흐름을 바꾼 이동파(Peredvizhniki)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수집했습니다. 아카데미가 선호하던 신화와 이상화된 장면에서 벗어나 농민과 노동자, 도시의 일상과 러시아의 자연을 화폭으로 끌어들인 화가들입니다.
그래서 이 미술관에서는 수집가의 취향을 넘어 19세기 러시아 사회가 그림 속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만나게 됩니다. 이제 그 변화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첫 번째 작품, 이반 크람스코이 《미지의 여인》

첫 번째로 오래 바라볼 작품은 이반 크람스코이(Ivan Kramskoi)의 《미지의 여인(Unknown Woman)》입니다.
검은 모피와 깃털 장식 모자를 쓴 여인이 마차에 앉아 있습니다. 겨울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희미하게 뒤로 물러나 있고, 여인은 몸을 꼿꼿이 세운 채 관람객을 내려다보듯 응시합니다. 화려한 옷차림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쉽게 속내를 내주지 않는 표정입니다.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이 여인은 누구일까?”
크람스코이는 모델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제 인물이 누구였는지, 어떤 신분의 여성이었는지를 두고 여러 추측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작품 앞에서는 그 정답을 찾는 일보다 화가가 왜 이토록 당당한 시선으로 그녀를 그렸는지 살펴보는 편이 더 흥미롭습니다.
살짝 내려온 눈꺼풀과 굳게 다문 입술, 꼿꼿한 자세에는 누군가의 평가를 기다리는 기색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가 그녀에게 관찰당하는 듯합니다.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야기는 닫히지 않습니다. 정체를 숨긴 채 시선 하나만으로 관람객을 붙잡는 것, 그것이 《미지의 여인》이 지금까지도 강렬한 초상으로 남아 있는 이유입니다.
밝은 방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복숭아를 든 소녀》

《미지의 여인》의 차가운 겨울 공기를 뒤로하고 발렌틴 세로프(Valentin Serov)의 《복숭아를 든 소녀(Girl with Peaches)》로 시선을 옮기면 분위기가 단숨에 밝아집니다.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방, 흰 식탁보 위의 복숭아, 그리고 막 뛰어놀다 자리에 앉은 듯한 소녀가 있습니다. 모델은 예술 후원가 사바 마몬토프의 딸 베라 마몬토바였습니다.
정식 초상화처럼 자세를 잡고 앉아 있지만 그림에는 묘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붓질은 가볍고 빛은 방 안을 돌아다니며, 소녀는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화면 밖으로 사라질 것처럼 생생합니다.
바로 앞에서 본 《미지의 여인》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 선명합니다. 크람스코이가 한 인물의 시선과 긴장으로 관람객을 붙잡았다면, 세로프는 한여름 오후의 빛과 한 소녀의 순간적인 생기까지 초상화 안에 담았습니다.
두 작품 사이에는 불과 몇 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란히 기억해 보면 초상화가 신분과 외모를 기록하는 그림에서 한 사람의 분위기와 순간까지 담아내는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트레티야코프의 관람은 이렇게 한 작품을 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다음 작품과 비교할 때 더 재미있어집니다.
2. 화가들이 궁전을 떠나자 러시아 사람들이 그림 속으로 들어왔다
일리야 레핀 《쿠르스크 지방의 종교 행렬》에서는 주인공을 한 명만 찾지 마세요

앞선 전시실에서 한 사람의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면, 이제 시선은 수십 명의 군중으로 넓어집니다.
일리야 레핀(Ilya Repin)의 《쿠르스크 지방의 종교 행렬(Religious Procession in Kursk Province)》 앞에서는 처음부터 화면 전체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인물이 워낙 많아 오히려 어디부터 봐야 할지 막막해질 수 있습니다.
먼저 중앙의 성상을 따라가고, 그 주변으로 시선을 천천히 넓혀보세요. 성직자와 지주층, 농민과 아이들, 경찰과 군중이 먼지 이는 길 위에 끝없이 이어집니다. 뜨거운 햇빛과 메마른 공기까지 느껴질 만큼 장면은 생생합니다.
같은 종교 행렬에 참여하고 있지만 모두가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성상 가까이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누군가는 가장자리로 밀려납니다. 몸이 불편한 소년처럼 주변부에 놓인 인물까지 살펴보면, 신앙의 행렬 안에도 계층과 권력의 차이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보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종교의식을 그린 장면이면서 동시에 19세기 러시아 사회를 한 화면에 펼쳐 놓은 거대한 군상화처럼 읽힙니다. 신앙과 권위, 부와 가난이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지만 서로 다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레핀은 특정 인물을 영웅으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대신 수많은 표정과 몸짓을 촘촘히 배치해 관람객이 직접 그 사회의 온도와 긴장을 읽게 합니다. 가까이에서는 한 사람의 삶이 보이고, 한 걸음 물러서면 러시아 사회 전체가 보이는 그림입니다.
레핀이 군중을 지우고 두 사람만 남겼을 때,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레핀 앞에서 조금 더 머문다면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1581년 11월 16일》도 놓치기 어렵습니다. 방금까지 수십 명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면, 이번에는 단 두 사람에게 모든 감정이 집중됩니다.

