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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의 세계문화유산은 서로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성당과 골목이 이어지는 빌뉴스, 언덕 아래 고대의 시간이 잠든 케르나베, 바람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 온 쿠르슈스 사구가 대표적입니다.
화려한 건축에서 시작해 사라진 도시를 지나 거대한 모래언덕까지. 세 곳을 따라가며 리투아니아의 역사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빌뉴스에서는 건물보다 도시의 겹을 먼저 보세요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수도가 남긴 오래된 골목
빌뉴스 구시가지에 들어서면 어느 하나의 건축 양식으로 도시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됩니다. 붉은 벽돌의 고딕 성당을 지나면 화려한 바로크 건물이 나타나고, 조금 더 걸으면 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서로 다른 시대가 오래된 거리 안에서 나란히 서 있습니다.

이 풍경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빌뉴스는 1323년 문헌에 수도로 등장한 뒤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정치적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15세기 대공국의 영역이 발트해에서 흑해에 이를 정도로 확대되면서 빌뉴스 역시 동유럽의 중요한 도시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빌뉴스를 볼 때는 유명한 건축물 몇 곳을 체크하는 것보다 서로 다른 시대가 어떻게 한 도시 안에 포개져 있는지 살펴보는 편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빌뉴스가 세계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 핵심도 바로 이 오래된 도시 구조와 여러 시대의 건축이 함께 남아 있다는 데 있습니다.
붉은 고딕에서 화려한 바로크까지, 골목마다 시대가 바뀐다

빌뉴스의 매력은 유명 건축물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골목을 따라 걷는 동안 건축의 시대가 계속 바뀐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 차이가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곳 가운데 하나가 성 안나 성당(St. Anne’s Church)입니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성당은 붉은 벽돌로 완성된 후기 고딕 건축의 대표작입니다. 정면을 자세히 보면 벽돌로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가느다란 수직선과 뾰족한 아치가 촘촘하게 이어집니다. 멀리서 전체 형태를 본 뒤 가까이 다가가 벽돌이 만들어 내는 무늬를 살펴보면 이 작은 성당이 유난히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만 이동하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빌뉴스 구시가지에는 성 카시미르 성당(St. Casimir’s Church)과 성 베드로와 바울 성당(Church of Sts. Peter and Paul)을 비롯한 바로크 건축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특히 17세기 이후 빌뉴스에서는 화재와 전쟁을 거치며 여러 건물이 다시 세워졌고, 그 과정에서 바로크 양식이 도시의 인상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빌뉴스에서는 성당 하나만 보고 다음 장소로 서둘러 이동하기보다 고딕의 붉은 벽돌과 바로크의 곡선이 한 도시 안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비교해 보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건축 양식의 변화가 곧 빌뉴스가 지나온 시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2. 대성당에서 대학까지 걸으면 빌뉴스의 중심이 보인다
왕과 성직자, 학자들이 남긴 또 하나의 도시
성당의 외관만 따라가도 충분히 아름다운 도시지만, 빌뉴스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하려면 대성당 광장(Cathedral Square)에서 잠시 걸음을 늦춰보는 것이 좋습니다. 넓은 광장 한쪽에는 흰색 기둥이 인상적인 빌뉴스 대성당이 서 있고, 뒤편 언덕 위로는 게디미나스 탑이 보입니다. 종교와 통치의 역사가 한 시야 안에 들어오는 장소입니다.


빌뉴스 대성당(Vilnius Cathedral)은 여러 차례 화재와 재건을 거치며 모습이 달라졌고, 오늘날 보이는 고전주의 외관은 주로 18세기 말의 재건 과정에서 완성되었습니다. 화려한 바로크 성당들을 보고 온 뒤 이곳에 서면 반듯한 기둥과 절제된 정면이 오히려 더 눈에 들어옵니다.

