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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기념박물관에 거대한 전쟁 카누와 화려한 깃털 망토, 키가 3m에 이르는 새가 있다면 믿어지시나요?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Auckland War Memorial Museum)은 이름과 달리 마오리 문화와 태평양 문명, 독특한 자연사까지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정교하게 조각된 전쟁 카누와 결혼 선물로 만들어진 집회소, 멸종된 거대 조류 모아에는 저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전쟁의 기억부터 뉴질랜드의 놀라운 보물까지, 오클랜드 박물관이 품은 특별한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1. 오클랜드 박물관, 뉴질랜드의 역사와 보물이 모인 곳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푸른 언덕 위에는 조금 특별한 박물관이 있습니다. 이름은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Auckland War Memorial Museum). 전쟁기념관이라는 이름과 달리, 이곳에는 마오리의 거대한 전쟁 카누부터 태평양의 화려한 장신구, 멸종된 거대 조류 모아까지 뉴질랜드의 역사와 자연을 보여주는 보물이 가득합니다.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 정면 외관. 웅장한 석조 기둥과 대칭형 건물, 중앙 기념비와 넓은 광장이 보이는 모습.
    뉴질랜드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Auckland War Memorial Museum). 고전주의 양식의 웅장한 건물에는 마오리 문화유산과 뉴질랜드의 역사·자연사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다. - AnnWoolliams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유물마다 사람들의 삶과 기억이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결혼 선물로 만들어진 집회소가 있고, 공동체의 권위를 상징했던 무기가 있으며, 조상의 이야기를 새긴 목조 조각도 있습니다. 뉴질랜드의 보물을 찾아 조금 특별한 역사 여행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전쟁기념관이 품은 또 하나의 역사

    오클랜드 박물관의 역사는 18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현재의 웅장한 건물은 1929년에 문을 열었으며, 오클랜드 도메인(Auckland Domain)의 높은 지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기둥과 대칭적인 외관은 신고전주의 건축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장소이면서 뉴질랜드의 문화와 자연을 보존하는 박물관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함께 수행하고 있습니다.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 테 아오 마라마(Te Ao Mārama) 남쪽 아트리움 내부. 거대한 원형 목재 천장 구조물과 따뜻한 조명, 넓은 로비를 오가는 관람객들의 모습.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의 테 아오 마라마 남쪽 아트리움. 전통적인 박물관 건축과 현대적인 목재 디자인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새로운 문화적 관문이다. - Richard Ng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원본 사진 참고 AI 전시 재현

     

    이곳의 마오리 문화유산을 이해하려면 먼저 타옹가(taonga)라는 말을 알아두면 좋습니다. 마오리어로 소중한 보물이나 귀중한 유산을 뜻하며, 오래된 물건뿐 아니라 조상에게서 이어받은 지식과 이야기, 공동체의 기억까지 폭넓게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유물을 감상할 때는 얼마나 오래되었고 아름다운지만 살펴볼 것이 아닙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공동체에 속했는지, 누구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이 관점을 기억한다면 마오리 문화유산이 훨씬 풍부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2. 거대한 전쟁 카누와 조각된 집, 마오리 문화의 세계

    바다를 누비던 전쟁 카누, 테 토키 아 타피리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에 전시된 마오리 전통 전투용 카누 테 토키 아 타피리. 높이 솟은 목조 선수 장식과 정교한 나선형 조각이 보이는 모습.
    테 토키 아 타피리(Te Toki-a-Tāpiri). 1836년경 제작된 마오리 전투용 카누로, 조상들의 역사와 뛰어난 목조 조각 기술을 전하는 문화유산이다. AI 생성 이미지 / 실제 유물 소장처: Auckland War Memorial Museum

     

    오클랜드 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 가운데 하나는 테 토키 아 타피리(Te Toki ā Tāpiri)입니다. 마오리어로 와카 타우아(waka taua)라고 부르는 대형 전쟁 카누로, 19세기 마오리 목조 기술과 공동체의 권위를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에 전시된 마오리 전통 카누의 선수 조각. 검은 목재로 정교하게 조각된 인물상과 길게 이어지는 카누 선체의 모습.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에 전시된 마오리 전통 카누의 목조 장식. 높이 솟은 검은색 조각판에 정교한 나선형 문양과 인물상이 새겨진 모습.
    마오리 전통 전투용 카누의 선수와 선미 장식. 조상 형상의 목조 조각과 정교한 나선형 문양은 마오리 장인들의 뛰어난 기술과 공동체의 문화적 전통을 보여준다. Chiara Coetzee from Menlo Park / Wikimedia Commons / CC0 Szilas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거대한 토타라(tōtara) 나무로 제작된 선체는 길고 날렵하며, 선수와 선미에는 정교한 조각이 솟아 있습니다.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장식된 선체를 자세히 살펴보면 조각된 인물의 눈에 반짝이는 파우아(pāua) 조개껍데기가 박혀 있습니다. 배를 연결하는 부분에는 식물 섬유로 만든 결속재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 나가는 배를 왜 이렇게 화려하게 만들었을까요?

