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스톡홀름 유르고르덴섬의 바사 박물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그림이나 작은 유물이 아닙니다. 어두운 전시실을 거의 가득 채운 거대한 목조 전함 한 척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배의 이름은 바사호(Vasa). 1628년 첫 항해에 나섰다가 스톡홀름 앞바다에서 침몰했고, 333년 동안 바닷속에 잠들어 있다가 1961년 다시 세상으로 올라왔습니다.

     

    오늘날 바사 박물관은 단순히 오래된 군함 한 척을 보여주는 곳이 아닙니다. 거대한 선체와 수백 개의 조각, 배에서 발견된 생활 유물과 인양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17세기 스웨덴의 야심과 기술, 그리고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의 삶까지 만나게 됩니다.

     

     

    스톡홀름 바사 박물관에 전시된 17세기 스웨덴 전함 바사의 선미와 목조 선체
    바사 박물관의 중심에 전시된 전함 바사. 1628년 첫 항해에서 침몰한 뒤 333년 만에 인양되었으며, 거대한 목조 선체와 화려한 선미 장식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출처 표기: Richardmaackphotography / Wikimedia Commons / CC BY 4.0

     

     

    바사 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1. 첫 항해에서 침몰한 스웨덴의 거대한 전함

    왕의 야심을 싣고 만들어진 바사호

    바사호가 만들어진 17세기 초, 스웨덴은 발트해에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Gustav II Adolf)에게 강력한 해군은 단순한 군사력이 아니라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힘을 보여주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그 야심을 상징하듯 바사호는 거대했습니다. 1628년 첫 항해 당시 64문의 대포를 싣고 있었으며, 주력 무장은 무거운 포탄을 발사하는 24파운드 청동 대포였습니다. 한쪽의 대포를 동시에 발사하면 약 250kg에 이르는 탄환을 쏟아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스톡홀름 바사 박물관에 전시된 17세기 전함 바사의 목조 선체와 포문
    바사의 측면에서 바라본 거대한 목조 선체. 두 줄로 이어진 포문과 높은 선체 구조를 통해 강력한 화력을 갖춘 17세기 스웨덴 군함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표기: Dennis G. Jarvis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하지만 바사호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화력만이 아니었습니다. 선체 곳곳에는 왕과 왕실, 신화와 성경 속 인물을 표현한 수백 개의 조각이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적을 위협하는 군함인 동시에, 스웨덴 왕실의 권력과 야심을 바다 위에서 과시하는 거대한 상징물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항해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628년 8월 10일, 바사호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톡홀름에서 첫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항구를 떠났지만 항해는 너무도 짧았습니다.

     

    바람이 불자 배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었고, 다시 일어서는 듯했던 선체는 두 번째 돌풍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열린 포문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바사호는 결국 침몰했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바람이 강했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바사호는 높은 상부 구조와 무거운 무장을 갖춘 반면 이를 안정적으로 지탱할 만큼 충분한 복원력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왕의 야심을 담아 더 강하고 위압적인 군함을 만들려 했지만, 바로 그 설계가 배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스웨덴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전함은 그렇게 제대로 된 전투 한 번 치르지 못한 채 스톡홀름 항구 아래로 사라졌습니다.

     

    2. 바사호는 어떻게 333년을 살아남았을까?

    바닷속에서 뜻밖의 시간 캡슐이 되다

    목조 선박이 300년 넘게 물속에 있었다면 대부분 흔적만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바사호는 달랐습니다. 침몰한 장소의 환경이 배를 파괴하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보호하는 역할도 했기 때문입니다.

     

    바사호가 가라앉은 스톡홀름 항구의 차갑고 어두우며 산소가 부족한 수중 환경에서는 목재의 부패가 비교적 느리게 진행되었습니다. 덕분에 선체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놀라울 정도로 많은 부분이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바닷속이 완벽한 보존고였던 것은 아닙니다. 목재 일부는 박테리아의 영향을 받았고, 선체를 연결했던 수천 개의 철제 고정물이 부식되면서 목재 내부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오늘날까지 바사호 보존 연구가 계속되는 이유입니다.

