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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왕의 이름을 가진 석관에 정작 대왕은 묻히지 않았고, 손바닥만 한 점토판에는 강대국의 평화 협정이 남아 있습니다. 금빛 잎사귀와 날개 달린 귀걸이, 사슴의 얼굴을 한 은잔도 기다립니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서 왕의 위엄과 장인의 솜씨, 오래된 사람들의 마음을 차례로 만나보겠습니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본관의 신고전주의 양식 외관과 기둥이 늘어선 중앙 현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본관. 고대 신전을 연상시키는 기둥과 삼각형 박공이 인상적인 신고전주의 건축으로, 오스만 제국 말기에 세워진 박물관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 Metuboy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발굴이 열어준 무대, 세 석관의 서로 다른 이야기

     

    톱카프 궁전 가까이, 귈하네 공원에서 이어지는 언덕길을 오르면 고전 신전을 닮은 건물이 나타납니다. 그 안에는 레바논과 이라크, 아나톨리아와 에게해 세계의 오래된 유물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고고학 박물관,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 타일 키오스크 박물관으로 이루어집니다. 석관과 조각에서 금속 공예와 장신구, 문자 자료와 도자기까지 소장품의 폭이 넓습니다. 이번에는 크기로 압도하는 작품과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매력이 드러나는 물건을 번갈아 만나겠습니다. 한 시대의 문명도 왕의 얼굴만으로는 다 알 수 없으니까요.

     

     

    1883년 네므루트산 고고학 조사 현장에서 거대한 석상과 함께 촬영된 오스만 함디 베이와 조사단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의 발전을 이끈 화가이자 고고학자 오스만 함디 베이의 흑백 초상사진
    오스만 함디 베이의 두 얼굴. 초상사진 속 단정한 박물관장의 모습과 1883년 네므루트산 조사 현장의 모습이다. 화가이자 고고학자였던 그는 오스만 제국의 박물관과 고고학 제도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훗날 시돈 왕실 묘지 발굴을 지휘해 중요한 유물들을 세상에 알렸다. 네므루트산 조사 사진: Unknown photographer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 초상사진: Unknown author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박물관의 발전에는 오스만 함디 베이의 발굴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화가이자 고고학자였던 그는 1881년 박물관장으로 취임했고, 1887~1888년 시돈 왕실 묘지 발굴을 이끌었습니다. 오늘날 레바논에 속하는 이 항구도시의 땅속에서 놀라운 석관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시돈의 발견은 박물관의 공간까지 바꾸었습니다. 늘어난 소장품을 수용할 새 건물이 필요했고, 알렉상드르 발로리가 설계한 본관은 1891년 6월 13일 문을 열었습니다. 눈앞의 석관들은 전시실의 주인공이면서, 이 건물을 세우게 한 주역이기도 합니다.

     

    출토지에도 잠시 눈길을 주십시오. 서로 다른 나라의 유산이 이곳에 모인 배경에는 당시 오스만 제국의 영토와 발굴·수집 정책이 있습니다. 작품의 제작 시기 옆에 적힌 지명은 장식적인 정보가 아닙니다. 유물이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발견되어 이곳까지 왔는지 짚어주는 또 하나의 지도입니다.

     

    알렉산드로스 석관, 이름이 만든 오해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된 알렉산드로스 석관과 전투 장면이 조각된 대리석 부조
    기원전 4세기 후반 제작된 알렉산드로스 석관. 시돈 왕실 묘지에서 발견되었으며, 측면에는 전투와 사냥 장면이 정교한 고부조로 새겨져 있다. 이름과 달리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실제 석관은 아니다. Istanbul Archaeology Museums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알렉산드로스 석관은 기원전 4세기말의 걸작입니다. 이름만 보면 대왕의 무덤을 발견한 듯하지만, 실제로 알렉산드로스가 묻힌 관은 아닙니다. 시돈 왕 압달로니모스를 위한 것으로 보는 해석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주인의 신원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먼저 전투 장면을 바라보겠습니다. 말 탄 인물과 쓰러지는 전사, 휘날리는 옷자락이 겹치며 대리석 표면을 가득 채웁니다. 인물들은 같은 높이에 가지런히 서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튀어나온 몸과 뒤로 물러난 몸이 충돌하면서, 돌에 새긴 장면에 깊이와 속도가 생깁니다.

     

    전투 장면에는 알렉산드로스로 해석되는 인물도 등장합니다. 이를 이소스 전투와 연결하는 해석이 있지만, 부조를 특정 전투의 현장 기록처럼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석관의 주인이 자신을 어떤 권력과 연결해 기억시키려 했는지가 더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름에 이끌려 왔다가, 이름 너머의 주인을 궁금해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알렉산드로스 석관의 지붕형 뚜껑과 기마 전사 및 보병이 표현된 측면 부조
    알렉산드로스 석관의 또 다른 모습. 신전을 닮은 지붕형 뚜껑 아래로 인물들이 깊은 부조로 펼쳐진다. 곳곳에 남은 채색 흔적은 이 석관이 본래 지금보다 선명한 색을 지녔음을 알려준다. Istanbul Archaeology Museums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다른 긴 면의 사냥 장면에서는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그리스계와 페르시아계 복식을 한 인물들이 같은 사냥에 참여합니다. 전투 장면에서 충돌하던 세계가 여기서는 함께 움직입니다. 정복 이후의 관계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이, 사람과 말과 사자의 몸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대리석에 남은 채색 흔적도 놓치지 마십시오. 고대 조각은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흰색만의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옷과 무기 등에 남은 희미한 색은 장면을 읽는 방식까지 바꿉니다. 서로 다른 복장의 인물들이 지금보다 훨씬 또렷하게 구분되었을 테니까요. 조각가는 돌을 깎았고, 채색은 그 위에 또 다른 시각적 생기를 보탰습니다.