     

    마오리 사회에서 전쟁 카누는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공동체의 위신과 지도자의 권위, 조상으로부터 이어지는 계보를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선수와 선미의 조각은 배를 아름답게 꾸미는 동시에 그 배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표현했습니다.

     

    수많은 노잡이가 구령에 맞춰 노를 움직이며 물살을 가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물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조각과 힘찬 노 젓는 소리는 상대에게 상당한 위압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테 토키 아 타피리는 실제 전투에 사용된 마지막 대형 마오리 전쟁 카누로 소개되는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오늘날에는 물 위를 달리던 배가 아니라 마오리의 역사와 조각 기술을 전하는 보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결혼 선물로 만들어진 집, 호투누이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에 전시된 마오리 전통 집회소 호투누이(Hotunui)의 정면. 삼각형 지붕과 정교한 목조 조각, 조상을 형상화한 기둥이 돋보이는 모습.
    호투누이(Hotunui), 1878년. 마오리 공동체의 역사와 조상들의 기억을 간직한 전통 집회소로, 지붕과 기둥을 장식한 정교한 목조 조각이 인상적이다. Kahuroa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전쟁 카누와 함께 오클랜드 박물관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은 호투누이(Hotunui)입니다. 정교한 목조 조각으로 장식된 마오리 집회소, 와레누이(wharenui)입니다.

     

    그런데 이 집에는 뜻밖에도 결혼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응아티 아와(Ngāti Awa) 사람들이 응아티 마루(Ngāti Maru) 공동체에 결혼 선물로 제공한 건축물이기 때문입니다. 두 공동체의 관계와 유대를 기념하는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

     

    오늘날 결혼 선물로 집 한 채를 준다고 하면 놀라운 일이겠지요. 그러나 호투누이의 가치는 건물의 크기나 재료값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조상의 기억과 공동체의 관계를 함께 전하는 상징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의 마오리 전통 집회소 호투누이(Hotunui) 내부. 조상을 형상화한 푸푸(poupou) 목조 기둥과 기하학적 문양의 투쿠투쿠 패널, 장식된 지붕 서까래가 이어진 모습.
    호투누이(Hotunui) 내부 전경. 조상을 표현한 푸푸 조각과 전통 문양의 투쿠투쿠 패널이 어우러져 마오리 공동체의 역사와 계보를 전하는 공간이다. Kahuroa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마오리 집회소는 건물 자체를 조상의 몸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지붕의 중심 구조는 척추를, 양쪽으로 뻗은 부분은 팔을 연상시킵니다. 내부의 푸푸(poupou) 조각 기둥에는 조상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투쿠투쿠(tukutuku) 장식 패널에는 기하학적인 무늬가 반복됩니다.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의 마오리 전통 집회소 호투누이(Hotunui)에 설치된 우레이아(Ureia) 목조 조각. 소용돌이 문양이 새겨진 조각 양옆으로 투쿠투쿠(tukutuku) 엮음 장식 패널이 보이는 모습.
    우레이아(Ureia) 목조 조각과 투쿠투쿠 장식 패널. 마오리 전승 속 수호 존재를 표현한 정교한 조각과 기하학적 엮음 문양이 어우러져 전통 집회소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 Kahuroa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특히 호투누이 내부의 조각 가운데에는 우레이아(Ureia)라는 신비로운 바다 괴물을 표현한 작품도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우레이아는 템스(Thames) 인근 키리키리(Kirikiri)에 살면서 때때로 와이테마타 항구까지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처럼 집회소의 조각에는 실제 조상뿐 아니라 공동체가 기억하는 전설적인 존재도 등장합니다. 호투누이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마오리의 역사와 전승을 나무에 새겨 놓은 거대한 이야기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 년 가까운 조각의 전통과 화려한 저장고

    뉴질랜드 테 아후(Te Ahu) 박물관에 전시된 탕공게 호수 출토 카이타이아 목조 조각. 양쪽 끝의 동물 형상과 중앙의 인물상, 좌우로 길게 뻗은 섬세한 투각 장식이 돋보이는 모습.
    탕공게 호수 출토 카이타이아 목조 조각(Tangonge Carving). 마오리 초기 목공예의 뛰어난 조각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로, 관문이나 지붕의 장식물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 Te Ara – The Encyclopedia of New Zealand / Auckland War Memorial Museum 소장 / 원본 사진 참고 AI 전시 재현

     

