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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남쪽 누비아의 사막을 지나 나세르호 가까이 다가가면 바위산에서 거대한 얼굴 네 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모두 약 3,300년 전 이곳에 신전을 세운 파라오 람세스 2세(Ramesses II)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는 아부심벨 신전(Abu Simbel Temples)은 처음 세워졌던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20세기 아스완 하이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놓이자 신전을 거대한 블록으로 잘라 높은 곳으로 옮긴 뒤 다시 조립했습니다.
한 번은 고대 이집트인이 바위산을 깎아 만들었고, 3천 년 뒤에는 현대인이 그 바위산을 잘라 다시 세웠습니다. 아부심벨은 그렇게 두 시대의 놀라운 건축이 한 곳에 겹쳐 있는 신전입니다.

1. 사막의 절벽에 왜 람세스 2세가 네 명이나 앉아 있을까?
멀리서도 왕이 보이는 신전

아부심벨 대신전 앞에서는 굳이 이름표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정면을 채운 네 개의 거대한 좌상이 모두 같은 사람, 이집트 제19왕조의 파라오 람세스 2세이기 때문입니다.
좌상 하나의 높이가 약 20m에 이릅니다. 그것도 따로 만들어 세운 조각이 아니라 바위 절벽 자체를 깎아 만든 것입니다. 네 좌상 가운데 하나는 고대의 지진으로 상부가 무너졌고, 거대한 머리와 몸통 일부가 지금도 신전 앞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람세스 2세는 약 66년 동안 이집트를 다스리며 곳곳에 신전과 석상, 비문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아부심벨은 그중에서도 왕의 존재감이 유난히 강합니다. 신전에 들어가기도 전에 람세스 네 명이 먼저 관람객을 내려다보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단순히 ‘자기 얼굴을 크게 만들기 좋아했던 왕’으로만 보면 조금 아깝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신전을 하필 이곳에 세웠느냐입니다.


아부심벨이 자리한 누비아(Nubia)는 이집트 남쪽에서 금을 비롯한 여러 자원을 얻을 수 있었고, 이집트와 아프리카 내륙을 잇는 길목이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이집트가 영향력을 확보하려 했던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런 곳의 바위산에 왕의 얼굴을 20m 높이로 네 번이나 새겼습니다. 신에게 봉헌한 성스러운 공간이면서 동시에 누비아를 향해 왕의 힘을 보여주는 거대한 정치적 이미지였던 셈입니다.
상형문자를 읽지 못해도 뜻은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오늘날 식으로 옮기면 꽤 직설적입니다. “여기까지가 람세스의 세계다.”
한때 거대한 람세스도 모래 속에 묻혀 있었다

그런데 영원히 자신을 보여주려 했던 왕에게도 예상하지 못한 상대가 있었습니다. 사막의 모래였습니다.
19세기에 촬영된 아부심벨 사진을 보면 신전 정면의 상당 부분이 모래에 파묻혀 있습니다. 람세스의 거대한 다리는 보이지 않고, 석상들이 사막 위로 상체만 내민 듯 서 있습니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묘한 장면입니다. 산을 깎아 자기 얼굴을 네 번이나 남겼지만, 자연은 수천 년 동안 그 왕을 천천히 다시 묻고 있었습니다. 20m짜리 파라오도 모래 앞에서는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모래를 걷어내고 신전 안으로 들어가자 이야기는 더 흥미로워집니다. 정면의 네 거상은 말 그대로 예고편이었습니다. 어두운 바위산 안쪽에도 람세스 2세의 조각상과 전투 장면, 신들에게 다가가는 왕의 모습이 이어집니다.
밖에서 왕의 크기를 보여줬다면, 안에서는 그 왕이 어떤 존재로 기억되기를 원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전에 먼저 옆에 자리한 또 하나의 신전으로 가보겠습니다. 그곳에서는 람세스 2세 곁에 특별한 인물이 왕과 거의 같은 크기로 서 있습니다.
2. 대신전과 소신전, 람세스 2세 옆에 네페르타리가 서다
아부심벨에는 신전이 하나가 아니다

아부심벨 하면 람세스 2세의 거상 네 개가 있는 신전부터 떠올리지만, 사진을 조금 넓게 보면 옆에 또 하나의 신전이 보입니다. 아부심벨은 사실 두 개의 암굴 신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왼쪽의 거대한 신전은 람세스 2세를 중심으로 한 대신전(Great Temple), 그 옆은 왕비 네페르타리(Nefertari)와 여신 하토르에게 봉헌된 소신전(Small Temple)입니다. 두 건물이 나란히 있지만, 앞에 서서 받는 인상은 꽤 다릅니다.

