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아일랜드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오래된 성과 수도원만 찾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더블린의 박물관을 따라가다 보면 황금 장신구를 만들던 고대인부터 세계적인 맥주 브랜드를 탄생시킨 사람들, 고향을 떠나 바다를 건넌 이민자들까지 서로 다른 시대의 아일랜드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출발점으로 가장 좋은 곳이 아일랜드 국립박물관입니다. 타라 브로치와 아르다 성작 같은 보물을 만난 뒤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와 EPIC 아일랜드 이민 박물관까지 이어가면, 고대의 섬이 어떻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일랜드로 변해온 시간을 한층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더블린 킬데어 스트리트에서 바라본 아일랜드 국립박물관 고고학관의 석조 외관
    더블린 킬데어 스트리트를 따라 자리한 아일랜드 국립박물관 고고학관 J.-H. Janße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1. 황금과 늪이 들려주는 고대 아일랜드의 이야기

    국립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만나야 할 아일랜드의 보물

    더블린에서 아일랜드의 역사를 처음 만난다면  아일랜드 국립박물관 고고학관(National Museum of Ireland – Archaeology)부터 시작해 보세요.  킬데어 스트리트(Kildare Street)에 자리한 이곳에는 선사시대의 황금 장신구부터 바이킹과 중세의 유물까지, 아일랜드의 긴 시간을 압축해 놓은 듯한 컬렉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일랜드 국립박물관 고고학관 보물실의 금속공예품 진열장과 모자이크 바닥
    금과 은으로 제작된 아일랜드의 대표 금속공예품을 만날 수 있는 국립박물관 고고학관의 보물실(The Treasury) Sailko / Wikimedia Commons / CC BY 3.0

     

    보물실에 들어서면 '고대'라는 말에서 흔히 떠올리는 소박한 유물의 이미지부터 깨집니다. 금으로 만든 목걸이와 장신구, 정교한 브로치와 미사에 사용된 화려한 성작이 이어지는데, 작은 금속 표면에 쏟아부은 장식의 밀도를 보고 있으면 당시 장인들이 얼마나 까다로운 기술을 다루고 있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타라 브로치, 이름부터 전설이 된 장신구

    8세기 아일랜드 금속공예를 대표하는 타라 브로치의 정교한 금빛 세공과 장식
    켈트 문양과 섬세한 금속 세공이 어우러진 8세기의 걸작, 타라 브로치(Tara Brooch)의 정면 - Sailko / Wikimedia Commons / CC BY 3.0

     

    그 가운데 시선을 오래 붙잡는 작품이 타라 브로치(Tara Brooch)입니다. 8세기 무렵 제작된 이 장신구는 은을 중심으로 금과 유리, 호박 등을 사용했습니다. 소용돌이와 얽힘 무늬, 동물 형태의 장식을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새겨 넣었습니다. 눈에 잘 띄는 앞면뿐 아니라 뒷면까지 세밀하게 꾸민 것을 보면 당시 아일랜드 금속공예의 높은 수준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타라 브로치 뒷면에 새겨진 정교한 기하학 문양과 금속 세공 장식 타라 브로치의 금빛 소용돌이 문양과 정교한 금속 세공을 확대한 모습
    타라 브로치의 뒷면과 가까이에서 바라본 타라 브로치의 세부 장식. 작은 면적 안에 촘촘하게 이어지는 소용돌이와 기하학 문양에서 당시 금속 세공 기술의 정교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Sailko / Wikimedia Commons / CC BY 3.0

     

    그런데 이 걸작에는 이름만큼이나 재미있는 사연이 있습니다. 타라 브로치는 타라 언덕(Hill of Tara)에서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1850년 무렵 아일랜드 미스주(Meath)의 베티스타운(Bettystown) 인근 해안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제작 당시 이 장신구를 무엇이라 불렀는지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타라 브로치'라는 이름은 19세기에 붙여졌습니다.

     

    왜 하필 '타라'였을까요? 타라 언덕은 고대 아일랜드의 왕권과 전설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여러 왕국으로 나뉘어 있던 아일랜드에서 최고 권위를 상징하는 최고왕(High King)과 연결된 곳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타라'라는 이름에는 고대 왕권과 아일랜드 영광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브로치를 손에 넣은 더블린의 보석상 워터하우스(Waterhouse)는 이 상징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실제 발견지 대신 '타라 브로치'라는 이름으로 유물을 알리고, 브로치의 문양을 본뜬 장신구도 제작해 판매했습니다. 아일랜드의 고대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대의 분위기와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물론 타라 브로치의 명성이 이름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유물 자체가 중세 초기 아일랜드 금속공예를 대표할 만큼 뛰어난 걸작이었고, 여기에 19세기의 영리한 브랜딩이 더해진 것입니다.  타라 브로치를 볼 때 세공만큼이나 이름의 역사까지 눈여겨보면, 천 년이 넘은 유물이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보물이 되었는지도 함께 보입니다.

