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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은 대개 화려하지 않습니다. 작은 석기와 뼈 조각뿐이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 사냥하고 불을 피우며 이 땅에서 살아갔던 아주 오래된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민스크의 벨라루스 국립 역사 박물관에서는 이 작은 흔적에서 출발해 청동과 철, 장신구와 동전, 중세 도시의 보물까지 만나게 됩니다. 투박한 돌도구가 점차 정교하고 화려한 유물로 바뀌어가는 길을 따라, 벨라루스의 오래된 시간을 함께 걸어보겠습니다. 

     

    고대인의 작은 흔적에서 시작해 중세의 보물에 도착하는 여행, 벨라루스의 오래된 시간이 이제 진열장 안에서 하나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벨라루스 민스크 카를 마르크스 거리 12번지에 위치한 벨라루스 국립 역사박물관 정문과 외관
    벨라루스 국립 역사박물관의 정문. 민스크 도심의 역사적인 건물을 사용하고 있으며, 입구 앞에 놓인 대형 대포가 박물관의 성격을 한눈에 보여준다. Hanna Zelen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1. 돌과 뼈에 남은 흔적, 벨라루스의 첫 사람들을 만나다

    벨라루스 국립 역사 박물관 선사시대 생활상과 고고학 유물을 보여주는 전시실
    벨라루스 국립 역사 박물관의 선사시대 전시. 석기와 토기 등 고고학 유물과 함께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재현해 보여준다. National Historical Museum of the Republic of Belarus / 원본 사진 참고 / AI 보정·재현

     

    첫 전시실에 들어서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소박한 풍경을 만나게 됩니다. 박물관의 스타 유물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석기와 뼈 도구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고고학에서는 크기가 곧 중요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작은 물건들이 인간의 행동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돌멩이가 도구가 되는 순간

    벨라루스 아비다비치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 뾰족개와 긁개형 석기
    벨라루스 아비다비치(Abidavichy)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 석기. 날카롭게 다듬은 뾰족개와 긁개형 도구는 돌을 깨뜨리고 날을 가공해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석기 제작 기술을 보여준다. 이미지는 원본 유물을 바탕으로 전시 형태를 재현했다. Р. Маісей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AI 재현

     

    가장 먼저 눈여겨볼 것은 구석기 시대의 석기류입니다. 자연적으로 깨진 돌과 사람이 의도적으로 만든 석기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차이가 있습니다. 날을 만들기 위해 일정한 방향으로 반복해서 돌을 떼어낸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벨라루스 국립 역사박물관의 선사시대 인류 생활 디오라마와 석기·뼈·뿔 도구 전시 복원 이미지
    벨라루스 국립 역사박물관의 선사시대 전시를 바탕으로 재현한 이미지. 초기 인류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디오라마를 중심으로 타제석기와 뼈·뿔로 만든 도구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Homoatrox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AI 재현

     

    손에 쥐고 사용한 석기, 날카로운 돌날과 긁개, 찌르개 같은 도구들은 당시 사람들의 하루를 상상하게 합니다.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자르고 나무를 다듬는 일 가운데 상당 부분을 이런 작은 돌날이 담당했습니다.

     

     

    벨라루스 국립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선사시대 석제·뼈제 첨두기와 각종 도구를 복원한 전시 이미지
    벨라루스 국립 역사박물관의 선사시대 도구 전시. 다양한 형태의 첨두기와 날을 세운 도구를 통해 사냥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제작했던 당시의 기술을 살펴볼 수 있다. - francis-maks / Wikimedia Commons / 원본 이미지 AI 재현

     

    시간이 중석기와 신석기로 넘어가면 도구가 한층 작고 정교해집니다. 작은 돌날과 화살촉은 사냥 방식이 달라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멀리서 사냥감을 노릴 수 있게 되면서 인간과 동물 사이의 거리가 달라졌고, 그것은 생존 방식의 변화이기도 했습니다.

