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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궁전광장에 서면 연두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웅장한 겨울궁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러시아 황제들의 궁전이었던 이곳은 오늘날 세계 3대 미술관 가운데 하나인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에르미타주는 규모가 워낙 커 처음 방문하면 어디부터 둘러봐야 할지 고민되기 마련입니다. 이번에는 겨울궁전의 화려한 공간과 꼭 봐야 할 명작들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에르미타주의 매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럼 에르미타주 여행의 첫걸음, 겨울궁전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 황제의 겨울궁전에서 시작된 에르미타주 박물관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역사는 17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러시아 황제였던 예카테리나 2세는 베를린의 미술상 요한 에른스트 고츠코프스키가 모은 서유럽 회화 컬렉션을 구입했습니다. 이 컬렉션에는 네덜란드와 플랑드르를 중심으로 한 여러 유럽 화가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예카테리나 2세는 이후에도 유럽 각지의 주요 컬렉션을 적극적으로 사들였습니다. 예술품 수집은 개인적인 취미이기도 했지만, 러시아가 유럽의 문화 강국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정치적 목적도 담겨 있었습니다. 짧은 기간에 수많은 회화와 조각, 보석, 고대 유물이 러시아 황실로 들어왔고, 황제의 개인 소장실은 점차 거대한 미술 컬렉션으로 성장했습니다.
'에르미타주(Hermitage)'라는 이름은 프랑스어로 은둔처나 조용한 휴식처를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처음에는 황제와 초대받은 소수의 인물만 들어갈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오늘날 누구나 방문하는 세계적인 박물관이 되었지만, 이름에는 여전히 황제가 예술품을 감상하던 은밀한 방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의 에르미타주는 겨울궁전 하나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겨울궁전과 소에르미타주, 구에르미타주, 신에르미타주, 에르미타주 극장 등이 서로 연결되어 거대한 본관 복합단지를 이룹니다. 궁전광장 반대편에는 근대 서유럽 미술을 전시하는 참모본부관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라보는 연두색 외벽의 겨울궁전은 18세기 러시아 바로크 건축을 대표하는 건물입니다.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바르톨로메오 라스트렐리가 설계했으며, 황실의 권위와 부를 보여 주듯 수많은 기둥과 조각, 금빛 장식으로 외벽을 구성했습니다.
건물의 규모만 보고도 압도되기 쉽지만, 에르미타주 관람의 진짜 시작은 문을 통과한 뒤부터입니다. 이제 황제와 외국 사절들이 오르내렸던 화려한 계단으로 이동해 보겠습니다.
2. 요르단 계단을 올라 황실의 방을 걷다
요르단 계단, 궁전으로 들어가는 가장 화려한 길

입구를 지나 본관 안으로 들어오면 에르미타주를 대표하는 요르단 계단이 나타납니다. 흰색 대리석과 금빛 장식이 계단 전체를 감싸고, 높은 천장에서는 커다란 샹들리에가 내려옵니다. 벽면의 거울과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장식에 반사되면서 공간은 실제 크기보다 더욱 넓고 화려하게 느껴집니다.
요르단 계단이라는 이름은 러시아 황실의 종교 행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주현절이 되면 황제와 황실 가족이 이 계단을 내려와 네바강에서 진행되는 물의 축복 의식에 참석했습니다. 성경 속에서 예수가 세례를 받은 요르단강을 기념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요르단 계단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계단을 오르면서 천장을 한번 올려다보시기 바랍니다. 조각과 회화, 건축 장식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장면처럼 이어집니다. 에르미타주에서는 전시실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작품 감상이 시작되는 셈입니다.
성 게오르기 홀과 러시아 황실의 권위

계단을 올라 황실 공식 접견실을 따라가면 성 게오르기 홀을 만나게 됩니다. 왕좌의 방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황제가 국가의 주요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절을 맞이하던 공간입니다.
실내는 흰색 대리석과 금빛 장식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멀리 정면을 바라보면 높은 단 위에 황제의 왕좌가 놓여 있고, 그 뒤에는 말을 타고 용을 무찌르는 성 게오르기의 모습이 보입니다. 성 게오르기는 러시아 황실과 국가 권위를 상징하는 인물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이 방에서는 그림 한 점보다 공간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천장의 높이와 반복되는 기둥, 왕좌로 향하는 시선의 흐름은 방문자가 자연스럽게 황제의 자리를 중심으로 바라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건축 자체가 권력의 질서를 보여 주는 장치였던 것입니다.
말라카이트 홀, 돌로 장식한 황실 응접실

