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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린의 쿠무 미술관(Kumu Art Museum)은 에스토니아 미술을 가장 깊이 있게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18세기의 초상화와 풍경에서 시작해 민족미술의 탄생, 소련 시대의 갈등과 실험, 독립 이후의 현대미술까지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곳의 재미는 작품을 시대순으로 보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 나라가 자신의 얼굴을 어떻게 찾았고, 정치와 시대의 변화 속에서 그 얼굴을 어떻게 다시 그려왔는지 층을 따라 걸으며 만나게 됩니다.

     

     

    에스토니아 탈린 카드리오르그 공원 언덕에 자리한 쿠무 미술관의 현대적인 외관
    녹지와 언덕 사이에 자리한 쿠무 미술관. 유리와 녹청색 외벽, 콘크리트가 어우러진 현대적인 건축 자체도 이곳의 볼거리다. - AI 재현 이미지 / 쿠무 미술관 외관 사진 참고

     

    1. 카드리오르그 공원에서 만나는 쿠무, 건물부터 작품이다

    언덕 속으로 들어간 거대한 미술관

    탈린 구시가지의 첨탑과 자갈길을 뒤로하고 카드리오르그(Kadriorg) 쪽으로 이동하면 도시의 표정부터 달라집니다. 궁전과 공원, 오래된 나무가 이어지는 풍경 끝에서 거대한 곡선의 건물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에스토니아 탈린의 쿠무 미술관과 카드리오르그 공원을 위에서 내려다본 항공 전경
    카드리오르그 공원 속에 자리한 쿠무 미술관의 항공 전경. 반원형으로 펼쳐진 현대적인 미술관 건축과 주변 녹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 Mait Metsur / Estonian Land Board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여기서는 항공사진을 한 번 눈여겨보세요. 쿠무가 왜 이런 모양인지 단번에 이해됩니다. 건물은 카드리오르그 공원 옆 경사진 지형을 따라 커다란 반원을 그립니다. 정면에서는 상당한 규모의 미술관인데, 위에서 보면 공원의 가장자리에 몸을 낮춘 건축처럼 보입니다.

     

    설계자는 핀란드 건축가 페카 바파부오리(Pekka Vapaavuori)입니다. 1990년대 국제 설계공모에서 그의 안이 선정되었고, 오랜 준비 끝에 2006년 쿠무가 문을 열었습니다. 유리와 녹청색 외벽, 콘크리트가 지형과 맞물리면서 거대한 건물을 세워놓았다기보다 언덕 안에 미술관을 끼워 넣은 듯한 인상을 줍니다.

     

    쿠무는 에스토니아 미술관(Art Museum of Estonia)의 본관이자 에스토니아 미술사의 중심 컬렉션을 만나는 곳입니다. 2008년에는 유럽 올해의 박물관상(European Museum of the Year Award)도 받았습니다. 규모가 크다는 사실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건물의 구조와 전시의 흐름이 꽤 치밀하게 맞물려 있다는 점입니다.

     

    처음 방문한다면 작품 이름보다 먼저 층을 기억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단순히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쿠무는 층을 올라가는 순서 자체가 에스토니아 미술사의 시간표처럼 이어집니다.

     

    3층에서는 에스토니아 미술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만나고, 4층에서는 소련 시대의 통제와 예술가들의 실험, 독립 회복 이후 1990년대의 급격한 변화가 기다립니다. 5층으로 올라가면 이야기는 동시대 미술로 이어집니다.

     

    그러니 엘리베이터에서 아무 층이나 누르지는 마세요. 먼저 3층으로 올라가 에스토니아 미술이 자신의 얼굴을 갖기 시작한 순간부터 만나보겠습니다.

