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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 부드바를 떠올리면 아드리아해와 성벽으로 둘러싸인 올드타운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 오래된 돌길 아래에는 지금 보이는 도시보다 훨씬 오래된 부드바가 숨어 있습니다.
부드바 도시 박물관에 들어서면 그 시간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도기와 금 장신구, 일리리아 전사의 청동 투구, 로마인의 유리병과 모자이크까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전시장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2,500년이 넘는 도시의 시간을 층층이 걷게 됩니다.
화려한 금 장신구는 조금 뒤에 만나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발밑을 살펴보는 편이 좋겠습니다. 부드바의 오래된 이야기는 뜻밖에도 호텔 공사장의 흙 속에서 다시 시작됐습니다.
1. 올드타운 아래에서 발견된 또 하나의 부드바
호텔을 짓다가 2천 년 전 공동묘지를 만나다


1938년, 올드타운과 스파스 언덕 사이에서 호텔 아발라의 기초를 파던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새 호텔이 들어설 자리 아래에 고대의 무덤들이 잠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뒤 1950년대 후반 추가 발굴이 이루어졌고, 1979년 몬테네그로 해안을 강타한 대지진은 역설적으로 부드바의 더 오래된 모습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습니다. 지진 이후 진행된 대규모 조사에서 헬레니즘·로마·후기 고대에 걸친 네크로폴리스가 본격적으로 확인됐습니다.
무덤에서는 금 장신구와 무기, 도기, 유리 용기, 동전처럼 2천 년 넘게 땅속에 묻혀 있던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오늘 박물관에서 만나는 고고학 컬렉션의 중요한 토대가 된 유물들입니다.
조금 아이러니합니다. 현대적인 관광도시를 만들기 위해 호텔을 짓다가, 그 아래에서 고대 부드바가 모습을 드러냈으니까요. 그래서 이 박물관은 왕과 영웅의 보물창고라기보다 도시가 오랫동안 땅속에 보관해 두었던 기억을 한 점씩 꺼내 보여주는 장소에 가깝습니다.
돌과 유리로 남은 로마인의 마지막 자리

박물관의 아래층 라피다리움에서는 로마 시대의 석제 유골함과 묘비가 관람객을 맞습니다. 사진 속 유물은 특히 눈여겨볼 만합니다. 묵직한 돌 안에 놀랄 만큼 섬세한 유리 용기가 함께 남아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화장한 뒤 유골을 용기에 수습하는 장례 방식이 널리 사용됐습니다. 부드바의 네크로폴리스에서도 이러한 장례 문화를 보여주는 유골함과 여러 형태의 묘표가 발견됐습니다. 원뿔형 키푸스(cippus), 판 형태의 스텔레(stela), 제단을 닮은 석조 기념물 등 죽은 이를 기억하는 방법도 다양했습니다.

옆의 비문도 그냥 오래된 돌이라고 지나치기에는 아깝습니다. 표면에는 고대 그리스어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글자를 모두 읽지 못하더라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부드바가 로마인이 오기 전부터 그리스 문화와 지중해 교역망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금빛 보물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도시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곳에서는 죽은 사람을 위해 남겨둔 물건들이 오히려 살아 있던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을 가장 오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바닥 아래에서 로마의 거리가 나타나다

이제 시선을 진열장에서 발밑으로 내려보겠습니다. 박물관 건물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석판을 이어 만든 로마 시대 포장도로가 발견됐습니다.
박물관 측은 이 유구를 고대 부드바의 주거 구역이 오늘날 올드타운이 자리한 공간까지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설명합니다. 1979년 지진 이후 이루어진 조사에서도 중세 도시 아래에서 고대의 거리와 건축물 흔적이 확인됐습니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진열장만 보고 걸으면 조금 손해입니다. 고대 도시의 유물을 보러 들어왔는데 박물관 자체가 고대 도시 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리스와 일리리아가 만난 부드바, 도기와 투구가 말을 건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전시장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묵직한 돌 대신 손에 들고 사용했던 그릇과 금속기가 등장합니다. 여기서부터 부드바는 단순한 고대 도시가 아니라 아드리아해를 통해 여러 문화가 오가던 교역의 무대였다는 사실이 선명해집니다.
무덤에서 발견된 헬레니즘 시대의 그릇
진열장에는 기원전 4~2세기의 헬레니즘 도기가 이어집니다. 박물관 컬렉션에는 검은 바탕에 밝은 색의 식물무늬와 장식을 더한 그나티아(Gnathia) 계열 도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름은 이 유형이 처음 알려진 남부 이탈리아의 고대 도시 그나티아에서 유래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그릇들이 단지 장례용으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음식을 담고 술을 따르며 일상에서 사용하던 용기들이 죽은 이와 함께 무덤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사진 속 작은 그릇과 등잔을 보고 있으면 거대한 무역선부터 떠올릴 필요도 없습니다. 남부 이탈리아와 그리스 세계에서 유행하던 형태와 제작 문화가 이 작은 해안도시까지 도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부드바가 얼마나 넓은 지중해 교류망에 연결돼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청동 투구 하나에 그리스와 일리리아가 함께 남았다