     

    말없이 고개를 숙인 여인들의 슬픔

    애도하는 여인들의 석관과 이오니아식 기둥 사이에서 서로 다른 자세로 슬픔을 표현하는 여성 조각들
    기원전 4세기 시돈 왕실 묘지에서 출토된 애도하는 여인들의 석관. 작은 그리스 신전을 닮은 건축적 구성 안에 고개를 숙이거나 손을 얼굴 가까이 올린 여인들이 배치되어 있다. Sefer azeri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애도하는 여인들의 석관 앞에서는 움직임이 잦아듭니다. 기원전 4세기의 작품으로, 이오니아식 신전을 축소한 듯한 구조 안에 여인들이 서 있습니다. 전투 장면의 인물들이 서로 부딪치던 것과 달리,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 머물며 슬픔을 드러냅니다.

     

    고개를 숙인 여인과 손을 얼굴 가까이 올린 여인을 비교해 보면 같은 감정도 여러 몸짓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이 보입니다. 옷자락의 주름과 몸의 기울기는 조용한 장면 안에 미세한 차이를 만듭니다. 크게 울부짖는 모습을 새기지 않아도, 멈춘 자세 하나가 상실의 무게를 전합니다.

     

    기둥 사이의 여인들을 모두 왕의 아내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씩 구분된 자리에 서 있지만, 반복되는 애도의 자세는 석관 전체를 묶어줍니다. 떠들썩한 영웅의 무대 옆에 이처럼 낮은 목소리의 작품이 있다는 사실도 이 전시의 매력입니다.

     

    32톤의 석관과 돌아온 작은 얼굴

    아나톨리아에서 출토된 시다마라 석관과 기둥 사이에 깊은 부조로 새겨진 인물들
    서기 3세기 로마 시대의 시다마라 석관. 기둥과 인물들이 촘촘하게 배치되어 죽은 이를 위한 작은 건축물을 연상시킨다. Yair-haklai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시다마라 석관은 시돈 출토품이 아니라 아나톨리아에서 발견된 서기 3세기 로마 시대 석관입니다. 약 32톤에 이르는 몸체에 기둥과 인물, 여러 장면이 촘촘히 새겨져 있습니다. 깊이 파낸 부조 때문에 인물들이 벽면에서 걸어 나올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 거대한 물건에는 작은 얼굴 하나의 이야기가 따라붙습니다. 떨어져 나와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 있던 에로스 두상이 2022년 두 기관의 협력을 통해 석관에 다시 결합되었습니다. 장기 대여를 통한 재결합으로, 서로 떨어져 있던 작품의 일부가 다시 만난 것입니다.

     

    32톤의 몸체와 작은 두상의 재결합을 함께 떠올려보면, 크기만으로 작품의 중요성을 가늠하기 어려워집니다. 오래 떨어져 있던 일부가 돌아왔을 때 전체의 모습도 달라졌습니다. 유물의 역사는 제작과 매장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발견과 이동, 연구와 기관의 협력이 오늘 우리가 보는 얼굴을 만들어갑니다.

     

    거대한 석관을 본 뒤에는 관람의 거리를 조금 좁혀보겠습니다. 이제는 몸 가까이 걸치던 물건들입니다. 멀리서 알아볼 수 있던 권위가, 가느다란 금선과 작은 보석 속에서는 훨씬 은밀하고 섬세하게 표현됩니다.

     

    금빛 잎사귀와 작은 여신, 몸에 걸친 신화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보물실 사진을 참고해 금관과 목걸이, 귀걸이 등을 진열한 AI 재구성 이미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의 보물실 사진을 참고한 AI 재구성 이미지. 고대의 금 장신구와 귀금속 공예품을 함께 바라보는 공간의 인상을 돕는다. 참고 자료: Istanbul Archaeological Museums / 튀르키예 문화유산·박물관 총국 / Google Arts & Culture

     

    금으로 만든 잎사귀가 가지에 매달리고, 귀걸이 아래에는 작은 여신이 날개를 펼칩니다. 보물실의 장신구들은 오래된 시대에도 취향과 기술이 얼마나 섬세했는지 보여줍니다. 아름다움을 즐기는 마음과 사회적 위상을 드러내려는 욕망이 몸 가까이에 모여 있습니다.