     

     

    2. 3층에서 에스토니아 미술이 자기 얼굴을 찾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에스토니아 미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쿠무 미술관 3층 상설전 《Landscapes of Identity: Estonian Art 1700–1945》의 회화 작품들이 흰색과 짙은 회색 벽을 따라 전시된 공간을 참고해 재현한 이미지
    쿠무 미술관 3층 상설전 《Landscapes of Identity: Estonian Art 1700–1945》을 참고해 재현한 전시실. 18세기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에스토니아 미술이 변화해 온 흐름을 회화 작품을 따라 살펴볼 수 있다. - AI 재현 이미지 / Kumu Art Museum 3층 《Landscapes of Identity》 전시실 / ERR 공식 보도 사진 참고

     

    3층의 상설전은 《Landscapes of Identity: Estonian Art 1700–1945》입니다. 제목부터 ‘정체성의 풍경’이죠. 그런데 들어서자마자 우리가 생각하는 ‘에스토니아다운 그림’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예상이 빗나갑니다.

     

    처음에는 발트 독일계 문화와 러시아 제국의 영향이 강하게 보입니다.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독립국가 에스토니아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이 지역은 여러 언어와 문화, 정치적 지배가 겹쳐 있던 곳이니까요. 오히려 이 복잡한 출발점을 알아야 뒤에서 등장하는 변화가 더 흥미로워집니다.

     

    그러니 작품마다 국적과 연도를 외우려고 애쓰지는 마세요. 질문 하나만 가지고 걸어보겠습니다.

     

    “언제부터 이곳의 화가들은 자기 사람과 자기 풍경을 자신들의 시선으로 그리기 시작했을까?”

     

    요한 쾰러, 농민의 아들이 러시아 제국의 화가가 되다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요한 쾰러(Johann Köler)를 만나게 됩니다. 에스토니아 미술사에서 빼놓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절벽 위의 로렐라이를 향해 십자가를 든 수도사들이 저주를 내리는 극적인 장면을 그린 요한 쾰러의 《Lorelei Cursed by Monks》
    요한 쾰러, 《Lorelei Cursed by Monks》(1887). 거친 절벽과 안개 속 로렐라이와 수도사들의 대립을 거대한 화면에 담은 작품으로, 쾰러의 극적인 역사화와 아카데미 회화의 면모를 보여준다. - Johann Köler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먼저 《Lorelei Cursed by Monks》(1887) 앞에서는 화면의 크기부터 느껴보세요. 약 4m 높이에 이르는 대작입니다. 안개가 감도는 절벽 위의 로렐라이와 십자가를 든 수도사들이 맞서면서 장면 전체에 연극적인 긴장감이 흐릅니다. 쾰러가 당시 유럽 아카데미 회화의 기술과 역사화의 문법을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었는지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그림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화가의 이력입니다. 농민 가정에서 태어난 쾰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아카데미에서 공부했고, 러시아 제국의 상류사회와 고위 인사들의 초상을 그리는 화가로 성장했습니다.

     

     

    검은 정장에 훈장을 착용하고 탁자 옆에 서 있는 러시아 제국 외무대신 알렉산드르 고르차코프를 그린 요한 쾰러의 1867년 초상화
    요한 쾰러, 《Portrait of Alexander Mikhailovich Gorchakov》(1867). 러시아 제국의 외무대신 고르차코프를 그린 전신 초상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하며 고위 인사들의 초상을 제작했던 쾰러의 경력을 보여준다. - Johann Köler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1867년에 그린 알렉산드르 고르차코프(Alexander Mikhailovich Gorchakov)의 초상을 보면 그 변화가 실감 납니다. 모델은 당시 러시아 제국의 외무대신이었습니다. 훈장을 단 검은 정장, 탁자 위의 문서, 당당한 자세까지 권력자의 공식 초상이 갖춰야 할 문법을 빈틈없이 보여줍니다.