그릇을 따라가던 시선이 여기서 멈춥니다. 볼을 보호하는 판인 파라그나티드(paragnathid)가 길게 내려오는 일리리아-그리스형 청동 투구입니다.
이름부터 흥미롭습니다. 형태는 그리스 세계에서 발전한 군사 장비의 전통과 연결되지만, 부드바 박물관은 이 투구를 현지 일리리아 전사가 사용했던 장비로 설명합니다.
고대의 문화는 오늘날 국경선처럼 깔끔하게 나뉘지 않았습니다. 바다를 건너 물건이 움직이면 기술도 움직였고, 무역이 이어지면 복식과 무기, 취향도 함께 이동했습니다. 이 투구는 바로 그 복잡한 교류를 청동 한 장에 남겨놓았습니다.
표면의 녹과 상처를 보고 있으면 먼저 전쟁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박물관에서 이 투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전투만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났던 고대 아드리아해의 풍경까지 함께 보여줍니다.
사자 머리를 단 청동 식기, 실용품에도 품격은 필요했다

투구 옆에서 청동 식기를 보면 같은 금속이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줍니다. 박물관 컬렉션에는 접시 형태의 파테라, 잔, 시툴라와 작은 국자 형태의 심풀룸, 그리고 사자 머리를 장식한 묵직한 손잡이가 남아 있습니다.
특히 심풀룸은 종교 의례에서 술을 떠 제의용 그릇에 따르는 데 사용되던 도구입니다. 따라서 이 금속기들을 모두 평범한 식탁용품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일상의 식음료 문화와 종교 의례가 함께 얽혀 있던 물건들입니다.
사자 머리까지 붙인 손잡이를 보면 실용성만 생각한 물건도 아니었다는 사실이 금세 드러납니다. 청동을 다루는 기술과 장식 수준, 다양한 용도의 금속기가 함께 출토됐다는 사실은 고대 부드바에 상당한 경제력을 지닌 사람들이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여기서 전시장의 분위기가 다시 바뀝니다. 지금까지 청동의 묵직한 세계를 보았다면, 다음 진열장에서는 훨씬 작고 섬세한 물건들이 기다립니다. 옷을 여미던 은제 피불라에서 시작해 헬레니즘 금세공의 정점이라 할 만한 장신구까지 이어집니다.
3. 금 장신구 앞에서는 잠시 천천히 걸어도 좋다

청동 투구와 식기의 묵직한 세계를 지나면 전시장은 갑자기 섬세해집니다. 이제부터는 가까이 다가가야 제대로 보이는 유물들입니다. 옷을 여미던 작은 피불라에서 시작해 부드바 박물관이 자랑하는 헬레니즘 금 장신구까지 이어집니다.
필리그리 은제 피불라, 옷핀이 장신구가 되다

피불라(fibula)는 몸에 두른 옷감을 고정하던 고대의 브로치입니다. 기능만 놓고 보면 오늘날의 안전핀과 닮았지만, 부드바의 피불라를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박물관에 남은 피불라는 은으로 만들고 가느다란 금속선을 꼬아 붙이는 필리그리 기법을 사용했으며, 반귀석 장식까지 더했습니다. 옷을 고정하는 기능과 몸을 꾸미는 장신구의 역할을 동시에 맡았던 것입니다.
작은 물건이지만 고대인의 옷차림을 상상하기에는 꽤 좋은 단서입니다. 옷을 여미는 핀 하나에도 취향과 경제력, 금속공예 기술이 함께 매달려 있습니다.
헬레니즘 금제 귀걸이, 작은 장신구에 기술을 쏟아붓다


그리고 드디어 부드바 도시 박물관의 하이라이트 가운데 하나인 헬레니즘 금 장신구가 등장합니다.
박물관의 금 장신구 컬렉션에는 필리그리, 과립세공, 타출과 조각 등 여러 금세공 기법이 사용됐습니다. 가느다란 금선을 꼬고 작은 금 알갱이를 붙여 무늬를 만들었으며, 일부 귀걸이에는 동물 머리 모티프와 반귀석 장식도 더했습니다.
사진으로 보면 제법 커 보이지만 실제 장신구의 세부 장식은 매우 작습니다. 금을 귀한 재료로 사용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작은 표면을 장인의 기술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활용했습니다.
박물관은 이 장신구들의 양식과 제작 수준을 근거로 남부 이탈리아의 이름난 고대 금세공 공방과 연결되는 작품으로 설명합니다. 앞에서 보았던 그나티아 계열 도기와 함께 생각하면 흥미롭습니다. 바다 건너 이동한 것은 상품만이 아니라 디자인과 제작 기술, 유행이기도 했습니다.
헬레니즘 금반지, 손가락 위에도 이야기를 새겼다