     

    금으로 엮은 잎사귀와 날개 달린 귀걸이

    페르가몬 출토 참나무잎 금관 사진을 참고해 금제 화관과 귀걸이를 함께 배치한 AI 전시 재현 이미지
    페르가몬 출토 참나무잎 금관, 기원전 3세기. 참나무잎과 도토리를 금으로 섬세하게 재현한 작품이다. 유물 사진을 참고한 AI 전시 재현. 원본 사진: Sefer azeri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페르가몬 출토 참나무잎 금관은 기원전 3세기의 작품입니다. 잎과 도토리를 금으로 옮긴 화관 형태여서, 왕관이라는 말에서 떠올리기 쉬운 단단한 띠와는 인상이 다릅니다. 금속으로 만들었는데도 식물의 가벼운 윤곽이 살아 있습니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소장 페르가몬 출토 황금 참나무잎 화관. 얇은 금판으로 만든 참나무잎과 도토리가 가지를 따라 풍성하게 펼쳐져 있으며, 중앙에는 날개 달린 장식이 자리하고 있다.
    황금 참나무잎 화관, 기원전 250년경, 페르가몬 출토. 참나무잎과 도토리를 얇은 금판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헬레니즘 시대의 금세공품이다. 실제 나뭇가지처럼 섬세하게 뻗은 장식은 당시 장인들의 뛰어난 기술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소장. Francesco Bini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잎의 가장자리와 도토리를 먼저 보고, 다음에는 가지들이 둥글게 모이는 구조를 따라가 보십시오. 실제 식물이라면 시들고 흩어질 부분을 얇은 금으로 오래 붙들어놓았습니다. 금의 무게보다 잎사귀의 가벼움이 먼저 느껴지는 것은 세공의 성취입니다. 식물을 닮게 만드는 일과 머리에 두를 형태로 조립하는 일은 서로 다른 솜씨를 요구합니다.

     

    이런 화관은 고대의 명예와 의례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 작품을 특정 왕의 착용품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금관이라는 이름 때문에 주인부터 찾기보다, 자연을 금속으로 번역한 방법을 살펴보면 관람이 더 풍성해집니다. 장인은 금을 과시하면서도 금속답지 않게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된 테페지크 출토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 니케 형상 금귀걸이
    기원전 310년 무렵 제작된 니케 형상의 금귀걸이. 날개를 펼친 승리의 여신을 작은 장신구에 정교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고대 그리스 금세공 기술의 섬세함을 보여준다. 신화 속 여신의 모습이 몸에 걸치는 장신구로 표현되었다. Francesco Bini (Sail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사진의 니케 형상 금귀걸이는 테페지크 출토품으로, 사진 자료에는 기원전 310년경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작은 날개와 인체를 장신구 안에 담아낸 헬레니즘 시대의 금세공품입니다. 니케는 승리의 여신입니다. 거대한 기념물에 등장하던 신화의 존재가 여기서는 귀 가까이에 자리합니다.

     

    먼저 날개와 몸의 윤곽을 살펴보십시오. 이 작은 형상이 평평한 무늬에 머무르지 않고 조각처럼 입체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얼굴을 장식하는 귀걸이에, 몸 전체를 갖춘 여신이 매달린 것입니다. 작은 크기가 오히려 세공의 난도를 높입니다.

     

    착용자가 움직이면 빛을 받는 면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진열장에서는 멈추어 있지만, 본래는 사람의 움직임과 함께 보이는 물건이었습니다. 고개를 돌리는 작은 동작에도 금빛 날개가 다른 표정을 보였겠지요. 몸에 걸치는 장신구가 작은 조각의 무대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소장 니코메디아 테페지크 출토 금제 가슴장식 전체 모습. 중앙의 화려한 매듭 장식에서 네 방향으로 금사슬이 뻗어 있으며, 작은 금구슬 장식들이 매달려 있다.기원전 310년 무렵 제작된 니코메디아 출토 금제 가슴장식의 중앙 부분. 정교한 헤라클레스의 매듭과 작은 인물상, 꽃무늬 세공 및 늘어진 금구슬 장식이 자세히 보인다.
    니코메디아 테페지크 출토 금제 가슴장식, 기원전 310년 무렵. 중앙의 헤라클레스 매듭에는 작은 에로스상이 장식되어 있고, 사방으로 뻗은 가느다란 금사슬에는 금구슬 장식이 매달려 있다. 전체 모습과 중앙 장식을 확대해 보면, 2,300여 년 전 장인들의 정교한 세공을 확인할 수 있다. Sailko / Wikimedia Commons / CC BY 3.0

     

    니코메디아 테페지크 출토 금제 가슴장식에서도 중앙의 헤라클레스 매듭과 그 아래로 이어지는 사슬이 시선을 붙잡습니다. 사진 자료에는 기원전 310년경으로 소개되며, 박물관의 보물실 해설에서는 기원전 3세기 작품으로 설명합니다. 단단히 모인 중심부와 유연하게 늘어지는 부분이 하나의 장신구 안에서 대비를 이룹니다.

     

    중앙의 매듭에서 아래로 늘어진 사슬까지 천천히 따라가 보십시오. 복잡한 장식이 흩어져 보이지 않는 것은 매듭이 시선의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입니다. 공식 해설에 따르면 이 장식은 니코메디아의 여성 무덤에서 귀걸이와 다른 장신구들과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지금은 각각의 걸작을 보지만, 한때는 한 사람의 몸을 꾸미던 물건들이었습니다. 서로 떨어져 놓인 장신구들을 마음속으로 함께 연결하면, 진열장이 한 사람의 옷차림으로 바뀝니다.