     

    아르다 성작, 1,000년 넘게 땅속에 숨어 있던 보물

    아일랜드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8세기 아르다 성배의 은제 몸체와 금빛 세공 장식아일랜드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8세기 아르다 성배의 은제 몸체와 금빛 세공 장식
    아르다 성배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 은빛 몸체를 두른 금빛 장식과 양쪽 손잡이, 정교한 세공을 각 방향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8세기 장인들이 어느 한쪽도 허투루 남겨두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 Sailko / Wikimedia Commons / CC BY 3.0

     

    다음으로 눈여겨볼 작품은 아르다 성작(Ardagh Chalice)입니다. 8세기 무렵 제작된 은제 성작으로, 기독교 성찬례에서 포도주를 담는 전례용 잔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멀리서 보면 넓고 단정한 은빛 몸체가 먼저 들어오지만, 이 성작의 진짜 매력은 가까이에서 드러납니다. 가장자리와 받침을 따라 금과 금동, 유리, 에나멜 장식이 촘촘하게 이어지고 양쪽 손잡이에도 세공이 숨어있습니다. 화려함을 크게 드러내기보다 가까이 다가온 사람에게 하나씩 세부를 보여주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아일랜드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아르다 성작과 브로치 등 아르다 보물 출토 유물
    1868년 아르다 인근에서 함께 발견된 ‘아르다 보물’. 아르다 성작과 작은 성작, 여러 브로치가 한꺼번에 발견되어 당시 금속공예의 화려함을 전해줍니다. Johnbod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성작이 홀로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1868년 리머릭주의 아르다 인근 리어라스타(Reerasta)에서 두 소년이 감자밭을 파다가 성작과 함께 작은 청동 성작, 브로치 등 여러 금속 유물을 발견했습니다. 오늘날 이 유물들을 한데 묶어 아르다 보물(Ardagh Hoard)이라 부릅니다.

     

    박물관에서 함께 놓인 유물들을 바라보면 당시 누군가가 귀중한 물건들을 한 곳에 모아 땅속에 숨겼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 납니다. 그 가운데 브로치는 앞서 살펴본 타라 브로치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아르다 보물에서 발견된 8~9세기 아일랜드 브로치와 긴 핀 장식아르다 보물에서 발견된 8~9세기 원형 브로치의 금속 세공과 긴 핀 장식
    아르다 성작과 함께 발견된 브로치의 앞면과 뒷면. 같은 브로치이지만 양면에 서로 다른 장식이 더해져 있어 8~9세기 아일랜드 금속공예의 섬세함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함께 발견된 브로치는 앞서 본 타라 브로치와 비교해 보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타라 브로치가 작은 면적까지 촘촘한 장식으로 채운 화려한 작품이라면, 아르다 보물의 브로치는 긴 핀과 조금 더 절제된 형태가 인상적입니다. 나란히 비교해 보면 중세 아일랜드의 장인들이 하나의 방식만을 고집하지 않았다는 점도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귀중품들을 감자밭 아래에 숨겼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위험을 피해 누군가 잠시 숨겨 두었지만 끝내 되찾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것 역시 하나의 추정입니다. 그래서 아르다 보물에는 아름다운 세공만큼이나 '누가, 왜 이곳에 숨겼을까'라는 풀리지 않은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덕분에 땅속에서 긴 시간을 견딘 성작과 브로치는 오늘날 한 전시실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아르다 성작 앞에서는 화려한 은빛 표면만 보지 말고, 함께 발견된 유물에도 잠시 시선을 돌려보세요. 하나의 성작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어느새 중세 아일랜드의 보물 한 꾸러미로 넓어집니다.

     

    데리나플란 보물, 땅속에 숨겨진 중세 교회의 보물

    데리나플란 보물(Derrynaflan Hoard)로 이동하면 시선을 조그 ㅁ달리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1980년 티퍼레리주의 데리나플란에서 발견된 8~9세기 교회 전례용 금속 유물군으로, 이번에는 하나의 걸작보다 중세 교회의 성찬례를 위해 어떤 기물들이 함께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데리나플란 보물의 성작과 성반, 청동 대야, 거름망 국자를 함께 배치한 AI 재현 이미지
    데리나플란 보물의 주요 출토품을 한자리에 AI 재현한 모습. 성작과 성반, 거름망 국자, 커다란 청동 대야가 함께 발견되어 중세 아일랜드 교회의 전례용 기물 구성을 보여줍니다. - AI 재현 / National Museum of Ireland 및 실제 유물 자료 참고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9세기경 제작된 데리나플란 성작(Derrynaflan Chalice)이 있습니다. 넓은 은빛 몸체와 양쪽 손잡이, 가장자리의 금빛 장식을 보고 있으면 앞서 만난 아르다 성작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두 작품을 차례로 보면 비슷한 형식 안에서 장식과 세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할 수 있습니다.

     

     

    데리나플란 성작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 단정한 은빛 몸체와 양쪽 손잡이, 금빛 장식을 따라가다 보면 아르다 성작과 닮은 형태 속에서도 조금씩 다른 세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Sailko / Wikimedia Commons / CC BY 3.0

     

    하지만 데리나플란의 진짜 재미는 그 주변에 있습니다. 함께 발견된 은제 성반(paten)은 성찬례에서 빵을 놓는 데 사용하던 기물입니다.