이번에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말라카이트 홀로 이동해 보겠습니다. 방 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짙은 녹색의 기둥과 벽난로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장식에 사용된 재료가 바로 말라카이트입니다.
말라카이트는 녹색의 독특한 줄무늬를 가진 광물로, 19세기 러시아 황실을 상징하는 장식 재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커다란 돌 하나를 통째로 사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얇게 가공한 말라카이트 조각을 표면에 정교하게 붙여 무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녹색 말라카이트와 금빛 장식, 붉은색 직물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면서 방 전체에 이국적이고 화려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황실 가족이 공식 행사를 준비하거나 손님을 맞이했던 공간이지만, 오늘날에는 러시아 장식 예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는 전시 공간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궁전의 화려함을 충분히 살펴보았다면 이제 서유럽 회화 전시실로 이동하겠습니다. 이곳부터는 에르미타주가 단순한 왕궁이 아니라 세계 미술사의 중요한 작품을 소장한 박물관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3. 에르미타주 본관에서 반드시 만나야 할 명화 7점
궁전의 화려한 공간을 충분히 둘러보았다면 이제 서유럽 회화 전시실로 이동해 보겠습니다. 에르미타주 본관에는 르네상스에서 바로크에 이르는 중요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 많지만, 작가의 이름만 확인하고 지나가기에는 아까운 그림들입니다. 작품 속 인물의 시선과 손짓, 빛이 머무는 위치를 함께 살펴보면서 일곱 점의 대표 명화를 차례로 만나보겠습니다.
1. 레오나르도 다빈치 《브누아의 성모》

첫 번째로 만나볼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브누아의 성모》입니다. 레오나르도의 초기 작품으로, 전통적인 성모자상에서 벗어나 어머니와 아이가 자연스럽게 교감하는 순간을 보여 줍니다.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에게 작은 꽃을 건네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는 꽃을 잡으려는 듯 몸을 움직이고, 성모는 아이의 반응을 바라보며 미소 짓습니다. 종교화이지만 엄숙한 성인보다 장난을 나누는 젊은 어머니와 아이처럼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작품 앞에서는 두 인물의 손과 시선을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성모의 손에서 꽃으로, 다시 아기 예수의 손과 얼굴로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레오나르도는 몸짓과 시선을 이용해 작은 화면 안에 부드러운 움직임을 만들었습니다.
아기 예수가 바라보는 십자 모양의 꽃은 훗날 그가 겪게 될 수난을 암시하는 상징으로 해석됩니다. 즐거운 모자의 교감 속에 앞으로 다가올 희생의 운명도 조용히 담겨 있는 것입니다.
얼굴과 피부의 윤곽이 딱딱하게 구분되지 않고 빛과 그림자 속에서 부드럽게 이어지는 표현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레오나르도가 이후 발전시킨 섬세한 명암 표현의 초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레오나르도 다빈치 《리타의 성모》

같은 전시 구역에서는 《리타의 성모》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브누아의 성모》가 움직임과 장난스러운 교감을 강조한다면, 《리타의 성모》는 보다 고요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보여 줍니다.

성모는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고 있으며, 아기는 몸을 관람객 쪽으로 돌린 채 작은 새를 들고 있습니다. 이 새는 방울새로 해석되며, 그리스도의 수난을 암시하는 상징으로 서양 종교화에 자주 등장합니다.
성모 뒤편에는 좌우로 아치형 창문이 열려 있습니다. 어두운 실내와 창밖의 밝은 하늘이 대비되면서 두 인물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작은 화면이지만 인물과 풍경이 균형을 이루어 깊고 넓은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이 작품은 제작 과정과 레오나르도의 직접적인 참여 범위를 두고 오랫동안 연구가 이어져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레오나르도의 구상과 작업실의 참여가 함께 반영된 작품으로 설명됩니다.
두 성모자상을 차례로 본다면 인물의 자세와 분위기를 비교해 보세요. 같은 성모와 아기 예수를 그렸지만, 한 작품은 생동감 있는 교감을, 다른 작품은 조용한 모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 라파엘로 《콘네스타빌레의 성모》

이번에는 라파엘로의 《콘네스타빌레의 성모》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름이 크지 않은 원형 화면에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담긴 작품으로, 라파엘로가 젊은 시절에 제작한 성모자상입니다.

