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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특별 보물고 소장품을 선보인 보석 장신구 특별전 전경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특별 보물고의 귀금속·보석 컬렉션을 선보인 《아름다움의 매혹》 전시. 2025년 개막한 특별전으로, 황금 보물실 소장 컬렉션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에는 유난히 눈부신 공간이 있습니다. 고대의 금 장신구부터 차르와 황실의 보물까지 모아놓은 황금 보물실입니다.

     

    이곳에는 보석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세의 귀금속 공예품과 성화, 금화와 훈장, 화려하게 장식한 무기와 귀족의 생활용품까지 400점이 넘는 유물이 고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지는 황금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황금은 몸을 장식했고 신에게 바쳐졌으며 왕의 권위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부터 이 반짝이는 금속을 특별하게 여겼을까요. 보물 뒤에 숨은 사람과 권력, 신앙과 기술의 이야기를 따라 황금 보물실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 인간은 언제부터 황금을 특별하게 여겼을까

     

    황금 보물실의 첫 장면을 차르의 보석으로 시작하면 조금 아쉽습니다. 인간이 황금을 귀하게 여긴 역사는 러시아의 차르보다 훨씬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금은 칼이나 농기구를 만들기에는 너무 무른 금속입니다. 대신 잘 펴지고 늘어나며 비교적 쉽게 형태를 만들 수 있고, 쉽게 부식되지 않아 오랜 시간이 지나도 특유의 빛을 간직합니다. 실용적인 도구보다 장신구와 의례용 물건에 더 잘 어울리는 재료였습니다.

     

    사람들은 금을 몸에 걸고 옷에 달았으며 때로는 죽은 사람과 함께 무덤에 넣었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금 장신구는 단순히 예쁜 물건이 아닙니다. 누가 특별한 사람이었고, 무엇을 귀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역사 기록이기도 합니다.

     

    무덤 속 황금은 죽은 사람의 신분을 말해준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에는 북캅카스와 쿠반 지역을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출토된 고대 귀금속 장신구가 남아 있습니다. 작은 장식판과 피불라, 목걸이 장식처럼 몸과 옷을 꾸미던 물건부터 의례와 관련된 금속공예품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북캅카스 세베르스키 쿠르간에서 출토된 고대 금제 장식구와 피불라, 그리핀 장식판
    북캅카스 세베르스키 쿠르간 출토 금제 장신구. 기원전 2세기 말~기원전 1세기 전반의 유물로, 금제 장식구와 화려한 피불라, 그리핀을 새긴 원형 장식판에서 당시 귀금속 세공의 정교함을 엿볼 수 있다. -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GIM) 소장품 / 원본 자료 참고 · AI 전시 재현

     

    세베르스키 쿠르간에서 출토된 기원전 2~1세기의 장신구를 보면 그 화려함이 바로 눈에 들어옵니다. 금제 장식과 피불라, 동물 형상의 장식판이 한데 놓여 있는데, 특히 그리핀처럼 초원 문화에서 즐겨 사용한 동물 이미지는 당시 장식문화의 강렬한 취향을 보여줍니다.

     

    북캅카스와 쿠반 일대는 흑해 북안과 코카서스, 초원 세계가 이어지는 지역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장신구가 흥미로운 것도 여러 문화가 오가던 접점의 흔적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에 전시된 기원전 2~1세기 쿠반 지역 사르마티아 장신구와 금속 공예품
    기원전 2~1세기 쿠반 지역의 사르마티아 유물. 화려한 장신구와 금속 공예품을 통해 북캅카스 일대에서 발달한 장식 문화와 세공 기술을 살펴볼 수 있다.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원본 사진 참고 · AI 복원

     

    쿠반 지역의 사르마티아계 장신구와 금속공예품에서는 초원 지배층의 화려한 장식문화가 한층 선명해집니다. 귀금속은 몸에만 걸리지 않았습니다. 옷과 무기, 말갖춤에도 사용되면서 착용자의 부와 지위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냈습니다.