     

     

    벨라루스 국립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선사시대의 다양한 석제 도끼와 자루 구멍이 뚫린 돌도끼
    벨라루스 국립 역사박물관의 선사시대 돌도끼 전시. 자루를 끼우기 위해 구멍을 뚫고 표면을 매끄럽게 연마한 다양한 석제 도구에서 당시의 정교한 석기 제작 기술을 살펴볼 수 있다. 원본: francis-maks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AI 재현

     

    여기에 돌도끼와 갈돌·연마석 같은 유물이 더해지면 생활의 풍경은 훨씬 구체적으로 변합니다. 나무를 자르고 식물을 가공하고 생활 공간을 만드는 일이 사냥만큼 중요해졌다는 사실이 도구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토기 한 조각이 알려주는 커다란 변화

    벨라루스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 장식의 점토 토기
    벨라루스의 신석기 시대 점토 토기. 표면을 반복적인 사선 무늬로 장식했으며, 토기의 형태와 제작법, 문양은 선사시대 집단의 생활과 문화적 특징을 구분하는 중요한 고고학 자료가 된다. 원본 Homoatrox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AI 전시 재현

     

    그리고 어느 순간 진열장에 토기가 등장합니다.

     

    토기는 생각보다 중요한 발명입니다. 음식을 담고 물을 저장하고 불 위에서 조리할 수 있다는 것은 생활의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깨진 토기 조각에 남은 무늬만으로도 고고학자들은 서로 다른 집단과 시대를 구분합니다.

     

    화려한 왕관은 아직 없습니다. 금화도 은제 장신구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전시실을 지나고 나면 사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냥하고, 음식을 만들고, 추위를 견디고, 가족과 함께 살아갔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다음 전시실에서 그들의 손에는 전혀 다른 재료가 들어옵니다. 돌보다 훨씬 다루기 까다롭지만, 제대로 만들면 훨씬 다양한 물건으로 변신하는 재료입니다. 바로 금속입니다.

     

    2. 청동과 철이 등장하자 삶의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청동기와 철기시대로 들어오면 진열장의 색부터 달라집니다. 회색과 갈색 일색이던 석기 사이로 녹청이 밴 금속이 등장합니다.

     

    금속은 단순히 더 단단한 도구를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광석을 구하고, 높은 온도를 만들고, 금속을 녹이고, 주형에 부어 형태를 만드는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한 사람이 혼자 익히기 어려운 지식이 축적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도끼와 창끝에도 기술의 역사가 숨어 있다

    벨라루스에서 출토된 멜라르형 장식 청동 켈트 도끼
    벨라루스에서 발견된 장식 청동 켈트(celt) 도끼. 속이 빈 소켓에 나무 자루를 끼워 사용하던 형태로, 몸체에는 간결한 선 장식이 남아 있다. 청동기 시대 금속 주조와 도구 제작 기술의 발달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Чаховіч Уладзіслаў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AI 전시 재현

     

    청동 도끼와 창끝 같은 유물은 그래서 단순한 무기로만 볼 필요가 없습니다. 표면의 형태와 날의 두께, 손잡이와 결합하는 방식에는 당시 금속을 다루던 장인의 경험이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벨라루스 국립대학교 역사학부 박물관에 전시된 후기 철기시대와 초기 중세의 철제 칼
    벨라루스에서 출토된 후기 철기시대와 초기 중세의 철제 칼. 크기와 형태가 서로 다른 칼날을 통해 당시 철을 단조해 생활도구와 절삭 도구를 제작했던 기술을 살펴볼 수 있다. - Dzmitry Samakhvalau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AI 전시 재현

     

     

    리빈스크 박물관에 전시된 철기시대 철제 낫과 칼, 송곳 및 생활도구
    철기시대의 철제 농기구와 생활도구. 왼쪽의 굽은 철제 낫을 비롯해 여러 형태의 칼과 송곳, 화살촉 조각, 부싯쇠 등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철이 무기뿐 아니라 농사와 일상생활의 다양한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전시 자료. - Лапоть / Wikimedia Commons / CC0 / AI 전시 재현

     

