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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는 1902년 문을 연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Egyptian Museum)이 있습니다. 새로운 대이집트박물관(GEM)이 등장했지만, 이 분홍빛 건물에는 여전히 놓치기 아까운 고대 이집트의 걸작들이 남아 있습니다.
나르메르 팔레트에서 이집트 왕국의 시작을 읽고, 피라미드를 세운 파라오들의 얼굴과 왕실의 보물까지 만나보겠습니다. 유물 하나씩 따라가며 고대 이집트의 시간을 걷는 박물관 여행입니다.

1. 분홍빛 박물관은 어떻게 이집트 유물의 보물창고가 되었을까?
1902년, 유물을 위한 집이 만들어지다
19세기 이집트에서는 고대 유적의 발굴이 활발해지면서 수많은 유물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발굴한 유물을 어디에 보관하고,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유물들을 위한 제대로 된 집이 필요했습니다. 1895년 국제 설계 공모에서 프랑스 건축가 마르셀 두르뇽(Marcel Dourgnon)의 설계가 선정되었고, 1902년 타흐리르 광장에 지금의 박물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부터 고대 이집트 유물을 보존하고 전시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꽤 야심 찬 공간이었습니다. 흩어져 있던 유물을 한 곳에 모아 시대와 종류에 따라 보여줄 수 있는 본격적인 고고학 박물관이 탄생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집트 관광유물부는 이곳을 중동에서 가장 오래된 고고학 박물관으로 소개합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분위기는 더욱 선명해집니다. 반짝이는 최신 전시관이라기보다 20세기 초 고고학 박물관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듯합니다. 높은 천장 아래 석상과 석관이 줄지어 서 있고, 오래된 진열장에는 파피루스와 장신구가 촘촘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조금 낡고 빼곡한 풍경도 이곳에서는 단점만은 아닙니다. 수천 년 된 유물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면, 그 유물을 120년 넘게 품어온 건물이 함께 눈에 들어옵니다. 고대 이집트를 전시하는 박물관이 이제는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역사가 된 셈입니다.
2. 나르메르 팔레트, 이집트라는 나라가 시작되는 장면
황금도 보석도 아닌데 왜 이렇게 중요할까?

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눈여겨볼 작품 가운데 하나가 나르메르 팔레트(Narmer Palette)입니다. 처음 마주하면 조금 의외입니다. 황금도 없고 보석도 없습니다. 회녹색 돌판 하나가 왜 고대 이집트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히는 걸까요?
시간을 약 기원전 3100년 무렵으로 돌려보면 이유가 보입니다. 아직 거대한 피라미드도 세워지기 전, 이집트가 하나의 왕국으로 모습을 갖춰가던 시기에 만들어진 유물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파라오의 이집트’가 시작되는 장면에 가까운 작품인 셈입니다.

이제 사진을 조금 가까이 들여다보겠습니다. 한쪽 면에는 나르메르 왕이 적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곤봉을 치켜든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왕이 적을 제압하는 이 강렬한 자세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후 수천 년 동안 파라오의 힘과 승리를 보여주는 익숙한 이미지로 되풀이됩니다.

이번에는 왕의 머리 위를 보세요. 팔레트의 양면에서 나르메르는 서로 다른 왕관을 쓰고 등장합니다. 하나는 상이집트, 다른 하나는 하이집트와 연결되는 왕관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오랫동안 두 지역의 통합과 그 위에 선 왕의 권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왕 앞쪽의 매도 그냥 지나치기 아깝습니다. 매의 모습을 한 호루스(Horus)는 왕권과 밀접하게 연결된 신입니다. 왕과 적, 왕관과 신의 모습이 작은 돌판 안에 함께 들어가 있으니, 단순한 장식품이라기보다 당시 사람들이 왕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압축해 놓은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나르메르 팔레트의 진짜 매력은 화려함보다 ‘이후의 이집트가 이미 여기에서 보인다’는 데 있습니다. 신에게 선택받은 왕, 적을 제압하는 파라오, 왕관으로 드러나는 권력. 훗날 이집트 미술에서 수없이 만나게 될 표현들이 이 오래된 돌판에 벌써 등장합니다.
고대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그 거대한 피라미드보다 먼저 만들어진 왕의 이미지가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거대한 문명의 첫 장면이 생각보다 작은 돌판에 남아 있는 셈입니다.
3. 피라미드를 세운 파라오들의 얼굴을 만나다
피라미드에서는 무덤을 보고, 박물관에서는 주인을 본다

기자의 피라미드 앞에 서면 사람보다 건축물이 먼저 기억에 남습니다.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라는 이름보다 사막 위에 솟은 거대한 피라미드가 훨씬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 들어오면 시선이 반대로 움직입니다. 피라미드에서는 고개를 한껏 들어 올렸다면, 여기서는 작은 조각상의 얼굴까지 가까이 들여다보게 됩니다. 거대한 무덤 뒤에 가려져 있던 파라오들이 비로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순간입니다.