성모는 한 손으로 아기 예수를 안고 다른 손에는 작은 책을 들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도 책을 함께 바라보며 어머니의 품에 기대어 있습니다. 인물들의 자세는 자연스럽고, 서로 맞닿은 얼굴과 손에서는 조용한 친밀감이 느껴집니다.
배경에는 나무와 호수, 멀리 이어지는 산이 펼쳐집니다. 성모의 푸른 망토와 붉은 옷, 부드러운 자연 풍경이 조화를 이루면서 화면 전체에 맑고 평온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라파엘로는 복잡한 움직임이나 강한 감정보다 균형 잡힌 구도와 안정된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원형 화면 안에서 인물과 풍경이 어색하지 않게 연결되는 모습에서 젊은 시절부터 뛰어났던 그의 구성 능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품 앞에서는 화면의 크기도 살펴보세요. 기념비적인 대작은 아니지만, 작은 원 안에 인물과 풍경, 종교적 상징을 정교하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4. 조르조네 《유디트》

르네상스 베네치아 회화에서는 조르조네의 《유디트》를 빼놓기 어렵습니다. 성경 속 유디트는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죽여 자신의 도시를 구한 여성 영웅입니다. 그러나 조르조네는 전투의 긴장감보다 사건이 끝난 뒤의 고요한 순간을 그렸습니다.
유디트는 한 손에 검을 들고 서 있으며, 발아래에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가 놓여 있습니다. 잔혹한 사건을 다룬 그림이지만 유디트의 표정과 자세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합니다. 몸을 부드럽게 기울인 모습은 전사라기보다 우아한 귀족 여성처럼 보입니다.

배경에는 나무와 풀, 멀리 이어지는 산과 하늘이 펼쳐집니다. 인물과 자연은 분리되지 않고 부드러운 빛과 색채 속에서 하나의 분위기를 이룹니다. 베네치아 화가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색채와 서정적인 풍경 표현이 잘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작품을 볼 때에는 유디트의 얼굴과 발아래의 머리가 만들어 내는 대비를 살펴보세요. 아름답고 고요한 인물의 모습과 죽음의 흔적이 한 화면에 공존하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을 만듭니다.
5. 카라바조 《류트 연주자》

이제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는 카라바조의 《류트 연주자》로 이동하겠습니다. 어두운 배경 앞에서 젊은 연주자가 류트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순간을 담은 작품입니다.
인물은 관람객과 가까운 곳에 앉아 있습니다. 입술은 노래를 부르는 듯 살짝 벌어져 있고, 손가락은 류트의 현 위에 놓여 있습니다. 카라바조는 인물을 이상화된 신화 속 존재가 아니라 실제 방 안에서 연주하는 사람처럼 생생하게 표현했습니다.
탁자 위에는 악보와 꽃, 과일이 놓여 있습니다. 화병의 꽃과 잘 익은 과일은 아름답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꽃은 시들고 과일도 상하게 됩니다. 이러한 소재는 젊음과 아름다움, 음악의 순간 역시 영원하지 않다는 의미를 전합니다.
카라바조는 강한 빛을 인물의 얼굴과 흰옷, 악기와 정물에 집중했습니다. 반대로 배경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둡게 처리했습니다. 밝음과 어둠의 대비 덕분에 인물과 사물이 전시장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듯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류트 표면의 나뭇결과 악보의 종이, 꽃잎과 과일의 질감도 자세히 살펴보세요. 카라바조가 빛을 이용해 서로 다른 재료의 감촉까지 표현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6. 렘브란트 《탕자의 귀환》

