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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단 하르툼에 위치한 수단 국립박물관 정면 외관과 입구
    하르툼의 수단 국립박물관. 소박한 외관과 달리 내부에는 고대 누비아와 쿠시 왕국의 방대한 고고학 유산이 이어진다. David Stanley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고대 이집트의 남쪽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오래된 세계가 있었습니다.

     

    나일강을 따라 오늘날의 수단으로 내려가면 선사시대의 정교한 토기에서 케르마 왕국, 거대한 왕묘와 이집트 신전, 그리고 마침내 이집트의 파라오가 된 누비아의 왕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르툼의 수단 국립박물관(Sudan National Museum)은 바로 이 긴 역사를 한 공간에서 보여주는 곳입니다. 이번 1부에서는 누비아 문명의 시작에서 출발해 케르마를 지나 제25왕조의 대표적인 쿠시 왕 타하르카까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1. 나일강 남쪽에서 시작된 또 하나의 문명

    누비아를 이집트의 변방으로만 보면 놓치는 것이 많다

    누비아를 처음 접할 때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할 생각이 있습니다. 이 지역을 단순히 고대 이집트의 남쪽 변방으로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나일강은 이집트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넓은 사막과 급류가 이어지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는 비옥한 땅이 나타납니다. 오늘날 수단 북부와 이집트 남부에 걸친 이 지역에서 수천 년 동안 여러 문화와 왕국이 성장했습니다.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북쪽으로는 이집트,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내륙, 동쪽으로는 홍해와 이어졌습니다. 금과 상아, 목재와 여러 귀중품이 오갔고 사람과 기술, 종교도 함께 이동했습니다.

     

    그래서 수단 국립박물관을 걷다 보면 어느 한쪽 문화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유물이 계속 등장합니다. 이집트적인 형식이 나타났다가 누비아의 전통과 만나고, 몇 세기가 지나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합니다.

     

    왕의 이름보다 먼저 남은 것은 토기의 무늬였다

    수단 국립박물관의 고대 토기와 유리 용기가 진열된 전시장
    수단 국립박물관의 토기 전시를 바탕으로 한 재현. 다양한 형태와 문양의 토기는 나일강 중류에서 이어진 생활문화와 제작 기술의 변화를 보여준다. Mallinson Architects & Engineers / Sudan National Museum 참고 / AI 재현

     

    전시장에서는 먼저 작은 토기 앞에서 잠시 멈춰보는 것이 좋습니다. 앞으로 거대한 왕상과 신전이 기다리고 있지만 누비아 문명의 시작을 이해하는 데에는 오히려 이런 그릇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수단 국립박물관의 신석기시대 누비아 토기를 참고해 기하학무늬가 잘 보이도록 재현한 전시수단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케르마 문화의 토기와 동물 형태 주전자, 기하학무늬가 장식된 고대 누비아 도기
    (좌) 누비아 신석기 토기 전시. 표면을 가득 채운 선과 기하학 문양에서 문자가 등장하기 전 나일강 중류 사람들의 뛰어난 장식 감각을 볼 수 있다. (우) 케르마 문화의 토기. 동물 형태의 주구와 정교한 흑색·적색 표면에서 고대 누비아 도공들의 조형 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Sue Fleckney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원본 참고 / AI 재현

     

    선사시대 누비아 토기에는 점과 선, 빗살무늬와 기하학 문양이 반복됩니다. 문자가 남아 있지 않은 시대에는 이런 무늬와 제작 방식이 하나의 기록입니다.

     

    어떤 흙을 골랐는지, 표면을 어떻게 다듬었는지, 사람들이 어떤 형태를 아름답다고 생각했는지까지 그릇 속에 남아 있습니다. 왕의 이름이 기록되기 훨씬 전부터 누비아 사람들은 흙 위에 자신들의 감각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2. 검고 붉은 토기가 들려주는 케르마 왕국

    누비아 최초의 강력한 왕국이 모습을 드러내다

    수단 국립박물관 소장 케르마 문화의 소머리 모양 주구와 인물 부조가 장식된 붉은색 토기
    케르마 KIII 고분 308호에서 출토된 토기. 주구 끝을 소의 머리처럼 만들고 몸체에 인물을 표현해 케르마 도공들의 독특한 조형 감각을 보여준다. 수단 국립박물관 소장(SNM 1123). Zunkir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이제 수단 고고학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 등장합니다. 케르마(Kerma)입니다.

