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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을 걷다 보면 끝자락에서 궁전처럼 우뚝 선 건물이 시선을 붙잡습니다. 바로 프라하 국립박물관(Národní muzeum)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체코의 역사뿐 아니라 화려한 판테온, 선사시대의 화석, 거대한 고래 골격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시실 이름을 외우기보다는 놓치면 아쉬운 장면들을 하나씩 따라가 보겠습니다.
1. 바츨라프 광장 끝에서 만나는 체코의 얼굴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 건물부터 한번 올려다보세요

관람은 문을 열기 전부터 시작해 볼까요. 광장 남쪽 끝에 자리한 국립박물관은 주변 건물 사이에서도 단번에 눈에 들어옵니다. 계단 위에 올라선 거대한 석조 건물과 중앙의 돔을 보고 있으면, 박물관이라기보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궁전처럼 느껴집니다.
국립박물관의 역사는 18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보헤미아에서는 자신의 언어와 역사, 문화를 되찾으려는 민족부흥운동이 활발해지고 있었습니다. 박물관 역시 그 흐름 속에서 자연과 역사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기관으로 출발했고, 이후 체코를 대표하는 국립박물관으로 성장했습니다.
다만 1818년부터 이 건물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 보고 있는 역사관은 소장품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박물관이 필요해지자 건축가 요세프 슐츠(Josef Schulz)의 설계로 지어진 네오르네상스 건물로, 1891년 문을 열었습니다.
기둥과 조각, 거대한 돔까지 유난히 웅장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곳은 유물을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라 보헤미아의 역사와 학문, 문화를 한 건물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계단부터 서두르지 마세요. 광장 쪽에서 몇 걸음 물러나 건물 전체를 한번 올려다보는 것도 관람의 일부입니다. 왜 이 박물관이 바츨라프 광장 끝에 이토록 당당하게 서 있는지 알고 들어가면, 잠시 뒤 만날 화려한 중앙 계단과 판테온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2. 계단을 오르면 박물관이 갑자기 궁전이 된다
중앙 계단과 판테온은 그냥 지나치기 아깝습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전시품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곧장 전시실부터 찾기 쉽지만, 여기서는 조금 천천히 움직이는 편이 좋습니다. 붉은 카펫이 깔린 중앙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대리석 기둥과 아치, 조각이 차례로 이어집니다. 전시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건물 자체가 볼거리가 되는 박물관입니다.

계단 끝에서 만나는 판테온(Pantheon)은 국립박물관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공간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곳에는 보헤미아와 체코의 학문, 예술, 문화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의 동상과 흉상이 자리합니다. 얼굴을 하나씩 알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를 기억하고 기념했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점만 눈여겨봐도 충분합니다.

인물들만 보고 지나치기에는 위쪽도 꽤 바쁩니다. 벽면에는 보헤미아 역사의 주요 장면을 담은 대형 역사화가 펼쳐집니다. 그중에는 카를 4세가 1348년 프라하에 대학을 세운 장면도 등장합니다. 오늘날 카를대학교(Charles University)로 이어지는, 중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가운데 하나입니다.
천장만 보다가 목이 아파도 조금은 참아볼 만합니다

이번에는 시선을 더 위로 올려보세요. 유리 돔과 벽화, 조각과 금빛 장식이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옵니다. 박물관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왕궁의 의전실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왕궁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이곳의 주인공은 왕이나 성인이 아니라 역사와 학문, 예술을 만들어온 사람들과 그 기억입니다. 그래서 판테온은 예쁜 천장을 올려다보고 끝낼 공간이 아닙니다. 이 박물관이 무엇을 보존하고 이야기하려 했는지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곳에 가깝습니다.
자, 이제 판테온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뒤로하고 그들이 살아온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다음 전시에서는 보헤미아 왕국에서 오늘날 체코로 이어지는 역사가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3. 보헤미아 왕국에서 체코까지, 나라의 시간을 걷다
왕관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입니다
판테온에서 체코 역사의 주인공들과 인사를 나눴으니, 이제 그들이 살았던 시대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프라하 국립박물관의 역사 전시는 8세기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보헤미아 지역이 겪은 변화를 따라갑니다.

