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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의 역사를 만나려면 수도 포드고리차보다 옛 왕도 체티네가 먼저입니다. 왕궁과 옛 정부 청사, 미술관과 민족학박물관이 도시 곳곳에 이어져 체티네의 역사 지구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처럼 펼쳐집니다.
왕이 사용하던 검과 훈장, 500년이 넘은 인쇄본, 오래된 성화와 화려한 전통복까지. 작은 산악국가가 어떻게 독립국가가 되고 왕국으로 성장했는지, 이제 그 흔적을 따라 천천히 걸어보겠습니다.
1. 왜 몬테네그로의 국립박물관은 체티네에 있을까?
수도가 떠난 뒤에도 역사는 이곳에 남았다

몬테네그로의 현재 수도는 포드고리차지만, 국가의 오래된 기억은 체티네에 훨씬 촘촘하게 남아 있습니다. 높은 산에 둘러싸인 작은 도시를 걷다 보면 왕궁과 옛 정부 청사, 외교 공관이 놀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차례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몬테네그로 국립박물관을 하나의 거대한 건물이라고 생각하고 찾아오면 조금 당황할 수 있습니다. 역사박물관과 미술관, 니콜라 왕 박물관, 민족학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박물관과 역사적 건물이 체티네를 무대로 흩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건물에서 건물로 옮겨가는 짧은 산책까지 관람의 일부가 됩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건물이 1910년에 완공된 블라딘 돔(Vladin Dom)입니다. 몬테네그로 왕국의 정부 청사로 세워진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현재는 국립박물관의 행정 중심이자 역사박물관과 미술관의 주요 전시 공간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웅장한 건물부터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조금 더 사적인 공간이 먼저입니다. 왕이 손님을 맞고 가족과 식사하며 국정을 고민했던 집, 니콜라 1세의 궁전으로 가보겠습니다.
2. 니콜라 왕의 궁전, 작은 왕국의 시간을 걷다
거대한 왕궁보다 한 왕실의 집에 가깝다

니콜라 왕 박물관의 건물은 1863년 공사를 시작해 1867년 무렵 완성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애초부터 니콜라의 왕궁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다닐로 공의 미망인 다린카와 딸 올가의 거처로 계획되었지만, 다린카가 몬테네그로를 떠난 뒤 페트로비치-네고시 왕가가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몬테네그로 사람들은 이 집을 팔라츠(palac), 곧 궁전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유럽의 거대한 왕궁을 떠올리고 들어오면 규모가 의외로 친근합니다. 오히려 그 덕분에 왕실의 생활이 더 가까이 보입니다.

응접실에는 왕실 초상화와 가구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조금 더 걸으면 왕의 집무실과 도서관, 외교관을 맞던 살롱과 식당이 이어집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전시는 단순히 왕실 물건을 진열한 공간이 아니라 당시 궁전 내부를 되살린 형태에 가깝습니다.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왕의 생활과 국가의 일이 겹쳐 있었습니다. 몬테네그로는 영토도 인구도 유럽의 강대국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작았지만, 외교까지 작을 수는 없었습니다.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를 비롯한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나라였으니까요.
칼 한 자루에도 외교 관계가 새겨져 있다

그래서 무기 진열장에서는 칼날보다 먼저 누가 누구에게 이 칼을 건넸는지를 보는 편이 재미있습니다.
컬렉션에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와 알렉산드르 3세의 사브르, 오스만 술탄 압뒬하미드가 선물한 사브르가 있습니다. 러시아 황제와 오스만 술탄의 선물이 한 왕의 무기 컬렉션 안에서 만납니다. 당시 몬테네그로가 어느 한쪽만 바라보며 살아갈 수 없었던 국제정세가 칼 몇 자루만으로도 꽤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더 독특한 것은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검입니다. 칼날 양면에는 고딕 문자로 그의 유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베는 도구인 칼에 글을 남겼다는 점에서 이미 평범한 무기와는 거리가 멉니다.
1910년 니콜라의 통치 50주년을 기념해 몬테네그로 장교들이 헌정한 사브르와 미국에 정착한 파슈트로비치 출신 이민자들이 보낸 사브르도 있습니다. 진열장 하나를 보고 있는데 러시아 황제와 오스만 술탄, 프로이센 국왕에 이어 대서양 건너 몬테네그로 이민자들까지 등장합니다. 왕의 무기함이 뜻밖의 외교사 지도가 되는 순간입니다.