이제 네덜란드 회화 전시실로 이동해 보겠습니다. 에르미타주를 대표하는 작품을 한 점만 고른다면 많은 사람이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을 떠올릴 것입니다.
작품은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 집을 떠났다가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들은 품꾼으로라도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며 무릎을 꿇지만, 아버지는 잘못을 꾸짖지 않고 아들을 끌어안습니다.
화면 대부분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습니다. 빛은 아버지의 얼굴과 두 손, 낡은 옷을 입은 아들의 등에 집중됩니다. 렘브란트는 화려한 배경이나 극적인 움직임 없이 포옹 하나만으로 용서와 위로를 표현했습니다.
아들의 머리는 짧게 깎여 있고 옷은 찢어졌으며, 신발 한쪽은 거의 벗겨져 있습니다. 오랜 방황과 가난을 설명하지 않아도 그의 몸과 옷만으로 지나온 시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두 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한 손은 크고 단단하게 표현된 반면 다른 손은 상대적으로 가늘고 부드럽습니다. 이를 아버지의 권위와 어머니 같은 자비가 함께 담긴 표현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화면 오른쪽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큰아들이 서 있습니다. 그의 굳은 자세와 모은 손은 아버지의 따뜻한 포옹과 대비됩니다. 한쪽에는 조건 없는 용서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판단과 거리감이 있습니다.
작품 앞에서는 등장인물의 표정만 보기보다 빛이 어디에 머무는지 따라가 보세요. 가장 밝은 빛이 아버지의 손과 돌아온 아들에게 집중되면서 관람객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용서의 순간으로 향합니다.
7. 렘브란트 《다나에》

마지막으로 살펴볼 작품은 렘브란트의 《다나에》입니다. 그리스 신화 속 다나에는 아버지에 의해 방 안에 갇히지만, 제우스가 황금빛으로 변해 그녀를 찾아옵니다.
서양미술에서는 제우스를 상징하는 황금비가 쏟아지는 장면으로 자주 표현되지만, 렘브란트는 신의 모습을 직접 그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다나에가 화면 밖의 누군가를 반갑게 맞이하는 순간에 집중했습니다.
다나에는 한쪽 팔을 앞으로 뻗고 있으며, 그녀의 얼굴과 몸 위로 따뜻한 빛이 내려옵니다. 뒤편에서는 하녀가 커튼을 걷고 있습니다. 인물의 시선과 손짓을 따라가다 보면 화면 밖에서 다가오는 존재를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됩니다.

렘브란트가 그린 인체는 고대 조각처럼 이상적으로 매끈하지 않습니다. 피부의 굴곡과 몸의 무게가 솔직하게 드러납니다. 그 때문에 다나에는 신화 속 상징보다 실제 숨 쉬는 인간처럼 느껴집니다.
이 작품은 1985년 관람객의 공격으로 심각하게 훼손되기도 했습니다. 에르미타주의 복원 전문가들은 오랜 시간 작품을 복원했고, 《다나에》는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일곱 작품을 차례로 살펴보면 르네상스의 균형 잡힌 인물 표현에서 베네치아 회화의 색채, 카라바조와 렘브란트의 강렬한 빛으로 이어지는 서유럽 회화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겨울궁전 본관을 나와 궁전광장 반대편의 참모본부관으로 이동해 보겠습니다. 그곳에서는 모네와 고흐, 마티스와 피카소가 전통적인 회화의 색과 형태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4. 궁전광장을 건너 인상주의와 현대미술을 만나다

이제 겨울궁전 관람을 마쳤다면 건물 밖으로 나와 궁전광장을 가로질러 보겠습니다. 광장 반대편에 길게 휘어진 노란색 건물이 보입니다. 이곳이 참모본부관입니다.
많은 방문객이 에르미타주를 겨울궁전 하나로 생각하고 본관만 관람한 뒤 돌아가곤 합니다. 그러나 모네와 르누아르, 세잔, 고흐, 고갱, 마티스, 피카소를 보고 싶다면 참모본부관까지 방문해야 합니다. 두 건물은 같은 에르미타주에 속하지만 입구와 관람 동선이 분리되어 있으므로, 일정도 따로 잡는 편이 좋습니다.

