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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국립박물관(Nationalmuseum)은 조금 독특한 곳입니다. 렘브란트와 르누아르 같은 유럽 거장의 명화를 보다가 몇 걸음 옮기면 도자기와 유리, 가구와 북유럽 디자인이 등장합니다.
정식 소개에 Art and Design이 함께 들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그림과 조각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아름다운 물건까지 한 시대의 문화로 함께 바라봅니다.
왕실 컬렉션에서 출발해 유럽 명화와 스웨덴 미술, 그리고 북유럽 디자인으로 이어지는 전시를 천천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1. 왕의 수집품은 어떻게 국민의 박물관이 되었을까?
왕실 컬렉션에서 시작된 국립박물관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 가장 먼저 기억해 둘 이름은 뜻밖에도 화가가 아니라 구스타브 3세(Gustav III)입니다.
18세기 스웨덴을 통치했던 그는 정치만큼이나 예술과 연극, 고대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군주였습니다. 유럽의 왕실이 그렇듯 스웨덴 왕실 역시 오랫동안 그림과 조각, 공예품을 수집했고, 이 컬렉션은 훗날 국립박물관의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1792년 구스타브 3세가 사망한 뒤 그의 미술 컬렉션은 왕궁 안의 왕립박물관(Konglig Museum)을 통해 공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왕의 방을 장식하던 예술품이 점차 일반 관람객의 시선 앞에 놓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꽤 큰 변화입니다. 이전까지 왕과 귀족이 소유하던 그림이 이제는 특별한 초대장이 없어도 볼 수 있는 '공공의 컬렉션'으로 바뀌기 시작했으니까요.
왕궁을 떠나 지금의 박물관으로

컬렉션이 커지면서 왕궁의 공간만으로는 부족해졌고, 결국 새로운 국립박물관 건물이 필요해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블라시에홀멘(Blasieholmen)의 웅장한 건물은 독일 건축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슈튈러의 설계로 세워졌습니다.
붉은빛 석재의 파사드와 높은 아치형 창, 중앙 계단을 보고 있으면 궁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건물의 주인은 왕이 아닙니다. 이제 왕이 모은 예술을 시민이 바라보는 공간입니다.
그 변화가 어쩌면 Nationalmuseum의 첫 번째 작품일지도 모릅니다. 소유의 예술이 감상의 예술로 바뀐 순간 말입니다.
2. 렘브란트부터 르누아르까지, 유럽의 거장들을 만나다

이제 본격적으로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Nationalmuseum의 회화와 조각 컬렉션은 약 1만 6천 점에 이르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의 거장부터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까지 유럽 미술사의 여러 장면을 만날 수 있습니다.

렘브란트 《클라우디우스 시빌리스의 음모》 — 거대한 그림이 잘려 나간 이유

왕실 컬렉션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Nationalmuseum에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렘브란트의 대작을 만나게 됩니다. 《클라우디우스 시빌리스의 음모(The Conspiracy of Claudius Civilis)》입니다.
1661~1662년경 제작된 이 작품은 로마 제국에 맞서 반란을 준비하던 바타비족의 지도자 클라우디우스 시빌리스와 동료들이 충성을 맹세하는 순간을 그렸습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사람들이 칼을 들어 올리고, 탁자 한가운데에서 강렬한 빛이 얼굴과 손을 비춥니다. 화려한 영웅담이라기보다 무언가 위험한 일이 막 시작되려는 비밀 회합을 엿보는 듯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 우리가 보는 그림이 원래 모습보다 훨씬 작다는 사실입니다. 이 작품은 암스테르담 시청사를 장식할 대형 역사화로 주문되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후 렘브란트가 화면의 상당 부분을 잘라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작품은 거대한 역사화의 일부가 남아 있는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인물들의 거친 표정과 번쩍이는 칼, 탁자를 비추는 빛의 힘은 압도적입니다. Nationalmuseum에서도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기념비적 회화로 소개되며, 18세기 중반 스웨덴에 들어온 뒤 1866년부터 이곳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그림의 소유자는 Nationalmuseum이 아니라 스웨덴 왕립미술아카데미(Konstakademien)입니다. 1798년부터 미술아카데미가 소유하고 있으며, Nationalmuseum에는 장기 대여 형식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박물관의 대표작이면서 동시에 조금 특별한 '손님'이기도 합니다.
렘브란트 《부엌 하녀》 — 창문 너머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소녀