전시는 처음부터 왕과 전쟁 이야기만 늘어놓지 않습니다. 금속 그릇과 장신구, 화폐와 종교 유물처럼 사람들이 실제로 만들고 사용했던 물건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이런 작은 유물을 따라가다 보면 왕조의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중 작은 은화 한 닢도 그냥 지나치기 아깝습니다. 10세기 프라하에서 주조된 데나리우스는 당시 보헤미아에서 통치 권력과 경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입니다. 크기는 손바닥보다 작지만, 프라하가 이미 천 년 전부터 정치와 교역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었다는 증거인 셈입니다.

바츨라프 광장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도 여기서 다시 만납니다. 성 바츨라프(Saint Wenceslas)는 10세기 보헤미아의 통치자로, 사후 성인으로 추앙받으며 오늘날까지 체코를 상징하는 인물로 남았습니다. 그의 생애를 기록한 《굼폴트 전설》을 보고 나면 박물관 밖 광장에 서 있는 기마상이 더 이상 단순한 동상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보헤미아는 이후 프라하를 중심으로 강력한 왕국으로 성장했고, 카를 4세(Karel IV) 시대에는 전성기를 맞습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이기도 했던 카를 4세는 프라하를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 키웠고, 카를교와 카를대학교처럼 오늘날 여행자가 만나는 프라하의 여러 장소에도 그의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프라하 성과 카를교를 먼저 보고 박물관에 왔다면 여기서 퍼즐이 하나씩 맞춰집니다. 도시에서는 거대한 건축물로 만났던 역사가 박물관 안에서는 동전과 필사본, 무기와 생활용품만 한 크기로 작아집니다. 밖에서 본 프라하와 박물관 안의 프라하가 연결되는 순간입니다.
합스부르크 시대를 지나면 ‘체코’라는 이름이 가까워집니다
시간을 조금 더 앞으로 돌려볼까요. 16세기부터 보헤미아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아래 들어갔고, 이후 종교 갈등과 전쟁, 정치적 변화가 이어집니다. 특히 17세기의 30년 전쟁은 보헤미아를 포함한 중부유럽 전체를 뒤흔든 거대한 전쟁이었습니다.

이 시대의 유물에서는 귀족 사회의 모습도 선명해집니다. 로젠베르크 가문의 마지막 남성 후계자였던 페트르 보크(Petr Vok)의 장례 방패를 보면 가문의 문장이 얼마나 중요한 상징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죽은 뒤에도 자신의 이름과 가문을 크게 남기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꽤 화려한 마지막 명함인 셈이지요.