그림은 이반 4세가 분노 끝에 아들에게 치명상을 입혔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하지만 레핀이 선택한 것은 폭력의 순간이 아닙니다. 모든 일이 벌어진 직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시선을 먼저 붙드는 것도 상처보다 아버지의 얼굴입니다. 이반 뇌제는 눈을 크게 뜬 채 아들의 머리를 끌어안고 있습니다. 공포와 충격이 뒤엉킨 얼굴과 달리, 아들의 몸에서는 이미 힘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바닥도 한 번 살펴보세요. 쓰러진 의자와 흐트러진 카펫, 떨어진 홀은 조금 전까지 이 공간을 지배하던 권위가 무너졌음을 보여줍니다. 화면 한가운데 남은 것은 황제의 위엄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돌이킬 수 없는 한 인간입니다.
다만 이반 4세가 실제로 아들에게 치명상을 입혀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는 역사적으로 논쟁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을 사건의 정확한 기록으로 보기보다는, 레핀이 당시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권력과 폭력이 인간에게 남기는 파국을 극적으로 구성한 역사화로 보는 편이 좋습니다.
《쿠르스크 지방의 종교 행렬》에서는 수십 명의 인물이 사회를 만들었고, 이 작품에서는 두 얼굴만으로 비극이 완성됩니다. 군중을 그릴 때도, 두 사람만 남길 때도 인간을 놓치지 않는 것. 두 작품을 함께 보면 레핀이 왜 러시아 사실주의의 중심에 놓이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3. 러시아 역사화 앞에서는 그림의 크기부터 이야기가 된다
바실리 수리코프 《보야리냐 모로조바》, 손가락 두 개가 군중을 가른다

트레티야코프에는 사진으로 볼 때와 실제 전시장에 섰을 때 인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바실리 수리코프(Vasily Surikov)의 대형 역사화가 대표적입니다.
《보야리냐 모로조바(Boyarina Morozova)》 앞에 서면 먼저 화면의 폭에 압도됩니다. 가로가 거의 6m에 이르는 캔버스 위로 눈 덮인 거리와 썰매, 군중이 길게 이어져 실제 행렬이 눈앞을 지나가는 듯합니다.

그 거대한 화면의 중심에는 왕이나 장군이 아니라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인이 있습니다. 썰매에 실려 끌려가면서도 손을 높이 든 채 물러서지 않습니다. 주변에 수많은 인물이 몰려 있지만, 짙은 옷과 단호한 자세 때문에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모입니다.
그녀가 들어 올린 두 손가락은 단순한 몸짓이 아닙니다. 17세기 러시아 정교회의 전례 개혁에 반대했던 구교도(Old Believers)의 신앙을 나타냅니다. 모로조바는 실제로 개혁에 저항했던 귀족 여성 페오도시야 모로조바를 바탕으로 한 인물입니다. 체포되어 끌려가는 순간에도 자신의 믿음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가 이 작은 손짓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제 주변 얼굴을 살펴보세요.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고, 비웃는 사람도 있으며, 그저 소동을 구경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로조바의 몸짓에 공감하는 이와 거리를 두는 이가 한 화면 안에 뒤섞입니다.
수리코프가 그리고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영웅담이 아닙니다. 한 사건 앞에서 갈라지는 사회의 표정입니다. 그래서 《보야리냐 모로조바》는 개인의 비극이면서 동시에 신앙과 권력이 충돌하던 시대 전체를 무대로 삼은 역사화로 읽힙니다.
《스트렐치 처형의 아침》에서는 처형보다 그 직전의 침묵을 본다

수리코프의 또 다른 대표작 《스트렐치 처형의 아침(The Morning of the Streltsy Execution)》에서는 분위기가 더욱 무거워집니다.