     

    여기서 잠깐 화가 쪽을 생각해보세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에스토니아 출신 청년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건너가 미술을 배우고, 러시아 제국 최고위층의 얼굴을 캔버스에 남기고 있습니다. 쾰러가 중요한 이유는 유명 인사를 그렸기 때문만이 아니라, 에스토니아 출신 화가가 전문적인 미술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초기 세대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독립된 에스토니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술에서는 이미 중요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 그 변화는 훨씬 선명한 색을 갖게 됩니다.

     

    콘라트 매기가 등장하면 풍경의 색부터 달라진다

    조금 더 걸어가 보겠습니다. 전시실에서 갑자기 색이 강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콘라트 매기(Konrad Mägi)입니다.

     

     

    붉고 노란 구름이 번지는 하늘 아래 짙은 나무와 바위, 물가의 풍경을 강렬한 색채로 표현한 콘라트 매기의 《Landscape with a Red Cloud》
    콘라트 매기, 《Landscape with a Red Cloud》. 실제 풍경의 색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강렬한 노랑과 주황, 짙은 녹색과 보라색으로 자연을 재구성한 작품으로, 매기 특유의 표현적인 색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 Konrad Mägi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쿠무에서 화가 한 명만 기억해야 한다면 매기는 유력한 후보입니다. 에스토니아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면서, 자연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옮기기보다 색을 통해 자신이 느낀 풍경으로 바꾸어 놓았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Landscape with a Red Cloud》를 보면 금방 이해됩니다. 하늘에는 붉고 노란 구름이 번지고, 나무와 땅에는 짙은 녹색과 보라색이 뒤섞입니다. 풍경의 형태는 익숙한데 색은 현실에서 한 발 벗어나 있습니다.

     

    그러니 이 그림 앞에서는 “실제로 이런 색의 풍경이 있었을까?”라고 묻기보다 “매기는 이 풍경을 어떻게 느꼈을까?”라고 질문해보세요. 그 순간 풍경화가 지리적인 기록에서 화가의 감각으로 바뀝니다.

     

     

    붉은 머리띠를 한 소녀 엘시 뢰가 다채로운 언덕과 구름이 펼쳐진 풍경을 배경으로 서 있는 콘라트 매기의 1915년 초상화
    콘라트 매기, 《Portrait of Elsi Lõo》(1915). 소녀의 차분한 표정과 뒤편의 선명한 풍경을 함께 구성한 초상화로, 인물과 자연 모두에서 매기 특유의 풍부한 색채 감각을 만날 수 있다. - Konrad Mägi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매기가 풍경만 잘 그렸다고 생각할 즈음 《Portrait of Elsi Lõo》(1915)를 보면 또 다른 면이 보입니다. 붉은 머리띠를 한 소녀는 차분하게 우리를 바라보는데, 뒤편의 풍경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푸른색과 분홍색, 녹색이 서로 밀고 당기며 화면 전체에 리듬을 만듭니다.

     

    쾰러의 고르차코프 초상과 비교해 보면 변화가 더 재미있습니다. 쾰러가 인물의 지위와 존재감을 정교하게 보여주었다면, 매기는 인물과 배경을 색채 안에서 함께 움직이게 합니다.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초상화가 사람의 모습을 기록하는 화면에서 화가의 감각을 드러내는 화면으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3층의 이야기는 여기서 한 번 더 방향을 바꿉니다. 이제 화가들은 사람과 풍경을 넘어 에스토니아의 오래된 신화와 이야기까지 그림 속으로 불러들이기 시작합니다.

     

    3. 풍경과 신화가 ‘에스토니아다운 그림’이 되기까지

    그림 속에 오래된 신화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매기의 강렬한 풍경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오스카르 칼리스(Oskar Kallis)를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3층의 이야기가 다시 한번 방향을 바꿉니다. 이제 화가의 시선은 눈앞의 풍경을 넘어 오래된 신화와 전설로 향합니다.