     

    나일강 제3급류 부근에 자리한 케르마는 기원전 약 2500년부터 1500년까지 번성한 초기 쿠시 왕국의 중심지였습니다. 도시에는 거대한 진흙벽돌 건축물인 데푸파가 솟아 있었고 주변에는 궁전과 종교 공간, 주거지, 작업장과 광대한 묘지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런데 거대한 건축물보다 관람객의 눈을 먼저 붙잡는 것은 의외로 작은 그릇입니다.

     

     

    검은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특징인 고전기 케르마 토기와 비커를 전시한 재현 이미지
    고전기 케르마 토기를 한자리에 구성한 전시 재현. 검게 연마한 가장자리와 붉은 몸체의 강렬한 대비에서 고대 누비아 도공들의 높은 소성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British Museum EA55424 등 소장품 자료 참고 / AI 재현

     

    케르마 도기는 놀라울 정도로 얇고 매끈합니다. 붉게 연마한 몸체와 깊은 검은색의 윗부분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잘 만들어진 비커의 표면에는 은은한 광택이 살아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런 정교한 그릇을 물레에 의존하지 않고 손으로 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검은색과 붉은색을 또렷하게 나누려면 소성 과정에서 온도와 산소 공급을 세심하게 조절해야 했습니다.

     

    금이나 보석이 없어도 충분히 호화롭습니다. 케르마 문명을 대표하는 유물로 이 검고 붉은 그릇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왕의 힘은 거대한 무덤에서 드러났다

    케르마 박물관에 재현된 초기 케르마 봉분 무덤과 매장 인골, 토기, 소 두개골
    기원전 2500~2450년경 초기 케르마 봉분 무덤 재현. 매장자 곁에는 토기가 놓였고 주변에는 소 두개골인 부크라니아가 배치되어 당시 장례의례와 소의 상징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Matthias Gehricke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도시가 성장하면서 죽음의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케르마 동쪽에는 거대한 네크로폴리스가 형성되었고 왕권이 강해질수록 지배층의 봉분묘도 커졌습니다.

     

     

    케르마 동부 묘지의 초기 원형 봉분묘와 주변 무덤 구덩이
    케르마 동부 묘지의 초기 봉분묘를 바탕으로 한 재현. 작은 원형 무덤에서 시작된 장례문화가 훗날 거대한 왕묘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Matthieu Honegger / Excavations at Wadi El-Arab and in the Eastern Cemetery of Kerma 원본 참고 / AI 재현

     

    무덤 안에는 토기와 장신구, 청동기, 상아와 파이앙스 제품이 들어갔습니다. 왕묘 주변에서는 수많은 소의 두개골도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소는 재산이면서 신분과 의례를 표현하는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기원전 1750~1450년경 케르마에서 제작된 뼈 손잡이와 구리 칼날의 단검 두 점
    케르마 문화의 뼈와 구리 단검. 금속 가공 기술과 상류층의 무기 문화를 보여준다. 현재 영국박물관 소장(EA55442). Hans Ollerman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기원전 1700~1550년경 케르마 시대 원형 청동 거울과 금속 손잡이
    케르마 시대의 청동 거울. 정교한 금속공예는 기원전 2천년기 누비아 상류층의 생활문화와 높은 제작 기술을 보여준다. 현재 보스턴 미술관 소장. Hans Ollerman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단검과 거울, 장신구를 함께 보면 케르마가 고립된 사막 왕국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금속을 다루는 장인이 있었고 상류층은 정교한 물건을 사용했습니다. 이집트와 중앙아프리카, 홍해 방면에서 들어온 물품도 확인됩니다.