     

     

    데리나플란 보물에서 발견된 8세기 은제 성반과 가장자리의 금빛 세공 장식
    데리나플란 보물의 은제 성반. 성찬례에서 빵을 놓는 데 사용했던 전례용 기물로, 넓은 은제 표면을 둘러싼 정교한 금빛 장식이 돋보입니다. Sailko / Wikimedia Commons / CC BY 3.0

     

    여기에 성반을 받치는 받침과 청동 거름망 국자(strainer-ladle)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데리나플란 보물에서 발견된 8~9세기 청동 거름망 국자와 장식된 긴 손잡이
    데리나플란 보물의 청동 거름망 국자. 긴 손잡이 끝에 거름망이 달린 전례용 기물로, 성작과 성반과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Sailko / Wikimedia Commons / CC BY 3.0

     

    하나씩 따로 보면 아름다운 금속공예품이지만, 한자리에 놓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성작에는 포도주를 성반에는 빵을 놓고, 여러 도구가 그 의식을 보조했습니다. 진렬장 속 유물들이 어는 순간 중세 교회에서 실제로 사용되던 전례용 기물의 구성으로 읽히기 시작합니다.

     

     

    아일랜드 데리나플란 보물의 청동 대야와 거름망 국자 등 출토 유물을 전시한 모습을 재현한 이미지 데리나플란 보물과 함께 발견된 8~9세기 청동 대야의 녹청과 내부 모습
    (좌) 데리나플란 보물과 함께 발견된 청동 대야와 거름망 국자 등 출토품을 전시 형태로 재현한 모습.(AI재현 / National Museum of Ireland 실제 유물 및 전시 자료 참고). (우) 데리나플란 보물과 함께 발견된 8~9세기 청동 대야. 화려한 성작과 성반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귀중한 전례용 기물들과 함께 땅속에 묻혀 있던 유물입니다.(Sailko / Wikimedia Commons / CC BY 3.0)

     

    더 흥미로운 물건은 커다란 청동 대야입니다. 화려한 성작이나 성반과 달리 소박해 보이지만 발견 당시에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귀중한 전례용 기물들은 땅속 구덩이에 함께 숨겨져 있었고, 이 청동 대야가 그 위를 덮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데리나플란 보물이 우연히 한 곳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감춰 두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 교회의 귀중품을 이렇게 땅속에 숨겼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8세기말부터 아일랜드 수도원과 교회가 바이킹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는 시대적 상황을 떠올릴 수 있지만, 이 보물이 특정한 바이킹 습격 때문에 묻혔다고 단정할 증거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누군가 다시 꺼낼 생각으로 귀한 기물들을 한데 모아 조심스럽게 감췄고, 결국 되찾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타라 브로치에서 아르다 성작과 데리나플란 보물까지 차례로 보고 나면 중세 아일랜드를 유럽의 변방으로만 바라보기 어려워집니다. 수도원과 교회에서는 성찬례를 위한 정교한 기물이 제작되었고, 금속을 다루던 장인들은 은과 금, 유리와 에나멜을 작은 표면 안에서 능숙하게 조합했습니다. 국립박물관이 8~9세기 아일랜드 금속공예를 하나의 ‘황금기(Golden Age)’로 설명하는 이유를 이 전시실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늪에서 발견된 사람들은 무엇을 말해줄까?

    수천 년 전의 얼굴이 남아 있는 보그 바디

    아일랜드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철기시대 보그 바디 클로니카반 맨의 보존된 피부와 머리카락
    아일랜드 습지에서 발견된 철기시대 보그 바디 ‘클로니캐번 맨’. 약 2천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피부와 머리카락이 남아 있어 아일랜드 습지의 독특한 보존 환경을 보여줍니다. - Fred Cherrygarde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황금과 은으로 빛나던 전시실을 지나면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집니다. 이번에는 장인이 만든 물건이 아니라 수천 년 전 아일랜드를 실제로 살았던 사람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보그 바디(Bog Bodies)입니다.

     

    아일랜드의 이탄습지는 산소가 부족하고 산성도가 높은 독특한 환경 덕분에 사람의 피부와 머리카락 같은 조직까지 오랜 시간 보존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일 사례가 클로니캐번 맨(Clonycavan Man) 올드크로건 맨(Old Croghan Man)입니다. 

     

    클로니캐번 맨을 볼 때는 머리카락을 눈여겨보세요. 식물성 기름과 송진 성분을 이용해 머리를 손질했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수천 년 전의 얼굴에 '헤어스타일'이라는 아주 일상적인 흔적이 더해진 순간, 철기시대의 사람이 갑자기 우리와 조금 가까워집니다. 

     

     

    아일랜드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철기시대 보그 바디 올드 크로건 맨의 보존된 상반신과 팔
    아일랜드 오펄리주의 습지에서 발견된 철기시대 보그 바디 ‘올드 크로건 맨’. 피부와 팔 등 신체 일부가 놀라울 정도로 남아 있으며, 팔에는 당시의 흔적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 Mark Healey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올드 크로건 맨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생전 키가 약 1.98m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큰 체격의 남성이며,  손에서 거친 육체노동의 흔적이 두드러지지 않아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약 2천 년 전, 이 건장한 남자는 왜 습지에서 죽음을 맞았을까요? 전시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고고학 전시가 오래된 미제사건처럼 느껴집니다.

