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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에서 카라바조와 페르메이르를 만날 수 있다고 하면 조금 뜻밖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일랜드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Ireland)의 전시실을 걷다 보면 렘브란트와 고야, 모네까지 유럽 미술사의 굵직한 이름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유명한 이름만 확인하고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작품들입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카라바조의 걸작부터 편지 한 장으로 온갖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페르메이르의 방까지, 놓치기 아쉬운 대표작 8점을 골라 그림 속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1. 수도원 식당에 걸려 있던 카라바조의 걸작이 세상에 돌아오다
카라바조, 《그리스도의 체포》

아일랜드 국립미술관에서 단 한 점만 볼 수 있다면 무엇을 골라야 할까요? 꽤 어려운 질문이지만 카라바조(Caravaggio)의 《그리스도의 체포(The Taking of Christ)》는 가장 먼저 후보에 올려도 좋겠습니다.
1602년에 그려진 이 작품은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가 체포되는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카라바조는 우리에게 숨 돌릴 공간을 거의 주지 않습니다. 넓은 풍경도, 화려한 건축물도 없이 인물들을 화면 앞으로 바짝 밀어붙였습니다. 그림을 보는 우리까지 어두운 밤의 사건 한가운데에 끼어든 기분이 듭니다.
먼저 유다가 예수를 끌어안는 장면을 보세요. 바로 옆에서는 갑옷을 입은 병사의 팔이 밀고 들어옵니다. 금속에 닿은 빛은 차갑게 번쩍이고, 그 사이에서 예수의 얼굴과 손이 어둠 위로 떠오릅니다. 카라바조에게 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닙니다. 이 혼란 속에서 누구를 바라봐야 하는지 빛이 직접 지목합니다.
예수의 손도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바로 옆에서는 배신과 체포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데 두 손은 아래로 조용히 모여 있습니다. 몸부림치지도, 맞서 싸우지도 않습니다. 주변 인물들의 격렬한 움직임과 이 작은 손짓이 부딪히면서 오히려 비극은 더 선명해집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한동안 카라바조의 작품이 아니었다
여기까지가 그림 안의 이야기라면, 더 놀라운 이야기는 캔버스 밖에서 시작됩니다.
작품은 로마의 귀족 치리아코 마테이(Ciriaco Mattei)를 위해 제작됐지만 여러 소유자를 거치는 동안 작가의 이름이 잘못 전해졌습니다. 결국 카라바조의 원작은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고, 이 그림 역시 다른 화가의 작품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뜻밖에도 그 그림이 흘러간 곳은 아일랜드였습니다. 1920년대 아일랜드에 들어온 뒤 더블린 리슨 스트리트의 예수회 공동체가 소장하게 되었고, 그림은 그곳 식당 벽에 걸렸습니다. 지금은 미술관의 대표작이지만 당시에는 식사하러 오가며 마주치는 그림이었던 셈입니다.
반전은 1990년에 찾아옵니다. 아일랜드 국립미술관의 수석 보존가였던 세르조 베네데티(Sergio Benedetti)가 작품을 살펴보다 어두워진 화면 속에서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변색된 바니시 아래에는 오래전 사라졌다고 알려진 카라바조의 구도가 숨어 있었습니다.
이후 조사와 보존, 전문가들의 검토가 이어졌고 작품은 1993년 카라바조의 진품으로 세상에 공개됩니다. 로마에서 태어난 걸작이 수백 년을 돌아 더블린의 식당에서 다시 자신의 이름을 찾은 것입니다.
현재 작품은 예수회 공동체가 아일랜드 국립미술관에 장기 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미술관 소유의 작품도 아닙니다. 이 사연까지 알고 다시 그림 앞에 서면 《그리스도의 체포》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카라바조의 명화 한 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사라졌다가 더블린에서 두 번째 생을 얻은 그림을 만나고 있는 셈이니까요.
2. 페르메이르의 방에서는 편지 한 장도 사건이 된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시녀와 함께 편지를 쓰는 여인》