    철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변화는 더 커집니다. 철제 칼과 창, 농기구와 생활도구가 등장하고 사람들이 주변 환경을 이용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금속을 발견한 인간이 실용적인 물건만 만들었을 리는 없습니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사람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을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드네프르-드비나 문화의 청동 브로치와 팔찌, 펜던트 등 고대 장신구 전시
    드네프르-드비나 문화의 장신구 전시. 청동제 브로치와 팔찌를 비롯해 고리형 장식, 펜던트와 작은 장식 부속품 등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금속을 단순한 도구뿐 아니라 몸을 꾸미고 신분과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활용했던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 Лапоть / Wikimedia Commons / CC0 / AI 전시 재현

     

    그래서 이 시기의 전시에서 재미있게 봐야 할 것이 청동제 핀과 브로치, 펜던트, 팔찌 같은 장신구입니다. 기능만 생각했다면 굳이 표면에 무늬를 새기고 형태를 아름답게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수천 년 전에도 사람들은 무엇을 입고 무엇을 걸쳤는지로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오래된 장신구를 보고 있으면 시대는 아주 먼데 사람은 묘하게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3. 장신구와 무덤이 들려주는 고대 벨라루스 사람들의 이야기

    벨라루스 코필 지역박물관에 재현된 10세기 고분묘와 화장 장례 유적
    벨라루스 코필에서 조사된 10세기 고분묘를 재현한 박물관 전시. 발굴된 무덤의 구조와 매장 흔적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이 무덤에서는 시신을 화장한 뒤 매장하는 장례 방식이 확인되었다. 무덤은 당시 사람들의 장례 의례와 죽음에 대한 관념을 복원하는 중요한 고고학 자료가 된다. Капыльскі раённы краязнаўчы музей / 공식 홈페이지 AI 전시 재현

     

    고고학에서 무덤은 특별한 자료입니다. 산 사람의 집에서는 오래된 물건을 버리고 새것으로 교체하지만, 무덤에 넣은 물건은 한 시점에서 그대로 멈추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벨라루스 코필 지역박물관에 전시된 고고학 출토 토기와 금속 생활도구
    벨라루스 코필 지역에서 출토된 고고학 유물 전시. 여러 형태의 토기와 토기 조각을 비롯해 금속제 도구와 장식품 등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원본: Капыльскі раённы краязнаўчы музей / 공식 홈페이지 · 전시 이미지 재현

     

    그래서 장신구와 무기, 토기 같은 부장품은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시간상자가 됩니다.

     

    귀 옆에서 흔들리던 은빛 장신구

    11~13세기 크리비치·라디미치·드레고비치의 쿠르간 무덤에서 출토된 관자고리와 목걸이, 펜던트, 팔찌, 반지 장신구
    벨라루스 지역의 11~13세기 쿠르간 무덤에서 출토된 크리비치·라디미치·드레고비치의 장신구. 목걸이형 그리브나와 관자고리, 펜던트, 구슬 목걸이, 사슬, 팔찌와 반지 등 다양한 장신구를 통해 중세 벨라루스 지역 사람들의 복식과 장례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원본: Чаховіч Уладзіслаў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전시 이미지 재현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여성 장신구입니다. 박물관에는 여러 형태의 관자 장식과 고리, 펜던트, 목걸이와 금속 장식품이 전해집니다.

     

     

    벨라루스 국립 역사박물관 소장 11~13세기 은제 7엽식 관자 장식
    11~13세기의 은제 7엽식 관자 장식. 아래쪽으로 일곱 개의 날개 모양 돌기가 펼쳐지는 독특한 형태로, 머리 주변에 착용했던 중세 동유럽의 여성 장신구다. 벨라루스 국립 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당시 복식과 장신구 문화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유물이다. 원본: Hanna Zelen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전시 이미지 재현

     

    그 가운데 재미있는 유물이 7개의 날개 모양 돌기가 달린 은제 관자 장식입니다. 11~13세기의 것으로 알려진 이런 형태의 장식은 머리 양옆이나 머리 장식에 연결해 사용했던 장신구 계열입니다.