귀걸이 옆에는 묵직한 금반지가 기다립니다. 부드바의 헬레니즘 금반지 가운데에는 장식석을 끼우고 그 표면에 인물이나 상징을 새긴 작품들이 있습니다.
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이 컬렉션에는 호박을 비롯한 반귀석과 유리 페이스트 등을 금과 결합한 장신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금속과 색이 다른 재료를 함께 사용하면서 장식 효과를 높인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형태입니다. 2천 년을 훌쩍 넘긴 물건인데도 지나치게 낯설지 않습니다. 재료와 제작 방식은 고대의 것이지만 아름다운 돌을 골라 금으로 감싸고 손가락에 끼워 자신을 표현하려는 마음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제우스와 가니메데스, 신화가 금빛 장신구가 되다
이제 조금 더 가까이 보겠습니다. 부드바 도시 박물관의 헬레니즘 금 장신구 가운데에서도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품입니다.

대형 금제 귀걸이와 브로치에는 독수리가 발톱으로 소년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박물관은 이 장면을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가니메데스 이야기와 연결합니다.
가니메데스는 아름다운 트로이의 왕자로 전해집니다. 신화에서 제우스는 독수리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를 올림포스로 데려가고, 가니메데스는 그곳에서 신들에게 술을 따르는 역할을 맡습니다.
긴 신화 한 편이 작은 금 장신구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독수리와 소년이라는 몇 개의 형상만으로 당시 사람이라면 이야기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작은 펜던트 하나에 상징을 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이쪽은 재료도 금이고, 이야기도 제우스입니다.


이 장신구들이 중요한 이유는 금의 양 때문만은 아닙니다. 헬레니즘 세계의 신화와 상징, 남부 이탈리아와 이어진 금세공 기술, 그리고 그런 물건을 받아들일 만큼 넓은 교류망을 가진 고대 부드바가 한꺼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진열장에서는 조금 천천히 걸어도 좋습니다. 금빛보다 먼저 살펴볼 것은 그 작은 표면에 얼마나 많은 기술과 이야기를 담아냈는가입니다.
4. 로마 시대 부드바에서는 작은 생활용품도 시간을 기록한다
테라코타 소상, 작은 인물들이 남긴 고대인의 취향

금빛 장신구를 지나면 작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테라코타(terracotta)는 점토로 형태를 만든 뒤 구워낸 것으로,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소상과 생활용품을 제작하는 데 널리 사용됐습니다.
부드바의 헬레니즘 테라코타에는 여성의 몸과 머리카락, 흘러내리는 옷주름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박물관 역시 인체의 우아한 자세와 드레이퍼리, 머리 표현을 이 소상들의 특징으로 설명합니다.
크기가 작아 처음에는 장난감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상은 고대인의 미적 취향과 신앙, 장례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거대한 조각상이 역사의 공식적인 얼굴이라면, 이런 작은 테라코타는 조금 더 사적인 표정을 보여줍니다.
로마의 유리병, 2천 년 전에도 용도에 따라 모양이 달랐다

이번에는 유리 진열장 앞에서 잠시 멈춰보겠습니다. 박물관에서도 가장 수가 많은 부장품 가운데 하나가 유리병입니다.
작은 향유병과 발사마리움, 암포리스코스, 컵, 잔, 주전자와 그릇까지 형태가 놀랄 만큼 다양합니다. 어떤 것은 손바닥에 들어올 만큼 작고, 어떤 것은 손잡이까지 따로 붙였습니다.
이런 용기에는 향유와 화장품을 비롯해 용도에 따라 여러 액체를 담았습니다. 일부는 생전에 사용되다가 죽은 이와 함께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유리병을 자세히 보면 로마인의 장례문화뿐 아니라 일상에서 무엇을 담고 보관했는지도 엿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재료입니다. 청동과 돌은 2천 년을 견뎠다고 해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이렇게 얇은 유리가 전쟁과 지진, 매장과 발굴을 거쳐 지금까지 남았습니다. 표면에 스민 푸른빛과 옅은 녹색은 세월의 흔적까지 유리 안에 붙잡아 둔 듯합니다.
로마 모자이크, 바다를 집 안으로 들여오다