    마오리 목조 조각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궁금하다면 탕공게 호수(Lake Tangonge) 출토 목조 관문 조각을 주목할 만합니다. 뉴질랜드 북섬 카이타이아(Kaitaia) 인근에서 발견된 이 작품은 12~14세기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마오리 조각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오랜 세월을 견딘 나무 조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놀랍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초기 마오리 조각 전통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후대의 화려한 목조 건축과 장식이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발전해 왔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박물관의 마오리 전통 저장고 테 오하(Te Oha)를 컬러로 재구성한 이미지. 붉은색 목조 조각과 소용돌이 문양, 초가지붕, 높은 받침 기둥이 고급스러운 전시실 조명 아래 선명하게 드러난 모습.
    마오리 전통 저장고 테 오하(Te Oha)의 복원 이미지. 높은 기둥 위에 세워진 저장고의 정교한 목조 조각과 전통 건축 양식을 현대적인 박물관 전시 공간에 재구성했다. - Thomas Pringle / Alexander Turnbull Library, National Library of New Zealand / 원본 흑백 사진 참고, AI 컬러 복원 및 전시 배경 재구성

     

    이제 조금 다른 형태의 목조 건축물을 살펴보겠습니다. 마오리의 전통 저장고인 파타카(pātaka)입니다. 박물관이 소장한 테 오하(Te Oha)와 테 푸아와이 오 테 아라와(Te Puāwai o Te Arawa)는 대표적인 조각 저장고입니다.

     

    파타카는 식량과 귀중한 물품을 보관하는 시설로, 땅에서 높이 올린 구조는 습기와 해충으로부터 내용물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저장고들은 단순히 실용적인 건축물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에 전시된 마오리 전통 저장고 테 푸아와이 오 테 아라와(Te Puāwai o Te Arawa). 붉은색 목조 조각으로 장식된 거대한 지붕과 소용돌이 문양, 조상 형상의 기둥이 돋보이는 모습.
    테 푸아와이 오 테 아라와(Te Puāwai o Te Arawa). 마오리 전통 저장고 파타카(pātaka)로, 지붕과 기둥을 가득 채운 정교한 목조 조각이 마오리 장인들의 뛰어난 예술성과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 - Joyofmuseums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원본 사진 참고 AI 전시 재현

     

    특히 테 푸아와이 오 테 아라와는 붉게 칠한 목조 구조와 검은색 패널, 정교한 인물 조각이 인상적입니다. 조각된 얼굴의 눈에는 파우아 조개껍데기를 박아 넣었고, 양쪽에는 서로 껴안은 인물의 모습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왜 식량을 보관하는 창고에까지 이렇게 공을 들였을까요? 마오리 사회에서 풍부한 식량을 확보하고 손님을 대접할 수 있는 능력은 공동체의 권위와 연결되었습니다. 저장고의 화려한 장식은 이러한 위상을 보여주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손안의 무기와 몸에 걸친 보물

    거대한 목조 건축물에서 시선을 옮겨 작은 유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크기는 작아졌지만 장인의 솜씨와 상징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에 대여된 기록이 있는 마오리 녹색 석제 무기 카타오레(Kataore). 포우나무로 제작한 매끄러운 타격면과 짧은 손잡이가 특징인 메레 포우나무.
    카타오레(Kataore), 메레 포우나무. 길이 42cm의 녹색 석제 무기로, 마오리 사회에서 전투 도구이자 지도자의 권위와 위신을 나타내는 귀중한 물건이었다. - Sladew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AI 전시 재현

     

    마오리 전통 무기 가운데 인상적인 것은 짧은 타격 무기인 파투(patu)입니다. 특히 녹색의 단단한 돌 포우나무(pounamu)로 만든 메레 포우나무(mere pounamu)는 무기이면서 권위의 상징이었습니다.

     

    메레는 비교적 짧고 넓적하며 가장자리가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사용하는 무기였지만, 귀한 재료와 뛰어난 제작 기술 때문에 높은 지위를 나타내는 물건으로도 여겨졌습니다. 오랫동안 가문이나 공동체에 전해지며 특별한 의미를 지니기도 했습니다.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 소장 마오리 전통 장병기 타이아하(taiaha). 길쭉한 목제 몸체에 정교한 나선형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한쪽 끝에는 사람 얼굴을 형상화한 조각과 조개껍데기 눈 장식이 돋보인다.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 소장 마오리 전통 무기 타이아하(taiaha)의 머리 부분. 소용돌이 형태의 정교한 목조 문양과 조개껍데기로 장식한 커다란 눈, 사람의 얼굴을 형상화한 조각이 선명하게 드러난 모습.
    마오리 전통 무기 타이아하(Taiaha). 길게 뻗은 목제 몸체에는 정교한 나선형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끝부분에는 조상의 얼굴과 조개껍데기 눈 장식이 표현되어 있다. 왼쪽은 무기의 전체 모습, 오른쪽은 조각 장식을 확대한 모습이다. - Auckland Museum / Wikimedia Commons / CC BY 4.0

     