참모본부관은 겨울궁전과 분위기가 상당히 다릅니다. 황실의 방을 보존한 본관이 역사적인 궁전을 걷는 경험을 준다면, 참모본부관은 넓고 정돈된 전시실에서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제 19세기 인상주의에서 20세기 현대미술로 이어지는 변화를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클로드 모네 《몽주롱 정원의 한구석》

먼저 클로드 모네의 《몽주롱 정원의 한구석》 앞에 서 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1870년대 프랑스의 부유한 수집가 에르네스트 오슈데의 의뢰로 제작된 대형 장식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모네는 파리 근교 몽주롱에 있는 오슈데 저택의 정원을 여러 화면에 담았습니다.
그림에는 울창한 나무와 꽃이 피어난 정원, 햇빛이 스며드는 오솔길이 펼쳐집니다. 인물이 중심에 등장하지 않고 특별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네가 주목한 것은 정원의 정확한 구조보다 나뭇잎 사이로 흔들리는 빛과 공기의 변화였습니다.
그림 가까이에서는 붓질이 빠르고 거칠어 보입니다. 잎과 꽃도 세밀하게 하나씩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면 짧은 붓질과 서로 다른 색의 점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햇빛이 반짝이는 정원 풍경으로 변합니다.
이것이 인상주의 작품을 감상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가까이에서는 물감과 붓질을 살펴보고, 멀리에서는 색이 만들어 내는 전체적인 빛과 분위기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네는 사물을 고정된 색으로 칠하지 않았습니다. 햇빛과 주변 환경에 따라 순간순간 달라지는 색을 화면 위에 나누어 올렸습니다.
화면의 크기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인상주의라고 하면 작은 캔버스를 들고 야외에서 빠르게 그린 풍경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작품은 실내 벽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대형 회화입니다. 자연에서 포착한 순간적인 빛을 기념비적인 크기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모네의 야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라일락 덤불》

조금 더 걸어가면 고흐의 《라일락 덤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고흐가 프랑스 남부 생레미의 생폴드모졸 요양원에 머물던 시기에 그렸습니다. 화면에는 요양원 정원에서 자라는 라일락 덤불이 가득 펼쳐집니다.
제목만 보면 향기롭고 평온한 꽃 그림을 떠올릴 수 있지만, 실제 화면은 매우 강한 움직임으로 가득합니다. 나뭇가지와 잎, 풀은 짧고 굽이치는 붓질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붓질 하나하나가 같은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고 서로 밀고 당기며 화면 전체를 흔드는 듯합니다.
고흐는 사물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자신이 느낀 생명력과 감정을 붓질에 담았습니다. 녹색이라고 해서 한 가지 물감만 사용하지도 않았습니다. 밝은 연두색과 짙은 녹색, 노란색, 푸른색이 겹치면서 식물이 끊임없이 자라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화면 위쪽에는 라일락꽃이 흰색과 연보라색의 짧은 붓질로 흩어져 있습니다. 꽃의 정확한 윤곽보다는 빛을 받은 꽃송이의 떨림이 강조됩니다. 정원 바닥에도 다양한 색의 붓질이 이어져 있어 식물과 땅의 경계가 분명하게 나뉘지 않습니다.
고흐가 요양원에서 그린 자연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외부 활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정원과 주변의 나무, 들판은 그가 반복해서 관찰하고 그림으로 옮길 수 있는 중요한 대상이었습니다. 불안과 고통이 이어지는 시기에도 그는 자연 속에서 질서와 생명력을 발견하려 했습니다.
작품 앞에서는 꽃의 형태만 찾으려고 하기보다 붓이 지나간 방향을 눈으로 천천히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나뭇가지가 뻗고 잎이 흔들리며 풀밭이 이어지는 흐름이 보입니다. 고흐의 그림에서는 붓질이 사물을 묘사하는 수단을 넘어, 화가의 감정과 호흡을 보여 주는 흔적이 됩니다.
앙리 마티스 《춤》

이제 에르미타주 근대미술 컬렉션을 대표하는 마티스의 《춤》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강렬한 붉은색 인물 다섯 명이 손을 잡고 원을 이루며 춤추는 대형 작품입니다. 사람의 몸과 녹색 대지, 푸른 하늘만으로 구성되어 있어 처음 보면 매우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면 앞에 서면 단순함보다 강한 에너지가 먼저 다가옵니다. 인물들의 몸은 정확한 해부학에 따라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팔과 다리는 길게 늘어나고, 몸통은 춤의 방향에 맞춰 과장되게 휘어 있습니다. 마티스에게 중요한 것은 인체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일이 아니라 움직임의 리듬을 전달하는 일이었습니다.