이 작품은 17세기말 표트르 대제에게 반기를 들었던 스트렐치의 처형을 다루지만, 정작 수리코프는 피가 흐르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제목 그대로 그가 붙잡은 것은 처형이 시작되기 직전의 아침입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스트렐치와 가족들, 이를 둘러싼 병사들, 그리고 오른쪽 멀리 말을 탄 표트르 대제가 한 화면 안에 놓여 있습니다. 뒤로 성 바실리 대성당과 크렘린 성벽이 이어지면서 이 비극이 모스크바의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그림에서는 인물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는 것이 좋습니다. 가족과 병사는 서로를 붙잡고 있고, 맞은편의 표트르 대제는 말을 탄 채 그들을 바라봅니다. 서로 마주 보는 시선만으로도 무너지는 옛 질서와 새 권력 사이의 긴장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화면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칼이나 피가 아닙니다.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과 기다림입니다. 죽음을 직접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긴장은 더 오래 남습니다.
수리코프의 두 작품을 연이어 보면 역사화의 재미가 선명해집니다. 사건의 연도를 외우지 않아도 누가 어디에 서 있고, 누구를 바라보고 있으며, 군중이 어떻게 갈라져 있는지만 살펴보면 됩니다. 역사를 사실의 목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충돌로 바꾸는 것, 그것이 수리코프의 대형 화면이 전시장에서 더욱 강렬한 이유입니다.
20년에 걸쳐 완성한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 주인공은 멀리 있다

대작이라는 말이 가장 문자 그대로 어울리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알렉산드르 이바노프(Alexander Ivanov)의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The Appearance of Christ Before the People)》입니다.
가로 7m가 넘는 화면 앞에 서면 먼저 크기에 압도됩니다. 하지만 조금 오래 바라보면 이 작품의 진짜 재미는 규모보다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바노프는 1830년대부터 약 20년에 걸쳐 작품을 완성했고, 인물 하나하나의 자세와 표정을 위해 수많은 습작을 남겼습니다.

장면은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리스도는 화면 한가운데 크게 등장하지 않습니다. 멀리 작은 모습으로 서 있고, 전경에는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훨씬 크게 자리합니다.
세례 요한이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한 뒤 주변 인물들의 얼굴을 따라가 보세요. 놀라는 사람, 의심하는 사람, 몸을 돌리는 사람, 다가가려는 사람, 아직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이 한 화면에 섞여 있습니다.
같은 순간을 마주했지만 반응은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이 거대한 종교화는 생각보다 인간적인 장면으로 다가옵니다. 기적 자체보다 기적을 처음 바라본 사람들의 표정이 더 오래 눈에 남기 때문입니다.
수리코프의 역사화와 함께 보면 흥미로운 공통점도 드러납니다. 시대와 주제는 다르지만, 모두 거대한 사건 자체보다 그 순간 앞에 선 사람들의 서로 다른 반응을 화면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 전시실에서는 역사와 종교를 공부한다기보다, 거대한 사건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바라보게 됩니다.
4. 러시아 풍경화는 웅장한 자연보다 ‘러시아다운 공기’를 그렸다
이반 시시킨 《소나무 숲의 아침》, 곰부터 찾았다면 이제 숲을 보세요