    긴 목제 무기인 타이아하(taiaha)도 흥미롭습니다. 한쪽 끝에는 얼굴과 혀를 형상화한 조각이 있고, 반대쪽은 타격에 적합한 형태입니다. 무기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의례와 지도자의 권위를 표현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마오리 전통 장신구 헤이 티키(Hei tiki) 두 점을 나란히 전시한 모습. 짙은 녹색 포우나무로 만든 사람 형상의 펜던트로, 기울어진 머리와 커다란 눈, 구부린 팔다리, 정교하게 연마된 표면이 돋보인다.
    헤이 티키(Hei tiki), 마오리 전통 녹색 석제 장신구. 조상의 기억과 가문의 유산을 담은 귀중한 보물로, 독특한 인체 표현과 눈 주위의 장식에서 마오리 장인들의 섬세한 조각 기술을 엿볼 수 있다. Ethan Doyle White, CC BY-SA 4.0 / Vassil, CC0, via Wikimedia Commons / 원본 사진 참고 AI 전시 재현

     

    장신구에서는 헤이 티키(hei tiki)가 눈길을 끕니다. 사람의 모습을 양식화한 녹색 펜던트로, 기울어진 머리와 커다란 눈이 독특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러한 장신구는 개인이 착용하는 물건을 넘어 세대를 이어 전해지는 귀중한 유산이 되기도 했습니다.

     

     

    마오리 전통 포우나무 장신구. 왼쪽은 낚싯바늘에서 영감을 얻은 헤이 마타우(Hei matau) 펜던트로, 풍요와 안전한 항해를 상징한다. 오른쪽은 녹색 돌을 길고 매끄럽게 연마한 와카카이 쿠루(Whakakai kuru) 귀장식의 잔존 부분이다. 두 유물은 마오리 공예의 아름다운 곡선과 섬세한 연마 기술을 보여준다. 헤이 마타우(hei matau)-Sarang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와카카이 쿠루(Whakakai, kuru)-Auckland Museum / Wikimedia Commons / CC BY 4.0

     

    낚싯바늘을 연상시키는 헤이 마타우(hei matau) 장신구와 길게 늘어뜨리는 포우나무 귀장식도 마오리 공예의 세련된 감각을 보여줍니다. 자연에서 얻은 돌과 뼈, 조개껍데기가 장인의 손을 거쳐 아름다운 장신구로 바뀐 것입니다.

     

     

    마오리 전통 깃털 망토 카후 후루후루(Kahu huruhuru)를 박물관 전시실에 펼쳐 진열한 AI 복원 이미지. 흰색과 갈색, 청록빛 검은색 깃털이 격자무늬를 이루며, 가장자리에는 다채로운 직조 장식과 부드러운 깃털 술이 어우러져 있다.
    카후 후루후루(Kahu huruhuru) — 여러 종류의 새 깃털을 정교하게 엮어 만든 마오리 전통 망토.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직조 기술이 돋보이는 작품. Auckland War Memorial Museum / Auckland Museum 공식 홈페이지 / 원본 사진 참고 AI 전시 재현

     

    마지막으로 마오리 직물 문화의 걸작을 살펴보겠습니다. 새의 깃털로 장식한 카후 후루후루(kahu huruhuru)와 키위 깃털을 사용한 카후 키위(kahu kiwi) 망토입니다.

     

     

    뉴질랜드 마오리 전통 키위 깃털 망토 카후 키위(Kahu kiwi) 두 점을 베이지색 박물관 전시실에 나란히 진열한 AI 재구성 이미지. 왼쪽은 회갈색 깃털이 풍성하게 늘어진 긴 망토, 오른쪽은 짙은 갈색 키위 깃털과 붉은색 직조 장식이 어우러진 망토로, 섬세한 깃털 배열과 직조 기술이 돋보인다
    카후 키위(Kahu kiwi) — 키위새의 깃털을 정교하게 엮어 만든 마오리 전통 망토. 서로 다른 색감과 장식이 돋보이는 두 망토는 마오리 직물 문화의 뛰어난 장인정신을 보여준다. - Auckland War Memorial Museum / Auckland Museum 공식 홈페이지 / 원본 사진 참고 AI 전시 재현

     

    작은 깃털들을 섬유 바탕에 촘촘하게 결합하는 작업에는 상당한 시간과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귀한 망토는 높은 지위와 공동체의 권위를 드러내는 물건이었으며, 중요한 행사와 의례에서 착용되었습니다.

     

    거대한 전쟁 카누와 집회소, 화려한 저장고와 손바닥만 한 장신구는 크기도 용도도 다릅니다. 그러나 모두 사람들의 삶과 조상의 기억, 공동체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제 마오리 문화에서 시선을 조금 더 넓혀보겠습니다. 뉴질랜드와 바다로 연결된 태평양의 여러 섬에도 놀라운 예술과 보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3. 바다를 건넌 사람들, 태평양 문명의 화려한 유산

    마오리 문화유산을 살펴보았다면 이제 시선을 뉴질랜드 바깥으로 넓혀볼 차례입니다. 태평양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바다입니다. 그러나 이곳의 사람들에게 바다는 섬들을 가로막는 장벽인 동시에 서로를 연결하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별과 바람, 파도의 움직임을 읽으며 항해했던 사람들은 뛰어난 기술과 독창적인 예술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오클랜드 박물관의 태평양 컬렉션에는 나무와 깃털, 섬유로 만든 놀라운 보물들이 남아 있습니다.