     

    그들은 왜 늪에 남겨졌을까?

    일부 보그 바디에는 폭력적인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단순한 사고나 매장이 아니라 의례적인 희생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연구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이 전시는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수 몸에 남은 단서를 하나씩 읽게 만듭니다. 무엇을 먹었는지, 어떻게 머리를 꾸몄는지,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철기시대가 연도와 유물의 목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으로 바뀝니다.

     

    앞서 본 화려한 황금 장신구와 보그 바디를 함께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한쪽에는 권력과 종교, 기술을 보여주는 보물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보물과 사람이 같은 시대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증언하고 있는 셈입니다. 

     

    3. '죽은 동물원'이라 불린 박물관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빅토리아 시대 박물관의 모습을 간직했던 공간

    더블린 메리온 스트리트에 위치한 아일랜드 국립박물관 자연사관의 석조 건물 외관
    1857년 문을 연 아일랜드 국립박물관 자연사관. 고고학관과는 별도의 건물로, 19세기 자연사박물관의 건축과 전시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 William Murphy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아일랜드 국립박물관의 여러 분관 가운데 가장 독특한 분위기로 기억되는 곳이 1857년에 문을 연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입니다.

     

     

    아일랜드 국립자연사박물관 내부의 오래된 유리 진열장에 빼곡하게 전시된 동물 박제와 골격 표본
    아일랜드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전시실. 오래된 목제·유리 진열장 안에 수많은 동물 표본을 밀집해 배치한 모습에서 19세기 자연사박물관의 수집과 분류 중심 전시 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Kieran Guckian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전시실 사진을 처음 보면 요즘 자연사박물관과는 전혀 다른 풍경에 시선이 멈춥니다. 오래된 목제 진열장 안팎에 박제와 골격이 빼곡하고, 천장에서는 거대한 동물의 골격이 내려다봅니다. 하나의 동물을 넉넉한 공간에서 보여주는 오늘날의 전시와는 정반대입니다.

     

     

    아일랜드 국립자연사박물관 1층 전시실 천장에 매달린 고래 골격과 벽면을 가득 채운 동물 표본
    아일랜드 국립자연사박물관 1층 전시실. 천장에는 거대한 고래 골격이 매달려 있고, 오래된 진열장과 벽면에는 수많은 동물 표본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19세기 자연사박물관의 수집·분류 중심 전시 방식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 Bjørn Christian Tørrisse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이 독특한 모습 때문에 자연사박물관에는 오래전부터 'Dead Zoo', 즉 '죽은 동물원'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이름은 조금 섬뜩하지만 이 밀집된 전시 방식 자체가 19세기 자연사 연구의 흔적입니다. 당시에는 가능한 한 많은 생물을 수집하고 보존한 뒤 형태와 특징에 따라 분류하는 일이 자연을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이었습니다. 

     

     

    아일랜드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오래된 목제 유리 진열장에 빼곡하게 전시된 해양 동물 박제와 자연사 표본
    아일랜드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전시실. 복도를 따라 오래된 목제 진열장이 이어지고 다양한 해양 동물 표본이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어, 오늘날의 자연사박물관과는 확연히 다른 19세기 수집·분류 중심의 전시 방식을 보여줍니다. Illustratedjc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따라서 이곳에서 볼 것은 동물만이 아닙니다. 19세기 사람들이 자연을 어떻게 수집하고 분류하고 보여주었는가도 하나의 전시가 됩니다. 오늘날에는 낯설게 느껴지는 진열 방식까지 박물관 역사의 일부가 된 셈입니다.

     

     

    아일랜드 국립자연사박물관 아이리시 룸에 전시된 자이언트 아이리시 디어 골격과 대형 뿔
    더블린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아이리시 룸. 거대한 뿔을 펼친 자이언트 아이리시 디어(Megaloceros giganteus) 골격을 중심으로 아일랜드에서 발견된 다양한 동물 표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Sean MacEntee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그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거대한 뿔을 펼친 아이리시 엘크(Irish Elk, Megaloceros giganteus) 골격입니다. 이름에는 'Irish'가 붙어 있지만 아일랜드에만 살았던 동물은 아니며, 유럽과 아시아 여러 지역에 분포했던 거대한 사슴류입니다.

     

    오래된 진열장과 수많은 표본을 보고 있으면 이곳에서는 자연사만큼이나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함께 보게 됩니다. 어쩌면 이 박물관에서 가장 오래된 전시물은 동물 표본만이 아니라, 그들을 수집하고 보여주던 방식 자체인지도 모릅니다.

     

    현재는 대규모 리노베이션으로 휴관 중

    다만 현재 여행을 준비한다면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Merrion Street의 자연사박물관 본관은 대규모 보수와 리노베이션을 위해 2024년 9월부터 휴관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건축물과 역사적인 전시 공간을 보존하면서 접근성과 전시 환경을 개선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Dead Zoo' 내부를 현재 그대로 관람할 수 없습니다.