     

    현대의 귀걸이처럼 귀에만 매다는 장신구라고 생각하면 형태가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머리쓰개나 끈, 천과 함께 장식하는 방식이 다양했습니다. 옷과 머리 장식 전체가 하나의 디자인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물건은 예쁘다는 감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장신구의 형태와 제작기법, 분포 지역을 비교하면 사람들의 이동과 집단 사이의 관계까지 추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로마 동전이 왜 여기에서 나왔을까?

    벨라루스 국립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1~2세기 로마 제국의 은제 데나리우스 동전 보물
    벨라루스 국립 역사박물관의 1~2세기 로마 동전 보물. 황제의 초상과 신상, 인물 등이 새겨진 은제 동전들을 통해 로마 제국의 화폐가 오늘날 벨라루스 지역까지 유입되었던 당시의 교역과 광범위한 문화적 접촉을 엿볼 수 있다. 원본 전시 사진을 바탕으로 동전의 형태와 은빛 표면을 살리고 밝은 진열 모습으로 재현했다. 원본: Hanna Zelen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전시 이미지 재현

     

    그리고 이쯤에서 상당히 뜻밖의 물건을 만나게 됩니다.

     

    1~2세기의 로마 동전 보물입니다.

     

    로마 제국의 중심에서 상당히 떨어진 오늘날 벨라루스 지역에서 로마 화폐가 발견된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조금 이상하게 들립니다. 그렇다고 로마 군단이 이곳까지 와서 월급을 지급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동전은 사람보다 여행을 잘합니다. 교역을 통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고, 물건의 대가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은이라는 금속 자체의 가치 때문에 먼 지역까지 이동합니다.

     

    그래서 이 작은 로마 동전들은 지도의 선보다 훨씬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지금 우리가 국경으로 나누어 바라보는 지역들이 고대에는 생각보다 넓은 교환망 속에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시실에서 동전 한 닢을 발견했다면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때로는 작은 동전 하나가 커다란 지도 한 장보다 더 많은 길을 보여줍니다.

     

    4. 강을 따라 상인과 은화가 오가고, 도시가 태어나다

    중세 벨라루스를 중심으로 서드비나강·네만강·드네프르강과 발트해·흑해 방면의 교역로를 표현한 역사 지도
    중세 벨라루스의 주요 강과 교역로를 재구성한 개략도. 서드비나강·네만강·드네프르강을 따라 상인과 물자가 이동하며 발트해와 흑해, 동유럽의 여러 지역으로 연결되었다. - 중세 동유럽의 주요 수로와 교역망을 참고하여 제작한 역사 개략도 / AI 이미지

     

    중세로 접어들면 벨라루스의 풍경이 다시 달라집니다. 강은 단순히 물을 얻고 물고기를 잡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사람과 물건, 소식과 기술이 이동하는 길이었습니다.

     

    오늘날 벨라루스 지역을 흐르는 여러 강은 발트해 방면과 드네프르 수계를 이어주었습니다. 강을 따라 상인이 움직였고, 물건과 함께 동전과 장신구, 새로운 제작기술도 이동했습니다.

     

    동전과 저울이 보여주는 중세의 시장

    벨라루스 비슈친에서 발견된 13세기 은괴와 은제 팔찌, 펜던트, 장신구로 이루어진 비슈친 보물
    벨라루스 비슈친에서 발견된 중세 은제 보물. 여러 형태의 은괴와 팔찌, 펜던트와 장신구가 함께 발견되어 은이 재화이자 귀중한 금속 재료로 사용되던 당시의 경제와 금속공예 문화를 보여준다. 원본: Frantishak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AI 전시 이미지 재현

     

    이 시기를 이해할 때 중세 화폐와 은화는 빼놓을 수 없습니다. 화폐는 왕이나 통치자의 얼굴을 새긴 작은 금속판이지만, 동시에 교역의 범위를 보여주는 흔적입니다.