     

    금빛 곁에서 만나는 보석의 색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소장 사르디스 출토 금·칼세도니 팔찌. 가느다란 금제 고리에 타원형 칼세도니 장식석이 연결되어 있다.
    사르디스 출토 금·칼세도니 팔찌, 기원전 400~350년 무렵. 금제 고리에 칼세도니 장식석을 결합한 작품으로, 금과 돌이 서로 다른 질감과 빛을 만든다. 장식석과 고리가 만나는 부분에서 재료를 결합하는 세공의 솜씨를 살펴볼 수 있다. Francesco Bini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사르디스 출토 금·칼세도니 팔찌는 기원전 400~350년경의 장신구입니다. 금과 돌을 결합하여 금빛만으로 이루어진 물건과 다른 인상을 만듭니다. 칼세도니는 석영 계열의 보석 재료로, 금속과는 질감과 빛의 느낌이 다릅니다.

     

    금제 고리에서 장식석으로 시선을 옮기면 재료의 대비가 선명해집니다. 이어 돌을 받치는 부분을 살펴보십시오. 보석을 붙이는 일에는 아름다운 배열뿐 아니라 착용 중에 빠지지 않도록 고정하는 계산도 필요합니다. 손목을 감싸는 곡선과 장식석의 자리가 하나의 형태를 이룹니다. 금의 값어치보다 금과 돌이 만나는 접점을 오래 보면, 장인의 판단이 더 잘 드러납니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소장 예니카프 출토 금·에메랄드·진주 목걸이. 금제 연결 고리에 녹색 에메랄드와 흰색 진주가 이어져 있다.
    예니카프 출토 금·에메랄드·진주 목걸이, 5~6세기 비잔틴 시대. 녹색 에메랄드와 은은한 광택의 진주를 금제 고리로 연결한 장신구로,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보석 문화를 보여준다. 보석의 색채와 연결 방식이 만드는 조화가 인상적이다. Francesco Bini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예니카프 출토 에메랄드·진주 금목걸이는 서기 5~6세기의 작품입니다. 초록빛 에메랄드와 밝은 진주, 금의 광택이 서로 다른 표정을 만듭니다. 금관의 잎사귀에서 느꼈던 금속의 가벼움이 여기서는 보석의 색채로 이어집니다.

     

    보석 하나보다 보석 사이의 간격에 눈을 두어보십시오. 작은 연결 고리는 재료들을 묶으면서 목의 곡선을 따라 움직일 여지도 줍니다. 공식 해설은 이 작품을 높은 사회적 지위를 지닌 여성의 장신구로 해석합니다. 취향을 표현하는 물건이 사회적 위치까지 드러내던 시대의 보물입니다. 오늘날의 목걸이를 떠올려도 낯설지 않은 구성이어서, 오래된 연대가 새삼 놀랍게 느껴집니다.

     

    이 목걸이는 예니카프 지하철 공사를 위한 발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새 길을 놓으려던 도시가 그 아래의 옛 삶을 만난 것입니다. 박물관의 보물은 멀리 떨어진 유적에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이스탄불이 움직이는 발밑에도, 과거의 콘스탄티노폴리스가 겹쳐 있습니다.

     

    물항아리에서 은쟁반까지, 손에 들었던 세계

    고대 생활용기 전시실 사진을 참고해 청동 항아리와 잔, 금속 용기 등을 배치한 AI 재구성 이미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의 전시 공간 자료를 그대로 참고해 재현한 AI 전시. 청동 항아리와 금속 용기들을 함께 바라보는 공간의 인상을 돕는 이미지. 참고 자료: Boris Micka Associates / Istanbul Archaeological Museum

     

    몸을 꾸미던 금빛에서 물을 담고 액체를 따르는 그릇으로 눈길을 옮기겠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형태가 얼마나 풍부한 장식의 바탕이 되는지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다만 귀금속 용기를 당시 모든 사람의 평범한 살림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기능을 갖춘 그릇이 부와 의례를 표현하는 특별한 물건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을 담고 잔을 기울이던 손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소장 부르사 출토 청동 히드리아. 넓은 몸체와 세 개의 손잡이를 갖춘 물항아리로, 세로 손잡이 아래에는 인물 장식이 표현되어 있다.
    부르사 출토 청동 히드리아, 기원전 5세기. 양옆의 손잡이와 물을 따를 때 사용하는 세로 손잡이가 특징이다. 손잡이와 몸체가 만나는 부분에는 인물 장식이 더해져, 구조와 장식을 함께 다룬 청동 공예의 솜씨를 보여준다. Sefer azeri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부르사 출토 청동 히드리아는 기원전 5세기의 물항아리입니다. 히드리아는 물을 담고 운반하는 그릇 형식입니다. 부풀어 오른 몸체와 좁아지는 목도 아름답지만, 사용법을 알려주는 단서는 손잡이에 있습니다.