     

    무덤 하나를 열었는데 정치와 경제, 종교와 교역이 한꺼번에 보입니다. 그래서 고고학자에게 왕묘는 죽은 사람의 공간인 동시에 살아 있던 사회를 복원하는 거대한 기록입니다.

     

    3. 이집트 파라오가 누비아에 남긴 신전

    금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온 이집트

    수단 국립박물관 실내 전시실을 참고해 재현한 왕 석상과 고고학 유물 전시
    수단 국립박물관의 전시 공간을 바탕으로 한 재현. 왕 석상과 토기, 여러 고고학 유물을 따라가면 이집트와 누비아의 오랜 접촉이 한 공간에 겹쳐 보인다. Sudan National Museum 전시 사진 참고 / AI 재현

     

    이제 전시실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상형문자가 나타나고 파라오와 이집트 신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고대 이집트에게 누비아는 놓칠 수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금을 비롯한 자원이 풍부했고 아프리카 내륙으로 이어지는 나일강 교역로를 장악할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이었습니다.

     

    신왕국 시대에는 투트모세 1세를 비롯한 이집트 파라오들이 남쪽으로 세력을 확대했습니다. 요새와 행정 거점, 신전이 들어섰고 이집트의 왕권 체계와 종교, 상형문자와 미술이 누비아 사회와 강하게 접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누비아가 이집트 문화를 그대로 복제한 것은 아닙니다. 받아들인 요소를 지역 전통과 결합했고, 몇 세기 뒤에는 그 문화적 언어를 이용해 자신들이 이집트의 정통 파라오라고 선언하게 됩니다.

     

    박물관 문을 열고 나오면 실제 고대 신전이 기다린다

    수단 국립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이전 재건된 세므나 신전
    수단 국립박물관에 이전·재건된 세므나 신전. 누비아 수몰 위기에 따라 해체된 뒤 하르툼으로 옮겨 다시 세워졌다. Matthias Gehricke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수단 국립박물관에서 가장 뜻밖의 장면 가운데 하나는 건물 밖에서 만납니다. 정원으로 나가면 복제품이 아니라 누비아에서 실제로 옮겨온 고대 신전과 건축 유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단 국립박물관에 이전 재건된 쿰마 신전 내부의 부조와 상형문자
    수단 국립박물관에 옮겨진 쿰마 신전 벽면. 신과 파라오의 모습, 상형문자가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다. Clemens Schmille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부헨(Buhen), 세므나(Semna), 쿰마(Kumma)와 같은 유적의 일부가 이곳에 옮겨져 있습니다.

     

     

    1962년 수단 부헨 유적의 중왕국 시대 신전 터와 상형문자가 새겨진 석재
    1962년 촬영된 부헨 유적. 아스완 하이댐 건설로 수몰되기 전 기록된 모습으로, 신전 일부는 이후 수단 국립박물관으로 옮겨졌다. UNESCO / Rex Keating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IGO

     

     

    수단 국립박물관에 재건된 부헨 신전 내부의 채색 벽화와 상형문자
    수단 국립박물관에 재건된 부헨 신전 내부. 벽면에는 하트셉수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채색 장식이 남아 있다. David Stanley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20세기 아스완 하이댐 건설로 나일강 수위가 높아지면서 수많은 누비아 유적이 수몰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국제적인 구조 사업이 진행되었고 일부 신전은 석재를 하나씩 해체한 뒤 안전한 장소에서 다시 조립했습니다.

     

     

    수단 국립박물관에 이전 전시된 아크샤 신전의 인물 부조와 상형문자
    수단 국립박물관에 옮겨진 아크샤 신전 부조. 거대한 석재에 새겨진 인물과 상형문자를 통해 누비아에 남겨진 이집트 신전 미술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Clemens Schmille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그래서 이 정원은 단순한 야외 전시장이 아닙니다. 사라질 뻔했던 고대 누비아의 건축을 새로운 장소에서 다시 살려낸 거대한 문화유산 구조 현장입니다.