     

    작은 섬에서 온 거대한 카누, 바카 타푸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 소장 바카 타푸(Vaka Tapu), 라케이통가(Rakeitonga)의 전체 구조를 재현한 AI 추정 복원 이미지. 거대한 삼각형 돛과 길고 좁은 목조 선체, 측면 아웃리거와 연결 지지대를 밝은 박물관 전시실에서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바카 타푸(Vaka Tapu) – 라케이통가(Rakeitonga). 남태평양 솔로몬제도 티코피아섬의 전통 항해용 카누. 커다란 돛과 선체 옆에 연결된 아웃리거는 태평양 섬 주민들의 뛰어난 항해 기술을 보여준다. 실제 전시 사진 참고하여 전체 구조를 AI로 추정 복원했다. Auckland War Memorial Museum · Iolanda Andrade / Auckland Museum 공식 홈페이지 · Iolanda Andrade 블로그 / 원본 사진 기반 AI 추정 복원

     

    태평양 컬렉션을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는 솔로몬제도의 티코피아(Tikopia)섬에서 온 바카 타푸(Vaka Tapu)입니다. 박물관의 태평양 걸작 전시에서 가장 큰 유물로 소개되는 아웃리거 카누입니다.

     

    앞서 살펴본 마오리 전쟁 카누와 비교하면 구조부터 다릅니다. 선체 옆에 길게 뻗은 지지대와 보조 부력체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아웃리거라고 부르는 이 구조는 좁은 선체가 파도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도록 도와줍니다.

     

    바카 타푸는 오클랜드와 깊은 인연이 있는 멜라네시아 선교회를 통해 박물관에 기증되었습니다. 작은 섬에서 사용되던 카누가 먼 바다를 건너 뉴질랜드의 박물관에 자리하게 된 것입니다.

     

    태평양 항해자들에게 카누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었습니다. 사람과 식량, 도구와 지식을 다른 섬으로 운반하는 생명선이었습니다. 육지에서는 작은 섬 하나가 세상의 전부처럼 보일지 몰라도, 항해 기술을 갖춘 사람들에게는 바다 건너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왕의 망토에는 왜 수많은 깃털이 필요했을까?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이 소개하는 하와이 전통 깃털 망토 아후 울라(ʻahu ʻula). 반원형으로 펼쳐진 망토에 붉은색과 황금빛 노란색 깃털이 기하학적 무늬를 이루며, 중앙의 곡선과 가장자리의 지그재그 장식이 돋보인다.
    아후 울라(ʻahu ʻula) — 붉은색과 노란색 깃털로 정교하게 제작한 하와이의 전통 망토. 왕족과 고위 추장의 권위와 신성한 지위를 상징하는 귀중한 의례용 복식이다. - 출처 표기: Auckland War Memorial Museum / Auckland Museum / 원본 사진 참고 AI 전시 재현

     

    태평양 문화유산 가운데 특히 화려한 작품은 하와이의 아후 울라(ʻahu ʻula)입니다. 붉은색 깃털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의례용 망토로, 높은 지위의 추장들이 전쟁이나 신성한 종교 의례에서 착용했습니다.

     

    멀리서 보면 부드러운 붉은 천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작은 깃털들이 촘촘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깃털을 작은 다발로 묶은 다음 섬유 바탕에 고정하는 방식으로 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망토에는 금실도 보석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높은 지위의 지도자들만 착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희귀한 재료와 엄청난 제작 노동 때문입니다. 하와이의 왕 카메하메하와 관련된 유명한 깃털 망토에는 약 50만 개의 깃털이 사용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오클랜드 박물관 소장 망토의 수량이 아니라, 하와이 깃털 공예가 얼마나 정교하고 귀한 작업이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태평양의 여러 사회에서 귀한 물건은 반드시 금이나 보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에 뛰어난 기술과 오랜 노동이 더해지면서 권위와 신성함을 표현하는 보물이 탄생했습니다.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가면, 코바바트 시 미 마라다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 소장 코바바트 시 미 마라다(Kovabat si mi Marada) 목조 가면. 짙은 청흑색 얼굴에 두툼하게 돌출된 눈썹과 코, 가늘게 감긴 눈, 입 주변의 나무 장식과 머리 위의 조각 장식이 특징인 파푸아뉴기니 타바르 제도의 전통 의례용 가면.
    코바바트 시 미 마라다(Kovabat si mi Marada) — 파푸아뉴기니 뉴아일랜드 타바르 제도의 목조 의례용 가면. 과장된 얼굴 윤곽과 강렬한 표정, 머리와 입 주변의 독특한 장식에서 지역 고유의 조각 전통을 엿볼 수 있다. Auckland War Memorial Museum / Auckland Museum Collections / 원본 사진 참고 AI 전시 재현

     

    파푸아뉴기니 타바르제도에서 온 코바바트 시 미 마라다(Kovabat si mi Marada)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가면입니다. 19세기에 제작된 이 작품은 말라간(Malagan)이라는 장례 의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말라간 의례는 죽은 사람을 기억하고 공동체의 관계를 정리하는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의례에 사용되는 가면과 조각에는 복잡한 상징과 전통적인 지식이 담겨 있습니다.