30년 전쟁의 장군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Albrecht von Wallenstein)과 관련된 호로스코프도 흥미로운 자료입니다. 오늘날에는 장군과 점성술이 조금 낯선 조합처럼 보이지만, 당시 유럽에서는 별의 움직임으로 개인의 운명과 중요한 결정을 해석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전쟁을 지휘하던 권력자도 미래가 궁금했던 것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프라하 곳곳의 조각에서 자주 만나는 성 얀 네포무츠키(Saint John of Nepomuk)도 이 시대의 종교 문화를 이해하는 단서가 됩니다. 카를교 위에서 별 다섯 개가 둘러진 성인의 모습을 보았다면 바로 그 인물입니다. 박물관에서 이름을 알고 나면 여행 중 무심코 지나쳤던 조각들이 하나둘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18세기로 오면 권위는 크기부터 달라집니다. 프라하 대주교가 사용했던 화려한 베를리나 마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라기보다 타고 다니는 신분증에 가까웠습니다. 금빛 장식과 거대한 차체만 봐도 당시 고위 성직자의 사회적 위치가 얼마나 높았는지 굳이 설명을 길게 덧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19세기에 접어들면 전시의 분위기가 다시 달라집니다. 합스부르크 제국 아래에서 체코어와 역사, 문화를 되살리려는 체코 민족부흥운동(Czech National Revival)이 활발해집니다. 국립박물관이 탄생한 1818년도 바로 이러한 움직임이 힘을 얻던 시기였습니다.
이제 1번에서 보았던 웅장한 박물관 건물이 조금 이해되지 않나요. 오래된 물건을 모으는 일은 단순한 수집이 아니라 “우리는 누구이며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기억은 결국 오늘날 체코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하나의 긴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순탄하게 끝난 것은 아닙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 체코의 역사는 왕과 귀족보다 전쟁과 점령, 시민들의 선택에 의해 더 크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무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가 조금 전 걸어온 바츨라프 광장이었습니다.
4. 격동의 20세기, 역사는 박물관 밖까지 이어진다
체코슬로바키아의 탄생부터 민주화까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무너지면서 체코슬로바키아가 탄생합니다. 새로운 나라가 시작됐지만, 20세기의 길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나치 독일의 점령과 제2차 세계대전, 전후 공산주의 체제, 1968년 프라하의 봄과 1989년 벨벳 혁명까지 이어지며 사회는 여러 차례 크게 흔들립니다. 현대사 전시에서는 이런 정치적 사건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과 사회 변화도 함께 보여줍니다.
사진과 문서, 일상용품을 보고 있으면 연도표 속 사건이 조금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역사는 회의실과 궁전에서만 움직인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학교와 직장, 집과 거리 한가운데에서도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박물관에서는 그 거리가 아주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밖으로 나오면 바츨라프 광장이 다시 보입니다
현대사 전시를 보고 나면 바츨라프 광장의 분위기도 조금 달라집니다. 관광객과 상점으로 붐비는 이곳이 한때는 체코 현대사의 중요한 무대였기 때문입니다.
1968년 개혁을 추진했던 프라하의 봄은 그해 8월 바르샤바 조약군의 침공으로 좌절됩니다. 이듬해인 1969년에는 학생 얀 팔라흐(Jan Palach)가 점령과 사회의 무기력에 항의하며 바츨라프 광장에서 분신했고, 뒤이어 얀 자이츠도 같은 방식으로 저항했습니다. 오늘날 국립박물관 앞에는 두 사람을 기리는 추모 공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20년 뒤인 1989년, 다시 수많은 시민이 이 광장으로 모였습니다. 벨벳 혁명(Velvet Revolution)이 확산되면서 공산주의 체제는 무너졌고, 체코슬로바키아는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게 됩니다.

그래서 관람을 마친 뒤 바로 다음 관광지로 서두르지 않아도 좋습니다. 박물관 계단이나 광장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세요. 처음에는 프라하의 번화가로만 보였던 곳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읽힐 겁니다. 박물관 안에서 보던 역사가 바로 이 광장에서도 이어지고 있었으니까요.
다만 국립박물관의 시간 여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 정치와 왕조의 시간을 잠시 내려놓고, 인간이 등장하기 훨씬 전의 세계로 넘어가 볼 차례입니다.
5. 고래 한 마리가 박물관의 분위기를 바꿔 놓는다
진화의 기적에서 만나는 프라하 국립박물관의 상징

왕과 혁명의 시대를 지나왔으니 이제 시간의 눈금을 크게 바꿔볼까요. 자연사 전시로 들어서면 역사적 인물 대신 동물과 화석이 등장하고, 그중에서도 단번에 시선을 빼앗는 것은 거대한 긴수염고래(fin whale) 골격입니다.
이 고래는 오랫동안 프라하 국립박물관을 대표해 온 유명한 표본입니다. 현재 《진화의 기적(The Miracles of Evolution)》에서는 고래를 비롯한 약 1,500점의 표본을 통해 생물이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해 온 과정을 보여줍니다. 크기만으로 승부하는 전시는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전시 방식도 꽤 영리합니다. 표본을 종류별로 유리장 안에 줄 세우기보다 바다와 육지, 서로 다른 생태환경을 따라 이동하도록 구성했습니다. 덕분에 동물의 생김새만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모습으로 진화했는지를 함께 생각하게 됩니다.