쿠푸, 가장 큰 피라미드의 주인은 놀랄 만큼 작다
첫 번째 주인공은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세운 쿠푸(Khufu)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과 연결되는 가장 유명한 초상 조각은 피라미드의 규모를 생각하면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로 작습니다. 높이가 불과 몇 센티미터인 상아상입니다.
작은 조각 속에서 쿠푸는 왕좌에 앉아 있습니다. 피라미드만 보고 상상했던 압도적인 군주의 모습과는 꽤 다른 만남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를 남긴 왕을, 우리는 손바닥만 한 조각을 통해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바로 이 크기의 역설이 재미있습니다. 기자에서는 수천 년을 버틴 거대한 돌무더기 앞에서 쿠푸의 권력을 상상했다면, 박물관에서는 작은 얼굴 하나를 들여다보며 그 사람을 상상하게 됩니다. 가장 큰 피라미드의 주인이 가장 작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남아 있습니다.
카프레, 왕좌에 앉은 파라오의 완성된 이미지

다음은 제2피라미드의 주인 카프레(Khafre)입니다. 쿠푸의 작은 상아상에서 이 좌상으로 넘어오면 분위기가 단번에 달라집니다. 단단한 석재로 빚어진 왕은 왕좌에 꼿꼿이 앉아 정면을 바라봅니다. 큰 동작 하나 없는데도 좀처럼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 얼굴입니다.
그런데 정면만 보고 지나가면 이 작품의 재미있는 장치 하나를 놓칩니다. 왕의 머리 뒤를 살펴보세요. 매의 모습을 한 호루스(Horus)가 날개를 펼쳐 카프레의 머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아 조금 옆으로 움직여야 비로소 눈에 들어옵니다.
호루스는 고대 이집트 왕권과 밀접하게 연결된 신입니다. 따라서 카프레는 단순히 왕좌에 앉은 정치적 통치자로 표현된 것이 아닙니다. 신의 보호를 받으며 질서를 유지하는 파라오라는 의미까지 조각 속에 담겨 있습니다.
피라미드가 왕의 권력을 돌과 규모로 보여준다면, 카프레 좌상은 같은 권력을 한 사람의 몸과 자세로 보여줍니다. 기자에서 거대한 건축물로 만났던 왕권이 박물관에서는 한 인물의 얼굴로 압축됩니다.
멘카우레 삼인상, 왕은 혼자가 아니었다

마지막은 제3피라미드의 주인 멘카우레(Menkaure)입니다. 이번에는 왕 혼자가 아닙니다. 멘카우레 삼인상에는 왕과 함께 하토르(Hathor) 여신과 이집트의 한 지역을 상징하는 여성 인물이 등장합니다.
세 인물은 따로 세워놓은 조각이라기보다 하나의 돌에서 함께 걸어나오는 듯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멘카우레는 한쪽 발을 앞으로 내딛고 있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놀라울 만큼 안정적입니다. 누가 중심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금세 알아볼 수 있습니다.
곁에 선 두 인물도 왕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단순한 장식은 아닙니다. 하토르 여신과 지역을 상징하는 인물을 왕과 함께 배치하면서 파라오의 권력이 신과 이집트의 땅에 연결되어 있다는 세계관을 한 장면에 담았습니다. 왕 한 사람의 초상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왕국의 질서를 이야기하는 조각입니다.
쿠푸에서 카프레, 멘카우레까지 따라오고 나면 기자의 세 피라미드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사막에서는 거대한 무덤으로 보였던 건축물이 박물관에서는 각기 다른 얼굴과 이야기를 가진 왕들에게 다시 연결됩니다.
기자에서는 피라미드를 올려다봤다면, 이곳에서는 그 피라미드의 주인을 바라봅니다. 유적지에서 만난 거대한 역사가 박물관 안에서 사람의 얼굴을 얻는 순간입니다.
이제 돌로 남은 왕들의 얼굴에서 시선을 조금 옮겨보겠습니다. 다음에는 황금빛 관과 장신구, 가구와 생활용품이 기다립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죽음 뒤의 삶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준비했는지 보여주는 보물들입니다.
4. 황금보다 흥미로운 파라오의 보물들
유야와 투야, 왕이 아니어도 이렇게 화려할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의 보물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파라오부터 떠올립니다. 하지만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는 왕이 아니면서도 놀라울 만큼 화려한 무덤을 남긴 부부가 있습니다. 유야(Yuya)와 투야(Thuya)입니다.