먼저 멈춰 보고 싶은 작품은 렘브란트(Rembrandt)의 《부엌 하녀(The Kitchen Maid)》입니다.
어두운 배경 속에서 한 소녀가 창틀에 팔꿈치를 기대고 있습니다. 왕이나 귀족도 아니고, 신화 속 여신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젊은 여성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선이 오래 머뭅니다. 렘브란트는 얼굴과 흰 셔츠, 붉은 옷에 빛을 집중시키고 주변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화려한 사건은 없지만 소녀가 금방이라도 말을 걸 것처럼 생생합니다.
1651년에 그려진 이 작품은 Nationalmuseum을 대표하는 렘브란트 소장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확한 모델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화가는 익명의 인물에게 놀라울 정도로 개성 있는 표정을 부여했습니다.
프랑수아 부셰 《비너스의 승리》 — 스웨덴으로 건너온 프랑스 로코코

렘브란트의 어둡고 긴장된 장면에서 몇 걸음 옮기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의 《비너스의 승리(The Triumph of Venus)》에서는 바다와 하늘이 연한 파랑과 분홍빛으로 물들고, 비너스와 님프들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1740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난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그린 작품입니다. 서로 얽힌 인물과 물결, 상상 속 해양 생물이 화면 전체를 빙글빙글 돌 듯 이어집니다. 엄숙한 역사화와는 정반대로, 우아하고 감각적인 즐거움 자체가 그림의 주제가 된 듯합니다.
부셰는 프랑스 루이 15세 시대를 대표하는 궁정 화가였고, 이 작품 역시 프랑스 로코코 특유의 밝은 색채와 관능적인 분위기를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Nationalmuseum에서 이 그림이 중요한 이유는 작품의 아름다움만이 아닙니다.
이 그림을 프랑스에서 사들인 사람은 스웨덴 외교관이자 미술 수집가였던 칼 구스타프 테신(Carl Gustaf Tessin)이었습니다. 그는 파리에서 활동하며 당대 프랑스 미술을 적극적으로 수집했지만 막대한 빚 때문에 1749년 컬렉션 대부분을 처분해야 했습니다.
이때 《비너스의 승리》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스웨덴 왕실이 구입했고, 훗날 왕실 컬렉션과 함께 Nationalmuseum으로 옮겨졌습니다. 지금 박물관에서 프랑스 로코코의 대표작을 볼 수 있는 데에는 한 외교관의 뛰어난 안목과 조금 무리했던 수집 열정이 함께 있었던 셈입니다.
두 작품을 나란히 떠올려 보면 Nationalmuseum의 성격도 선명해집니다. 한쪽에는 어둠 속에서 반란을 맹세하는 렘브란트의 인물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밝은 바다 위를 떠다니는 부셰의 비너스가 있습니다. 서로 전혀 다른 유럽 미술의 장면들이 스웨덴의 수집 역사 속에서 한 박물관에 모인 것입니다.
알렉산더 로슬린 《베일을 쓴 여인》 — 초상화 속 작은 밀당

몇 세대를 건너 18세기로 이동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알렉산더 로슬린(Alexander Roslin)의 《베일을 쓴 여인(The Lady with the Veil)》은 Nationalmuseum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초상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인은 검은 베일로 얼굴 절반을 가리고 부채를 들고 있습니다. 가렸는데 오히려 더 보게 됩니다. 초상화가 관람객과 하는 꽤 세련된 밀당입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모델이 단순히 '화가의 아내'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로슬린의 아내이자 파리에서 활동한 화가 마리 쉬잔 지루(Marie Suzanne Giroust)였습니다. 흰 레이스와 분홍빛 실크, 검은 베일의 질감까지 살펴보면 로슬린이 왜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 가운데 한 명으로 인기를 누렸는지 쉽게 이해됩니다.
르누아르 《라 그르누예르》 — 인상주의가 막 태어나던 여름
다음 작품 앞에서는 실내의 우아한 초상화에서 갑자기 여름 강변으로 나온 듯한 기분이 듭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의 《라 그르누예르(La Grenouillère)》입니다.
1869년 여름, 르누아르와 클로드 모네는 파리 근교 센강의 인기 휴양지 라 그르누예르에서 같은 풍경을 그렸습니다. 물 위에 반짝이는 빛과 수영하는 사람들, 작은 배와 강변의 군중을 빠른 붓질로 붙잡으려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아름다운 인상주의 풍경처럼 보이지만 당시 관객에게 이런 그림은 지나치게 거칠고 미완성처럼 보일 수 있었습니다. 붓자국을 깨끗하게 숨기는 대신 '지금 눈에 들어온 빛'을 빠르게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완벽하게 정리된 사진 대신 순간적으로 찍은 스냅사진이 미술의 주인공이 되기 시작한 셈입니다.
3. 스웨덴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어떻게 그렸을까?
유럽의 거장들을 충분히 보았다면 이제 조금 더 천천히 걸어보겠습니다. 이 박물관을 스톡홀름에서 보아야 하는 진짜 이유가 점점 선명해지는 구간입니다.
파리와 암스테르담의 미술에서 벗어나 스웨덴의 풍경과 전통,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보기 때문입니다.
안데르스 소른 《한여름의 춤》 — 스웨덴의 여름밤이 그림 속에서 움직인다