     

    부헨과 세므나에서는 군대와 신전이 함께 있었다

    나일강을 따라 고대 이집트와 누비아의 주요 도시와 부헨 세므나 쿰마 케르마 나파타 메로에를 표시한 역사 지도
    나일강을 따라 이어진 이집트와 누비아의 주요 거점을 재구성한 지도. 부헨·세므나·쿰마는 남부 국경과 나일강 교통을 통제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고대 이집트·누비아 역사 및 고고학 자료 참고 / AI 재구성 지도

     

    부헨은 나일강 제2급류 부근에 자리한 중요한 군사 거점이었습니다. 이집트는 이곳에 대규모 요새를 구축해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감시하고 남쪽으로 향하는 길을 통제했습니다.

     

    세므나와 맞은편의 쿰마 역시 강폭이 좁아지는 전략적 장소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에 군사시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신전도 함께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국경을 지키는 군사력과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종교, 그리고 파라오의 권위가 같은 공간에서 작동했습니다. 고대 국가의 국경은 오늘날 지도 위의 선보다 훨씬 복합적인 정치 공간이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여전히 이집트가 이야기의 중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다음 전시에서 역사의 방향이 완전히 뒤집힙니다.

     

    이번에는 누비아의 왕들이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4. 누비아의 왕들이 이집트의 파라오가 되다

    피예가 북쪽으로 진군하면서 역사의 방향이 바뀌었다

    쿠시 왕 피예의 이집트 원정과 승리를 기록한 승전비
    기원전 8세기 쿠시 왕 피예의 이집트 원정과 승리를 기록한 승전비. 게벨 바르칼 아문 신전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재 카이로 이집트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gypt United Tours 원본 사진 참고 / AI 재현

     

    수단 고대사를 처음 접한다면 아마 이 대목에서 가장 크게 놀라게 됩니다. 한때 이집트의 지배를 받았던 누비아에서 다시 강력한 쿠시 왕국이 성장했고, 기원전 8세기에는 쿠시 왕들이 북쪽으로 진출해 이집트를 장악합니다.

     

    그 시작을 상징하는 인물이 피예(Piye)입니다. 그의 승전비에는 이집트 원정과 승리가 긴 상형문자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비석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전쟁의 승리를 기록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피예는 자신을 외부에서 침입한 왕으로만 표현하지 않고 아문 신의 선택을 받은 정통 통치자로 내세웠습니다.

     

     

    이집트 제25왕조의 쿠시계 파라오를 표현한 석조 왕 두상
    네메스 머리장식과 우라에우스를 착용한 제25왕조 왕 두상 재현. 쿠시 왕들이 이집트의 파라오가 되면서 오래된 이집트 왕권의 상징을 적극적으로 계승했음을 보여준다. TheCollector 원본 사진 참고 / AI 재현

     

    피예에 이어 샤바카, 샤바타카, 타하르카, 탄타마니가 이집트 제25왕조의 파라오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누비아 파라오 또는 쿠시계 파라오로 불리며, 대중적으로는 검은 파라오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수단 국립박물관 소장 이집트 제25왕조의 쿠시 왕 탄타마니 전신 석상
    제25왕조 마지막 쿠시계 파라오 탄타마니의 전신 석상. 이집트 파라오의 전통적인 왕상 형식을 사용하면서 쿠시 왕권의 위엄을 표현했다. Bruce Allardice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 원본 사진 참고 / AI 재현

     

    역사의 방향이 흥미롭게 뒤집힙니다. 오랫동안 이집트가 남쪽으로 세력을 확대했다면 이제 누비아의 왕이 이집트 왕관을 쓰고 나일강 세계를 통치합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왕들이 이집트 문화를 없애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오래된 종교와 왕권 전통을 적극적으로 되살리며 자신들이 정통 파라오임을 강조했습니다.