두 사람은 기원전 14세기 제18왕조 시대의 유력한 귀족이었습니다. 특히 딸 티예(Tiye)가 아멘호테프 3세의 왕비가 되면서 왕실과 매우 가까워졌습니다. 티예와 아멘호테프 3세 사이에서 훗날 아케나텐이 태어났으니, 유야와 투야는 파라오의 외조부모이기도 했습니다.

1905년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된 두 사람의 무덤에서는 관과 장례 가면, 가구, 상자, 전차를 비롯한 다양한 부장품이 나왔습니다. 왕릉이 아닌데도 상당수의 물건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발견 당시부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이 사타문(Sitamun) 공주의 이름이 남은 의자입니다. 시타문은 아멘호테프 3세와 티예의 딸이므로 유야와 투야에게는 손녀였습니다. 한 무덤에서 발견된 의자 하나가 왕실의 가족관계까지 이어주고 있습니다.

관 옆에 의자와 전차까지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 고대 이집트인이 생각한 무덤의 의미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죽은 사람을 위한 마지막 방이라기보다 다음 삶을 위해 짐을 꾸려놓은 공간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함께 묻었는지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삶도 조금씩 드러납니다. 어떤 지위에 있었고, 무엇을 사용했으며,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믿었는지가 물건 하나하나에 남아 있습니다.
프수센네스 1세, 잘 알려지지 않은 황금 파라오

조금 더 걸어가면 이름부터 다소 낯선 파라오를 만나게 됩니다. 프수센네스 1세(Psusennes I)입니다. 투탕카멘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은 결코 소박하지 않습니다. 프수센네스 1세는 제21왕조의 파라오로, 나일강 삼각주의 고대 도시 타니스(Tanis)에 묻혔습니다.

오늘날에는 금보다 친숙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고대에는 은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매우 귀한 재료였습니다. 황금 가면 옆에서 은빛 관을 바라보면 이 왕묘가 얼마나 특별했는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1939년 프랑스 이집트학자 피에르 몽테(Pierre Montet)가 이 지역을 발굴하면서 왕실 무덤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가운데 프수센네스 1세의 무덤은 고대에 완전히 약탈되지 않은 채 발견되어 황금 장례 가면과 관, 장신구를 비롯한 귀중한 왕실 유물을 남겼습니다.


특히 황금 장례 가면을 마주하면 잠시 투탕카멘이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두 왕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습니다. 투탕카멘보다 약 300년 뒤에 살았던 프수센네스 1세의 보물은 신왕국 이후에도 왕실의 장례 문화와 금속공예 전통이 얼마나 화려하게 이어졌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단한 보물이 왜 투탕카멘만큼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발견 시기도 한몫했습니다. 타니스의 왕실 무덤이 발되던 1939년, 세계의 관심은 고고학적 발견보다 유럽에서 시작되는 전쟁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1922년 투탕카멘 무덤 발견 때처럼 세계적인 열풀이 일어나기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래서 프수센네스 1세의 보물 앞에서는 조금 뜻밖의 발견을 하게 됩니다. 고대 이집트의 황금 이야기가 투탕카멘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보물보다 먼저 보이는 것은 사람들의 믿음이다
황금 가면과 은제 관, 장신구는 그 자체로 눈길을 끕니다. 하지만 유야와 투야의 의자와 전차까지 함께 보고 나면 질문이 조금 달라집니다. 이 많은 물건을 왜 죽은 사람과 함께 묻었을까요?
왜 얼굴을 가면으로 남겼을까요? 왜 관을 여러 겹으로 만들고, 몸에는 부적과 장신구를 놓았을까요? 왜 살아 있을 때 사용하던 물건까지 무덤에 넣었을까요?
그 답을 따라가면 결국 고대 이집트인의 사후세계관에 닿습니다. 죽음은 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몸을 보존하고 이름과 얼굴을 남기며 필요한 물건을 함께 묻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집트의 무덤에서 발견된 보물은 재산인 동시에 믿음의 흔적입니다. 황금의 무게보다 그 물건을 왜 무덤에 넣었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박물관의 보물은 훨씬 흥미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5. GEM 시대에도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을 가볼 만한 이유
그런데 투탕카멘과 람세스 2세는 어디에 있을까?