     

    작은 장식 하나를 가까이 들여다보는 것도 좋습니다. 금판을 두드리고 가느다란 금선을 붙이며 작은 알갱이와 보석을 이용해 표면을 채웠습니다. 유물의 크기는 작지만 그 안에 들어간 노동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열장 안에서 장신구와는 전혀 다른 존재감을 드러내는 물건이 있습니다. 3~4세기의 사산 왕조 황금 주전자입니다.

     

    중앙아시아에서 전해진 것으로 소개되는 이 금제 주전자는 사산 왕조의 금속공예 전통을 보여주는 귀한 작품입니다. 장신구처럼 몸에 걸 수 있는 크기가 아니라 하나의 용기를 금으로 만들었다는 점부터 눈길을 끕니다.

     

    금으로 만든 그릇은 내용물을 담는 기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많은 귀금속을 하나의 용기에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부와 지위를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연회나 의례에서 황금 그릇이 등장하는 순간, 주인의 재력과 권위는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보였을 것입니다.

     

    이 생각은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시대와 왕조가 바뀌어도 귀금속으로 만든 잔과 식기는 계속 권력자의 식탁으로 돌아옵니다. 고대의 황금 주전자와 훗날 러시아 황실의 화려한 식기가 생각보다 멀리 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이유입니다.

     

    2. 작은 장신구에 숨은 놀라운 기술, 러시아 금세공의 세계

     

    황금의 가치는 재료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는 잠시 금의 가격보다 그것을 다루었던 장인의 손을 바라보겠습니다.

     

    금을 얇게 펴고 가느다란 선으로 뽑아 문양을 만들며 작은 금속 알갱이를 붙이고, 에나멜과 보석을 더하면 금속 한 조각이 복잡한 공예품으로 변합니다. 중세 루스의 귀금속 장신구에서는 이런 기술이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펼쳐집니다.

     

    전쟁과 재난이 땅속에 남긴 보물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12~13세기 블라디미르나클랴지마 보물의 금·은제 장신구
    블라디미르나클랴지마에서 발견된 12세기~13세기 전반의 보물. 금제 콜트와 은제 장신구 등에서 중세 루스 상류층의 화려한 장식문화와 정교한 귀금속 세공을 살펴볼 수 있다. - Лапоть / Wikimedia Commons / CC0 1.0 / 원본 사진 참고 · AI 복원

     

    대표적인 사례가 12세기~13세기 전반의 블라디미르나클랴지마 보물입니다. 블라디미르는 중세 루스의 중요한 정치·문화 중심지였고, 1238년 몽골군의 공격으로 큰 파괴를 겪었습니다.

     

    이런 격변의 시대에 귀중품을 땅속에 숨기는 일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발견된 보물 하나하나가 정확히 어떤 사건 때문에 묻혔는지는 신중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누군가 귀하게 간직했던 물건들이 수백 년 동안 땅속에 남았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입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12~13세기 블라디미르나클랴지마 보물의 금제 콜트
    블라디미르나클랴지마 보물의 금제 콜트. 둥근 금제 몸체에 에나멜로 인물과 장식을 표현한 중세 루스의 화려한 머리 장신구다. - Лапоть / Wikimedia Commons / CC0 1.0 / 원본 사진 참고 · AI 복원

     

    이 보물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콜트(kolt)입니다. 둥글고 화려한 모습 때문에 커다란 귀걸이처럼 보이지만 귀에 직접 거는 장신구는 아니었습니다. 머리 장식이나 천에 연결해 얼굴 양옆으로 내려오도록 착용한 중세 루스 여성의 장신구입니다.

     

    사진을 조금 확대해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둥근 금제 몸체 안에 인물상이 자리하고 주변에는 에나멜과 세밀한 장식이 들어갑니다. 작은 장신구 하나가 금세공품인 동시에 몸에 지니는 작은 종교 이미지처럼 보입니다.