     

    대신 자연사 컬렉션의 일부는 아일랜드 국립박물관 장식예술·역사관이 자리한 Collins Barracks의 'Dead Zoo Lab'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본관은 잠시 문을 닫았지만 컬렉션의 이야기는 다른 공간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콜린스 배럭스에서는 아일랜드의 또 다른 역사가 이어진다

    더블린 콜린스 배럭스에 자리한 아일랜드 국립박물관 장식예술 및 역사관과 넓은 중앙 중정
    아일랜드 국립박물관 장식예술 및 역사관이 들어선 콜린스 배럭스. 과거 군사 막사로 사용되었던 석조 건물이 넓은 중정을 둘러싸고 있어, 박물관으로 바뀌기 전 이곳의 역사를 건축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Sailko / Wikimedia Commons / CC BY 3.0

     

    시간이 충분하다면 콜린스 배럭스(Collins Barracks)도 함께 둘러볼 만합니다. 이곳의 장식예술 및 역사관(Decorative Arts & History)에는 가구와 의복, 은제품, 군사 관련 유물 등 고고학관과는 전혀 다른 아일랜드를 만나게 됩니다.

     

    고고학관이 수천 년 전 아일랜드를 보여준다면,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물건을 통해 조금 더 가까운 시대의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의자 하나와 옷 한 벌도 누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해주는 역사 자료가 됩니다.

     

    이제 박물관 밖으로 나와 시대를 크게 건너뛰어 보겠습니다. 다음 장소에는 황금 브로치도, 늪에서 발견된 사람도 없습니다. 대신 볶은 보리의 향과 검은 맥주 한 잔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더블린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역사, 기네스입니다.

     

    4. 9,000년 임대계약에서 시작된 기네스의 역사

    아서 기네스는 왜 낡은 양조장을 9,000년이나 빌렸을까?

    더블린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의 붉은 벽돌 건물과 GUINNESS 로고가 설치된 외관
    더블린의 대표 명소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과거 기네스 양조장 시설로 사용되던 산업 건축을 활용해 기네스의 역사와 맥주 제조 과정을 소개하는 체험형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Steven Lek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더블린에서 아일랜드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이번에는 진열장 속 유물이 아닌 검은 맥주 한 잔이 이야기를 이어받습니다. 바로 기네스 스토어하우스(Guinness Storehouse)입니다. 전통적인 박물관은 아니지만, 기네스의 양조와 산업, 광고와 브랜드 문화를 한데 모았다는 점에서 더블린의 역사를 이해하기에 꽤 흥미로운 공간입니다. 

     

    그 시작에는 꽤 대담한 계약서 한 장이 있습니다. 1759년 12월 31일, 아서 기네스(Arthur Guinness)는 더블린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St. James's Gate)에 있던 양조장을 빌리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연간 임대료는 45파운드.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계약 기간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문제는 계약 기간입니다. 무려 9,000년이었습니다.

     

    계약이 끝나는 시점을 계산하면 서기 10759년입니다. 몇 세대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영구적으로 사용할 생각에 가까운 계약이었던 셈입니다.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후대에 만들어진 광고 문구가 아니라 실제로 체결된 임대계약에서 나온 기네스의 역사입니다.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바닥 원형 유리 진열장에 전시된 아서 기네스의 1759년 9,000년 임대계약서
    기네스의 역사를 시작한 유명한 ‘9,000년 임대계약서’. 아서 기네스는 1759년 더블린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의 양조장을 연 £45에 9,000년 동안 임차하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서는 이 역사적인 계약서를 전시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 Greenstreetm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그렇다면 아서 기네스는 왜 이런 계약을 맺었을까요? 그가 정확히 어떤 생각으로 9,000년이라는 기간을 선택했는지는 기록만으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당시는 토지와 사업장을 매우 오랫동안 빌리는 장기 임대가 존재했고, 양조업처럼 설비와 공간이 중요한 사업에서는 장기간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확보하는 것은 분명 큰 이점이었습니다.

     

    9,000년이라는 숫자는 그중에서도 사실상 영구적인 사용권에 가까운 파격적인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약의 진짜 재미는 숫자보다 그다음에 있습니다. 작은 양조장에서 시작한 사업은 주변 부지로 계속 확장됐고,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는 거대한 생산시설로 성장했습니다. 결국 9,000년을 내다본 계약보다 기네스의 성장이 더 빨랐던 셈입니다.  

     

    오늘날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서 이 계약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한 양조업자가 장기간 사용할 작은 사업장을 확보한 선택이 더블린을 대표하는 산업과 세계적인 브랜드의 출발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네스의 역사는 맥주 한 잔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더블린이라는 도시가 성장해 온 산업사의 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검은 맥주 한 잔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기네스 스토어하우스는 과거 발효 시설로 사용되던 건물을 개조한 공간입니다. 내부에서는 기네스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물, 보리, 홉, 효모를 시작으로 양조와 운송, 브랜드가 성장해 온 과정을 차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내부에서 벽처럼 쏟아지는 물을 연출한 장식용 폭포 전시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내부의 물 전시.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 형태의 연출을 통해 맥주 양조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재료인 물을 감각적으로 보여줍니다. - Chris Gorringe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의 보리 전시 공간을 재현한 이미지로 황금빛 보리가 곡선형 전시장에 펼쳐진 모습
    기네스의 핵심 원료인 보리를 주제로 꾸며진 전시 공간. 황금빛 보리밭을 실내에 옮겨 놓은 듯한 연출을 통해 맥주가 어떤 재료에서 시작되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AI 재현 이미지 /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전시 자료 참고)