     

    양옆의 손잡이는 들어 올릴 때, 세로 손잡이는 기울여 따를 때 도움이 됩니다. 세 손잡이가 맡은 역할을 구분하면 형태가 훨씬 쉽게 읽힙니다. 손잡이와 몸체가 만나는 부분에 더해진 장식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힘을 받는 구조가 시선을 붙잡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청동 표면색은 오랜 변화의 결과이며, 제작 당시의 금속빛과 같지는 않습니다. 손에 들었을 무게와 물을 따르는 움직임을 떠올리면, 멈춘 그릇이 다시 생활의 도구로 보입니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소장 은·금제 사슴머리 리톤. 사슴의 머리와 뿔이 표현되어 있으며, 뒤쪽 용기 표면에는 인물 장식이 새겨져 있다.
    은과 금으로 만든 사슴머리 리톤, 기원전 4~3세기. 동물의 머리와 액체를 담는 용기를 결합한 금속 공예품이다. 사슴의 얼굴과 뿔, 몸체의 인물 장식을 차례로 살펴보면 조각과 그릇이 만나는 방식을 읽을 수 있다. Francesco Bini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은과 금으로 만든 사슴머리 리톤은 기원전 4~3세기의 금속 용기입니다. 리톤은 액체를 담아 따르거나 의례에 사용하는 용기 형식으로, 이 작품에서는 동물의 머리가 그릇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사슴의 얼굴과 용기의 입구를 번갈아 보면 조각과 그릇이 한 물건 안에서 만나는 방식이 보입니다.

     

    사슴의 머리와 뿔을 보고 난 뒤, 몸체가 용기로 이어지는 부분을 살펴보십시오. 동물의 모습을 닮게 만들면서 액체를 담을 공간도 확보해야 했습니다. 조각과 그릇은 여기서 서로 별개의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은과 금의 대비 역시 동물의 형태를 강조하는 시각적 장치가 됩니다.

     

    리톤이라는 이름은 연회와 의례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만 이 작품이 어떤 행사에서 누구에게 사용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동물의 얼굴을 가진 귀금속 용기는 액체를 따르는 행동 자체를 눈길 끄는 장면으로 바꾸었을 것입니다. 실용적인 그릇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은쟁반 위에 펼쳐진 먼 나라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소장 람프사코스 출토 은제 쟁반. 원형 쟁반 중앙에 앉아 있는 여성상이 표현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새와 여러 동물이 장식되어 있다.
    람프사코스 출토 은제 쟁반, 6~7세기 비잔틴 시대. 중앙의 여성은 인도를 의인화한 모습으로 설명된다. 주변의 동물 장식과 부분적인 금도금은 동로마 세계가 먼 지역을 표현한 방식을 보여준다. Sefer azeri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람프사코스 출토 은제 쟁반은 서기 6~7세기의 금속 공예품입니다. 은 바탕 위의 인물과 동물 장식이 그릇 표면을 하나의 장면으로 바꿉니다. 중앙의 여성은 공식 해설에서 인도를 의인화한 모습으로 설명됩니다.

     

    중앙의 여성과 주변 동물을 차례로 보면, 원형 쟁반이 하나의 작은 세계를 담고 있다는 인상이 듭니다. 이 도상이 곧 인도에서 제작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동로마 세계가 먼 지역을 어떤 이미지로 표현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은 바탕 위의 부분적인 금빛도 장면을 구분하는 데 기여합니다. 오늘날의 여행 사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릇 표면에 먼 나라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물을 옮기는 항아리, 동물의 얼굴을 가진 잔, 먼 나라를 담은 쟁반은 모두 용기이지만 눈길을 끄는 방식이 다릅니다. 손잡이에서는 사용법을, 동물 형상에서는 특별한 행위를, 장식에서는 넓은 세계에 대한 상상을 읽었습니다. 다음에는 그릇에 담을 수 없는 것을 흙에 담은 사람들을 만나겠습니다. 국가의 약속과 사회의 규칙입니다.

     

    카데시의 약속과 바빌론의 동물들, 제국이 질서를 세우는 법

    이스탄불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의 전시 공간 자료. 유리 진열장에 점토판과 기록물이 나란히 놓여 있고, 뒤편에는 석조 부조와 인물상이 보인다.
    이스탄불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의 문자 유물 전시 공간 자료. 작은 점토판과 석조 기념물은 고대 근동의 기록 문화를 서로 다른 규모로 보여준다. Boris Micka Associates 프로젝트 자료 참고

     

    手에 들던 물건에서 도시와 국가를 움직이던 장치로 시선을 넓혀보겠습니다. 작은 점토판에는 강대국의 약속과 사회의 규칙이 남아 있고, 유약 벽돌에는 도시를 지키는 신들의 동물이 나타납니다. 문장과 이미지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질서를 세웠습니다.

     

    카데시 조약, 승리보다 어려웠던 합의

    이스탄불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에 전시된 카데시 평화조약 점토판 조각들. 붉은색 배경 앞에 아카드어 쐐기문자가 새겨진 파편들이 배치되어 있다.
    카데시 평화조약 점토판,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의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의 하투실리 3세가 맺은 조약을 아카드어 쐐기문자로 기록한 사본이다. 이스탄불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 소장. Giovanni Dall'Orto / Wikimedia Commons / Attribution(저작자 표시 조건)

     

    카데시 평화조약 점토판은 하투사에서 발견된 조약문 사본입니다.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의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의 하투실리 3세가 맺은 약속을 전합니다. 국제 외교에 쓰이던 아카드어와 쐐기문자로 기록되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전투와 조약 사이에는 시간이 있습니다. 카데시 전투는 기원전 1274년경, 조약은 대체로 기원전 1259년경으로 봅니다. 약 15년의 간격입니다. 싸움이 끝나자마자 두 왕이 악수한 장면을 상상하기보다, 경쟁과 정세 변화 속에서 관계를 다시 정한 외교의 결과로 읽어야 합니다.