옆의 훈장들은 조금 더 조용하지만 외교의 언어는 오히려 노골적입니다. 유럽의 군주들이 페트로비치-네고시 왕가에 수여한 훈장 가운데에는 귀금속과 보석을 사용해 빈과 로마, 파리의 유명 세공소에서 제작한 것들도 있습니다.
훈장은 예쁜 장신구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군주가 누구를 인정했고,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정치적 상징이었습니다. 외교문서를 몸에 달 수 있게 만들면 아마 이런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왕궁에서 만나는 가장 조용한 보물
화려한 칼과 훈장을 지나 왕실 도서관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갑자기 차분해집니다. 여기에는 몬테네그로 문화사에서 빼놓기 어려운 책, 《오크토이흐 프르보글라스니크(Oktoih prvoglasnik)》가 있습니다.


츠르노예비치 인쇄소에서 1493년 인쇄를 시작해 1494년 초 완성된 정교회 전례서입니다. 붉은색과 검은색 활자, 정교한 목판 장식을 보고 있으면 구텐베르크 이후 인쇄문화가 얼마나 빠르게 발칸의 작은 산악국가까지 들어왔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몬테네그로 국립박물관은 이 책을 남슬라브 세계에서 인쇄된 최초의 책으로 소개합니다. 조금 전까지 황제들이 보낸 칼을 보고 있었는데 왕궁에서 가장 오래 말을 걸어오는 물건은 오히려 종이와 잉크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이 책의 글자는 500년이 넘도록 남았습니다.
3. 총과 깃발이 들려주는 몬테네그로의 생존기
작은 나라의 역사에서 무기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
이제 왕실의 생활 공간에서 국가의 역사로 시선을 옮겨보겠습니다. 몬테네그로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무기가 유난히 자주 등장합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동체가 오스만 제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오랫동안 정치적 자율성과 독립을 지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니콜라 왕 박물관의 군사 컬렉션에는 오스만군과의 전투에서 획득한 무기가 상당수 남아 있습니다. 오스만 제국 각지에서 온 군대가 사용했던 무기여서 제작 지역과 형태도 다양합니다. 일부에는 코란 구절이나 소유자와 제작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지휘관들이 사용했던 무기는 전투용이라고 하기에는 놀라울 만큼 화려합니다.
하지만 장식을 오래 보고 있으면 조금 묘한 기분이 듭니다. 지금은 유리장 안에서 아름다운 세공품처럼 보이지만, 이 물건들이 체티네에 들어온 과정에는 실제 전투와 죽음이 있었습니다. 박물관에서 무기가 아름답게 보일수록 그 출처를 한 번 더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무기 옆에서는 오래된 몬테네그로 군기와 오스만 군기도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유난히 눈여겨볼 유물이 하나 있습니다. 1876년 부치 돌 전투에서 몬테네그로군이 사용한 크르스타시(Krstaš) 군기입니다.
붉은 바탕에 십자가와 니콜라 1세의 이니셜이 들어간 군기인데, 천에는 수많은 총탄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1876년 7월 28일 벌어진 부치 돌 전투는 몬테네그로와 오스만 제국이 맞붙은 대규모 전투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총알이 깃발을 피해 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전장의 거리가 갑자기 가까워집니다.

낡은 군기는 좀처럼 화려해 보이지 않습니다. 색은 바래고 가장자리는 닳았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더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당시 병사에게 이 천 조각은 장식물이 아니라 자신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식이었고, 때로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상징이었습니다.
이 전쟁들의 끝에서 몬테네그로는 중요한 변화를 맞습니다. 1878년 베를린 회의를 거치며 국제적 독립국가로 인정받고 영토를 넓혀 아드리아해로 진출했습니다. 이후 이어진 비교적 긴 평화기에 니콜라 1세는 행정과 외교를 정비하며 국가의 모습을 바꾸었고, 1910년 통치 50주년을 맞아 몬테네그로 왕국을 선포합니다.