     

    기네스 특유의 짙은 색을 보고 커피나 초콜릿 같은 재료가 들어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볶은 보리(roasted barley)입니다. 강하게 볶은 보리가 특유의 어두운 색과 구수하면서도 쌉싸름한 풍미를 만들어냅니다.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 전시된 붉은색의 대형 양조장 산업용 기계와 철제 배관 및 구조물더블린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 전시된 1906년 제작 Ganz Mill 곡물 분쇄기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 전시된 옛 양조 설비들. 붉은색 산업용 기계와 독특한 형태의 1906년 간츠 밀(Ganz Mill)은 오늘날의 세련된 브랜드 이미지 뒤에 거대한 공장과 수많은 기계가 움직이던 산업의 역사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 hris Alle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재료를 지나면 전시의 분위기는 산업 현장으로 바뀝니다 거대한 기계와 분쇄기, 배관과 양조 설비를 보고 있으면 오늘날 세련된 로고 뒤에 수많은 사람과 기계가 움직이던 거대한 공장이 있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기계 사이를 지나면 전혀 다른 기네스가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맥주가 아니라 광고입니다.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 전시된 ‘Lovely day for a Guinness’ 빈티지 광고 포스터와 기네스 잔을 부리에 올린 큰부리새 일러스트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 전시된 ‘Lovely day for a Guinness’ 빈티지 광고 포스터와 부리 위에 기네스 잔을 올린 큰부리새 그림
    기네스의 대표적인 빈티지 광고 ‘Lovely day for a Guinness’. 큰부리새가 기네스 잔을 부리에 올리고 날아가는 익살스러운 그림은 20세기 기네스 광고가 구축한 유쾌하고 독특한 브랜드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 Rodrigo Menezes (Ironman br)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큰 부리새 투칸(Toucan)이 등장하는 빈티지 포스터는 기네스 광고의 대표적인 이미지입니다. 맥주잔을 부리에 올린 새와 익살스러운 문구를 보고 있으면, 묵직한 검은 맥주에 꽤 유쾌한 성격을 입혔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좋은 맥주를 만드는 것과 사람들이 그 맥주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또 다른 기술이었던 셈입니다.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내부에 시대별 기네스 병과 기록 자료를 아카이브 형태로 전시한 모습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의 아카이브 전시. 다양한 시대의 병을 한데 모아 보여주며, 250년 넘게 이어진 기네스의 제품과 디자인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 Adrian Grycuk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이 지점부터 스토어하우스는 양조 박물관을 넘어 브랜드의 역사로 확장됩니다. 병과 라벨, 광고 디자인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기네스가 단순한 지역 맥주에서 하나의 문화적 이미지로 성장한 과정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내부의 철골 구조와 목제 맥주통 전시를 둘러보는 관람객들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내부 전경. 옛 산업시설의 철골 구조와 배관을 살린 공간 사이로 목제 맥주통과 양조 관련 전시가 이어져, 과거 양조장의 분위기와 기네스의 생산 역사를 함께 보여줍니다. - Addam Hardy / Wikimedia Commons / CC BY 3.0

     

    그 성장에는 광고만큼이나 유통도 중요했습니다.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양조장은 규모가 커지면서 내부에 자체 철도망이 필요할 정도로 거대한 산업시설이 되었습니다. 전시된 작은 기관차는 귀여운 산업 유물처럼 보이지만, 한때 이곳에서 엄청난 양의 원료와 맥주가 움직였다는 사실을 모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 전시된 짙은 남색 차체와 붉은 바퀴의 기네스 양조장 소형 기관차
    기네스 양조장에서 맥주와 원료를 운반하는 데 사용했던 소형 산업용 기관차. 거대한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양조장 내부에는 자체 철도망이 운영될 만큼 생산과 물류 시설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었습니다. - Steven Lek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결국 이곳에서 보는 것은 맥주 제조법만이 아닙니다. 18세기의 작은 양조장이 생산시설을 키우고 유통망을 넓히고, 광고로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며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어가는 과정을 한 건물 안에서 따라가게 됩니다.

     