여기쯤 둘러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고대 이집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투탕카멘의 보물과 유명한 파라오들의 미라는 어디에 있을까요?
예전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을 기억한다면 더욱 헷갈릴 만합니다. 새로운 박물관들이 문을 열면서 이집트를 대표하는 주요 컬렉션의 전시 장소가 크게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투탕카멘의 방대한 유물 컬렉션을 보고 싶다면 이제 대이집트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 GEM)이 중심입니다. 기자 피라미드 인근에 세워진 GEM에서는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견된 수천 점의 유물을 현대적인 전시 공간에서 한 흐름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목적지가 달라지는 것은 왕실 미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람세스 2세와 세티 1세, 하트셉수트 등 유명 왕과 왕비의 미라는 국립이집트문명박물관(National Museum of Egyptian Civilization, NMEC)의 왕실 미라 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구분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투탕카멘 컬렉션은 GEM, 왕실 미라는 NMEC, 나르메르 팔레트와 고왕국 조각, 유야와 투야, 타니스 왕실의 보물과 오래된 박물관 자체의 분위기는 타흐리르의 이집트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 여행 동선을 잡기 쉽습니다.
새 박물관이 생겼는데도 이곳을 찾는 이유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생깁니다. “GEM이 생겼는데 굳이 오래된 박물관까지 가야 할까?”
GEM이 압도적인 규모와 현대적인 연출로 고대 이집트를 보여준다면,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의 매력은 조금 다릅니다. 나르메르 팔레트에서 시작해 고왕국의 왕과 귀족 조각, 유야와 투야의 부장품, 타니스 왕실의 보물까지 서로 다른 시대의 걸작을 예상치 못한 거리에서 만나는 재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오래된 박물관을 걷는 맛이 있습니다. 높은 천장과 오래된 진열장, 빼곡하게 놓인 석상 사이를 걷다 보면 최신 박물관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시간감각이 생깁니다.
새 박물관이 한 편의 잘 연출된 전시라면, 이곳은 오래된 고고학자의 서재에 들어온 듯합니다. 조금 복잡하고 투박한 대신 모퉁이를 돌 때마다 뜻밖의 유물이 나타납니다. 무엇을 보여줄지 완벽하게 설계된 공간과, 수많은 유물이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공간의 차이라고 할까요.
세 박물관을 모두 갈 필요는 없다
일정이 넉넉하다면 세 박물관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짧은 여행에서 무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엇을 가장 보고 싶은지에 따라 한두 곳을 고르는 편이 낫습니다.
투탕카멘과 웅장한 현대식 전시를 원한다면 GEM, 왕실 미라와 이집트 문명의 긴 흐름이 궁금하다면 NMEC, 시대를 넘나드는 고고학적 걸작과 오래된 박물관의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면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이 잘 맞습니다.
특히 기자 피라미드를 함께 본다면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은 더욱 흥미로워집니다. 사막에서는 거대한 왕의 무덤을 올려다보고, 박물관에서는 쿠푸와 카프레, 멘카우레의 얼굴을 마주합니다. 유적에서 보았던 역사가 박물관 안에서 사람의 얼굴을 갖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방문 전에 알아두면 좋은 관람 팁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은 타흐리르 광장에 있어 카이로 도심 일정과 연결하기 좋습니다. 운영 시간과 입장료는 변경될 수 있으므로 방문 직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최신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전시품이 워낙 많아 처음부터 모든 것을 보려고 하면 금세 지칩니다. 나르메르 팔레트, 고왕국의 왕과 귀족 조각, 유야와 투야의 부장품, 타니스 왕실 보물처럼 꼭 보고 싶은 작품 몇 점을 먼저 정해 두는 방식을 추천합니다. 그 작품들을 찾아가는 길에 예상하지 못했던 유물을 발견하는 것이 오히려 이 박물관을 보는 재미입니다.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을 대표하던 일부 유물은 이제 새로운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렇다고 타흐리르 광장의 오래된 분홍빛 건물이 빈 무대가 된 것은 아닙니다.
나르메르의 돌판에서 시작해 피라미드를 세운 왕들의 얼굴을 지나 유야와 투야의 생활용품과 타니스의 보물까지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익숙했던 ‘고대 이집트’라는 말이 수많은 사람과 시대의 이야기로 나뉘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박물관이 고대 이집트를 화려하게 펼쳐 보인다면,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은 그 오랜 시간 속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들어가게 만드는 곳입니다. 120년 넘게 유물을 지켜온 이 오래된 박물관을 여전히 찾아갈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