이번에는 진열장 안의 작은 물건이 아니라 공간 전체를 장식했던 유물을 보겠습니다. 물고기와 문어 같은 해양 생물이 남아 있는 로마시대 모자이크입니다.
모자이크는 작은 돌이나 재료 조각을 하나씩 맞춰 그림과 무늬를 만드는 장식입니다. 휴대하는 물건이 아니라 건축물의 바닥과 벽을 꾸미는 데 사용됐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어떤 공간에서 생활했는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사진을 보면 소재도 부드바답습니다. 바다 생물이 바닥을 헤엄칩니다. 아드리아해를 바로 앞에 두고 살아가던 도시에서 바다가 창밖의 풍경으로만 머물지 않고 생활공간의 장식으로까지 들어온 것입니다.
투구가 전사를 보여주고 장신구가 사람의 몸을 보여주며 유리병이 일상의 작은 습관을 보여준다면, 모자이크는 그 사람들이 어떤 공간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는지까지 보여줍니다. 이제 고대 부드바가 유물 몇 점의 집합이 아니라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꾸미며 살았던 도시로 조금씩 되살아납니다.
5. 박물관을 나오면 올드타운의 돌길이 다르게 보인다
화려한 고대 도시가 지나간 자리에도 삶은 계속됐다
로마 전시가 끝났다고 부드바의 역사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서부터 전시가 조금 조용해집니다.
서기 3~4세기에 접어들면서 부드바에서도 경제적 변화가 나타납니다. 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고급 수입품이 줄어들고 도시의 인구도 감소했습니다. 후기 고대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물건 역시 작은 허리띠 버클과 청동품, 도기 조각처럼 앞선 시대보다 소박합니다.
그렇다고 도시의 시간이 멈춘 것은 아닙니다. 중세 유물 가운데에는 표면을 긁어 무늬를 만드는 스그라피토 기법의 그릇과 접시가 남아 있습니다. 이런 도기는 부드바가 중세에도 남쪽 지역과 이어지는 교역망 안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도시를 지배한 세력도, 사람들이 사용한 언어와 물건도 계속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오래 남았습니다. 부드바는 바다를 통해 바깥세상과 연결된 도시였습니다.
마지막 층에서는 역사가 다시 사람의 집으로 들어온다
마지막 층에 올라오면 시대뿐 아니라 전시의 분위기 자체가 달라집니다. 고대의 무덤과 신화가 사라지고 가구와 의복, 어업 도구와 항해 장비가 등장합니다.

도시 생활을 보여주는 공간에는 19세기의 의자와 거울, 찬장과 벽시계가 놓여 있고 18~19세기의 도자기와 조명기구도 남아 있습니다. 고대 금 장신구를 보다가 불과 몇 걸음 만에 누군가의 거실처럼 꾸며진 공간에 도착하니 시간의 거리가 갑자기 가까워집니다.

전통 복식과 직물도 이 지역의 생활사를 이어줍니다. 화려한 자수와 장식은 옷이 몸을 보호하는 생활용품인 동시에 지역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부드바에서 바다를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박물관에는 어업 도구와 함께 옥탄트, 기압계, 배의 속도를 측정하던 로그, 19세기 선박용 랜턴과 선박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물건들을 따라가다 보면 부드바 사람들에게 아드리아해가 아름다운 풍경이기 전에 일하고 이동하며 생계를 꾸려야 했던 생활의 공간이었다는 사실이 보입니다.
박물관의 시작을 떠올려보면 재미있습니다. 아래층에서는 2천 년 전 무덤에서 나온 그릇과 장신구를 보았고, 마지막 층에서는 얼마 전까지 누군가의 집과 배에서 사용했던 물건을 만납니다. 시대는 크게 달라졌지만 사람은 계속 먹고, 입고, 꾸미고, 일하고, 바다를 건넜습니다.
일리리아인과 그리스인, 로마인과 중세의 주민들, 그리고 아드리아해를 오가던 상인과 선원들이 같은 장소에 서로 다른 시간을 남겼습니다.
부드바 도시 박물관은 거대한 국립박물관처럼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곳은 아닙니다. 오히려 작은 공간이어서 이야기가 더 선명합니다. 한 층씩 올라가는 동안 한 도시의 2,500년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이제 박물관 문을 나서 다시 올드타운의 좁은 돌길을 걸어보겠습니다.
조금 전까지 평범하게 보였던 돌담 아래에는 헬레니즘 시대의 그릇이 묻혀 있었고, 누군가는 금 귀걸이를 하고 이 거리를 걸었으며, 일리리아 전사는 청동 투구를 썼습니다. 로마인은 유리병을 사용하고 바다 생물을 모자이크로 새겼습니다. 그 위에 중세의 도시가 들어섰고 다시 오늘의 부드바가 자리했습니다.
그래서 박물관을 보고 난 뒤의 올드타운은 들어오기 전과 조금 다릅니다. 오래된 석조 건물이 예뻐서가 아니라 그 아래에 얼마나 많은 도시가 차곡차곡 겹쳐 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박물관은 과거를 진열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문을 나선 뒤 지금 보고 있는 풍경까지 새롭게 읽게 합니다. 부드바 도시 박물관이 작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