대신전은 처음부터 사람을 작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약 20m 높이의 람세스 좌상 사이로 난 입구는 사진으로 보아도 유난히 작습니다. 그 앞에 선 관광객과 비교하면 효과는 더욱 분명합니다. 사람은 작아지고, 왕은 더 커집니다.
이곳에서는 아문 라와 라 호라크티, 프타 같은 신들과 함께 신격화된 람세스 2세가 신전의 중심에 놓입니다. 왕이 신에게 예배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신도 신성한 질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앞서 본 네 개의 거상이 단순한 과장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신전 안으로 갈수록 더 분명해집니다.
옆 신전에서는 왕비가 왕만큼 커졌다

이제 몇 걸음 옆으로 가보겠습니다. 소신전 정면에는 여섯 개의 거상이 늘어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람세스 2세만 반복되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왕비 네페르타리가 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얼굴보다 키입니다. 고대 이집트 미술에서는 파라오가 가장 크게, 왕비와 가족은 그보다 작게 표현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런데 이곳의 네페르타리는 람세스 2세와 거의 비슷한 크기입니다. 왕비를 이렇게 크게 전면에 세웠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인상적인 선택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소신전의 성격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기둥 위에는 소의 귀를 가진 여성의 얼굴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바로 사랑과 음악, 기쁨과 모성 등과 연결된 하토르(Hathor) 여신입니다.

소신전은 하토르와 네페르타리에게 봉헌되었습니다. 그래서 밖에서 왕비의 크기에 놀랐다면, 안에서는 네페르타리가 신성한 세계 안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부조에서는 네페르타리가 하토르와 이시스 여신 사이에 서 있습니다. 신들이 왕비를 맞이하고 축복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소신전이 단순히 ‘왕비를 위해 하나 더 지어준 작은 신전’이 아니었다는 점이 보입니다. 네페르타리는 이 공간에서 신들과 직접 연결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두 신전을 차례로 보고 나면 처음의 인상이 조금 달라집니다. 대신전에서는 람세스 2세가 화면을 거의 독점합니다. 그런데 바로 옆 소신전에서는 네페르타리가 왕과 비슷한 크기로 정면에 서고, 안으로 들어가면 하토르와 이시스 같은 여신들 사이에 등장합니다.
대신전이 “람세스는 얼마나 강력한 왕인가”를 보여준다면, 소신전은 “그 왕의 세계에서 네페르타리는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를 보여줍니다. 두 신전을 함께 보아야 아부심벨의 이야기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이유입니다.
이제 다시 대신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거대한 좌상 사이의 작은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람세스 2세는 또 다른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왕좌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습니다. 전차를 몰고 활을 당기며 전쟁터 한가운데로 뛰어듭니다.
3. 신전 안으로 들어가면 람세스 2세의 ‘왕권 연출’이 시작된다
밖에서는 거대한 왕, 안에서는 신과 함께하는 왕
거대한 석상 사이의 작은 입구를 지나 대신전 안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단번에 바뀝니다. 뜨거운 사막의 빛은 뒤로 사라지고 어두운 회랑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람세스 2세의 존재감은 조금도 줄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위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더 집요하게 따라옵니다.