     

    칼리스가 특히 매료되었던 이야기는 에스토니아의 국민서사시 《칼레비포에그(Kalevipoeg)》였습니다. 19세기에 여러 민간 설화와 노래를 바탕으로 정리된 이 서사시는 거인 영웅 칼레비포에그의 모험을 들려줍니다. 하지만 당시 에스토니아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옛이야기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언어와 전설에도 하나의 민족을 설명할 만한 거대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검을 든 에스토니아 국민서사시의 영웅 칼레비포에그가 산과 물을 배경으로 서 있는 오스카르 칼리스의 작품
    오스카르 칼리스, 《Kalevipoeg with a Sword》(1912–1913). 에스토니아 국민서사시의 영웅 칼레비포에그를 검을 든 거인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신화와 민족 정체성을 미술에 담으려 했던 칼리스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 - Oskar Kallis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Kalevipoeg with a Sword》(1912–1913)를 보세요. 검을 든 칼레비포에그가 산과 물을 뒤로하고 거대한 존재처럼 서 있습니다. 실제 역사 속 영웅을 그린 것이 아니라 오래된 이야기 속 인물에게 눈에 보이는 얼굴과 몸을 만들어준 것입니다.

     

    여기서 칼리스가 한 일이 흥미롭습니다. 글과 노래 속에 머물던 국민서사시를 그림으로 옮기면서 ‘에스토니아의 영웅은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시각적 상상을 만들어냈습니다. 신화가 미술을 만나자 민족의 이야기가 하나의 이미지가 된 것이죠.

     

     

    거인 영웅 칼레비포에그가 해안의 바위 사이를 걸으며 어깨 위에 커다란 널빤지 묶음을 짊어지고 가는 오스카르 칼리스의 작품
    오스카르 칼리스, 《Kalevipoeg Carrying Boards》. 거대한 널빤지를 어깨에 짊어진 칼레비포에그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국민서사시 속 초인적인 영웅을 칼리스 특유의 민족 낭만주의적 이미지로 표현했다. - Oskar Kallis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Kalevipoeg Carrying Boards》에서는 영웅의 모습이 조금 달라집니다. 칼레비포에그가 커다란 널빤지를 어깨에 짊어진 채 바위 사이를 성큼성큼 걸어갑니다. 왕좌에 앉아 위엄을 과시하는 영웅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움직이고 길을 만드는 거인에 가깝습니다.

     

    두 그림을 함께 보면 칼리스가 왜 이 신화에 매료되었는지 조금씩 보입니다. 칼레비포에그는 단순히 힘센 전설 속 인물이 아니라 자기 땅을 걷고, 싸우고, 짐을 나르는 존재입니다. 아직 독립국가가 탄생하기 전이었던 20세기 초, 이런 영웅을 그린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이제 잠시 뒤를 돌아보면 3층의 흐름이 꽤 선명해집니다. 쾰러의 시대에는 에스토니아 출신 화가가 유럽 아카데미 미술의 언어를 익혔고, 매기는 풍경을 자신만의 색으로 다시 보았습니다. 칼리스에 이르면 화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들의 신화에서 그림의 주인공을 찾아냅니다.

     

    정치적 독립보다 먼저 미술 속에서 사람과 풍경, 신화가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3층의 제목이 왜 ‘정체성의 풍경’인지 이제 조금 이해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4층에서 갑자기 무거워집니다. 한 층만 올라가면 화가들은 더 이상 “무엇을 그리고 싶은가”만 고민할 수 없게 됩니다. “무엇을 그려도 되는가”라는 질문이 미술 앞에 끼어들기 시작합니다.

     

    4. 4층에 올라가면 그림 뒤에 소련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난다

    이번에는 ‘무엇을 그리고 싶은가’만으로는 부족해진다

    3층에서 화가들이 자기 풍경과 신화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았다면, 4층에서는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4층 A-wing의 상설전은 《Conflicts and Adaptations: Estonian Art of the Soviet Era 1940–1991》. 제목을 우리말로 옮기면 ‘갈등과 적응’입니다.