     

    서로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에 더해, 지원과 도망자 처리에 관한 조항도 담겼습니다. 평화에도 실행 방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상대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지를 정해두지 않으면 좋은 말만으로는 관계를 지키기 어렵습니다. 작은 쐐기문자들은 고대 외교가 꽤 구체적인 실무였음을 보여줍니다.

     

    흔히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으로 소개되지만, 더 이른 조약 기록도 있습니다. 내용이 잘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국제 평화조약 가운데 하나라고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이 점토판의 무게는 크기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승리를 과시하는 기념물들 사이에서, 싸움 이후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지 기록했다는 데 있습니다.

     

    다친 사람에게 얼마를 배상해야 했을까

    이스탄불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 소장 우르남무 법전 관련 점토판. 표면에 수메르어 쐐기문자가 새겨져 있다.
    우르남무 법전 관련 점토판. 기원전 21세기 무렵의 법 전통을 후대에 베껴 적은 자료로, 남아 있는 법 조항에는 신체 상해에 대한 은의 배상 규정도 있다. 원본 사진: oncenawhile / Wikimedia Commons / CC0

     

    우르남무 법전 관련 점토판에서는 국가 사이의 약속이 사회 내부의 규칙으로 바뀝니다. 기원전 21세기 무렵의 법 전통을 후대에 베껴 적은 자료입니다. 법을 정한 시기와 눈앞의 점토판을 만든 시기는 구분해야 합니다. 원본이 남지 않아도, 옮겨 적은 문서가 오래된 제도의 모습을 전해줄 수 있습니다.

     

    남아 있는 조항 가운데는 신체 상해에 대한 은의 배상 규정도 있습니다. 다친 사람과 다치게 한 사람 사이에서 얼마를 보상해야 하는지 기준을 세운 것입니다. 고대의 법을 모두 보복의 원리로 묶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당시의 신분 질서와 불평등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법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기보다, 무엇을 배상으로 해결하려 했고 누구에게 어떤 규칙을 적용했는지 묻는 편이 좋습니다. 낯선 문자를 모두 읽지 못해도 질문은 가깝게 다가옵니다. 다친 사람에게 무엇을 돌려줄 수 있을까. 작은 흙 조각에 남은 것은 추상적인 정의만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구체적인 분쟁입니다.

     

    성문을 지나기 전, 신들의 동물을 만나다

    독일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 복원 전시된 바빌론의 이슈타르 문. 푸른 유약 벽돌 성문과 아치형 출입구, 황소와 무슈후슈 부조가 보인다.
    바빌론 이슈타르 문, 기원전 6세기 신바빌로니아 시대. 네부카드네자르 2세 통치기의 성문으로, 황소와 무슈후슈 부조가 반복된다. 사진은 이스탄불이 아닌 독일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의 복원 전시 모습이다. Radomir Vrbovsky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문자로 질서를 세운 사람들은 이미지로도 도시의 권위를 드러냈습니다. 바빌론의 유약 벽돌 부조는 기원전 6세기 네부카드네자르 2세 시대의 이슈타르 문과 행렬길을 장식했습니다. 위의 성문 전체 사진은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의 복원 전시입니다. 이스탄불에서는 장식의 일부를 보며, 각 동물의 세부를 가까이 읽을 수 있습니다.

     

     

    이스탄불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 소장 바빌론 이슈타르 문의 황소 부조. 청색 유약 벽돌을 배경으로 황소가 오른쪽을 향해 걸어간다.
    바빌론 이슈타르 문의 황소 부조, 기원전 6세기. 황소는 폭풍의 신 아다드와 연결되는 동물이다. 벽돌의 경계를 따라가면 나뉜 재료가 하나의 형상으로 이어지는 방식을 볼 수 있다. 이스탄불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 소장. Dossema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이슈타르 문의 황소 부조는 폭풍의 신 아다드와 연결됩니다. 옆으로 드러낸 몸과 뿔의 윤곽 덕분에 멀리서도 동물을 알아보기 쉽습니다. 유약을 입힌 표면은 단단한 벽돌에 색과 빛을 더합니다.

     

    황소는 신의 힘을 나타내는 형상이었습니다. 반복해서 배열된 동물들은 도시로 들어오는 이들에게 신들의 보호를 보여주었습니다. 가까이에서는 벽돌의 경계를, 조금 떨어져서는 황소의 전체 윤곽을 바라보면 좋습니다. 나뉜 재료가 하나의 동물로 이어지는 순간, 장인의 계산과 도시의 장엄함이 함께 보입니다.

     

     

    이스탄불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 소장 바빌론 이슈타르 문의 무슈후슈 부조. 긴 목과 비늘 덮인 몸, 서로 다른 모양의 앞발과 뒷발을 가진 동물이 왼쪽으로 걸어간다.
    바빌론 이슈타르 문의 무슈후슈 부조, 기원전 6세기. 뱀을 닮은 머리와 몸, 사자의 앞발과 맹금류의 뒷발을 결합한 신성한 동물로, 바빌론의 주신 마르두크와 연결된다. 이스탄불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 소장. Dossema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무슈후슈 부조는 바빌론의 주신 마르두크를 상징하는 복합 동물입니다. 뱀을 닮은 머리와 몸에 서로 다른 동물의 다리가 결합됩니다. 앞다리와 뒷다리를 비교하면 이 낯선 생물의 구성이 더 잘 보입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훑어보면, 실제 동물 한 종류를 닮게 만든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서로 다른 생물의 특징이 결합되어 일상에서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바빌론 사람들에게는 도시의 주신과 연결되는 신성한 형상이었습니다. 황소의 익숙한 몸과 나란히 보면 차이가 더 뚜렷합니다. 한쪽은 알아볼 수 있는 힘을, 다른 쪽은 현실을 넘어서는 힘을 보여줍니다.