     

    가면을 처음 보면 낯선 형태와 강렬한 표정에 시선을 빼앗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작품이 단순히 사람을 놀라게 하려고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죽은 사람을 기억하고 남은 사람들이 관계를 이어가는 의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가면 하나에 삶과 죽음, 공동체의 기억이 함께 담겨 있는 것입니다.

     

    거대한 카누와 왕의 깃털 망토, 조상의 기억을 담은 가면은 서로 다른 섬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모두 바다로 연결된 태평양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4. 거대한 모아와 키위, 뉴질랜드 자연의 놀라운 비밀

     

    태평양의 문화유산에서 시선을 돌리면 이번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뉴질랜드의 자연사입니다. 사람들의 역사보다 훨씬 오래된 시간 속에서 이 땅에는 놀라운 생명들이 살아왔습니다.

     

    뉴질랜드는 오랜 세월 다른 대륙과 떨어져 있었습니다. 인간이 도착하기 전까지 육상 포유류는 박쥐류에 한정되어 있었고, 새들이 다른 지역의 포유류가 차지하는 생태적 역할까지 담당했습니다.

     

    키가 3m에 이르던 거대한 새, 모아

    뉴질랜드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에 전시된 거대 모아(Giant moa) 복원 표본. 약 3m 높이로 목을 길게 뻗은 모아의 갈색 깃털과 육중한 몸통, 긴 다리와 커다란 발이 보이는 전시 사진.
    거대 모아(Giant moa) — 뉴질랜드에 서식했던 날지 못하는 대형 조류.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의 복원 표본은 목을 곧게 세운 약 3m 높이의 모습으로, 멸종된 모아의 압도적인 크기를 보여준다. - Malene Thyssen / Wikimedia Commons / GFDL 1.2 이상 / 원본 사진 참고 AI 전시 재현

     

    자연사 컬렉션의 대표적인 주인공은 모아(Moa)입니다. 뉴질랜드에 살았던 날지 못하는 새로, 종류에 따라 몸집과 서식 환경이 달랐습니다. 가장 큰 종류는 머리를 높이 들었을 때 약 3m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오클랜드 박물관에는 높이 약 3m의 거대 모아 복원 표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표본에는 흥미로운 제작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1912년 박물관은 모아 복원물을 제작하기 위해 모금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듬해 완성된 표본에는 에뮤의 깃털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미 멸종한 모아의 생김새를 당시의 지식과 기술로 재현하려 했던 것입니다.

     

    1913년에 공개된 이 복원물은 오랜 세월 관람객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멸종한 동물의 모습을 보여주는 표본인 동시에, 20세기 초 박물관이 자연사를 어떻게 전시했는지 알려주는 역사적 자료가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반전도 있습니다. 초기 모아 복원물은 목을 꼿꼿하게 세운 모습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후대의 연구에서는 목이 S자 형태로 굽어 있는 자세가 더 자연스러웠을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같은 동물을 바라보는 과학자들의 시선도 연구가 발전하면서 달라진 것입니다.

     

    모아는 한 종류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박물관이 소개하는 고산 모아(Megalapteryx didinus)는 상대적으로 작은 종류로, 산악 지역의 초지에 적응해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모아는 왜 모두 사라졌을까요? 인간이 뉴질랜드에 정착한 이후 사냥과 환경 변화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모아는 인간이 도착한 뒤 약 200년 남짓한 기간에 멸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백만 년 동안 이어져 온 생명의 역사가 불과 몇 세기 만에 끝난 것입니다. 거대한 몸집이 생존을 보장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날지 못하는 새들의 섬, 키위의 특별한 생존법

    뉴질랜드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에 전시된 작은점박이키위(Little Spotted Kiwi, Apteryx owenii) 박제 표본. 갈색과 흰색이 섞인 촘촘한 깃털, 둥근 몸통, 짧고 튼튼한 다리, 길고 가느다란 부리가 특징이다.
    작은점박이키위(Little Spotted Kiwi) —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키위류 가운데 가장 작은 종. 갈색 깃털 사이로 흰 반점이 촘촘히 퍼져 있으며, 길고 가느다란 부리로 땅속의 먹이를 탐색한다.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 소장 표본. - Goudron92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뉴질랜드의 상징인 키위(Kiwi)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박물관의 자연사 컬렉션에는 작은점박이키위(Little Spotted Kiwi) 표본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키위는 둥근 몸과 털처럼 보이는 깃털, 길고 가느다란 부리가 특징입니다. 특히 부리 끝부분 가까이에 콧구멍이 있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냄새를 감지하는 능력은 흙 속에서 먹이를 찾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날개는 몸에 비해 매우 작고 꼬리도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새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지만, 바로 이러한 특징이 뉴질랜드의 독특한 진화 역사를 보여줍니다.