대성당에서 구시가지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빌뉴스 대학교(Vilnius University)가 나타납니다. 1579년 설립된 이 대학은 중앙유럽과 동유럽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러 개의 안뜰과 건물이 이어진 대학 안 걷다 보면 한 시대에 완성된 건축물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조금씩 확장된 작은 도시처럼 느껴집니다.
이 동선이 흥미로운 이유는 빌뉴스의 역사를 건물 이름이 아니라 공간으로 이해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언덕의 성에서 통치의 흔적을 보고, 대성당에서 종교의 중심을 지나, 대학에서 학문의 역사를 만납니다. 중세의 수도가 어떻게 유럽의 정치·종교·학문이 교차하는 도시로 성장했는지 몇 블록을 걷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3. 케르나베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언덕이 가장 중요하다
다섯 개의 언덕 아래 잠들어 있는 리투아니아의 오래된 시간

빌뉴스를 보고 케르나베에 도착하면 조금 당황할지도 모릅니다. 화려한 성당도, 거대한 석조 성벽도 먼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대신 네리스강 계곡을 내려다보는 다섯 개의 언덕 요새(piliakalniai)가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며 이어집니다.

하지만 케르나베의 진짜 유산은 바로 이 풍경 아래에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중세에 이르는 오랜 인간 정착의 흔적이 겹겹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13세기에는 리투아니아 초기 국가 형성과 관련된 중요한 정치·경제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언덕들은 각각 따로 떨어진 전망대가 아니었습니다. 방어와 거주, 권력의 중심을 이루는 하나의 체계 속에서 사용되었고, 그 아래 파야우타 계곡(Pajauta Valley)에는 중세 정착지가 자리했습니다. 고고학 발굴을 통해 건물 흔적과 도로, 공방, 생활용품과 장신구 등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발견되었습니다.

1390년 튜턴 기사단의 공격으로 중세 도시가 파괴된 뒤 주민들은 기존 도시를 그대로 재건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옛 정착지가 충적토 아래 보존되면서 역설적으로 중세 생활의 흔적이 오랫동안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케르나베에서는 무엇이 남아 있는지만 찾으면 오히려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언덕 위에 올라 주변 지형부터 천천히 바라보세요. 지금은 초원처럼 보이는 계곡 어디에 사람들이 살았고, 어느 언덕이 방어와 권력의 중심이었는지를 상상하는 순간 케르나베의 풍경이 하나의 거대한 고고학 유적지로 바뀝니다.
4. 쿠르슈스 사구는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 지켜낸 세계유산이다
모래에 마을이 묻히자 사람들은 숲을 심기 시작했다
케르나베에서 땅속에 묻힌 도시를 만났다면, 쿠르슈스 사구에서는 지금도 움직이는 땅을 만나게 됩니다. 발트해와 쿠르슈스 석호 사이에 길게 뻗은 쿠르슈스 사구(Curonian Spit)는 전체 길이가 약 98km에 이르는 좁고 긴 모래 반도입니다. 북쪽은 리투아니아, 남쪽은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지역에 속해 있습니다.


처음 이곳에 서면 유네스코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쿠르슈스 사구는 세계자연유산이 아니라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유네스코가 주목한 것은 모래 자체보다 거친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이 풍경을 지켜온 사람들의 역사였습니다.
쿠르슈스 사구에서는 오랫동안 어업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살아왔습니다. 문제는 17~18세기를 거치며 과도한 벌목으로 숲이 크게 줄어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무가 사라지자 바람을 막아줄 것이 없어졌고, 모래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사구가 이동하면서 도로와 밭뿐 아니라 여러 마을까지 모래 아래에 묻혔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는 대신 모래의 움직임을 막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19세기부터 사구를 안정시키고 나무를 심는 대규모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해안에는 모래의 이동을 늦추기 위한 방어 사구를 만들고, 내륙에는 풀과 소나무를 심어 모래가 다시 날아가지 않도록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숲과 모래언덕의 풍경에는 그래서 인간의 손길이 깊게 들어가 있습니다. 자연을 마음대로 바꾸어 놓은 흔적이라기보다 이미 훼손된 환경 속에서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자연과 타협한 결과에 가깝습니다. 쿠르슈스 사구가 유네스코에서 ‘문화경관’으로 평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니다에 도착하면 모래언덕만 보고 돌아서지 마세요