    마지막은 더블린이 펼쳐지는 그래비티 바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바에서 탭으로 갓 따른 기네스 스타우트와 크림색 거품이 올라온 기네스 잔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서 만나는 관람의 마지막 즐거움, 갓 따른 기네스 한 잔. 양조 재료와 제조 과정, 브랜드의 역사를 따라온 관람은 실제 기네스를 맛보는 경험으로 이어집니다. Mack Male from Edmonton, AB, Canada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더블린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그래비티 바의 원형 유리 테이블 위에 놓인 여러 잔의 기네스 맥주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관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래비티 바(Gravity Bar). 더블린의 풍경을 바라보며 갓 따른 기네스를 맛볼 수 있어, 양조 과정과 브랜드의 역사를 따라온 관람을 한 잔의 기네스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 Mack Male from Edmonton, AB, Canada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스토어하우스 관람의 마지막에는 건물 꼭대기의 그래비티 바(Gravity Bar)가 기다립니다. 원형에 가까운 공간을 둘러싼 유리창 너머로 더블린 시내가 넓게 펼쳐집니다.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그래비티 바에서 바라본 더블린 도심과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의 첨탑
    그래비티 바(Gravity Bar)에서 바라본 더블린 도심.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의 첨탑과 붉은 벽돌 건물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져,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관람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 psyberartist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조금 전까지 전시에서 보았던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일대와 더블린의 지붕, 멀리 산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관람의 마침표 역할을 합니다. 기네스를 마시는 사람이라면 한 잔을 즐기며 전망을 감상할 수 있고, 술을 마시지 않는 방문객도 전망 자체를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기네스를 직접 따르는 Guinness Academy 같은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되지만 기본 관람과 별도의 체험 상품은 예약 조건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현재 운영 프로그램과 티켓 구성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5. 수백만 명의 아일랜드인은 왜 고향을 떠났을까?

    EPIC에서 만나는 아일랜드 이민의 역사

    더블린 CHQ 빌딩에 자리한 EPIC 아일랜드 이민 박물관 입구와 박물관 안내 표지
    더블린 도크랜드의 CHQ 빌딩에 자리한 EPIC 아일랜드 이민 박물관 입구. 이곳에서는 고향을 떠나 세계 각지로 이주한 아일랜드인들의 삶과 그들이 새로운 사회에 남긴 흔적을 다양한 디지털 전시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 Jkielty82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국립박물관이 아일랜드 땅에 남은 사람들의 흔적을 보여준다면 EPIC The Irish Emigration Museum은 정반대의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들은 왜 이 섬을 떠났을까?”

     

     

    더블린 CHQ 빌딩 내부의 EPIC 아일랜드 이민 박물관 입구와 안내 데스크, 철골 지붕 아래 관람객들
    EPIC 아일랜드 이민 박물관이 자리한 CHQ 빌딩 내부. 19세기 창고의 철골 구조를 살린 공간에 현대적인 전시 시설이 들어서 있어, 역사적인 건축과 디지털 박물관이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JHolger Uwe Schmitt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더블린 도클랜즈의 CHQ 건물에 자리한 EPIC은 아일랜드에서 세계 각지로 떠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박물관입니다. 장소부터 의미가 있습니다. 오래된 창고 건물 안에 들어선 박물관에서 바다를 건너 떠난 사람들의 역사를 만나는 것입니다.

     

     

    EPIC 아일랜드 이민 박물관에서 아일랜드의 산과 초원 풍경을 대형 패널로 연출한 몰입형 전시 공간
    EPIC 아일랜드 이민 박물관의 몰입형 전시 공간. 아일랜드의 산과 초원 풍경을 이어지는 대형 패널로 연출해, 이민자들이 떠나야 했던 고향의 자연과 풍경을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합니다.- Holger Uwe Schmitt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전시 방식도 국립박물관과 상당히 다릅니다. 오래된 유물을 진열장에 늘어놓기보다 영상과 음향, 대형 화면과 인터랙티브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관람객은 전시실을 이동하며 떠나기 전의 아일랜드와 이주의 과정, 새로운 땅에서 시작된 삶을 차례로 따라가게 됩니다. 

     

     

    EPIC 아일랜드 이민 박물관의 벽돌 아치형 전시실과 대형 스크린을 통해 아일랜드계 인물과 세계 속 아일랜드의 영향을 소개하는 디지털 전시
    EPIC 아일랜드 이민 박물관의 디지털 전시 공간. 오래된 벽돌 창고의 아치 아래 여러 영상과 인물을 연결해 보여주며, 세계 각지로 이주한 아일랜드인과 그 후손들이 정치·문화·사회에 남긴 영향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Holger Uwe Schmitt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그래서 이곳의 주인공은 유명한 보물이나 예술품이 아니라 '이동한 사람'입니다. 일자리를 찾아 떠난 사람,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고향을 등진 사람, 새로운 기회를 찾아 바다를 건넌 사람까지 떠난 이유도 도착한 장소도 서로 달랐습니다. 

     

     

    EPIC 아일랜드 이민 박물관에서 화가 잭 B. 예이츠와 해외에서 활동한 아일랜드계 인물들을 소개하는 디지털 전시실
    EPIC 아일랜드 이민 박물관의 문화·예술 전시 공간. 잭 B. 예이츠(Jack B. Yeats)를 비롯해 아일랜드와 해외를 오가며 활동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민과 디아스포라가 세계의 예술과 문화에 남긴 흔적을 보여줍니다. - Holger Uwe Schmitt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그리고 이야기는 출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새로운 땅에 정착한 아일랜드인과 그 후손들이 음악과 문학, 과학, 스포츠와 정치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까지 이어집니다. '아일랜드 역사'를 섬 안에서만 찾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감자 한 알이 바꾼 아일랜드의 운명

    수많은 사람이 아일랜드를 떠나게 된 역사를 이해하려면 19세기 대기근(Great Famine)을 지나칠 수 없습니다. 1840년대 감자 역병이 확산되면서 당시 많은 서민이 주식으로 의존하던 감자 수확이 연이어 실패했습니다.