안데르스 소른(Anders Zorn)의 《한여름의 춤(Midsummer Dance)》 앞에서는 음악이 들리지 않는데도 그림 전체가 리듬을 타는 듯합니다.
사람들이 손을 잡고 춤을 추고, 해가 완전히 지지 않는 북유럽 여름밤의 희미한 빛이 마당을 감쌉니다.
소른은 1897년 이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자신의 고향 달라르나 지역의 한여름 축제를 소재로 삼았지만, 화면 중앙에 메이폴을 크게 세우기보다 춤추는 사람들과 밤의 빛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스웨덴의 전통을 설명하는 그림'보다 그날 밤 축제 한가운데 우연히 끼어든 것처럼 느껴집니다.
에른스트 요세프손 《물의 정령》 — 바이올린 소리를 따라가면 위험합니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조금 어두워집니다.
에른스트 요세프손(Ernst Josephson)의 《물의 정령(The Water Sprite)》에는 폭포와 수초 사이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신비로운 인물이 등장합니다.
북유럽 민간전승에서 이 물의 정령은 아름다운 음악으로 사람을 물가로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그림 속 바이올린 연주가 훌륭해 보인다고 너무 가까이 갈 필요는 없습니다.
요세프손은 이 존재를 단순한 괴물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자연과 하나가 된 젊은 남성의 육체와 음악, 물의 움직임을 섞어 매혹적이면서 불안한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작품의 강렬한 감각성과 비현실적인 소재가 낯설게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한나 파울리 《친구들》 — 스톡홀름의 어느 저녁, 문화인들이 모였다

이제 신화에서 다시 사람들의 집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한나 파울리(Hanna Pauli)의 《친구들(Friends)》은 거대한 사건을 그린 작품이 아닙니다. 스톡홀름의 한 거실에서 친구들이 모여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당시 스웨덴의 예술가와 작가, 지식인들이었습니다. 중앙에서는 작가이자 교육사상가 엘렌 케이가 책을 읽고 있고, 주변 사람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입니다.
왕과 귀족의 초상으로 시작한 미술관을 걷다가 이런 작품에 도착하면 시대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이제 그림의 주인공은 왕좌에 앉은 군주가 아니라 서로 생각을 나누는 친구들입니다.
칼 라르손 《한겨울의 희생》 — 박물관이 거절했던 그림이 돌아오다

그리고 계단 공간에서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거대한 그림을 만나게 됩니다.
칼 라르손(Carl Larsson)의 《한겨울의 희생(Midvinterblot)》입니다.
높이 약 6.4m, 폭 약 13.6m에 이르는 이 작품은 고대 스웨덴의 전설적인 왕 도말데가 흉년을 끝내기 위한 희생 제물로 바쳐지는 장면을 상상해 그린 대형 역사화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림 속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라르손은 애초 Nationalmuseum의 계단 공간을 위해 이 그림을 구상했지만, 작품은 오랫동안 논쟁 끝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한때 일본의 개인 소장가에게 넘어가기까지 했고, 결국 1990년대 Nationalmuseum이 작품을 구입하면서 화가가 원했던 공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이 작품 앞에서는 그림만 보지 말고 한 번 뒤로 물러서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림이 벽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건축과 하나가 되어 있는 모습까지가 작품의 일부처럼 느껴집니다.
여기까지 둘러보면 벌써 렘브란트, 로슬린, 르누아르, 소른, 요세프손, 파울리, 라르손까지 일곱 명의 화가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Nationalmuseum은 이쯤에서 뜻밖의 질문을 던집니다.
그림만 보아야 한 시대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4. 잠깐, 여기는 미술관이 아니었나? — 그림 옆에 놓인 아름다운 물건들

여기서부터 Nationalmuseum의 성격이 더욱 흥미로워집니다.
보통 미술관에서는 그림을 보고, 디자인 박물관에서는 의자와 도자기를 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 경계가 흐릿합니다.