     

    배 아래에 터널을 뚫어 끌어올리다

    오랫동안 바닷속에 잠들어 있던 바사호의 운명이 바뀐 것은 20세기 중반이었습니다. 난파선을 찾아다니던 스웨덴의 안데르스 프란센(Anders Franzén)이 1956년 바사호의 위치를 찾아냈고, 곧 거대한 인양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바사 박물관에 전시된 1961년 전함 바사 인양 과정을 재현한 모형
    바사 박물관의 인양 작업 재현 모형. 침몰한 바사 아래로 케이블을 통과시킨 뒤 부유식 구조물과 폰툰을 이용해 선체를 단계적으로 들어 올렸던 과정을 보여줍니다. The original uploader was CsTom at Hungarian Wikipedia.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5

     

    문제는 17세기 목선을 어떻게 부수지 않고 들어 올리느냐였습니다. 잠수부들은 진흙 속에 묻힌 선체 아래로 여섯 개의 터널을 파고 그 사이로 강철 케이블을 통과시켰습니다. 케이블을 인양선에 연결한 뒤 배를 단계적으로 들어 올리는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1961년 스톡홀름에서 333년 만에 인양된 전함 바사와 인양 작업 현장
    1961년 4월 24일, 침몰한 지 333년 만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바사. 사진은 스톡홀름 카스텔홀멘 인근에서 진행된 인양 당시의 역사적인 현장을 보여줍니다. 출처 표기: Vasamuseet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그리고 1961년 4월 24일 오전 9시 3분, 바사호가 마침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628년 침몰한 지 정확히 333년 만이었습니다.

     

    하지만 물 밖으로 꺼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또 하나의 거대한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물을 머금고 있던 목재가 그대로 마르면 갈라지고 수축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존 전문가들은 목재 속 물을 대신할 물질로 폴리에틸렌글리콜(PEG)을 선택했습니다. 바사호는 오랜 기간 이 보존제를 분사하는 처리를 받았고, 이후에도 온도와 습도, 목재의 화학적 변화를 관찰하는 연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박물관에서 바라보는 바사호는 단순히 바다에서 건져 올린 오래된 배가 아닙니다. 17세기 조선 기술과 20세기 해양고고학, 현대 보존과학이 한 선체 안에서 만나는 거대한 문화유산입니다.

     

    3. 검은 배에 숨겨진 화려한 색과 조각

    지금의 짙은 갈색이 원래 모습은 아니었다

    스톡홀름 바사 박물관에 전시된 17세기 전함 바사의 화려한 선미 조각 장식
    전함 바사의 선미를 가득 채운 정교한 목조 조각. 왕실 문장과 사자, 인물상 등 수많은 장식은 바사가 단순한 군함을 넘어 17세기 스웨덴 왕권과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였음을 보여줍니다. 출처 표기: Murat Özsoy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박물관에서 바사호를 처음 보면 짙은 갈색의 거대한 목조 선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17세기에도 지금처럼 묵직하고 어두운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바사호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연구자들이 선체에 남아 있던 미세한 안료를 분석한 결과, 많은 조각이 금빛과 붉은색, 파란색, 녹색 등 강렬한 색채로 장식되어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460개의 조각이 전하는 왕의 메시지

    바사 박물관에 전시된 17세기 전함 바사의 화려한 채색 목조 조각 복원품
    바사를 장식했던 목조 조각의 원래 색채를 재현한 복원품. 왕실 문장을 중심으로 전사와 신화·성서 속 인물들이 등장하며, 오늘날 짙은 갈색으로 남은 바사가 1628년 당시에는 얼마나 화려한 군함이었는지 보여줍니다. 출처 표기: Peter Isotalo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바사호에는 약 460개의 조각과 300개의 장식물이 있습니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사자와 전사뿐 아니라 헤라클레스와 바다의 님프 같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인물, 구약성서의 다윗과 기드온까지 등장합니다.

     

    이 화려한 장식은 단순히 배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조각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강력한 시각적 언어였습니다.

     

    특히 사자와 영웅, 왕실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은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얼마나 강하고 용맹한 군주인지 보여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사호 전체가 바다 위를 움직이는 거대한 왕실 선전물이었던 셈입니다.

     

     

    바사 박물관에 전시된 전함 바사의 화려한 선미 장식을 원래 색채로 복원한 모형
    오늘날 바사의 선체는 짙은 갈색이지만, 1628년 당시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연구를 통해 확인된 안료를 바탕으로 재현한 모형에서는 붉은색과 금빛을 비롯한 강렬한 색채로 채색된 선미와 수많은 조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바사가 왕실의 권위와 스웨덴의 국력을 과시하는 ‘떠다니는 궁전’에 가까웠음을 보여주는 전시물입니다. 출처 표기: Peter Isotalo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박물관에서는 실제 선체의 조각과 함께 원래 색을 연구해 복원한 조각과 모형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짙은 갈색의 바사호 위에 붉고 푸르고 금빛으로 빛나는 조각들을 다시 입혀 상상해 보면, 1628년 스톡홀름 사람들이 바라보았던 이 배가 얼마나 압도적인 존재였는지 조금 더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4. 침몰선에서 발견된 사람들의 이야기