첫 번째 큰 홀에서는 람세스 2세를 오시리스의 모습과 결합해 표현한 거대한 기둥상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습니다. 밖에서는 왕좌에 앉아 신전을 지키던 왕이, 안에서는 신성한 존재의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는 셈입니다.
그러니 입구에서부터 이미 이야기가 한 단계 달라졌습니다. 밖에서는 왕의 크기를 보여주었다면, 안에서는 왕이 신과 얼마나 가까운 존재인지를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벽으로 시선을 돌려보겠습니다. 가만히 서 있던 왕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전차를 몰고 활시위를 당기며 적진을 향해 돌진합니다.
카데시 전투, 벽에 새긴 왕의 승리
아부심벨 대신전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카데시 전투(Battle of Kadesh)입니다. 기원전 13세기 람세스 2세가 히타이트 세력과 맞섰던 전투로, 신전 벽에서는 왕이 전차를 몰며 수많은 적을 압도하는 영웅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장면을 현대의 전쟁 기록 사진처럼 볼 필요는 없습니다. 신전 벽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훨씬 단순하고 강렬합니다. 왕은 용감하고, 적을 제압하며, 신들의 도움을 받는 존재다. 람세스 2세가 후대에 어떤 왕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는지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실제 카데시 전투는 부조처럼 간단한 ‘람세스의 압도적인 승리’로 정리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념물 속 람세스에게 그런 복잡한 사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벽 위에서 그는 홀로 위기를 돌파하고 적을 무너뜨리는 완벽한 영웅입니다.
이 부조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얼마나 이겼느냐보다, 왕이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느냐입니다. 그렇게 보면 아부심벨은 신전이면서 동시에 람세스 2세가 자신의 이미지를 거대한 돌에 새겨놓은 무대처럼 보입니다.

전쟁터의 왕이 신들 앞으로 걸어간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분위기는 다시 달라집니다. 전차를 몰며 적을 공격하던 왕이 사라지고, 이번에는 신 앞에서 의식을 행하는 람세스 2세가 등장합니다.
밖에서는 압도적인 군주였고, 전투 장면에서는 승리한 영웅이었던 왕이 이제는 신들에게 공물을 바치고 예배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왕의 위상이 낮아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관람객이 신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람세스가 인간의 왕에서 신성한 세계와 연결되는 존재로 이동하는 과정이 보입니다.

그래서 대신전을 입구부터 끝까지 하나의 긴 이야기로 보면 재미있습니다. 밖에서는 거대한 왕, 벽에서는 승리한 왕, 더 깊은 곳에서는 신들과 교류하는 왕. 공간을 따라 걸을수록 왕의 힘도 군사적 권력에서 신성한 권위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그 연출의 마지막 장면이 신전 가장 깊숙한 지성소입니다. 이곳에는 네 인물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프타, 아문 라, 신격화된 람세스 2세, 라 호라크티입니다.
잠깐 생각해보면 꽤 대담한 배치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파라오가 신전의 가장 신성한 공간에서 주요 신들과 같은 줄에 앉아 있습니다. 입구의 거대한 석상에서 시작된 람세스 2세의 이야기가 결국 왕 자신을 신성한 존재의 영역까지 끌어올리는 장면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어두운 지성소에는 또 하나의 장치가 숨어 있습니다. 일 년 중 특정한 시기가 되면 신전 입구에서 들어온 아침 햇빛이 약 60m의 공간을 지나 이곳까지 도달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20세기에 아부심벨 전체를 잘라 다른 장소로 옮긴 뒤에도 이 태양의 축을 최대한 살려 다시 세웠다는 사실입니다.
바위산을 통째로 옮기면서 햇빛이 들어오는 길까지 어떻게 함께 옮겼을까요? 이제 아부심벨에서 가장 유명한 태양의 장치를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4. 일 년에 두 번, 햇빛은 왜 신전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갈까?
어두운 지성소까지 찾아오는 태양
아부심벨 대신전의 입구에서 가장 깊은 지성소까지는 약 60m가 이어집니다. 평소라면 바깥의 강렬한 햇빛이 닿기 어려운 곳입니다. 그런데 일 년 중 특정한 시기가 되면 아침 햇빛이 신전 입구를 통과해 긴 내부 공간을 지나 이곳까지 들어옵니다.