     

    모아와 키위는 모두 날지 못하는 새이지만 크기도 생활 방식도 크게 달랐습니다. 오랜 세월 고립된 섬에서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온 결과입니다.

     

    6,500만 년 전 바다의 거대한 포식자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 소장 플레시오사우루스류 표본 두 점을 하나의 전시실에 배치한 AI 재구성 이미지. 왼쪽에는 암석판 위에 굽은 목과 두개골, 척추와 지느러미뼈가 드러난 표본이, 오른쪽에는 긴 목과 네 개의 지느러미가 펼쳐진 밝은 색 골격 표본이 전시되어 있다.
    플레시오사우루스류(Plesiosaurs) — 중생대 바다를 누볐던 해양 파충류. 길게 뻗은 목과 네 개의 지느러미가 특징으로, 두 표본을 나란히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한 전시 연출 이미지다. - Auckland War Memorial Museum / Auckland Museum Collections / CC BY 4.0 /원본 사진 참고 AI 전시 재현

     

    자연사 전시에서는 시간을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자료가 플레시오사우루스류(Plesiosaur) 화석입니다. 박물관은 뉴질랜드 남섬 카이코우라 해안에서 발견된 약 6,500만 년 전의 해양 파충류 화석을 소개합니다.

     

    플레시오사우루스류는 공룡이 아니라 바다에 적응한 파충류였습니다. 네 개의 지느러미를 이용해 헤엄쳤으며, 중생대 바다에서 다양한 물고기와 해양 생물을 사냥했습니다.

     

     

    거대한 고대 상어 메갈로돈(Megalodon, Otodus megalodon)의 이빨 화석. 검은색을 띤 두꺼운 치근과 아래로 뾰족하게 뻗은 삼각형 치관, 오랜 화석화 과정에서 나타난 표면의 균열과 마모 흔적이 보인다.미국 텔러스 과학박물관(Tellus Science Museum)에 전시된 메갈로돈(Otodus megalodon) 이빨 화석 다섯 점. 중앙의 커다란 황갈색 이빨과 주변의 회색 이빨 네 점이 크기와 형태를 비교할 수 있도록 진열되어 있다.
    메갈로돈(Megalodon)의 이빨 화석 — 왼쪽은 이빨 한 점을 확대해 두꺼운 치근과 날카로운 삼각형 치관을 보여주며, 오른쪽은 미국 텔러스 과학박물관에 전시된 다섯 점의 화석으로 이빨마다 다른 크기와 형태를 비교할 수 있다. 신생대 바다의 거대한 포식자가 남긴 흔적이다. Fred Cherrygarde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JJonahJackalope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이와 함께 거대 고대 상어의 이빨 화석도 주목할 만합니다. 박물관은 역사상 가장 큰 상어로 알려진 종류의 거대한 이빨을 자연사 전시의 주요 자료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상어의 몸은 대부분 연골로 이루어져 있어 완전한 골격 화석이 남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단단한 이빨은 화석으로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빨의 크기와 형태를 분석해 오래전 바다에 살았던 상어의 생태를 연구합니다.

     

    거대한 모아와 작은 키위, 고대 해양 파충류와 상어의 이빨까지 살펴보면 뉴질랜드의 자연사가 얼마나 긴 시간을 품고 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이곳의 자연은 아름다운 풍경일 뿐 아니라 수많은 생명의 탄생과 변화, 멸종을 기록한 역사책이기도 합니다.

     

    5. 전쟁의 기억과 역사의 흔적, 박물관이 전하는 이야기

    뉴질랜드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의 제1차 세계대전 기억의 전당(Hall of Memories). 석양빛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원형 추모 공간에서 외국인 학생 두 명과 성인 한 명이 검은 대리석 추모비 앞에 서서 묵념하고 있다. 추모비 주변에는 붉은 꽃과 화환이 놓여 있다.
    제1차 세계대전 기억의 전당(Hall of Memories) —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의 엄숙한 추모 공간. 늦은 오후의 따뜻한 햇살 아래 방문객들이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며 잠시 고개를 숙인다. - Auckland War Memorial Museum / 원본 사진 참고 AI 재현

     

    마지막으로 박물관의 전쟁기념 공간을 살펴보겠습니다. 이곳에서는 화려한 장신구나 거대한 동물 표본 대신 사람들의 이름과 기억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오클랜드 박물관이 전쟁기념박물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도 이 공간에서 분명해집니다. 제1차 세계대전 추모 공간인 기억의 전당(Hall of Memories)에는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오클랜드 지역 뉴질랜드인 7,297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거의 3분의 1은 알려진 무덤조차 없습니다. 벽면의 이름들을 바라보면 역사책의 숫자로만 접했던 전쟁이 갑자기 개인의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친구였으며,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을 이름들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추모 공간 역시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박물관은 전쟁의 승패와 무기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겪었던 상실과 고통을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던 스핏파이어와 마지막 임무를 피한 제로 전투기