다섯 사람은 손을 잡고 있지만 왼쪽 아래의 두 인물 사이에서는 손이 완전히 연결되지 않습니다. 한 인물이 몸을 길게 뻗어 앞사람의 손을 붙잡으려 합니다. 이 작은 틈 때문에 원은 정지된 형태가 아니라 금방이라도 끊어졌다 다시 이어질 듯 긴장감 있는 움직임을 갖게 됩니다.
색도 현실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붉은색, 땅은 녹색, 하늘은 깊은 푸른색으로 칠해졌습니다. 세 가지 색은 서로 강하게 충돌하면서도 화면 전체를 명확하게 나눕니다. 마티스는 복잡한 명암과 배경을 제거하고 색 자체가 감정과 공간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이 작품은 러시아의 대수집가 세르게이 슈추킨의 주문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슈추킨은 자신의 모스크바 저택 계단을 장식하기 위해 마티스에게 《춤》과 《음악》을 의뢰했습니다. 당시의 관람객에게 과감하게 단순화된 인체와 강렬한 색채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오늘날에는 20세기 현대미술의 방향을 바꾼 대표작으로 평가됩니다.
이 작품은 세부를 가까이 들여다보기보다 조금 떨어져 전체 화면을 한눈에 바라보는 편이 좋습니다. 그러면 다섯 사람의 팔과 다리가 하나의 둥근 선처럼 이어지고, 관람객도 원을 따라 움직이는 춤의 리듬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앙리 마티스 《음악》

《춤》과 함께 주문된 《음악》도 비교해서 보겠습니다. 두 작품은 같은 세 가지 색을 중심으로 구성되지만 분위기는 크게 다릅니다. 《춤》의 인물들이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면, 《음악》의 인물들은 녹색 땅 위에 각자 떨어져 앉아 있습니다.
화면 왼쪽의 인물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을 듣습니다. 인물들의 자세는 단순하고 얼굴의 세부도 거의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입을 벌린 모습과 곧게 앉은 자세를 통해 서로 다른 음성과 역할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춤》이 몸의 움직임을 통해 리듬을 보여 준다면, 《음악》은 정지와 간격을 통해 소리를 상상하게 합니다. 인물 사이에 넓게 남겨진 푸른색과 녹색 공간은 음악에서 음과 음 사이의 쉼처럼 작용합니다.
두 작품을 함께 보면 마티스가 사실적인 장면을 묘사하지 않고도 색과 선, 인물의 배치만으로 춤과 음악이라는 감각을 표현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티스가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림은 더 이상 현실을 닮게 옮기는 데 머물지 않고, 색과 형태 자체로 감정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 《압생트를 마시는 여인》