Nationalmuseum은 회화와 조각뿐 아니라 도자기, 유리, 은공예, 직물, 가구와 산업디자인까지 소장합니다. 그리고 이 물건들을 미술과 완전히 분리하기보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함께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림 속 귀부인이 앉아 있을 법한 의자를 실제로 만나고, 초상화 속 식탁을 장식했을 법한 도자기와 은제품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갑자기 박물관이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그렸는지만 보지 말고, 무엇을 사용했는지도 한번 보세요."
구스타브스베리 도자기 — 스웨덴의 식탁도 디자인의 무대였다

스웨덴 디자인을 이야기하면서 구스타브스베리(Gustavsberg) 도자기를 빼놓기는 어렵습니다.

19세기부터 스웨덴의 대표적인 도자기 생산지로 성장한 구스타브스베리는 왕실이나 상류층을 위한 장식품뿐 아니라 점차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식기까지 만들었습니다.
Nationalmuseum 컬렉션에는 구스타브스베리에서 제작된 다양한 접시와 화병, 생활용 도자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19세기 후반 제작된 식기와 20세기 디자이너 빌헬름 코게의 작품을 비교해 보면 장식적인 도자기가 점차 간결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접시 한 장과 유리잔 하나도 처음부터 완성된 모습으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스케치에서 형태를 다듬고 색을 고른 뒤 비로소 식탁 위의 물건이 됩니다. 이런 과정을 함께 보고 나면, 스웨덴에서 식탁은 음식을 담는 공간인 동시에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펼쳐지는 작은 무대였다는 말이 조금 더 실감 납니다.
오레포스 유리공예 — 유리 안에 그림을 넣다

조금 더 이동하면 스웨덴 디자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재료가 등장합니다.
바로 유리입니다.
스웨덴의 오레포스(Orrefors)는 20세기 들어 세계적으로 알려진 예술 유리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에드바르드 할드(Edward Hald)가 디자인하고 오레포스에서 제작한 1926년 화병은 그랄(Graal) 기법을 사용합니다. 여러 겹의 유리 사이에 무늬를 넣어 마치 장식이 유리 내부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도자기처럼 표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유리 자체가 그림의 공간이 된 셈입니다.
에드빈외르스트룀의 아리엘 화병 — 공기방울도 장식이 된다

1939년 제작된 에드빈 외르스트룀(Edvin Öhrström)의 아리엘(Ariel) 화병도 놓치기 아까운 디자인 소장품입니다.
이 작품을 가까이에서 보면 새와 사람의 얼굴 같은 형상이 두꺼운 유리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비밀은 공기입니다. 오레포스가 1930년대 개발한 아리엘 기법은 유리 안에 의도적으로 공기층과 기포를 가두어 무늬를 만듭니다.
보통 유리를 만들 때 기포는 없애야 할 결함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디자이너는 바로 그 '결함'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이 화병은 1939년 뉴욕 세계박람회에서도 선보였고, 당시 국제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Swedish Modern의 감각을 잘 보여줍니다.
브루노 마트손의 리클라이닝 체어 — 눈밭에 앉아 만든 의자?
여기서 Nationalmuseum의 디자인 컬렉션 중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골라보겠습니다.