     

     

    1847년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감자 역병으로 수확물을 잃은 농민 가족의 절망을 묘사한 대니얼 맥도널드의 회화
    대니얼 맥도널드가 1847년에 그린 《The Discovery of the Potato Blight in Ireland》. 수확한 감자가 역병으로 썩어버린 사실을 마주한 농민 가족을 통해 아일랜드 대기근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보여줍니다. - Daniel MacDonald 작품 · Léna 촬영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그림 속 가족이 바라보는 것은 단순히 썩은 감자가 아닙니다. 한 해을 버텨야 할 식량이 사라진 순간입니다. 감자 의존도가 높았던 가난한 농민들에게 수확 실패가 반복된다는 것은 곧 생존의 위기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대기근을 감자 역병이라는 자연재해 하나로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당시 토지 소유 구조와 빈곤, 영국 통치 아래의 정치·경제적 조건, 구호 정책의 한계 등이 겹치면서 피해가 훨씬 커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퀸스타운, 오늘날의 코브(COBH) 간은 항구네는 짐을 챙겨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목적지는 영국과 미국, 캐나다를 비롯한 대서야 너머의 여러 지역이었습니다. 

     

     

    1874년 아일랜드 퀸스타운 항구에서 뉴욕으로 떠나기 위해 짐을 들고 모여 있는 아일랜드 이민자 가족들의 모습
    1874년 퀸스타운 항구에서 배를 기다리는 아일랜드 이민자들. 오늘날 코브(Cobh)로 불리는 이 항구는 수많은 아일랜드인이 대서양을 건너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났던 주요 출발지였습니다. 가족과 아이들, 여행 짐이 뒤섞인 풍경은 19세기 아일랜드의 대규모 해외 이주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Michael Fitzgerald (fl. 1871 - 1891) / The Illustrated London News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수많은 사람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기 위해 고향을 떠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 거대한 이동은 한 세대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일랜드의 인구와 사회를 바꾸었고, 동시에 세계 곳곳에 거대한 아일랜드 디아스포라를 만들었습니다. 

     

    떠난 사람들은 새로운 나라에서 무엇을 남겼을까?

    EPIC의 흥미로운 이유는 이민의 이야기를 배에 오르는 장면에서 끝내기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낯선 땅에 도착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공동체를 만들었으며, 새로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까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정치와 문학, 음악, 과학,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아일랜드 출신 인물과 그 후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아일랜드의 영향력이 국경을 훨씬 넘어섰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입니다. 아일랜드계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 대통령이 된 그의 사례처럼, 이민자의 후손 가운데에는 새로운 나라의 정치와 사회, 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역사책에서 숫자로 보았던 '이민자'라는 말도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그 숫자 하나하나에는 집을 떠난 사람과 남겨진 가족, 낯선 항구에 도착해 다시 삶을 시작해야 했던 개인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조상도 아일랜드에서 왔을까?

    EPIC은 과거의 이민을 오늘날의 가족사와 연결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같은 CHQ 건물에는 아일랜드계 조상을 조사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Irish Family History Centre도 있습니다.

     

    아일랜드계 후손에게 이곳은 단순히 ‘누군가 떠났던 역사’를 보는 박물관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가족은 어느 지역에서 살았고, 언제 바다를 건넜으며, 그 뒤 어디에 정착했는지를 거꾸로 찾아가는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박물관의 이야기가 마지막 전시실에서 끝나지 않고 관람객 자신의 성과 가족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 이것이 EPIC이 일반적인 역사박물관과 조금 다르게 기억되는 이유입니다.

     

     

    세 곳을 따라가면 하나의 아일랜드가 보인다

    아일랜드 국립박물관과 기네스 스토어하우스, EPIC은 얼핏 보면 서로 연결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한쪽에는 고대의 황금 보물이 있고, 다른 곳에는 검은 맥주가 있으며, 마지막에는 바다를 건넌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세 곳을 차례로 보고 나면 묘하게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집니다. 국립박물관에서는 이 땅에 남겨진 역사를 보고, 기네스에서는 더블린에서 성장한 산업과 문화를 만나며, EPIC에서는 그 섬을 떠나 세계로 뻗어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세 곳을 하루에 모두 둘러보는 것도 가능하지만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국립박물관의 대표 유물을 천천히 보고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의 전시와 그래비티 바까지 즐기려면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제법 필요합니다. EPIC은 별도의 일정으로 잡아야 이민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서두르지 않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더블린에서 박물관을 걷는 일은 결국 아일랜드라는 나라를 여러 방향에서 바라보는 여행과 닮았습니다. 황금을 다루던 중세의 장인도, 9,000년짜리 계약서에 이름을 남긴 양조업자도, 작은 짐을 들고 배에 오른 이민자도 모두 같은 섬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전시실을 나설 때쯤이면 아일랜드는 더 이상 초록빛 풍경과 펍으로만 기억되는 나라가 아닐 것입니다. 오래된 문화를 지켜온 섬이면서, 그 문화와 사람을 세계 곳곳으로 내보낸 나라. 더블린의 박물관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 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