     

    콜트가 얼굴 양옆에서 움직이고 그 위의 금과 에나멜이 빛을 받았을 모습을 떠올려보면 당시 귀족 여성의 복식이 얼마나 화려했을지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장신구는 아름다움을 더하는 동시에 착용자의 지위와 재력을 보여주는 물건이었습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13세기 초 스타라야 랴잔 보물의 콜트와 십자가, 메달리온, 관자고리 등 은제 장신구
    13세기 1/4분기 스타라야 랴잔 보물. 콜트와 십자가, 성모 표징 메달리온, 구슬과 관자고리 등 다양한 장신구에 금도금·필리그리·에나멜 등의 세공기법이 사용되었다.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원본 사진 참고 · AI 복원

     

    비슷한 이야기는 13세기 1/4분기의 스타라야 랴잔 보물에서도 이어집니다. 사진 속에는 콜트와 십자가, 성모 표징을 나타낸 메달리온, 구슬과 관자고리, 콜트를 연결하기 위한 장식 사슬까지 여러 종류의 장신구가 한꺼번에 보입니다.

     

    재료도 하나가 아닙니다. 은과 구리 합금, 돌과 나무에 주조·압출·조각·납땜·금속 알갱이 장식·필리그리·금도금·에나멜 등 여러 기법이 사용되었습니다. 금빛만 보고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이유입니다. 작은 장신구 몇 점에 중세 금속공예의 기술 목록이 거의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보물에는 늘 조금 쓸쓸한 상상이 따라옵니다. 오늘날에는 박물관의 화려한 전시품이지만, 처음 숨긴 사람에게는 언젠가 다시 꺼내려 했던 재산이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물이 땅속에 남았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허리를 장식한 황금, 지위와 부를 드러내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13~14세기 러시아 황금 벨트 장식
    13~14세기 러시아의 황금 벨트 장식. 작은 금제 장식판을 연속해서 배치해 허리띠를 화려하게 꾸민 귀금속 복식 장식이다.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원본 사진 참고 · AI 복원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13~14세기의 황금 벨트 장식입니다. 오늘날 허리띠를 단순한 실용품으로 생각하면 조금 의외지만, 중세의 허리띠는 복식에서 꽤 눈에 띄는 장식 공간이었습니다.

     

    작은 금속 장식판을 허리띠를 따라 연속해서 달면 움직일 때마다 금빛이 이어집니다. 귀한 재료와 정교한 세공을 사용한 허리띠라면 착용자의 부와 지위를 드러내기에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현대에도 시계나 보석, 가방이 개인의 취향과 경제력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세의 화려한 허리띠와 머리 장식 역시 옷차림을 완성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시각적인 장치였습니다. 시대는 달라도 몸에 걸치는 물건으로 자신을 표현하려는 마음은 꽤 익숙합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12~13세기 금·은제 머리 장식과 팔찌, 반지, 십자가 장신구
    12~13세기 중세 루스의 금·은 장신구. 머리 장식과 팔찌, 반지, 십자가 등 다양한 형태를 통해 당시 복식과 귀금속 세공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원본 사진 참고 · AI 복원

     

    주변의 12~13세기 금·은 장신구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머리 장식과 팔찌, 반지, 십자가처럼 쓰임이 다른 물건들이 한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같은 귀금속을 사용하면서도 형태와 문양은 제각각입니다.

     

    이런 작은 물건들이 황금 보물실을 재미있게 만듭니다. 금이라는 재료는 같지만 시대와 장소가 달라질 때마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합니다. 머리 양옆에 매달리기도 하고 허리를 두르기도 하며, 조금 뒤에는 성화를 덮고 황실의 보석과 무기를 장식하게 됩니다.

     

    3. 황금이 권력이 되었을 때, 차르와 제국의 보물

     

    이제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집니다. 땅속에서 발견된 보물의 세계를 지나 궁정과 국가의 공간으로 들어서면 황금은 아름다운 재료를 넘어 권력과 명예를 전달하는 언어가 됩니다.

     

    황제가 금과 보석으로 장식한 물건을 누군가에게 하사한다는 것은 비싼 선물을 주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공적을 인정하고 특별한 호의를 표시하는 행위였습니다. 받는 사람에게는 재산이면서 명예였고, 황제와 자신의 관계를 눈에 보이게 증명하는 물건이기도 했습니다.