     

    이 두 단어를 기억하고 들어가 보세요. 제2차 세계대전과 소련의 점령, 체제의 변화는 화가의 캔버스에도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이제 예술가는 “무엇을 그리고 싶은가”뿐 아니라 “무엇을 그려야 하는가, 그리고 어디까지 그려도 되는가”를 함께 고민해야 했습니다.

     

     

    황금빛 곡식이 펼쳐진 들판에서 붉은 깃발을 단 트럭과 농기계가 수확 작업을 하는 빅토르 카루스의 《Grain to the State》(1953)를 참고해 재현한 이미지
    빅토르 카루스, 《Grain to the State》(1953) 참고 재현. 황금빛 들판과 곡물을 운반하는 트럭, 붉은 깃발을 통해 노동과 생산, 풍요로운 미래를 강조한 작품으로, 1950년대 초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추구했던 공식적인 미술의 방향을 보여준다. - AI 재현 이미지 / Viktor Karrus, 《Grain to the State》(1953) / Art Museum of Estonia·Kumu Art Museum 공식 자료 참고

     

    먼저 빅토르 카루스(Viktor Karrus)의 《Grain to the State》(1953)를 보겠습니다. 황금빛 들판에서는 수확이 한창이고, 곡물을 실은 트럭 위로 붉은 깃발이 펄럭입니다. 농촌은 풍요롭고 사람들은 일하며 사회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갑니다. 화면 어디에도 망설임이나 피로가 끼어들 자리가 없어 보입니다.

     

    바로 이런 장면이 1940년대 말과 1950년대 초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선호했던 세계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현실을 설득력 있게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노동과 생산, 집단의 성취와 낙관적인 미래가 반복해서 등장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기억한 채 전시실을 계속 걸어보세요. 불과 몇 걸음 뒤에서 화면의 언어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스탈린 사후 정치적 긴장이 다소 완화되면서 에스토니아의 예술가들도 다시 형식과 색채, 상상력을 실험할 여지를 찾아갑니다.

     

    《Fading Sun》 앞에서는 잠시 멈춰보세요

    일마르 말린의 1968년 작품 《Fading Sun》을 참고해 재현한 이미지로, 붉은 하늘 속 검게 사라지는 태양과 어두운 지표면을 표현한 장면
    일마르 말린, 《Fading Sun》(1968) 참고 재현. 검게 사라지는 태양과 붉게 타오르는 듯한 주변 풍경이 소련 시대 에스토니아 미술의 실험적인 표현을 보여준다. - AI 재현 이미지 / Ilmar Malin, 《Fading Sun》(1968) / Art Museum of Estonia 디지털 컬렉션 참고

     

    그리고 일마르 말린(Ilmar Malin)의 《Fading Sun》(1968) 앞에 서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두 작품 사이에는 15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마치 다른 시대의 미술을 보는 것 같습니다.

     

    황금빛 곡식도, 노동자도, 생산의 성취도 사라졌습니다. 붉게 달아오른 화면에는 검은 태양처럼 보이는 거대한 형상이 떠 있고, 풍경은 현실과 꿈의 경계 어딘가에 놓여 있습니다.

     

    무엇을 상징하는지 서둘러 정답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앞에서 본 《Grain to the State》를 떠올려보세요. 그 그림에서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가 비교적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Fading Sun》은 관람객에게 해석의 공간을 남깁니다. 공적인 메시지가 지배하던 화면에서 개인의 상상과 불안, 모호함이 다시 들어올 자리가 생긴 것입니다.