카라바조가 우리를 사건 한복판으로 끌어당겼다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시녀와 함께 편지를 쓰는 여인(Woman Writing a Letter, with her Maid)》 앞에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조금 전까지 번쩍이던 갑옷과 뒤엉킨 사람들은 사라지고, 조용한 방 하나만 남습니다.
1670년경 그려진 작품에는 두 여성이 등장합니다. 오른쪽의 여주인은 테이블에 앉아 편지를 쓰고 있고, 뒤에 선 시녀는 창밖을 바라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요. 그런데 페르메이르의 그림에서는 바로 그 정적이 사건이 됩니다.
먼저 두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 보세요. 여주인은 편지에 완전히 몰두해 있지만 시녀는 그 내용을 엿보지 않습니다. 몸을 돌린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지요. 같은 방에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이상할 만큼 넓은 거리가 생깁니다.
바닥으로 시선을 내려보면 이야기는 조금 더 복잡해집니다. 붉은 인장과 봉랍을 비롯한 작은 물건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방금 받은 편지와 관련된 것일까요, 아니면 지금 쓰고 있는 편지와 이어지는 물건일까요? 평범했던 방이 어느새 추리소설의 첫 장면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인은 누구에게 편지를 쓰고 있을까요? 시녀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페르메이르는 친절하게 답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창문으로 들어온 빛과 인물의 자세, 바닥에 남겨진 몇 가지 단서만 건넬 뿐입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그림 앞에 선 사람이 완성해야 합니다.
빛도 놓치지 마세요. 왼쪽 창에서 들어온 빛은 시녀를 지나 테이블과 여주인에게 이어집니다. 강렬한 명암으로 사건을 폭발시키는 카라바조와 달리 페르메이르의 빛은 조용히 공간을 정돈합니다. 같은 빛인데 카라바조에게서는 드라마가 되고, 페르메이르에게서는 침묵이 됩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엠마오의 저녁식사가 있는 부엌의 하녀》

이번에는 조금 다른 부엌으로 가보겠습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의 《엠마오의 저녁식사가 있는 부엌의 하녀(Kitchen Maid with the Supper at Emmaus)》입니다. 1617~1618년경 그려진 벨라스케스의 초기작입니다.
제목만 보면 부활한 그리스도가 제자들 앞에 나타나는 성경 장면이 당연히 화면 중심에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 그림은 예상과 정반대입니다.
가장 크게 등장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부엌에서 일하는 하녀입니다. 그리스도와 제자들은 왼쪽 뒤편 작은 공간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종교화의 주인공과 이름 없는 일상의 인물이 자리를 바꾼 셈입니다.
하녀는 일을 하다가 잠시 멈춘 듯 보입니다. 앞에는 도자기 주전자와 구리 그릇, 바구니 같은 평범한 생활용품이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벨라스케스는 이 평범한 물건들을 대충 그리지 않았습니다. 반짝이는 금속과 거친 도자기의 질감까지 손에 잡힐 듯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에서는 조금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기적은 저 멀리에서 일어나는데 우리의 눈은 자꾸 눈앞의 하녀에게 돌아옵니다. 성스러운 사건은 멀리 두고, 그 사건을 마주한 평범한 인간을 우리 가까이 데려온 것. 벨라스케스가 이 작은 부엌을 특별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3. 렘브란트에서 모네까지, 빛은 어떻게 그림을 바꾸었을까?
렘브란트, 《이집트로의 피신 중 휴식이 있는 풍경》