가만히 서 있는 표본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포식과 생존 경쟁을 장면으로 재현한 전시도 있어 자연사박물관 특유의 ‘표본 구경’이라는 느낌이 한결 덜합니다. 아이와 함께 왔다면 아마 이쯤부터 이동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질지도 모릅니다.
고래에서 더 오래된 시간으로 내려가 보세요
고래에서 놀랐다면 이제 더 먼 과거로 가볼 차례입니다. 《선사시대로의 창(Windows into Prehistory)》에서는 삼엽충과 암모나이트 같은 화석부터 선사 동물의 복원 모형까지 만나며 생명의 역사를 훨씬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엽충은 작지만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공룡보다 훨씬 이전인 고생대 바다를 누볐던 생물로, 단단한 외골격 덕분에 화석으로 비교적 잘 남았습니다. 손바닥만 한 화석 하나가 수억 년 전 바다의 흔적인 셈입니다.

암모나이트 앞에서는 크기의 감각이 또 한 번 달라집니다. 흔히 작은 나선형 화석을 떠올리지만 일부 암모나이트는 상당한 크기까지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시대의 화석을 나란히 보다 보면 ‘선사시대’라는 한 단어 안에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긴 시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납니다.

그러다 실물 크기의 털매머드 앞에 서면 다시 크기에 압도됩니다. 화석으로 생명의 흔적을 살펴보다 실제 크기의 복원 모형을 마주하니, 오래전 지구를 살았던 동물들이 갑자기 현실적인 존재로 다가옵니다.

마지막으로 광물관까지 둘러보면 시간의 기준은 생명의 역사보다도 더 멀어집니다. 색과 결정 모양이 제각각인 광물을 보고 있으면 이 박물관이 다루는 범위가 새삼 놀랍습니다. 한 나라의 역사에서 출발한 관람이 어느새 지구의 역사까지 도착한 셈입니다.
프라하 국립박물관, 이렇게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프라하 국립박물관은 모든 전시를 빠짐없이 보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조금 피곤해질 수 있습니다. 처음 방문한다면 건물과 판테온 → 체코 역사 → 20세기 역사 → 자연사처럼 큰 흐름을 잡고, 마음을 붙드는 전시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물러 보세요.
이렇게 걸으면 박물관의 재미도 분명해집니다. 판테온에서는 체코가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역사관에서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따라가며, 바츨라프 광장에서는 그 역사가 실제로 벌어진 장소와 마주합니다. 마지막 자연사관에 이르면 시간의 범위는 인간을 훌쩍 넘어 지구와 생명의 역사까지 넓어집니다.
관람을 마친 뒤에는 바츨라프 광장으로 바로 걸음을 재촉하지 말고 박물관 계단에서 잠시 주변을 바라보세요. 처음 들어올 때는 웅장한 건물 앞의 번화가였지만, 이제는 성 바츨라프와 얀 팔라흐, 벨벳 혁명의 시민들이 서로 다른 시대에 지나간 장소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프라하 성과 카를교가 체코 역사의 무대라면, 국립박물관은 그 무대 뒤에 쌓인 시간을 펼쳐 보여주는 곳입니다. 궁전 같은 계단에서 시작해 보헤미아의 역사와 바츨라프 광장을 지나, 마지막에는 고래와 삼엽충까지. 이 정도면 프라하에서 비 오는 날 잠깐 들르는 박물관으로만 남겨두기에는 꽤 아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