     

    5. 게벨 바르칼과 타하르카, 쿠시 왕권의 절정

    산 하나가 왕국의 성지가 되다

    수단 게벨 바르칼의 거대한 사암 절벽 아래에 남아 있는 고대 신전 유적
    게벨 바르칼 절벽 아래의 고대 신전 유적. 나파타 시대 쿠시 왕들에게 이곳은 아문 신앙과 왕권이 결합된 핵심 성지였다. Ancient Temple of Pharaoh in Jebel Barkal, Sudan, Nubia / 원본 사진 참고

     

    쿠시 왕국을 이해하려면 게벨 바르칼(Jebel Barkal)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나일강 옆 평원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거대한 사암산은 고대인에게 단순한 자연 지형이 아니었습니다.

     

     

    수단 게벨 바르칼의 사암 절벽과 산기슭의 아문 신전 유적
    쿠시 왕국의 성산 게벨 바르칼과 산기슭 아문 신전. 피예와 타하르카를 비롯한 쿠시 왕들은 아문 신앙을 왕권의 중요한 기반으로 삼았다. Livius 원본 참고 / AI 재현

     

    게벨 바르칼은 아문 신앙과 연결된 성산으로 여겨졌고 쿠시 왕들은 이곳을 정치적·종교적 중심지로 발전시켰습니다. 산기슭에는 아문 신전을 비롯한 여러 신전과 왕궁이 들어섰고 주변에는 왕실 묘역이 형성되었습니다.

     

     

    수단 게벨 바르칼 기슭의 고대 쿠시 왕국 피라미드 유적
    게벨 바르칼 기슭의 고대 피라미드군. 아문 신앙의 성지였던 이곳은 나파타 시대 쿠시 왕국의 왕권과 장례문화를 함께 보여준다. Ancient pyramids in Jebel Barkal, Sudan, Nubia / 원본 이미지 참고 / AI 재현

     

    아문 신앙은 단순한 종교적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아문의 선택을 받은 왕이라는 개념은 왕권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강력한 정치적 언어였습니다. 그래서 게벨 바르칼에서는 산과 신전, 왕궁과 왕실 묘지가 하나의 거대한 권력의 풍경을 이룹니다.

     

    왕의 얼굴에는 이집트와 누비아가 함께 남아 있다

    우라에우스와 네메스 머리장식을 착용한 고대 이집트 누비아 양식의 스핑크스 석상
    왕권의 상징인 우라에우스를 착용한 스핑크스 재현. 쿠시 왕들은 이집트 왕실 미술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자신들의 왕권을 표현했다. Kemet Expert 원본 이미지 참고 / AI 재현

     

    제25왕조의 왕실 조각 앞에서는 얼굴과 머리 장식을 천천히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한 이집트 파라오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쿠시 왕실만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네메스 머리장식과 왕관, 한쪽 발을 앞으로 내딛는 자세와 우라에우스는 오래된 이집트 왕실 미술의 문법입니다. 그러나 얼굴 표현과 장신구에는 제25왕조 특유의 요소가 더해집니다.

     

     

    이집트 제25왕조의 쿠시 왕 타하르카를 표현한 석상 두상
    쿠시 왕이자 이집트 제25왕조 파라오였던 타하르카의 석상 두상 재현. 이집트 왕권의 전통과 쿠시 왕실의 특징이 결합된 제25왕조 미술을 보여준다. Aidan Dodson / The Past 원본 사진 참고 / AI 재현

     

    특히 주목할 부분은 왕의 이마입니다. 쿠시 왕실 도상에서는 두 마리의 우라에우스, 즉 두 코브라를 나란히 세운 장식이 특징적으로 나타납니다.

     

    모든 쿠시 왕상이 똑같은 형식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중 우라에우스는 제25왕조 왕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표지입니다.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왕권과 신성한 보호를 상징했던 코브라가 쿠시 왕실의 새로운 정치적 의미와 결합한 것입니다.