렘브란트(Rembrandt)라고 하면 초상화와 자화상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아일랜드 국립미술관에서 눈여겨볼 작품은 뜻밖에도 작은 풍경화입니다.
1647년의 《이집트로의 피신 중 휴식이 있는 풍경(Landscape with the Rest on the Flight into Egypt)》은 가로 48cm 남짓한 작품입니다. 크기만 보면 지나치기 쉽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작은 화면 안에 깊은 밤 하나가 통째로 들어 있습니다.
제목의 주인공은 아기 예수를 데리고 헤롯을 피해 이집트로 향하는 성가족입니다. 그런데 그림에서 성가족부터 찾으려 하면 조금 헤맬 수 있습니다. 화면 속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자리가 놀랄 만큼 작기 때문입니다.
대신 렘브란트가 크게 펼쳐놓은 것은 밤입니다.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이 하나둘 나타나고 언덕과 나무, 건물의 윤곽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거대한 성경 이야기가 어느 순간 깊은 밤길을 지나가는 작은 인간들의 이야기로 바뀝니다.
더구나 렘브란트의 유화 풍경화는 매우 드뭅니다. 현재 알려진 작품이 손에 꼽힐 정도이고, 이 그림은 그중에서도 유일한 야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크기로 관람객을 압도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작다고 지나쳤다가는 꽤 귀한 렘브란트를 놓치게 됩니다.
프란시스코 고야, 《도냐 안토니아 사라테》

이번에는 렘브란트의 밤에서 한 사람의 얼굴로 시선을 옮겨보겠습니다.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가 1805년경 그린 《도냐 안토니아 사라테(Doña Antonia Zárate)》입니다.
안토니아 사라테는 당시 스페인의 배우였습니다. 검은 드레스와 섬세한 레이스 만티야를 두른 채 금빛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색은 오히려 절제되어 있는데 인물은 놀랄 만큼 또렷합니다. 검정과 금빛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합니다.
하지만 옷보다 조금 더 오래 보아야 할 곳은 얼굴입니다. 웃는다고 하기에도, 무표정하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표정이 남아 있습니다. 시선 역시 쉽게 읽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 초만 보고 지나칠 때보다 오래 바라볼수록 오히려 이 사람을 더 모르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좋은 초상화는 얼굴을 기록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몇 세기 전에 살았던 사람이 지금 우리 앞에 앉아 있는 듯한 존재감을 만들어냅니다. 고야의 초상화 앞에서 발걸음이 조금 느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클로드 모네, 《아르장퇴유의 요트》

그리고 1874년, 빛은 다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합니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아르장퇴유의 요트(Argenteuil Basin with a Single Sailboat)》입니다.
모네는 1871년부터 1878년까지 파리 외곽 아르장퇴유에 살면서 센강 주변을 끊임없이 그렸습니다. 풍경을 기다리는 것도 모자랐는지 배 한 척을 작업실로 꾸며 물 위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림 앞에서는 한 번 가까이 갔다가 몇 걸음 물러나 보세요. 가까이에서는 물과 나무, 하늘이 짧고 끊어진 붓질과 색의 조각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거리를 두는 순간 그 붓질이 물결이 되고, 구름이 되고, 강 위에서 흔들리는 빛으로 변합니다.
1874년은 첫 인상주의 전시가 열린 해이기도 합니다. 렘브란트가 어둠 속에서 빛을 끌어냈다면 200여 년 뒤 모네에게 빛은 더 이상 사물을 보여주기 위한 조명이 아니었습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 자체가 그림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왔다면 처음의 카라바조를 한번 떠올려보세요. 같은 빛인데 카라바조에게서는 비극이 되고, 페르메이르에게서는 침묵이 되며, 렘브란트에게서는 밤의 깊이가 되고, 모네에게서는 찰나의 인상이 됩니다. 몇 개의 전시실을 걷는 동안 빛의 역할만 따라가도 유럽 회화 수백 년이 지나가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 미술관의 이야기를 유럽 거장들만으로 끝내면 중요한 절반을 놓치게 됩니다. 이제 시선을 더블린으로 돌려볼 차례입니다. 아일랜드 화가들이 자신들의 도시와 사람, 역사를 어떻게 그렸는지 살펴보겠습니다.
4. 잭 B. 예이츠가 그린 아일랜드의 얼굴
잭 B.예이츠, 《리피 수영대회》