대형 역사화 전시실을 지나 풍경화로 넘어오면 분위기가 한결 잔잔해집니다. 그리고 곧 아주 익숙한 그림을 만나게 됩니다.
이반 시시킨(Ivan Shishkin)의 《소나무 숲의 아침(Morning in a Pine Forest)》입니다. 쓰러진 나무 위에서 장난치는 곰들 때문에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실제로는 곰보다 숲이 훨씬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높이 솟은 소나무입니다. 가까이에서는 거친 나무껍질이 선명하고, 멀어질수록 숲은 안갯속으로 희미해집니다. 그 사이로 아침빛이 스며들면서 숲의 깊이와 습기, 공기의 무게까지 느껴지는 듯합니다.
쓰러진 고목도 그냥 배경이 아닙니다. 오래된 나무와 어린 나무, 부러지고 넘어진 줄기가 함께 놓이면서 숲은 반듯하게 정돈된 풍경이 아니라 계속 자라고 사라지는 살아 있는 공간으로 보입니다.
곰들은 동료 화가 콘스탄틴 사비츠키(Konstantin Savitsky)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보면 두 화가의 역할도 흥미롭습니다. 곰은 화면에 움직임을 더하고, 시시킨의 숲은 그 움직임을 품을 만큼 깊고 거대한 무대를 만듭니다.
곰을 보러 가까이 갔다가 결국 숲을 오래 바라보게 되는 그림. 《소나무 숲의 아침》은 그렇게 익숙한 이미지에서 시작해 러시아 자연의 깊이로 시선을 끌고 갑니다.
화려한 장면이 없어도 기억에 남는다, 사브라소프와 레비탄

트레티야코프의 풍경화가 특별한 이유는 장대한 산맥이나 거친 폭풍이 없어도 충분히 오래 기억된다는 데 있습니다.
알렉세이 사브라소프(Alexei Savrasov)의 《까마귀 떼가 돌아왔다(The Rooks Have Returned)》에는 아직 눈이 남은 들판과 작은 교회, 앙상한 자작나무가 있을 뿐입니다. 얼핏 보면 특별할 것 없는 러시아 시골의 늦겨울입니다.
그런데 나뭇가지 사이로 까마귀들이 돌아와 둥지를 틀기 시작하면서 풍경에 미세한 변화가 생깁니다. 녹아내리는 눈과 젖은 땅, 잿빛 하늘까지 모두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작은 징후처럼 보입니다.
사브라소프는 극적인 자연 대신 이런 변화를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봄을 화려하게 선언하지 않습니다. 아직 차갑고 쓸쓸한 풍경 속에서 봄이 천천히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만 조용히 보여줍니다.
조금 더 걸으면 러시아 풍경화는 한층 깊은 곳으로 들어갑니다. 이삭 레비탄(Isaac Levitan)의 《영원한 평화 위에서(Above Eternal Peace)》입니다.

거대한 하늘과 끝없이 이어지는 물아래, 언덕 위에는 작은 교회와 묘지가 놓여 있습니다. 화면에서 인간의 흔적은 아주 작지만, 바로 그 때문에 자연의 크기와 시간의 깊이가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무겁게 내려앉은 구름과 넓게 펼쳐진 호수는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고요하지만 편안하지 않고, 장엄하지만 어딘가 쓸쓸합니다. 풍경 전체가 하나의 생각처럼 화면을 채웁니다.
작은 교회와 묘지를 발견하고 나면 그림의 분위기도 달라집니다. 자연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삶의 유한함과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레비탄은 풍경을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풍경 속에 사색할 자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세 작품을 이어서 보면 러시아 풍경화의 폭이 분명해집니다. 시시킨은 숲의 생명력을, 사브라소프는 계절이 움직이는 미세한 순간을, 레비탄은 자연 앞에서 깊어지는 인간의 생각을 그렸습니다. 같은 러시아의 땅을 그렸지만 세 화가가 바라본 세계는 전혀 다릅니다.
5. 영웅과 악마가 등장하자 러시아 미술은 현실 너머를 보기 시작했다
빅토르 바스네초프 《보가티르》, 러시아의 옛 영웅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19세기 후반으로 들어서면 트레티야코프의 분위기가 다시 달라집니다. 농민과 도시, 역사와 풍경을 바라보던 화가들이 이제 오래된 전설과 상상의 세계로 시선을 돌립니다.

그 변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작품이 빅토르 바스네초프(Viktor Vasnetsov)의 《보가티르(Bogatyrs)》입니다. 가로 4m가 넘는 화면을 세 명의 전사와 거대한 말이 가득 채워, 실제 작품 앞에서는 전설 속 인물들이 길을 막아선 듯한 묵직한 존재감이 먼저 다가옵니다.