     

    그렇다고 말린을 곧바로 ‘체제에 저항한 화가’라고 단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4층의 전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예술가들을 순응과 저항이라는 두 편으로 깔끔하게 나누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도 안에서 활동하면서도 새로운 표현을 찾았고, 허용된 형식을 조금씩 비틀거나 넓혀가는 여러 태도가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15년 사이, 같은 미술관의 풍경이 이렇게 달라진다

    쿠무 미술관 4층 상설전 《Conflicts and Adaptations》의 전시실을 참고해 재현한 이미지로, 중앙의 빅토르 카루스 《Grain to the State》와 양쪽 대형 회화가 전시된 모습
    쿠무 미술관 4층 《Conflicts and Adaptations: Estonian Art of the Soviet Era 1940–1991》 전시실 - AI 재현 / Kumu Art Museum 4층 《Conflicts and Adaptations》공식 자료 참고

     

    이제 전시실을 한 번 뒤돌아보세요. 《Grain to the State》와 《Fading Sun》을 같은 흐름 안에서 본 것이 4층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한쪽에는 체제가 기대했던 낙관적인 현실이 있고, 다른 쪽에는 그 틈에서 다시 등장한 낯설고 개인적인 이미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한 방향으로 곧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정치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허용되는 표현의 범위도 움직였고, 예술가들은 그 안에서 타협하고 실험하며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전시 제목이 ‘저항’이 아니라 ‘갈등과 적응’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결국 이곳에서 보는 것은 하나의 ‘소련 미술’이 아닙니다. 거의 반세기 동안 정치와 예술 사이의 거리가 계속 달라질 때마다 에스토니아의 화가들이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보는 전시입니다. 같은 체제 아래에서도 그림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4층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3층에서 어렵게 자기 얼굴을 찾아가던 에스토니아 미술은 4층에서 체제와 끊임없이 협상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1991년 독립이 회복되면서 그 오래된 경계가 갑자기 무너집니다. 그렇다면 이제 화가들은 완전히 자유로워졌을까요? 다음 전시실에서는 그 질문의 답이 생각보다 훨씬 요란하게 펼쳐집니다.

     

    5. 독립 이후 TV도 작품이 되었다, 쿠무에서 300년을 걷는 법

    1990년대 전시장에 들어서면 미술관의 풍경부터 달라진다

    1991년, 에스토니아는 독립을 회복합니다. 그렇다면 4층에서 계속 따라왔던 정치와 미술의 긴장도 여기서 끝났을까요? 4층 B-wing의 《The Future Is in One Hour: Estonian Art in the 1990s》에 들어가면 답은 금세 보입니다. 끝났다기보다 완전히 다른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소비에트 사회에서 새로운 독립국가로 넘어가는 변화는 빠르고 거칠었습니다. 자유는 커졌지만 익숙했던 질서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예술가들에게는 혼란스러운 시대였지만, 동시에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다시 정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전시장 풍경부터 달라집니다. 회화의 자리를 사진과 비디오, 퍼포먼스와 설치미술이 파고들고, 일상에서 보던 물건까지 작품의 재료가 됩니다. 3층에서 캔버스 속 풍경을 바라보던 관람객이라면 여기서 잠깐 눈이 바빠집니다.

     

     

    어두운 전시장 바닥에 여러 대의 CRT 모니터를 원형으로 배치하고 보라색·파란색·초록색 빛을 비추는 라울 쿠르비츠의 설치작품 재현 이미지
    라울 쿠르비츠, 《Pentatonic Colour System II. Programme 01 and 03》(1994/1999) 참고 재현. 원형으로 늘어선 모니터의 색과 빛을 이용한 설치작품으로, 1990년대 에스토니아 미술의 새로운 매체 실험을 보여준다. - AI 재현 이미지 / Raoul Kurvitz, 《Pentatonic Colour System II. Programme 01 and 03》(1994/1999) / Art Museum of Estonia·Kumu Art Museum 자료 참고

     

    라울 쿠르비츠, 오래된 TV가 작품이 되다

    그 변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라울 쿠르비츠(Raoul Kurvitz)의 《Pentatonic Colour System II. Programme 01 and 03》입니다.