리투아니아 쪽 쿠르슈스 사구를 여행한다면 중심이 되는 곳은 니다(Nida)입니다. 지금은 휴양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오래전부터 어부들이 살아온 마을이기도 합니다. 목조 주택과 어촌의 흔적을 따라 걷다 보면 거대한 사구와는 또 다른 쿠르슈스의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이 지역에서 눈여겨볼 것은 쿠르슈스 전통 가옥입니다. 짙은 색의 목조 외벽과 밝은 장식이 어우러진 집들은 이 지역의 생활문화를 보여줍니다. 묘지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목조 묘표 크릭슈타이(krikštai) 역시 쿠르슈스 지역의 오래된 문화적 흔적입니다.

니다에는 독일 작가 토마스 만(Thomas Mann)이 1930년대 초 여름을 보냈던 별장도 남아 있습니다. 높은 곳에 자리한 집에서 쿠르슈스 석호를 바라보면 이 지역이 오래전부터 예술가와 작가들을 끌어들인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구에 올라보세요. 특히 파르니디스 사구(Parnidis Dune) 주변에서는 한쪽으로 쿠르슈스 석호가, 다른 방향으로 모래와 숲이 이어지는 독특한 지형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단순히 ‘아름다운 모래언덕’이라고 보기보다 숲이 사라지고, 모래가 이동하고, 사람들이 다시 숲을 심으며 만들어 낸 풍경이라는 이야기를 함께 떠올려보는 것이 좋습니다.
5. 세 곳을 보고 나면 리투아니아의 시간이 다르게 보인다
도시와 유적, 모래언덕이 들려주는 서로 다른 역사
빌뉴스와 케르나베, 쿠르슈스 사구는 한 나라의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서로 닮은 곳이 거의 없습니다. 빌뉴스에는 성당과 대학, 오래된 골목이 남아 있고, 케르나베에서는 건물보다 언덕과 땅속의 흔적이 중요합니다. 쿠르슈스 사구에 도착하면 역사적인 석조 건축물 대신 모래와 숲이 눈앞을 채웁니다.
그런데 세 곳을 차례로 보면 세계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집니다. 문화유산이라고 해서 반드시 오래된 궁전이나 화려한 성당이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시의 구조도, 땅속에 보존된 생활의 흔적도, 인간이 수백 년 동안 자연과 관계를 맺으며 만들어 온 풍경도 문화유산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 리투아니아를 방문한다면 빌뉴스에서는 건축의 변화를, 케르나베에서는 다섯 언덕과 계곡의 관계를, 쿠르슈스 사구에서는 모래와 숲이 만나는 경계를 눈여겨보세요. 유명한 장소를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왜 이 풍경이 지금까지 보존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여행이 됩니다.
특히 세 곳 가운데 쿠르슈스 사구는 오래 기억해 둘 만합니다. 가장 자연적으로 보이는 장소가 사실은 사람의 개입 없이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유지하기 어려운 문화경관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케르나베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적을수록 땅 아래 남아 있는 역사가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빌뉴스는 그 모든 시간 가운데 가장 선명하게 건축으로 남은 역사를 보여줍니다.
빌뉴스에서는 도시를 읽고, 케르나베에서는 사라진 도시를 상상하고, 쿠르슈스에서는 사람이 지켜낸 풍경을 바라보세요. 서로 다른 세 장면을 지나고 나면 리투아니아의 세계문화유산이 단순한 관광 명소의 목록이 아니라, 사람들이 땅 위에 남겨온 서로 다른 시간의 기록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