    거대한 전함 안에는 평범한 사람들도 있었다

    바사 박물관에 전시된 17세기 전함 바사의 내부 구조와 선원 생활을 재현한 단면 모형
    바사 내부를 단면으로 재현한 모형. 포갑판과 선원들의 생활 공간, 식량과 물자를 보관하던 공간까지 한눈에 보여주며, 수백 명의 선원이 거대한 목조 군함 안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전투를 준비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처 표기: Murat Özsoy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바사 박물관에 전시된 17세기 전함 바사 내부의 조리와 선원 생활을 재현한 단면 모형
    바사 내부의 선원 생활을 재현한 모형. 배 아래쪽에는 밸러스트가 실려 있고, 그 위 좁은 공간에서는 식사를 준비하고 식량과 물자를 옮기는 선원들의 일상이 이어졌습니다. 화려한 왕실 군함 뒤에 숨겨진 17세기 선상 생활을 엿볼 수 있습니다. 출처 표기: Peter Isotal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바사호를 바라보고 있으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선체와 대포, 화려한 조각입니다. 하지만 이 배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은 왕이나 전쟁이 아니라 그날 실제로 배에 올라탔던 사람들입니다.

     

     

    바사 박물관에 전시된 1628년 전함 바사 침몰 희생자의 유골
    바사에서 발견된 희생자의 유골. 인양 과정과 이후의 발굴 조사에서는 선체뿐 아니라 배 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유골과 개인 물품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러한 자료는 1628년 침몰 당시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연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습니다. 출처 표기: Murat Özsoy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1628년 바사호가 침몰하면서 약 30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1960년대 선체를 인양하고 내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는 최소 17명에 해당하는 사람의 유골이 발견되었습니다. 일부는 거의 완전한 형태였지만 여러 유골이 흩어져 있어 각각의 뼈를 한 사람의 것으로 구분하는 작업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현대 과학이 400년 전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되찾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연구자들은 뼈와 치아, DNA와 동위원소를 분석해 이들의 성별과 나이, 키와 건강 상태뿐 아니라 어떤 음식을 먹었고 어느 지역에서 성장했는지까지 추적하고 있습니다.

     

    남성으로 알려졌던 'G'는 여성이었다

    바사호에서 발견되어 과거 구스타브로 알려졌던 G의 두개골
    바사호에서 발견된 유골 G의 두개골. 오랫동안 남성 '구스타브'로 알려졌지만, 이후 DNA 연구를 통해 여성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Wolfgang Sauber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연구가 발전하면서 과거의 해석이 뒤집히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남성으로 분류되어 '구스타브(Gustav)'라고 불렸던 유골 G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골반 형태를 다시 조사한 연구자들은 이 사람이 여성일 가능성을 제기했고, 이후 DNA 분석에서 Y염색체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여성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게르트루드(Gertrud)'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 발견은 바사호에 탔던 사람들을 단순히 '17세기 선원들'이라고 생각했던 시선을 바꾸어 놓습니다. 첫 항해에는 승조원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타고 있었고, 배 안에서 발견된 유골과 유품은 그날의 모습을 보다 복잡하고 인간적인 이야기로 보여줍니다.

     

    작은 유품이 보여주는 17세기의 일상

    바사호에서는 사람의 유골뿐 아니라 수많은 생활용품도 발견되었습니다. 신발과 옷의 흔적, 빗과 숟가락, 동전과 도구처럼 한때 누군가 손에 쥐고 사용했던 물건들입니다.

     

     

    바사 박물관에 전시된 전함 바사 탑승자의 17세기 의복과 직물 조각
    바사에서 발견된 의복과 직물 조각. 1628년 침몰 당시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물건으로, 화려한 전함의 역사 뒤에 있었던 선원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출처 표기: Peter Isotal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화려한 왕실 조각과 거대한 청동 대포가 스웨덴이라는 국가의 야심을 보여준다면, 이런 작은 물건들은 그 거대한 역사 속에서 살아갔던 개인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바사 박물관에서는 배의 크기에만 압도되지 말고 주변의 작은 전시물에도 시선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17세기의 전함이 어느 순간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사람들이 먹고 자고 일했던 생활공간이었다는 사실이 그때 비로소 선명해집니다.