다시 왕궁의 식당을 바라보면 처음과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긴 식탁과 샹들리에, 도자기와 은식기만 보면 평온한 유럽 왕실의 풍경입니다. 하지만 그 식탁이 놓이기까지 몬테네그로는 오랜 전쟁을 지나야 했고, 그 위에서는 유럽 각국의 외교관과 왕실 인사들을 상대하는 또 다른 싸움이 이어졌습니다.
총과 칼로 지킨 나라가 이제 외교와 제도, 국가의 상징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다음 전시실에서는 그 변화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전쟁의 금속성 소리는 잦아들고, 오래된 성화와 그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4. 성화에서 현대미술까지, 몬테네그로가 모은 또 하나의 보물
블루 채플 앞에서는 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

이제 칼과 군기의 금속성 분위기를 잠시 뒤에 두고 같은 블라딘 돔 안의 미술관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시선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조금 전까지는 누가 어느 전투에서 무엇을 지켰는지를 보았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어떤 풍경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는지를 만나게 됩니다.

가장 먼저 발길을 붙잡는 작품은 별도의 블루 채플에 전시된 《필레르모스의 성모(Virgin of Philermos)》입니다. 국립박물관을 대표하는 종교미술품 가운데 하나로, 오랜 세월 여러 지역을 거쳐 체티네까지 전해졌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림보다 먼저 금과 보석 장식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중심에는 놀라울 만큼 차분한 성모의 얼굴이 남아 있습니다. 화려한 장식은 시대마다 더해졌지만 사람들이 가장 오래 바라본 것은 결국 그 얼굴이었을 것입니다.
전도자 누가가 직접 성모를 보고 그렸다는 오래된 전승도 이 작품을 따라다닙니다. 역사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그 이야기가 수백 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는 중요합니다. 이콘은 단순히 오래된 그림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도하고 경배하며 기억을 덧붙여온 종교적 이미지였기 때문입니다.

조금 옆에서는 데이시스(Deisis)라는 익숙한 정교회 도상이 나타납니다. 왕좌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이 양옆에 서서 인간을 위해 중재하는 장면입니다.

국립박물관에는 보카 코토르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디미트리예비치-라파일로비치 가문 화파와 관련된 이콘도 남아 있습니다. 한 화면 안에 성인과 성서 장면을 촘촘하게 배치한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림을 감상한다기보다 작은 성당의 벽면을 한꺼번에 들여다보는 듯합니다.
몬테네그로의 이콘은 종교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드리아해 연안과 발칸 내륙이 만나는 지역에서 비잔틴 전통과 해안 도시의 문화가 어떻게 함께 살아왔는지도 보여줍니다.
성모의 얼굴을 지나 현대 몬테네그로로
그런데 이 미술관을 오래된 성화가 중심인 종교미술관으로 생각하면 아직 절반밖에 보지 못한 것입니다. 컬렉션은 4,000점을 넘고, 몬테네그로 미술뿐 아니라 옛 유고슬라비아 미술과 외국 작가의 작품, 프레스코 복제와 이콘까지 폭넓게 이어집니다.

밀로 밀루노비치의 《바다의 열매》 탁자 위에 해산물과 과일이 놓이고 인물과 식탁이 강렬한 색으로 연결됩니다. 몬테네그로가 산악국가이면서 동시에 아드리아해를 품은 나라라는 사실을 그림 한 장이 슬쩍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페타르 루바르다의 《몬테네그로의 밤》 검은 덩어리와 흰 바위, 붉고 푸른 색이 서로 밀어붙이며 몬테네그로의 풍경을 거의 추상에 가까운 힘으로 바꿔놓습니다.
1951년에 그려진 이 작품은 루바르다의 중요한 전환기에 속합니다. 같은 시기 그의 회화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선과 색, 리듬으로 다시 구성하는 방향으로 급격히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화면을 오래 바라보면 산을 보고 있는지, 산이 가진 힘을 보고 있는지 경계가 조금 흐려집니다.
《몬테네그로의 밤》은 1955년 도쿄 트리엔날레에서 공식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작은 체티네의 풍경에서 출발한 회화가 국제무대까지 간 셈이 아니라, 바로 그 거친 지역성이 세계 미술계에서 통했던 것입니다.