    스핏파이어 마크 XVI(Supermarine Spitfire Mk XVI) — 제2차 세계대전 후기에 활약한 영국의 대표적인 전투기. 날렵한 기체와 강력한 엔진을 갖춘 스핏파이어는 영국 공군의 상징적인 항공기로, 사진 속 기체는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이 소장한 TE456이다. Auckland War Memorial Museum / Wikimedia Commons / CC BY 4.0 / 원본 사진 참고 AI 전시 재현

     

    전쟁사 컬렉션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유물은 스핏파이어 마크 XVI(Spitfire Mark XVI)와 미쓰비시 A6M3 제로(Zero) 전투기입니다. 두 항공기는 제2차 세계대전을 대표하는 기종이지만, 박물관에 남아 있는 각각의 기체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먼저 스핏파이어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기체는 1945년 말 제작되었지만 실제 제2차 세계대전에는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1951년부터 영국 공군에서 운용되었고, 1956년 뉴질랜드 출신의 키스 파크(Keith Park) 경의 주선으로 오클랜드 박물관에 기증되었습니다.

     

    키스 파크는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런던과 잉글랜드 남부 방어를 지휘했던 인물입니다. 따라서 이 스핏파이어는 전투에 직접 참여했던 기체라기보다 전쟁에 기여한 뉴질랜드 사람들을 기념하는 상징적인 유물입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에 전시된 일본 해군의 미쓰비시 A6M3 제로 22형(Mitsubishi A6M3 Zero Model 22) 전투기. 동체의 붉은 원형 일본군 표식과 긴 날개, 조종석, 프로펠러가 보이며 주변에는 당시 군용 장비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미쓰비시 A6M3 제로 전투기(Mitsubishi A6M3 Zero)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해군이 운용한 대표적인 함상전투기. 기동성과 긴 항속거리를 바탕으로 태평양 전쟁 초기에 활약했다. 사진 속 기체는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에 전시된 A6M3 22형으로, 1992년에 촬영되었다. André Gerwing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반면 일본의 미쓰비시 A6M3 제로 전투기에는 훨씬 극적인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이 전투기는 1943년 솔로몬제도 부건빌에서 손상된 뒤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일본군에 의해 수리되었습니다. 전쟁 말기에는 자살 공격 임무에 투입될 예정이었지만, 기술적인 문제와 종전으로 그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뉴질랜드 공군은 이 기체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군 당국은 제로 전투기를 비행시키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뉴질랜드 조종사 빌 코포드(Bill Kofoed)는 일본인 조종사에게 기본적인 설명을 듣고 직접 조종석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1945년 9월 15일, 허가 없이 제로 전투기를 몰고 약 20분 동안 비행해 피바(Piva) 비행장에 착륙했습니다. 명령 위반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항공기가 보존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훗날 이 전투기를 조종할 예정이었던 일본인 조종사 시바야마 세키젠(Sekizen Shibayama)이 뉴질랜드를 방문했습니다. 1997년에는 과거의 적이었던 양국 조종사들이 박물관에서 만나 전쟁의 기억을 나누었습니다.

     

    한때 서로를 공격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수십 년 뒤 같은 항공기 앞에서 다시 만난 것입니다. 전쟁 유물이 단순히 과거의 무기가 아니라 화해와 기억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사례입니다.

     

    박물관이 남기는 가장 중요한 보물

    뉴질랜드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 앞에 세워진 오클랜드 세노타프(Auckland Cenotaph). 밝은 석재로 제작된 높은 사각형 추모비에 월계관 장식과 세 개의 깃대, 전몰자를 기리는 THE GLORIOUS DEAD 문구가 새겨져 있으며, 뒤편으로 박물관 건물이 보인다.
    오클랜드 세노타프(Auckland Cenotaph) — 오클랜드 전쟁기념박물관 앞에 세워진 전쟁 추모비. 월계관 장식과 전몰자를 기리는 문구가 새겨진 이 기념비는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는 장소이자, 매년 ANZAC Day 추모 행사가 열리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 Itineris55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관람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오면 박물관 앞에 오클랜드 세노타프(Auckland Cenotaph)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기리는 추모비로, 1929년부터 중요한 추모 행사의 중심이 되어 왔습니다.

     

    처음 만났던 마오리 전쟁 카누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 공동체의 힘을 상징하던 거대한 배에서 시작한 관람은 조상들의 기억을 담은 집회소와 태평양의 보물, 멸종된 생명들을 지나 전쟁 희생자의 이름 앞에서 마무리됩니다.

     

    서로 전혀 다른 유물처럼 보이지만, 모두 한 가지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고,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기려 했을까요?

     

    오클랜드 박물관의 진짜 보물은 화려한 유물만이 아닙니다. 그 유물을 만들고 사용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문화와 기억에 있습니다.

     

    뉴질랜드 여행에서 이 박물관을 방문한다면 유물의 크기와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찾아보세요. 같은 유물을 보더라도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 관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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