브루노 마트손(Bruno Mathsson)의 '리클라이닝 체어 No.36'입니다.
곡선으로 휘어진 목재 프레임과 직조된 좌석을 보면 지금 보아도 상당히 현대적입니다. 그런데 마트손이 편안한 의자를 연구한 방법은 더 독특합니다.
그는 사람이 앉을 때 몸이 어떤 형태를 만드는지 연구하기 위해 직접 눈 위에 앉아 자신의 몸이 남긴 자국을 관찰했다고 전해집니다. 말 그대로 눈밭을 인체공학 실험실로 사용한 셈입니다.
그 결과 몸의 곡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휘어지는 가구를 만들었습니다. 장식을 붙이는 대신 사람이 어떻게 앉는지를 디자인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 의자를 보면 북유럽 디자인이 왜 '단순하다'는 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단순해 보이는 형태 뒤에 사용자의 몸과 재료에 대한 꽤 집요한 연구가 숨어 있습니다.
노벨상 연회 식기 —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저녁 식탁의 디자인
마지막으로 조금 특별한 식탁으로 가보겠습니다.
매년 12월 스톡홀름에서는 노벨상 시상식과 연회가 열립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과학자와 작가들이 앉는 그 식탁에도 당연히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1991년 노벨상 90주년을 맞아 제작된 노벨 서비스(Nobel Service)가 그 주인공입니다.
도예가 카린 비르크비스트(Karin Björquist)가 디자인한 본차이나 접시에는 금빛 장식과 색 띠가 사용됐고, 군나르 시렌(Gunnar Cyrén)은 연회용 유리와 식기 디자인에 참여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업적을 기리는 저녁 식사에서 접시 역시 아무 접시나 사용할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Nationalmuseum에서 이런 소장품을 보고 나면 노벨상 연회를 뉴스에서 볼 때 과학자보다 접시부터 눈에 들어올지도 모르겠습니다.
5. 그림과 의자를 함께 보아야 한 시대가 보인다
이제 처음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왜 Nationalmuseum은 그림과 조각만 전시하지 않고 의자와 도자기, 유리와 식기까지 함께 보여줄까요?
한 시대를 이해하는 데는 유명한 화가의 그림만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상화 속 사람에게도 일상이 있었다
알렉산더 로슬린의 초상화를 바라보면 18세기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옆 시대의 의자와 도자기, 은식기까지 함께 보면 이야기가 조금 더 넓어집니다.

그들은 어떤 공간에서 앉았고, 무엇으로 차를 마셨으며, 어떤 물건을 아름답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림 속 인물이 액자 밖으로 걸어 나와 자신의 집으로 관람객을 초대한 것처럼, 생활의 풍경이 조금씩 완성됩니다.
예술은 벽에만 걸리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20세기에 가까워질수록 예술과 생활의 경계는 더욱 흐려집니다.
오레포스의 유리잔과 브루노 마트손의 의자처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에도 색과 비례, 재료, 기능에 대한 치밀한 고민이 들어갑니다.
누군가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사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앉는 의자의 곡선을 설계합니다. 사용하는 도구는 다르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세계를 조금 더 아름답고, 편리하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까?
Nationalmuseum을 조금 다르게 관람하는 방법
그래서 이곳에서는 유명 작품만 빠르게 찾아다니기보다 시대별 전시실을 천천히 따라가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먼저 그림을 보고, 그 주변에 놓인 물건을 살펴보세요. 색과 장식이 비슷한지, 그림 속 가구와 실제 전시된 가구가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렘브란트 앞에서는 빛을 보고, 소른 앞에서는 북유럽의 여름밤을 느끼고, 오레포스 유리 앞에서는 빛이 물질을 통과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됩니다. 그리고 브루노 마트손의 의자 앞에 도착하면 아마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저건 작품일까, 가구일까?'
Nationalmuseum의 대답은 꽤 분명합니다.
둘 다일 수 있습니다.
스톡홀름에서 한 시대의 생활까지 바라보다
스톡홀름 국립박물관은 유명한 명화 몇 점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미술관으로만 생각하기에는 아까운 곳입니다.
왕실이 수집했던 예술품에서 시작해 렘브란트와 르누아르를 지나고, 소른과 라르손의 스웨덴으로 들어간 뒤, 다시 도자기와 유리, 의자와 식탁으로 시선이 이동합니다.
그 과정에서 관람객은 미술사를 보는 동시에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까지 만나게 됩니다.
그림 한 점은 한 사람을 보여주지만, 그 곁에 놓인 의자와 찻잔까지 바라보면 한 시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Nationalmuseum이라는 이름 뒤에 붙은 공식 영문 부제 인 Sweden's Museum Art and Design이라는 말은 단순한 장르 구분이 아닙니다. 이곳을 가장 잘 설명하는 관람법에 가깝습니다.
스톡홀름에서 그림만 보는 미술관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사용하며 살아왔는지까지 천천히 만나고 싶다면 이곳에서 꽤 오랫동안 발걸음이 느려질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