카라바조와 페르메이르, 렘브란트와 모네까지 보고 나면 이제 질문을 조금 바꿔볼 차례입니다. 유럽 미술의 거장들이 아니라 아일랜드 화가들은 자신의 도시와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그 답을 찾기에 좋은 작품이 잭 B. 예이츠(Jack B. Yeats)의 《리피 수영대회(The Liffey Swim)》입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시인 W. B. 예이츠의 동생이지만, 아일랜드 미술에서는 굳이 형의 이름을 빌리지 않아도 될 만큼 존재감이 큰 화가입니다.
1923년에 그린 이 작품의 무대는 더블린을 가로지르는 리피강입니다. 수영대회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강변으로 몰려들었고, 화면은 그 열기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막상 그림을 보면 정작 수영선수부터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이츠가 화면 앞쪽을 내준 사람들은 선수보다 관중입니다. 사람들은 몸을 앞으로 내밀고 서로의 어깨 너머로 강을 바라봅니다. 우리도 멀찍이 떨어져 구경할 수는 없습니다. 화가는 관람객까지 군중 틈에 슬쩍 밀어 넣어 함께 고개를 내밀게 합니다.
붓질도 앞에서 본 고야의 초상화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형태는 빠르게 흔들리고 색은 여기저기 튀어나옵니다. 한 사람의 얼굴을 정확하게 묘사하기보다 군중 전체가 만들어내는 소음과 흥분을 붓질로 붙잡은 듯합니다.
관중 속에는 화가의 작은 장난도 숨어 있습니다. 모자를 쓰고 뒤를 돌아보는 남성은 예이츠 자신으로 여겨지고, 가까이에 있는 화려한 모자의 여성은 그의 아내 코티(Cottie)로 추정됩니다. 화가가 그림 밖에서 구경하는 대신 아예 더블린 시민들 사이로 들어가 버린 셈입니다.
이 그림으로 올림픽 메달까지 받았다
《리피 수영대회》에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꽤 뜻밖의 이력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올림픽 은메달입니다.
지금은 올림픽에서 회화 경기를 연다고 하면 조금 낯설게 들리지만, 1912년부터 1948년까지는 건축과 문학, 음악, 회화, 조각을 겨루는 예술 경연도 함께 열렸습니다. 단, 작품의 주제는 스포츠와 관련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예이츠는 《리피 수영대회》를 1924년 파리 올림픽 예술경연에 출품해 회화 부문 은메달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 메달은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소장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히 더블린의 여름 풍경을 그린 그림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리피강과 시민들의 일상, 스포츠와 미술,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던 아일랜드의 분위기가 한 화면 안에서 겹쳐집니다.
다니엘 맥클리스, 《스트롱보와 이퍼의 결혼》

잭 B. 예이츠가 20세기 더블린의 활기를 보여준다면 다니엘 맥클리스(Daniel Maclise)는 훨씬 오래전 아일랜드 역사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스트롱보와 이퍼의 결혼(The Marriage of Strongbow and Aoife)》은 가까이 가기 전부터 존재감이 큽니다. 높이 약 3.15m, 너비 5m가 넘는 대작으로, 아일랜드 국립미술관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역사화입니다.
그림은 1170년 워터퍼드에서 있었던 노르만 기사 리처드 드 클레어(Richard de Clare), 즉 스트롱보(Strongbow)와 렌스터 왕 디어머트 맥머로(Dermot McMurrough)의 딸 이퍼(Aoife)의 결혼을 다룹니다.
하지만 화려한 결혼식이라고 생각하고 다가가면 분위기가 금세 달라집니다. 이 결합은 노르만 세력이 아일랜드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는 역사와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화면 중앙에서는 혼인이 진행되고 있지만 주변을 조금만 천천히 살펴보면 축하 일색의 장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승리한 노르만 세력과 패배한 아일랜드인들이 한 화면 안에서 극명하게 대비되고, 스트롱보의 발밑에는 쓰러진 켈트 십자가가 놓여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늙은 하프 연주자가 몸을 깊이 숙이고 있습니다.
특히 쓰러진 십자가와 하프는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두 사람의 혼인 뒤에 훨씬 더 큰 역사의 변화가 놓여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결혼식 한 장면 안에 권력이 이동하는 순간까지 함께 그려 넣은 셈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을 오늘날 어디에서 보고 있는가입니다. 이 그림은 영국 의회가 있는 웨스트민스터 궁전의 장식을 위한 역사화 구상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것을 더블린의 아일랜드 국립미술관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림의 장소가 달라지자 역사도 조금 다른 표정으로 다가옵니다.
누군가에게는 노르만 진출의 역사이고, 다른 시선에서는 아일랜드가 정치적 주도권을 잃어가는 출발점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맥클리스 역시 승리한 쪽만을 화려하게 치켜세우지는 않았습니다. 좋은 역사화는 과거의 사건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우리가 그 과거를 누구의 자리에서 보고 있는지 묻게 합니다.
5. 명화 8점을 놓치지 않는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관람법
유명한 이름보다 작품 사이의 차이를 보세요