     

     

    이스탄불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에 전시된 바빌론 행렬길의 사자 부조 세 점
    바빌론 행렬길의 사자 부조, 기원전 6세기. 이슈타르 여신을 상징하는 사자들이 성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장식했다. 사진은 이스탄불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에 전시된 사자 부조 세 점이다. Jwslubbock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바빌론 행렬길의 사자 부조는 이슈타르 여신과 연결됩니다. 옆으로 길게 펼쳐진 몸은 길을 따라 걷는 동물의 모습을 선명하게 전합니다. 갈기와 입, 다리의 움직임을 차례로 보면 작은 벽돌들이 생명력 있는 형상으로 이어집니다.

     

     

    이스탄불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에 전시된 바빌론의 유약 벽돌 부조
    바빌론 유약 벽돌 부조의 전시 모습. 기원전 6세기 신바빌로니아 시대의 건축 장식을 박물관 공간에서 볼 수 있다. 동물의 몸을 이루는 벽돌 사이의 경계와 장식이 반복되는 방식을 살펴보기 좋은 사진이다. Rabe!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황소와 무슈후슈가 성문을 장식했다면, 사자는 성문으로 이어지는 행렬길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사자들이 반복되는 벽면 곁을 걸었습니다. 진열장 안의 한 점을 보는 경험과 길을 따라 같은 형상이 이어지는 경험은 다릅니다. 사진의 사자들을 보며 잠시 그 반복을 상상해 보십시오. 도시의 장식은 눈앞의 그림이면서,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펼쳐지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벽돌 사이의 경계도 작품의 일부처럼 읽어볼 만합니다. 몸의 윤곽이 끊어지지 않도록 각 조각이 제자리에 놓여야 동물 한 마리가 완성됩니다. 구운 흙의 작은 단위가 거대한 건축의 이미지가 된 것입니다. 황금 장신구가 몸 가까이에서 빛났다면, 이 유약 벽돌은 도시의 얼굴을 만들었습니다.

     

    흙에 남긴 사랑, 푸른 타일에 모인 마음

     

    국가의 약속을 기록하던 흙은 사랑의 노래도 받아주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작은 점토판에서 시작해, 색을 입힌 타일이 공간 전체를 바꾸는 건축으로 걸음을 옮기겠습니다. 문자와 장식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흙에 남긴 사랑의 노래

    이스탄불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 소장 수메르 사랑시 점토판 이스탄불 2461. 갈색 점토판 표면에 쐐기문자가 여러 줄로 새겨져 있으며, 모서리 일부가 파손되어 있다.
    수메르 사랑시 점토판, 이스탄불 2461. 기원전 2천년기 초의 자료로, 왕 슈신을 향한 사랑과 찬미를 수메르어로 기록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랑시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스탄불 고대 오리엔트 박물관 소장. Andriy Makukha (Amakuha) / Wikimedia Commons / CC0

     

    수메르 사랑 시 점토판, 이스탄불 2461은 니푸르에서 발견되었으며 기원전 2 천년기 초의 자료로 소개됩니다. 수메르 왕 슈신을 향한 사랑 노래로 해석되는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랑 시 가운데 하나로 널리 알려진 유물입니다.

     

    이 노래는 왕권과 풍요, 종교 의례와 관련해 해석되어 왔습니다. 특정 인물의 사적인 연애편지로 읽거나 실제 공연 장면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내용의 친밀함은 뚜렷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꿀의 달콤함에 견주고, 함께 머물기를 바라는 말이 이어집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수메르 문학 번역에서도 이런 감각적인 표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점토판의 작은 문자를 보고, 다음에는 그 문자가 담은 목소리를 떠올려보십시오. 왕을 향한 찬미와 다정한 호소가 한 노래 안에서 만납니다. 조약에서는 서로 지켜야 할 거리를 정했고, 여기서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같은 흙 위에 국가의 관계와 사람의 친밀함이 나란히 남았습니다.

     

    건물도 작품이 되는 곳, 치닐리 쾨슈크와 타일 미흐라브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단지에 위치한 타일 키오스크, 치닐리 쾨슈크의 정면 외관. 아치와 석조 기둥, 푸른 타일 장식이 보인다.
    타일 키오스크, 치닐리 쾨슈크. 1472년 메흐메트 2세 시대에 세워진 초기 오스만 건축의 중요한 사례다. 오늘날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단지의 일부로 타일과 도자기를 전시한다. Dossema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정원 건너편에는 타일 키오스크, 치닐리 쾨슈크(Çinili Köşk)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1472년 술탄 메흐메트 2세 시대에 세워진 이 건물은 오스만 궁정 건축에 페르시아계 장식 전통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건축유산입니다. 오늘날에는 셀주크와 오스만 시대의 타일과 도자기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면의 아치와 기둥을 본 뒤에는 현관 쪽으로 다가가 보십시오. 이곳에서는 작품을 담는 건물 자체가 먼저 감상의 대상이 됩니다. 진열장을 찾기 전에 눈높이를 조금 올리는 것만으로도 관람이 시작됩니다.