     

    5. 바사 박물관을 제대로 보는 관람 포인트

    처음에는 배 전체를 천천히 바라보세요

    스톡홀름 바사 박물관 전시실에서 내려다본 17세기 전함 바사의 목조 선체와 돛대
    바사 박물관의 상층 관람로에서 바라본 전함 바사. 여러 층의 관람 공간이 거대한 선체를 둘러싸고 있어 갑판과 돛대, 삭구까지 서로 다른 높이와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출처 표기: Richard Mortel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바사 박물관에 들어가자마자 조각이나 세부 전시부터 찾아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먼저 조금 거리를 두고 바사호 전체를 바라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길이 약 69m에 이르는 선체와 높게 솟은 선미를 한눈에 담아보면 왜 이 배가 당시 사람들에게 압도적인 존재였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래쪽에서는 육중한 선체와 포문을, 위층으로 올라가서는 갑판과 선미 장식을 살펴보면 같은 배가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바사 박물관 상층에서 내려다본 17세기 전함 바사의 갑판과 선수
    박물관 상층에서 내려다본 전함 바사의 갑판과 선수. 배를 둘러싸듯 여러 높이에 관람로가 마련되어 있어 거대한 선체뿐 아니라 갑판 구조와 돛대, 삭구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출처 표기: Peter Isotal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어두운 목선과 화려한 모형을 비교해 보세요

    바사 박물관에 전시된 17세기 전함 바사의 원래 색채를 재현한 축소 모형
    1628년 당시의 색채를 재현한 바사 모형. 오늘날 짙은 갈색으로 남은 실제 선체와 달리, 선미의 수많은 조각은 붉은색과 금빛을 비롯한 강렬한 색으로 장식되어 있는 왕실 군함어었습니다. 출처 표기: Anneli Karlsson / Vasamuseet / Wikimedia Commons / CC BY 4.0

     

    실제 바사호를 충분히 보았다면 복원 모형도 놓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현재의 선체는 오랜 세월과 보존 처리로 짙은 갈색을 띠지만, 모형에서는 연구를 통해 추정한 1628년 당시의 화려한 색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모습을 비교하면 바사호를 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거대한 고대 목선처럼 보였던 배가 사실은 붉은색과 파란색, 금빛 장식을 두른 왕실의 화려한 전함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영화와 해설을 활용하면 이야기가 더 잘 보입니다

    박물관에서는 바사호의 건조와 침몰, 인양 과정을 소개하는 약 17분 길이의 영화를 상영합니다. 배를 자세히 보기 전에 영화를 먼저 보면 이후 전시에서 만나는 대포와 조각, 인양 장비의 의미를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개인 관람객을 위한 가이드 투어도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으며, 무료 오디오 가이드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단순히 배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것보다 설명을 함께 들으며 관람하는 편이 바사호의 이야기를 훨씬 깊게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바사 박물관 방문 정보

    • 위치: Galärvarvsvägen 14, Djurgården, Stockholm
    • 운영시간: 6월~8월 08:30~18:00 / 9월~5월 10:00~17:00, 수요일 20:00까지
    • 성인 입장료: 5월~9월 240 SEK / 10월~4월 195 SEK
    • 18세 이하: 무료
    • 권장 관람시간: 약 90분
    • 교통: 트램, 버스, 페리 등을 이용해 유르고르덴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바사 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바사호를 보존하기 위해 박물관 내부는 약 18~20℃로 유지됩니다. 여름에도 실내에서는 다소 서늘하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얇은 겉옷을 준비하면 좋습니다. 또한 큰 가방은 박물관 내부에 반입할 수 없으므로 방문 전에 짐을 가볍게 정리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운영시간과 입장료는 시기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에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최신 정보를 다시 확인하는 것을 권합니다.

     

    333년의 시간을 건너온 한 척의 배

    바사호는 전투에서 승리한 전함도, 세계의 바다를 누빈 탐험선도 아닙니다. 오히려 첫 항해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침몰한 실패한 군함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짧은 항해가 바사호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바닷속에 잠든 선체에는 1628년의 조각과 생활용품, 배를 만들었던 기술과 그 안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흔적이 함께 남았습니다.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아 다시 거대한 선체 앞에 서면 처음 보았을 때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어두운 목재 위로 원래의 화려한 색을 상상하게 되고, 포문과 갑판 사이에서는 그날 배에 올랐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스톡홀름의 바사 박물관이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17세기의 역사를 유리 진열장 너머 작은 유물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333년의 시간을 건너온 실제 배 한 척과 마주하며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