브란코 필리포비치 필로의 화면으로 가면 형태는 더 과감하게 사라집니다. 무엇을 그렸는지 찾으려 애쓰기보다 색과 붓질이 서로 부딪치는 모습을 보는 편이 낫습니다. 그림이 설명을 포기하자 오히려 감정은 더 직접적으로 다가옵니다.

마지막으로 미오드라그 다도 주리치의 작품 앞에 서면 분위기는 거의 다른 세계로 넘어갑니다. 사람인지 괴물인지 쉽게 구분하기 어려운 형상과 복잡한 선, 붉고 푸른 색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고요한 성모 이콘에서 시작한 관람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재미있습니다.
한 건물 안에서 오래된 신앙의 이미지와 20세기 추상회화, 기괴한 현대미술이 차례로 이어집니다. 몬테네그로 국립박물관이 보여주는 역사는 연표처럼 반듯하지 않습니다. 시대가 겹치고, 서로 다른 기억이 같은 공간에서 마주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왕과 화가의 이름이 적힌 전시실을 나와,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물건을 만나보겠습니다.
5. 박물관을 나서기 전, 몬테네그로 사람들의 옷장을 열어보다
왕의 옷보다 사람들의 옷이 더 많은 이야기를 남긴다
마지막 목적지는 민족학박물관입니다. 지금까지 왕과 장군, 성인과 화가를 만났다면 여기서는 조금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부분 이름조차 남지 않은 평범한 몬테네그로 사람들입니다.
민족학박물관은 4,000점이 넘는 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주로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생활문화를 보여줍니다. 현재 상설전에는 400점이 넘는 유물이 선별되어 있습니다. 옷과 장신구, 가구와 무기, 담배용품까지 보고 있으면 국가의 역사가 어느 순간 사람들의 하루로 내려옵니다.

먼저 리산 지역의 남성 의례복을 보겠습니다. 가슴을 덮은 금속 장식은 토케(toke)라고 부릅니다. 단순한 단추 몇 개가 아니라 조끼 앞부분 전체를 장식하는 금속 장신구입니다. 멀리서 보면 갑옷 같기도 하고, 가까이에서는 정교한 남성용 보석처럼 보입니다.
이런 옷은 매일 밭일을 할 때 입던 옷이 아닙니다. 축제나 의례처럼 자신의 집안과 지역을 드러내야 하는 순간에 입는 특별한 복장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명함을 꺼내지 않아도 옷이 먼저 많은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옆의 울치니 알라투르카 신부복은 분위기가 또 다릅니다. 흰 비단 위를 은실로 화려하게 장식한 옷입니다. 울치니는 오랫동안 아드리아해와 오스만 문화권이 만난 항구도시였고, 그런 교류의 흔적이 신부복에도 자연스럽게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는 허리를 봐야 합니다. 은세공 콜란(kolan) 허리띠와 파프타(pafta) 버클이 시선을 끕니다. 아몬드와 잎, 원판 같은 형태의 은장식을 이어 만든 허리띠로, 필리그리 세공이 상당히 정교합니다.
오늘날에는 액세서리라고 부르겠지만 당시에는 훨씬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습니다. 어느 지역의 옷인지, 얼마나 격식을 갖춘 차림인지, 때로는 가족의 경제적 형편까지 옷과 장신구가 은근히 드러냈습니다. 유리장 안의 허리띠가 작은 사회 기록처럼 보이는 이유입니다.