     

     

    벨라루스 국립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민스크의 대형 금속제 도시 저울과 계량 도구
    벨라루스 국립 역사박물관의 대형 도시 저울. 상품의 무게를 측정하던 계량 도구로, 정확한 무게가 시장과 상업 거래의 중요한 기준이었음을 보여준다. 원본: Hanna Zelen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AI 전시 이미지 재현

     

    동전 옆에 저울과 추 같은 계량 도구가 있다면 함께 보는 것도 좋습니다. 금속의 무게 자체가 가치와 연결되던 시대에는 정확하게 재고 확인하는 일이 거래의 핵심이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사냥용 화살촉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우리는 시장에서 물건값을 재는 세계에 들어와 있습니다. 박물관을 시대순으로 걷는 재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물건이 달라지면 사람들의 관계도 달라집니다.

     

    체스판 위에 앉은 작은 전사

    벨라루스 루콤ль에서 출토된 앉아 있는 인물 형태의 12세기 중세 체스말
    루콤에서 출토된 12세기 인물형 체스말. 작은 인물이 앉아 있는 독특한 모습으로, 중세 벨라루스 지역에서 체스와 같은 보드게임이 향유되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유물이다. - 원본: Budzma.org 게재 이미지 · 전시 이미지 재현

     

    이 시대를 조금 더 인간적으로 보여주는 유물도 있습니다. 박물관이 대표 소장품 가운데 하나로 소개하는 12세기 앉은 전사 형태의 체스말입니다.

     

    무기와 동전만 보고 있으면 중세가 전쟁과 교역으로만 이루어진 시대처럼 보이지만, 체스말 하나가 등장하는 순간 풍경이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놀았고, 생각했고, 규칙을 만들었으며 작은 말들을 움직이며 승부를 겨뤘습니다.

     

    이런 유물이 반갑습니다. 역사책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평범한 시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폴로츠크와 투라우를 비롯한 중세 도시들이 성장하면서 생활용품 역시 다양해졌습니다. 열쇠와 자물쇠, 칼, 도끼, 가위와 각종 철제 생활도구는 도시 안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일상을 복원하는 자료가 됩니다.

     

     

    벨라루스 국립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정교회 은제 전례용품과 종교 유물
    벨라루스 국립 역사박물관의 정교회 전례용품. 향로와 의식용 그릇, 접시와 숟가락 등 금속공예로 제작된 종교 유물들을 통해 정교회 의례와 함께 발전한 세밀한 장식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 원본: Hanna Zelen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전시 이미지 재현

     

     

    벨라루스의 10~11세기 십자가형 엔콜피온과 금제 종교 메달리온, 13세기 민스크 성터 출토 루니차 장신구
    중세 벨라루스 지역에서 사용된 종교·상징 장신구. 10~11세기 십자가형 엔콜피온과 성인이 표현된 금제 메달리온은 기독교 신앙의 확산을 보여주며, 오른쪽의 13세기 루니차는 민스크 성터에서 출토된 초승달형 장신구다. 서로 다른 전통의 상징물이 당시 사람들의 장신구 문화 속에 함께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원본: Art Belarus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십자가형 엔콜피온·금제 메달리온) · Wikimedia Commons(13세기 민스크 성터 출토 루니차) · 전시 이미지 재현

     

    그리고 도시가 성장하면 신앙의 흔적도 훨씬 분명해집니다. 십자가와 종교 장신구는 기독교 문화가 사람들의 일상 깊숙이 들어왔음을 보여줍니다.

     

    돌도끼로 시작했던 우리의 관람은 어느새 동전과 자물쇠, 체스말과 십자가가 있는 도시 한복판까지 들어왔습니다.

     

    5. 십자가와 보물, 중세 벨라루스가 남긴 가장 화려한 흔적

    벨라루스 비슈친 보물에서 발견된 중세 은제 팔찌와 펜던트, 목걸이 장식 등 은제 장신구
    벨라루스 비슈친 보물에서 발견된 은제 장신구. 정교하게 장식된 팔찌와 원형 펜던트, 매달아 착용한 장식물 등 다양한 은제품을 통해 당시의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과 귀금속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원본: Frantishak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전시 이미지 재현

     

    이제 조금 더 반짝이는 진열장 앞으로 가보겠습니다.

     

    중세의 보물이라고 하면 거대한 금관이나 보석으로 뒤덮인 왕실 보물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에서 말하는 보물은 조금 다릅니다. 누군가 여러 물건을 한꺼번에 모아 묻어두었다가 다시 찾아가지 못한 매장품 역시 중요한 보물입니다.