     

    여러 대의 CRT 모니터가 원을 이루고, 어두운 공간에는 화면에서 흘러나온 색과 빛이 번집니다. 지금 보면 오래된 브라운관 TV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1990년대 에스토니아 미술의 흐름 속에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예술가들은 국가가 요구하는 미술과 자신이 원하는 표현 사이에서 거리를 조절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질문 자체가 달라집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도 미술을 만들 수 있을까? TV와 전기, 색과 빛도 작품의 재료가 될 수 있을까?”

     

    쿠르비츠의 작품 앞에서는 바로 그 변화가 눈에 보입니다. 캔버스도 붓도 사라졌는데 미술은 오히려 공간 전체로 퍼져나갑니다. 정치적 경계가 흔들린 뒤 미술의 경계까지 함께 넓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흰 벽과 목재 바닥의 쿠무 미술관 전시실에 사진 콜라주와 대형 회화, 조각 작품이 전시된 모습의 재현 이미지
    쿠무 미술관의 현대미술 전시 공간을 참고해 재현한 모습. 회화와 사진, 설치 작품 등 다양한 매체가 한 전시실에서 어우러진다. - AI 재현 이미지 / Kumu Art Museum 전시실 및 Art Museum of Estonia 공식 자료 참고

     

    전시실 전체도 한 번 둘러보세요. 회화가 벽을 채우던 3층과는 풍경부터 다릅니다. 사진과 영상, 설치와 오브제가 한 공간에서 뒤섞입니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넘어 무엇을 미술이라고 부를 것인가까지 다시 묻기 시작한 시대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단순한 양식의 변화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독립 이후 에스토니아 사회가 새로운 정치와 경제, 서구 문화와 대중매체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동안 예술가들도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화하는 현실을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990년대 전시는 자유의 환희만 보여주기보다 새로운 시대에 던져진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는 공간에 가깝습니다.

     

     

    처음 방문한다면 3층에서 시작해 4층으로 올라가세요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동선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쿠무를 처음 방문한다면 3층 → 4층 A-wing → 4층 B-wing 순서로 보는 것을 권합니다. 작품 하나하나보다 시대의 변화가 훨씬 잘 보이는 동선입니다.

     

    3층에서는 쾰러와 매기, 칼리스를 따라가 보세요. 에스토니아 출신 화가가 유럽 미술의 언어를 익히고, 자기 풍경에 새로운 색을 입히고, 마침내 오래된 신화에서 자기 문화의 이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4층 A-wing에서는 속도가 달라집니다. 《Grain to the State》와 《Fading Sun》을 비교하면서 소련 체제 아래에서 미술이 어떻게 통제되고, 적응하고, 다시 표현의 범위를 넓혀갔는지 살펴보세요. 그리고 B-wing으로 넘어오면 캔버스의 경계마저 사라지는 1990년대가 기다립니다.

     

    시간과 체력이 남는다면 마지막으로 5층까지 올라가도 좋습니다. 이곳에서는 동시대 미술의 기획전이 열리기 때문에 전시 내용은 시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방문 전에 현재 전시를 확인해 두면 동선을 짜기에도 좋습니다.

     

    쿠무의 매력은 유명한 작품 몇 점을 찾아 체크하고 나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얼굴과 풍경에서 시작한 미술이 민족의 신화를 만나고, 정치와 충돌한 뒤, 마침내 캔버스를 벗어나 모니터와 빛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한 건물 안에서 걸어서 따라갈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처음 보았던 쿠무의 곡선형 건물을 다시 한번 바라보세요. 들어올 때는 언덕에 자리한 현대적인 미술관이었지만, 이제는 층마다 다른 시간이 들어 있는 건물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3층에서는 한 나라가 자신의 얼굴을 찾았고, 4층에서는 그 얼굴을 지키고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흔들렸습니다. 쿠무에서 걷는다는 것은 결국 에스토니아 미술이 스스로를 다시 그려온 시간을 따라 걷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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