아일랜드 국립미술관의 매력은 익숙한 거장과 아일랜드 화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모든 작품을 빠짐없이 보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느 순간 그림보다 전시실 번호가 더 또렷하게 기억날 수도 있습니다.

처음 방문한다면 이번에 소개한 8점을 중심으로 동선을 잡아보세요.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체포》에서 시작해 페르메이르와 벨라스케스의 실내로 들어가고, 렘브란트와 고야를 지나 모네의 밝은 강변으로 이동하면 빛과 인물, 공간을 다루는 방식이 시대마다 어떻게 달라졌는지 자연스럽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 잭 B. 예이츠와 다니엘 맥클리스 앞에 서면 미술관의 분위기가 다시 바뀝니다. 이제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일랜드 사람들이 자신의 도시와 역사를 어떤 얼굴로 기억했는지 만나게 됩니다.
시간이 없다면 세 작품만큼은 놓치지 마세요
관람 시간이 짧다면 모든 방을 바쁘게 통과할 필요는 없습니다. 세 작품만 고른다면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체포》, 페르메이르의 《시녀와 함께 편지를 쓰는 여인》, 잭 B. 예이츠의 《리피 수영대회》를 추천합니다.
카라바조에서는 빛이 비극을 만드는 순간을, 페르메이르에서는 침묵 속에서 이야기가 생겨나는 방식을, 예이츠에서는 더블린이라는 도시의 활기와 표정을 볼 수 있습니다. 세 작품만 제대로 보아도 이 미술관이 유럽 미술과 아일랜드 미술을 어떻게 이어주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시간이 넉넉하다면 마음에 든 그림 앞에서 몇 분쯤 더 머물러보세요. 가까이에서는 붓질과 작은 물건이 보이고, 몇 걸음 물러서면 인물과 공간의 관계가 새로 보입니다. 명화 앞에서는 많이 보는 것보다 한 번 더 보는 편이 더 기억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무료 미술관이지만 특별전은 따로 확인하세요
아일랜드 국립미술관의 상설 컬렉션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어 더블린 여행 중 비교적 부담 없이 들르기 좋습니다. 다만 일부 특별전은 별도의 티켓이 필요할 수 있고 전시 일정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작품 역시 대여나 보존 작업, 전시실 개편 때문에 자리를 옮기거나 잠시 전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꼭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방문 전에 공식 홈페이지에서 현재 전시 여부와 운영시간을 확인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미술관은 더블린 중심부 메리언 스퀘어(Merrion Square) 인근에 있어 주변 명소와 함께 둘러보기에도 좋습니다. 대표작을 중심으로 천천히 본다면 적어도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는 여유를 두는 것을 권합니다.
아일랜드 국립미술관의 매력은 단순히 유명 화가가 많다는 말로는 조금 부족합니다. 카라바조의 어둠에서 출발해 페르메이르의 창가를 지나고, 렘브란트의 밤과 모네의 강물을 건너다 보면 어느새 더블린의 시민들과 아일랜드 역사의 한 장면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림을 한 점씩 따라갔을 뿐인데 유럽 미술사를 지나 어느 순간 아일랜드라는 나라의 얼굴을 만나게 되는 것, 그것이 이 미술관을 더블린에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