     

    왜 묻었을까요?

     

    전쟁을 피해 숨겼을 수도 있고, 재산을 안전하게 보관하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의적인 이유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문제는 주인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비극이었겠지만 수백 년 뒤 고고학자에게는 당시 사회를 통째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되었습니다.

     

    은을 숨긴 사람은 왜 돌아오지 못했을까

    박물관이 보유한 화폐 매장품과 장신구 보물을 볼 때는 동전 하나하나보다 전체 구성을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지역의 화폐가 섞여 있는지, 장신구와 화폐가 함께 발견되었는지 살펴보면 당시 사람들의 경제생활과 교역 범위가 조금씩 드러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박물관에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물건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벨라루스 리트바 보물에서 발견된 중세 은제·도금 허리띠의 원형 장식판과 화려한 로제트 장식
    벨라루스 리트바에서 발견된 중세 허리띠 장식 세트. 여덟 점의 원형 장식판과 두 점의 화려한 로제트형 장식을 비롯한 은제·도금 부속들이 당시 상류층 장신구의 정교한 금속공예를 보여준다. 원본: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전시 이미지 재현

     

    리트바 보물에서 발견된 화려한 은제 허리띠 장식 세트입니다. 흔히 ‘비타우타스의 허리띠’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유물입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상당히 근사합니다. 고급 은으로 만든 여러 장식판과 버클이 한 세트를 이루고 있으며 일부에는 금도금과 흑화 장식이 사용되었습니다. 둥근 장식판에는 새와 바실리스크 같은 형상이 표현되어 있고, 버클에서는 서유럽 계통의 고딕 장식 요소가 읽힙니다. 반면 다른 부분에서는 흑해와 튀르크계 문화권을 떠올리게 하는 장식성이 나타납니다.

     

    작은 허리띠 하나에 여러 문화권의 취향이 섞여 있는 것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중세 동유럽을 고립된 세계로 상상해서는 곤란합니다. 사람과 물건, 기술과 장식 문양은 생각보다 훨씬 넓게 움직였습니다.

     

    정말 비타우타스가 사용했던 허리띠였을까?

    여기에서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집니다.

     

    이 유물은 오랫동안 리투아니아 대공 비타우타스와 연결되어 유명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비타우타스의 허리띠’라는 이름이 널리 사용됩니다.

     

    하지만 유명한 이름과 확정된 사실은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허리띠가 실제 비타우타스 개인의 소유품이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15세기 전반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숨겨진 보물의 맥락을 새롭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흥미롭습니다.

     

    박물관의 유물은 이름표가 붙는 순간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물건이 아닙니다.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고 연구가 진행되면 우리가 알고 있던 주인공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고고학은 이미 정답이 적힌 오래된 책을 읽는 학문이 아니라, 남아 있는 조각을 가지고 계속 이야기를 수정해가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다시 처음의 돌도끼를 떠올려봅니다.

     

    처음 이 박물관에 들어왔을 때 인간이 남긴 것은 돌과 뼈 몇 조각뿐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토기가 생기고, 금속을 다루기 시작했고, 몸을 장식했습니다. 먼 지역과 물건을 교환하고 동전을 사용했으며, 도시를 만들고 신앙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러 문화의 기술과 미감이 뒤섞인 화려한 은제 허리띠까지 만들어냈습니다.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나도 이상하게 익숙한 부분이 있습니다. 더 편리한 도구를 만들고 싶어 했고, 아름다운 것을 몸에 걸치고 싶어 했으며, 가진 것을 안전하게 지키려 했습니다. 장사를 했고, 놀았고, 믿었고, 때로는 가장 귀한 물건을 땅속에 숨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벨라루스 국립 역사 박물관에서 만나는 가장 큰 보물은 금이나 은으로 만든 물건 하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작은 석기에서 중세의 은제 장식까지 서로 전혀 달라 보이는 물건들이 이어지면서, 이 땅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하나의 긴 이야기로 들려준다는 것. 그것이 이 박물관을 천천히 걸어볼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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