     

     

    수단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이집트 제25왕조의 쿠시 왕 타하르카 대형 석상
    수단 국립박물관의 타하르카 대형 석상을 참고한 재현. 타하르카는 제25왕조를 대표하는 쿠시계 파라오로 누비아와 이집트 양쪽에서 활발한 건축 사업을 펼쳤다. Boris Kester / Traveladventures 원본 참고 / AI 재현

     

    그리고 이 시기에서 이름 하나를 기억한다면 타하르카(Taharqa)를 추천합니다.

     

    기원전 7세기 제25왕조를 대표하는 타하르카는 이집트와 누비아 곳곳에서 대규모 건축 사업을 벌였습니다. 그의 조각에서는 이집트 파라오의 형식과 쿠시 왕실의 특징이 특히 선명하게 만납니다.

     

    타하르카와 쿠시 왕들을 보고 있으면 제25왕조를 단순한 정복 왕조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들은 오래된 이집트 왕권과 종교를 깊이 이해했고 그 전통을 이용해 자신들의 통치가 정당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피라미드 아래에는 왕의 사후세계가 준비되어 있었다

    쿠시 왕실의 이야기는 왕의 죽음 이후에도 이어집니다.

     

    엘쿠루와 누리 같은 왕실 묘역에는 기자보다 작고 가파른 피라미드가 세워졌고 그 아래에는 왕과 왕비의 사후세계를 위한 다양한 부장품이 들어갔습니다.

     

     

    타하르카 왕의 우샤브티를 중심으로 다양한 재질의 쿠시 왕실 우샤브티를 구성한 재현 이미지
    타하르카의 우샤브티를 비롯한 누비아 왕실 장례용 인형을 구성한 전시 재현. 죽은 왕을 대신해 사후세계에서 노동하도록 마련한 우샤브티는 쿠시 왕실이 이집트 장례 전통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문화 속에서 이어갔음을 보여준다.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Wikimedia Commons 등 자료 참고 / AI 재현

     

    대표적인 부장품이 우샤브티입니다. 작은 사람 모양의 인형으로, 사후세계에서 죽은 이를 대신해 노동하도록 무덤에 넣었습니다. 타하르카의 무덤에서도 여러 재질의 우샤브티가 발견되었습니다.

     

     

    누리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쿠시 왕 아마니나타킬렙테의 금제 장신구
    누리 피라미드 10호에 묻힌 쿠시 왕 아마니나타킬렙테의 미라에서 발견된 금제 장신구. 왕을 보호하는 장례 신앙과 쿠시 왕실 금속공예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Hans Ollerman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누리 왕묘에서는 왕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금제 장신구와 귀금속 공예품도 발견되었습니다. 작은 장신구 하나에도 신과 왕,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누리 왕묘에서 출토된 쿠시 왕 아스펠타의 금제 은제 용기와 왕실 장례용품
    쿠시 왕 아스펠타의 누리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왕실 보물. 금제 주전자와 은제 용기 등 정교한 부장품은 기원전 6세기 나파타 왕실의 화려한 장례문화와 귀금속 공예 기술을 보여준다. Museum of Fine Arts, Boston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아스펠타 왕의 금·은제 보물까지 보고 나면 쿠시 왕실 문화를 단순히 이집트의 모방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집니다. 이집트에서 받아들인 장례 전통 위에 누비아 왕실의 취향과 공예 기술이 더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25왕조의 이집트 지배가 끝난 뒤에도 쿠시 왕국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왕국의 중심은 점차 더 남쪽으로 이동했고 왕과 왕비의 모습, 신의 형태, 문자와 장식은 이전보다 훨씬 독자적인 방향으로 변해갑니다.

     

    마침내 나일강 동쪽 사막에 수십 기의 날카로운 피라미드가 솟은 도시가 등장합니다.

     

    메로에(Meroë).

     

    2부에서는 이 메로에의 피라미드와 강력한 왕실 여성들, 황금 장신구와 사자신 아페데마크,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문자에서 출발해 중세 누비아의 파라스 대성당까지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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