전시를 따라가면 말레시야 지역 신부복과 종 모양의 주펠레트(džupelet), 셰스탄 지역 여성복, 보카 해군의 전통복, 도브로타 여성복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이쯤 되면 몬테네그로를 하나의 산악문화로 묶어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스카다르 호수 주변의 알바니아계 공동체와 아드리아 해안의 도시문화, 오스만 문화권의 영향, 코토르만의 해양 전통이 같은 나라 안에서 서로 다른 옷으로 나타납니다. 작은 영토에 비해 옷장이 상당히 복잡합니다.
혼수상자 하나에도 한 사람의 삶이 들어 있었다

전시 중앙에는 아드리아 해안 지역의 혼수상자가 놓여 있습니다. 신부가 새집으로 가져갈 직물과 의복, 여러 귀중품을 보관하던 가구입니다.
왕궁에서 보았던 황제의 사브르와 비교하면 매우 평범한 물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으로 들어가면 중요도는 전혀 달라집니다. 이 상자 안에는 결혼 뒤 새로운 집에서 사용할 재산과 옷, 가족이 준비해준 물건들이 함께 들어갔습니다. 왕에게 국고가 있었다면 어떤 신부에게는 이 상자가 작은 개인 금고였을 것입니다.


옆의 쿠쿨리차(kukuljica)는 도브로타 신부가 머리에 착용하던 독특한 장식입니다. 하나의 커다란 왕관처럼 만든 것이 아니라 수많은 금도금 필리그리 핀을 모아 완성했습니다.
사진으로 실제 착용 모습을 보면 왜 특별한 혼례 장식이었는지 바로 이해됩니다. 머리 위에 장식이 빼곡하게 올라가니 신부의 움직임과 자세까지 달라졌을 것입니다. 결혼식 날 아름다움에도 어느 정도의 인내가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다시 무기가 나타납니다. 제페르다르(džeferdar) 장총은 개머리판과 총신 주변을 자개로 화려하게 장식했고, 옆에는 은으로 꾸민 야타간이 놓여 있습니다.
야타간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긴 장검보다 짧고, 칼날이 완만하게 휘어진 오스만 문화권의 도검입니다. 전투 도구였지만 은제 칼집과 손잡이에 공을 들여 장식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현대인의 눈에는 전통복 옆에 총과 칼이 놓인 모습이 조금 낯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남성에게 정교하게 장식된 무기는 실용품인 동시에 복식의 일부였고, 재산과 사회적 지위, 명예를 드러내는 물건이기도 했습니다. 총을 들고 다녔다기보다 어떤 총을 들고 다녔는지도 중요했던 시대였습니다.
마지막 진열장에서는 분위기가 부드러워집니다. 호박과 은으로 장식한 담뱃대 마우스피스, 은제 담배 케이스, 코담배 상자가 차례로 놓여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박물관이 들려주는 목소리도 달라집니다. 독립과 전쟁, 왕과 외교만으로 사람의 하루가 채워졌을 리 없습니다. 사람들은 결혼식을 준비하고 옷을 차려입고, 귀한 물건을 상자에 넣어두고,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역사는 거대한 사건으로 기록되지만 실제 삶은 이런 작은 물건들 사이에서 흘러갑니다.
이제 박물관 문을 나서면 체티네의 거리가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왕궁과 옛 정부 청사, 외교 공관이 몇 걸음 간격으로 이어지고 그 뒤로 산이 도시를 감싸고 있습니다.
처음 들어올 때는 오래된 왕도처럼 보였던 체티네가 이제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저 건물 안에는 황제가 보낸 사브르가 있고, 다른 건물에는 500년이 넘은 책과 성모의 이콘이 있으며, 조금 전 지나온 방에는 어느 신부가 혼수로 가져갔던 상자가 남아 있습니다.
몬테네그로 국립박물관에서 가장 귀한 보물 하나를 고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서로 전혀 달라 보이는 물건들이 한 도시 안에서 같은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왕의 궁전에서 시작한 관람이 평범한 사람의 옷과 혼수상자 앞에서 끝나는 동안, 몬테네그로의 역사는 어느새 국가의 연대기에서 사람들의 삶으로 내려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