지성소에는 네 인물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왼쪽부터 프타(Ptah), 아문 라(Amun-Ra), 신격화된 람세스 2세, 라 호라크티(Ra-Horakhty)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왕이 신전의 마지막 공간에서 주요 신들과 같은 줄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부터 꽤 대담한 장면입니다.
그리고 특정한 시기의 아침이 되면 이 어두운 공간에 변화가 생깁니다. 입구에서 들어온 햇빛이 신전의 중심축을 따라 깊숙이 들어와 지성소의 좌상들을 비춥니다. 입구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길 전체가 순간적으로 하나의 빛의 통로가 되는 셈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가장 왼쪽에 앉은 프타입니다. 프타는 어둠과 지하세계와도 연결되는 신으로, 햇빛이 지성소까지 들어오는 순간에도 상대적으로 어둠 속에 남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세 신상과 왕에게 빛이 닿는 동안 프타만 어둠에 머문다는 이야기가 아부심벨의 태양 정렬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습니다.
이쯤 되면 고대 이집트 건축가들이 태양의 움직임과 신전의 방향을 얼마나 세심하게 고려했는지 감탄하게 됩니다. 다만 여기에는 여행 안내서에서 자주 덧붙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햇빛이 지성소까지 들어오는 2월과 10월의 특정 날짜를 람세스 2세의 생일과 즉위일 또는 대관식에 연결하는 설명입니다. 꽤 그럴듯하고 기억하기도 좋은 이야기지만, 두 날짜를 왕의 생일과 즉위 행사에 직접 연결하는 확실한 고대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굳이 전설을 하나 더 보탤 필요도 없습니다. 3천 년 전 사람들이 바위산을 뚫고 만든 신전의 가장 깊은 곳까지 특정한 시기의 햇빛이 들어오도록 방향을 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놀랍습니다.
그런데 이 신전은 원래 있던 자리에 없다
여기서 아부심벨 이야기가 한 번 더 뒤집힙니다. 태양의 각도까지 생각해 만든 신전이라면 위치와 방향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텐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신전은 처음 만들어졌던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대신전도, 옆에 있는 네페르타리의 소신전도 20세기에 통째로 다른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그것도 몇 미터 옆으로 살짝 옮긴 정도가 아닙니다. 거대한 바위산을 잘라 높은 곳으로 이동한 뒤 다시 조립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신전 밖으로 나와 절벽을 다시 바라보면 풍경이 조금 이상하게 보입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수천 년 동안 저 자리에 있었던 산처럼 느껴지지만, 눈앞의 절벽 상당 부분은 현대의 기술자들이 다시 만든 풍경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하나 남습니다. 바위산을 잘라 옮기면서 신전의 방향과 햇빛의 길까지 어떻게 살려냈을까요? 이제 아부심벨의 두 번째 건축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5. 신전을 잘라 65m 위로 옮기다, 아부심벨의 두 번째 기적
아스완 하이댐이 세워지자 3천 년 된 신전이 물에 잠길 위기에 놓였다
20세기 중반, 아부심벨은 전쟁도 지진도 아닌 전혀 다른 이유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집트가 나일강에 아스완 하이댐(Aswan High Dam)을 건설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댐은 홍수를 조절하고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거대한 국가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물이 차오르면 광대한 지역이 나세르호(Lake Nasser) 아래로 들어가게 되고, 그 안에는 아부심벨을 비롯한 여러 누비아 유적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선택지가 단순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댐을 포기하기도 어려웠고, 3천 년 된 신전을 물속에 그대로 둘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1960년 UNESCO는 누비아 유적을 구하기 위한 국제적인 구조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여러 나라가 자금과 기술을 보탰고, 고고학자와 건축가, 기술자들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아부심벨에서는 꽤 대담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통째로 옮길 수 없다면, 잘라서 옮기자.”
바위산을 1,036개의 블록으로 나누다
물론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부심벨은 돌을 쌓아 만든 건물이 아니라 바위 절벽 자체를 파서 만든 암굴 신전입니다. 기둥을 빼고 지붕을 들어 옮기는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술자들은 신전과 주변 암반을 거대한 블록으로 잘라냈습니다. 두 신전은 모두 1,036개의 블록으로 나뉘었고, 일부는 무게가 약 30톤에 달했습니다.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작업의 긴장감이 조금 실감납니다. 벽에는 3천 년 된 부조가 있고, 정면에는 람세스 2세의 얼굴이 있습니다. 자르는 위치가 조금만 어긋나도 왕의 얼굴이나 상형문자에 균열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잘라낸 블록에는 번호를 붙였고, 하나씩 새로운 부지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원래 위치보다 약 65m 높은 곳, 약 200m 뒤쪽에서 다시 조립했습니다. 신전의 방향뿐 아니라 대신전과 소신전의 관계, 주변 지형까지 최대한 원래 모습에 가깝게 되살려야 했습니다.