세 인물은 러시아 전통 서사시 빌리나(bylina)에 등장하는 영웅들입니다. 가운데의 일리야 무로메츠를 중심으로 도브리냐 니키티치와 알료샤 포포비치가 말을 탄 채 들판을 살핍니다.
가운데 일리야는 한 손을 이마에 대고 먼 곳을 바라보고, 도브리냐는 무기에 손을 가져갑니다. 젊은 알료샤는 활을 지닌 채 주변을 경계합니다. 세 사람의 자세만으로도 힘과 경험, 민첩함이라는 서로 다른 성격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흥미로운 것은 전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적도 없고, 칼이 부딪치는 장면도 없습니다. 대신 끝없이 펼쳐진 들판 앞에 멈춰 선 세 영웅을 통해 바스네초프는 이들을 러시아 땅을 지키는 수호자처럼 보이게 합니다.
앞에서 보았던 레핀과 수리코프가 현실의 사회와 역사적 사건을 그렸다면, 바스네초프는 러시아 사람들이 오래도록 전해 온 이야기를 눈앞의 이미지로 바꾸었습니다. 현실을 기록하던 회화가 이제 한 나라가 자신을 어떻게 기억하고 상상하는가까지 다루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미하일 브루벨 《앉아 있는 악마》 앞에 조금 오래 머물러 보세요

이번 관람의 마지막에는 미하일 브루벨(Mikhail Vrubel)의 《앉아 있는 악마(The Demon Seated)》 앞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악마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뿔도 불길도 없고, 누군가를 위협하지도 않습니다. 브루벨은 러시아 시인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서사시 《악마(The Demon)》에서 영감을 받아, 선과 악 어느 한쪽으로 쉽게 규정하기 어려운 존재를 그렸습니다.
거대한 몸은 좁은 화면 안에 웅크려 있습니다. 근육질의 어깨와 긴 팔에서는 힘이 느껴지지만, 얼굴에는 위협보다 깊은 고독이 먼저 보입니다. 시선은 관람객이 아니라 화면 밖 먼 곳을 향합니다. 강한 육체와 고립된 표정 사이의 불균형이 이 인물을 더욱 낯설게 만듭니다.
주변 풍경 역시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거대한 꽃과 산, 붉게 물든 하늘이 악마를 감싸고 있지만 실제 자연이라기보다 꿈속의 장면처럼 보입니다. 아름다운 색채와 불안정한 인물이 함께 놓이면서 화면 전체에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이 생깁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브루벨의 화면은 더 독특해집니다. 얼굴과 몸, 옷과 꽃을 부드럽게 이어 그리지 않고 색면을 잘게 나누어 보석 조각이나 모자이크를 맞춘 듯한 표면을 만들었습니다. 단단하게 빛나면서도 금이 갈 듯 예민한 화면이 인물의 불안한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여기까지 오면 《미지의 여인》에서 시작한 관람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한 사람의 얼굴과 현실 사회를 바라보던 회화가 역사와 자연, 전설을 지나 이제 고독과 욕망, 불안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세계까지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트레티야코프에서는 명화보다 그 사이의 흐름이 오래 남는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을 처음 찾는다면 모든 작품을 빠짐없이 보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몇 점의 대표작을 기준으로 전시실을 천천히 이어 보는 편이 오히려 이 미술관의 성격을 더 잘 보여줍니다.
《미지의 여인》에서는 한 사람의 시선을 만났고, 《쿠르스크 지방의 종교 행렬》에서는 그 시야가 러시아 사회 전체로 넓어졌습니다. 수리코프의 대형 역사화에서는 과거가 눈앞의 사건처럼 되살아났고, 시시킨과 레비탄 앞에서는 러시아의 자연이 하나의 감정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보가티르》와 《앉아 있는 악마》에 이르면 회화는 현실의 바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전설 속 영웅과 인간의 내면을 빌려 러시아 미술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꿈꾸는지까지 묻기 시작합니다.
에르미타주가 세계 미술사의 거장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곳이라면, 트레티야코프는 러시아가 자신의 얼굴과 역사, 자연과 상상력을 어떻게 그림으로 만들어 왔는지 따라가는 미술관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전시실을 나설 때는 작품 제목 몇 개보다 하나의 긴 흐름이 남습니다. 현실을 바라보던 그림이 점차 역사와 자연을 지나 전설과 인간의 내면으로 깊어지는 과정. 트레티야코프에서의 관람은 그 변화 자체를 따라가는 여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