마티스와 함께 20세기 미술의 변화를 이끈 피카소의 작품도 살펴보겠습니다. 《압생트를 마시는 여인》은 피카소가 파리의 카페와 거리에서 만난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던 초기 작품입니다.
한 여인이 카페 테이블 앞에 혼자 앉아 있습니다. 테이블에는 당시 예술가와 노동자 사이에서 널리 소비되던 독한 술인 압생트 잔이 놓여 있습니다. 여인은 팔을 몸 앞으로 크게 감고 있으며, 어깨와 손의 형태는 실제보다 날카롭고 과장되어 있습니다.
팔을 감싼 자세는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행동처럼 보입니다. 카페라는 공공장소에 있지만 다른 사람과 교류하지 않고 혼자 고립되어 있습니다. 얼굴은 굳어 있고 시선도 관람객을 향하지 않습니다.
피카소는 밝고 즐거운 파리의 모습보다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외로움과 불안을 포착했습니다. 화면의 색과 형태가 완전히 입체주의로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인체를 자연스럽게 재현하기보다 인물의 심리 상태에 맞춰 변형했다는 점에서 이후 피카소 예술의 방향을 예고합니다.
5. 에르미타주를 제대로 둘러보기 위한 관람 방법
지금까지 겨울궁전에서 시작해 궁전광장을 건너 참모본부관까지 함께 걸어보았습니다. 에르미타주는 소장품의 양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한 번의 방문으로 모든 전시실을 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처음 방문한다면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보다 무엇을 제대로 보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본관과 참모본부관을 따로 계획하세요
겨울궁전이 포함된 본관 복합단지와 참모본부관은 궁전광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지만, 관람 입구와 내부 동선은 분리되어 있습니다. 두 곳을 같은 날 방문할 수도 있으나, 각각의 규모가 상당해 체력 부담이 큽니다.
황실 공간과 르네상스, 바로크 회화를 중심으로 보고 싶다면 본관을 우선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르단 계단과 성 게오르기 홀, 말라카이트 홀을 둘러본 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렘브란트 전시실로 이동하면 자연스러운 흐름이 만들어집니다.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마티스와 피카소에 관심이 많다면 참모본부관에 충분한 시간을 배정해야 합니다. 본관을 관람하고 남은 시간에 잠깐 들르는 방식으로는 작품을 차분히 보기 어렵습니다.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두 건물을 서로 다른 날에 나누어 보는 것이 가장 편안합니다.
보고 싶은 작품의 위치를 미리 확인하세요
에르미타주는 전시실이 많고 서로 연결된 통로도 복잡합니다. 현재 위치를 확인하지 않고 걷다 보면 같은 복도를 반복해서 지나거나 목적지와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기 쉽습니다.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의 소장품 검색과 전시 안내를 이용해 보고 싶은 작품이 어느 건물에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작품의 전시 여부와 전시실은 보존 작업이나 특별전 준비에 따라 바뀔 수 있으므로, 오래된 여행 후기만 믿기보다 방문 시점의 공식 안내를 확인해야 합니다.
작품 사이에서 쉬어가는 시간을 남겨두세요
박물관 규모가 크다고 해서 빠르게 걸으며 작품 수를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에르미타주에서는 궁전의 장식과 명화가 연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에 감각이 쉽게 피로해집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놀랍지만, 몇 시간이 지나면 중요한 작품 앞에서도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전시실 의자나 휴식 공간이 보이면 잠시 앉아 방금 본 작품을 떠올려 보세요. 렘브란트의 어둠과 마티스의 강렬한 색처럼 서로 다른 작품을 연달아 보았을 때에는 짧은 휴식이 다음 작품을 더 잘 보게 해 줍니다.
운영 정보는 방문 직전에 다시 확인하세요
박물관의 개관 시간과 휴관일, 입장권 운영 방식은 시기와 전시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방문 날짜가 정해졌다면 공식 홈페이지에서 본관 복합단지와 참모본부관의 운영 여부를 각각 확인한 뒤 입장권을 준비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에르미타주는 작품과 공간을 함께 보는 박물관입니다
에르미타주의 매력은 유명한 명화가 많다는 사실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곳에서는 황제의 궁전과 유럽 회화, 러시아의 역사와 근대 수집가들의 취향이 하나의 긴 동선 안에서 이어집니다.
요르단 계단에서는 러시아 황실의 화려함을 만나고, 레오나르도의 성모자상에서는 르네상스가 인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발견합니다.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 앞에서는 용서와 위로라는 오래된 감정을 마주하고, 광장을 건너 참모본부관에 들어서면 모네와 고흐, 마티스가 색과 붓질로 바꾸어 놓은 현대미술의 흐름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에르미타주를 관람한다는 것은 단순히 많은 작품을 보는 일이 아닙니다. 황실의 공간에서 시작해 수백 년에 걸친 미술의 변화를 천천히 걸어보는 경험에 가깝습니다.
처음 방문한다면 모든 전시실을 정복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궁전의 창문 너머로 네바강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풍경도 바라보세요. 그렇게 자신만의 속도로 걸었을 때 에르미타주는 거대한 박물관이 아니라, 오래 기억되는 한 편의 예술 여행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 구분 | 주요 내용 |
|---|---|
| 본관 복합단지 | 겨울궁전, 황실 공간, 고대 유물, 르네상스·바로크 회화 |
| 참모본부관 |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마티스, 피카소 등 근대 서유럽 미술 |
| 대표 공간 | 요르단 계단, 성 게오르기 홀, 말라카이트 홀 |
| 대표 작품 | 《브누아의 성모》, 《탕자의 귀환》, 《다나에》, 《라일락 덤불》, 《춤》 |
| 추천 관람 방식 | 본관과 참모본부관을 나누어 관람하고 대표 작품 중심으로 동선을 계획 |
자료 참고: The State Hermitage Museum 공식 홈페이지 및 공식 디지털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