특히 람세스 2세의 얼굴이 잘린 채 이동하는 사진은 지금 봐도 묘합니다. 3천 년 전 장인들이 바위산에서 왕의 얼굴을 꺼냈다면, 20세기 기술자들은 그 얼굴을 다시 여러 조각으로 나눠 다른 산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왕이 영원히 움직이지 않도록 만든 신전을, 지키기 위해 움직여야 했던 것입니다.
신전만 옮긴 것이 아니라 산까지 다시 만들었다
그런데 블록을 다시 맞춘다고 공사가 끝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부심벨은 원래 바위산 안으로 들어가는 신전입니다. 새로운 장소에서도 신전 뒤에는 자연스러운 산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기술자들은 뒤쪽에 거대한 철근콘크리트 돔을 만들고 그 위를 암석으로 덮었습니다. 오늘날 아부심벨에서 바라보는 절벽은 고대의 신전과 20세기의 구조물이 자연스럽게 결합된 풍경입니다.
알고 보면 조금 놀랍습니다. 눈앞에는 기원전 13세기의 신전이 서 있는데, 그 뒤에는 현대 토목공학이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겉에서는 두 시대의 경계가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부심벨은 고대 이집트의 건축물이면서 동시에 20세기가 다시 만든 거대한 문화유산 보존 프로젝트인 셈입니다.
아부심벨만 구한 것은 아니었다
이 국제 구조 사업의 대상은 아부심벨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나세르호 아래로 들어갈 지역에는 여러 누비아 신전과 고고학 유적이 흩어져 있었고, 일부는 해체한 뒤 다른 장소로 옮겨졌습니다.

그중에는 아주 멀리 여행한 신전도 있습니다. 바로 덴두르 신전(Temple of Dendur)입니다.
덴두르 신전 역시 수몰 위기에 놓였고, 누비아 유적 구조 사업을 지원한 미국에 이집트가 기증했습니다. 지금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안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뉴욕 미술관에 고대 이집트 신전이 통째로 들어가 있는 풍경이 처음에는 조금 낯설지만, 배경을 알고 보면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아부심벨을 구한 국제적인 구조 사업이 다른 누비아 유적의 운명까지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이 캠페인은 문화유산을 한 나라만의 문제로 보지 않고 국제사회가 함께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널리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아부심벨을 포함한 여러 유적은 ‘아부심벨에서 필레까지의 누비아 유적(Nubian Monuments from Abu Simbel to Philae)’이라는 이름으로 UNESCO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직접 간다면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아부심벨은 이집트 남쪽에서도 꽤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아스완에서 육로로 이동하는 경우 편도 이동 시간이 길어 많은 여행자가 이른 시간에 출발하고, 항공편을 이용해 아부심벨 공항으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사진만 찍고 바로 돌아서기보다 순서를 정해 천천히 보는 편이 좋습니다. 먼저 멀리서 대신전과 소신전을 함께 보고, 가까이 다가가 관광객과 람세스 2세 거상의 크기를 비교해 보세요. 신전 안에서는 카데시 전투 부조를 찾고, 마지막에는 입구에서 지성소까지 이어지는 중심축을 따라가 보면 앞에서 살펴본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신전 밖으로 나온 뒤에는 뒤쪽의 산과 앞에 펼쳐진 나세르호도 한 번 바라보세요. 지금은 평온한 호수처럼 보이지만, 바로 저 물 때문에 아부심벨이 원래 자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호수까지 보고 나면 신전 이전 이야기가 갑자기 현실적인 풍경으로 다가옵니다.
운영 시간과 입장료, 촬영 규정은 변경될 수 있으므로 방문 직전 이집트 관광유물부의 공식 안내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3천 년을 사이에 두고 두 번 만들어진 신전
아부심벨을 처음 보면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얼굴에 시선을 빼앗깁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카데시 전투와 신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가장 깊숙한 지성소에서는 태양까지 신전의 연출에 참여합니다.
그런데 아부심벨의 이야기는 고대 이집트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약 3,300년 전 사람들은 바위산을 깎아 신전을 만들었습니다. 20세기의 사람들은 그 신전을 지키기 위해 다시 바위산을 잘라 천 개가 넘는 조각으로 나누고, 높은 곳에서 산과 신전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한 번은 왕의 권력을 오래 남기기 위해 만들었고, 또 한 번은 그 역사가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다시 세웠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부심벨에서 보고 있는 것은 람세스 2세의 신전만이 아닙니다. 고대 이집트의 건축과 현대의 공학, 그리고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하나의 유산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노력이 같은 절벽 안에 겹쳐 있습니다.
아부심벨의 진짜 규모는 20m짜리 석상보다, 3천 년을 사이에 두고 두 번이나 이 신전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집념에서 더 크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