     

     

    치닐리 쾨슈크 현관 사진을 참고한 AI 재구성 이미지. 푸른 계열의 타일과 기하학적 문양, 서예 장식이 있는 아치형 공간을 표현했다.
    치닐리 쾨슈크 현관 사진을 참고한 AI 재구성 이미지. 타일이 건축 공간의 인상을 바꾸는 모습을 돕는 참고 이미지이며, 세부 색상과 문양의 배열을 기록한 실물 사진을 참고해 재현한 이미지.

     

    현관의 아치형 공간에는 푸른 계열의 타일과 기하학적 문양, 서예 장식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위 이미지는 현관 사진을 참고한 AI 재구성으로, 공간의 인상을 돕는 참고 이미지입니다. 실제 건축에서는 문양이 아치의 형태와 어떻게 만나는지, 글자가 어느 방향으로 이어지는지를 따라가면 좋습니다.

     

    잘라 맞춘 타일 조각과 반복되는 문양은 벽면을 하나의 리듬으로 묶습니다. 흙으로 만든 작은 단위가 건축의 규모로 확장된다는 점에서는 바빌론의 유약 벽돌도 떠오릅니다. 다만 두 작품을 직접 이어지는 하나의 전통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구운 흙과 색이 건물의 의미를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안에서는 다른 건축물에서 옮겨온 타일 작품을 만나겠습니다. 건물의 장식이 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을 때에는 아름다운 표면뿐 아니라, 원래 어느 공간에 속했는지도 함께 읽어야 합니다.

     

     

    이스탄불 타일 키오스크에 전시된 이브라힘 베이 이마레트의 타일 미흐라브. 푸른색과 청록색 타일, 서예와 식물 문양, 벽감 위의 입체 장식이 보인다.
    이브라힘 베이 이마레트의 타일 미흐라브, 1432년경. 카라만의 종교 건축물에서 옮겨온 작품으로, 예배 방향을 알려주는 벽감을 타일과 서예 장식으로 꾸몄다. Osama Shukir Muhammed Ami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이브라힘 베이 이마레트의 타일 미흐라브는 1432년경 카라만 왕조 시대에 제작된 작품입니다. 원래는 오늘날 튀르키예 카라만에 있는 종교 건축물의 일부였으며, 이후 이스탄불로 옮겨졌습니다. 미흐라브는 이슬람 예배 공간에서 메카의 방향을 알려주는 벽감입니다.

     

    중앙의 벽감에서 위로 시선을 올리면 층층이 겹친 입체 장식이 보입니다. 이런 구조는 무카르나스라고 부르며, 벽감 윗부분을 여러 작은 면으로 나누어 빛과 그림자를 만듭니다. 주변의 서예와 식물 문양은 그 입체적인 중심을 둘러쌉니다. 푸른색과 청록색, 밝은 색의 대비를 따라가면 복잡한 표면 안에도 질서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먼저 멀리서 전체 윤곽을 보고, 가까이에서 타일의 경계와 문양을 살펴보십시오. 큰 벽감의 형태와 작은 장식의 밀도가 서로 다른 속도로 눈에 들어옵니다. 미흐라브는 예배의 방향을 알려주는 구조이면서, 그 방향으로 시선을 모으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박물관에서는 하나의 작품으로 보이지만, 원래는 건축과 예배의 행위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치닐리 쾨슈크의 현관과 비교하면 타일이 공간을 바꾸는 두 방식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을 장식하고, 다른 하나는 예배하는 사람이 향할 방향을 강조합니다. 비슷한 색과 재료를 사용해도 자리와 목적이 달라지면 관람의 질문도 달라집니다.

     

    오늘 보았던 흙을 잠시 떠올려보십시오. 쐐기문자를 받아 조약과 노래를 남기기도 했고, 유약을 입어 도시와 예배 공간을 꾸미기도 했습니다. 같은 재료가 책의 표면이 되고 건축의 피부가 되었습니다. 박물관에서는 재료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서로 멀리 떨어진 작품들이 새롭게 연결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오래 눈길이 머문 작품을 하나 떠올려보겠습니다. 석관의 휘날리는 옷자락일 수도, 금으로 만든 도토리일 수도, 작은 점토판의 사랑 노래일 수도 있습니다. 크고 유명한 작품과 기억에 남는 작품이 반드시 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왕이 남기고 싶었던 모습, 장인이 해결해야 했던 구조, 누군가가 몸에 걸치고 손에 들었던 물건을 함께 보았습니다. 그때부터 유물은 오래된 재료의 모음보다 구체적인 선택의 흔적으로 다가옵니다.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무엇을 말로 남길 것인가.

     

    박물관을 나설 때에는 낯선 이름을 모두 외우지 않아도 좋습니다. 작은 손잡이 하나를 새롭게 보았거나, 흙 위에 남은 목소리를 떠올릴 수 있다면 충분합니다. 오래된 문명과의 만남은 그렇게 한 작품을 오래 바라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해설 참고: 튀르키예 문화유산·박물관 총국의 보물실 해설 · V&A의 시다마라 석관 재결합 안내 · 옥스퍼드 대학 수메르 사랑 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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