     

    황제가 직접 깎은 작은 잔, 보석을 입다

    표트르 1세가 직접 깎은 목제 몸체에 금과 다이아몬드 장식을 더한 1709년 차르카
    표트르 1세의 차르카, 1709년. 표트르가 직접 깎아 모스크바 총독 마트베이 가가린에게 선물한 목제 잔에 가가린이 순금 장식과 350개의 브릴리언트·다이아몬드를 더했다.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State Historical Museum) / 원본 사진 참고 · AI 전시 재현

     

    이 변화를 가장 재미있게 보여주는 유물이 1709년 표트르 1세의 차르카(charka)입니다. 지금 모습만 보면 처음부터 황금과 다이아몬드로 만든 왕실의 술잔처럼 보이지만 출발은 의외로 소박했습니다.

     

    차르카는 술을 마실 때 사용하던 작은 잔입니다. 이 잔의 목제 몸체는 놀랍게도 표트르 1세가 직접 선반으로 깎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배를 만들고 공구를 다루는 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황제의 성격을 생각하면 꽤 표트르다운 물건입니다.

     

    1709년 폴타바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모스크바 축하 행사를 훌륭하게 준비한 공로로 표트르는 이 잔을 모스크바 총독 마트베이 페트로비치 가가린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가가린은 황제가 만든 나무잔을 그대로 보관하지 않았습니다. 순금으로 화려한 장식을 만들고 무려 350개의 브릴리언트와 다이아몬드를 더했습니다. 황제가 직접 만든 소박한 목제 잔이 선물을 받은 사람의 손에서 눈부신 보물로 변한 것입니다.

     

    사진에서는 보석만 보지 말고 장식 사이로 남아 있는 갈색 목제 몸체도 찾아보십시오. 바로 그 부분이 이 유물의 출발점입니다. 황제가 손으로 만든 물건과 귀족이 덧입힌 금과 보석이 한 잔 안에서 함께 남아 있습니다.

     

    작은 잔 하나에 표트르의 취미와 폴타바의 승리, 황제의 포상 문화와 귀족의 화려한 취향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왕관처럼 거대한 보물보다 한 시대의 사람을 더 가까이 느끼게 해주는 유물이 때로는 이런 작은 물건입니다.

     

    황실의 권위를 보석에 새기다

    로마노프 황실과 관련된 시트린과 토파즈 인장 세 점
    로마노프 황실과 관련된 인장 세 점의 비교. 왼쪽은 1888년 러시아에서 제작된 시트린·금제 인장으로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품이며, 가운데는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의 1898년 토파즈 인장, 오른쪽은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와 관련된 탁상용 토파즈 인장이다. 가운데와 오른쪽 작품은 모스크바 크렘린 박물관 소장.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원본 사진 참고 · AI 전시 재현

     

    황실 사회에서 보석은 몸을 꾸미는 데만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문서에 권위를 남기는 인장에도 값비싼 보석이 사용되었습니다.

     

    사진에는 로마노프 황실과 관련된 인장 세 점이 나란히 있습니다. 다만 세 점의 현재 소장처는 서로 다릅니다. 왼쪽의 1888년 러시아제 시트린·금제 인장은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품이고, 가운데와 오른쪽의 황실 인장은 모스크바 크렘린 박물관 소장품입니다.

     

    가운데 작품은 알렉산드르 2세의 아들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이 소유했던 황금빛 토파즈 인장으로, 189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장인 빌헬름 라이머가 제작했습니다. 보석 위에 올라간 황실 왕관만 보아도 주인의 신분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오른쪽은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와 관련된 탁상용 토파즈 인장입니다. 황후와 관련된 코티지 궁전의 문장이 새겨져 있어 아름다운 장식품인 동시에 황실의 정체성을 표시하는 물건이었습니다.

     

    인장은 보기만 하는 보석이 아니었습니다. 문서의 밀랍 위에 문장을 남기면 작은 보석 하나가 소유자의 이름과 권위를 대신했습니다.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의 물건이지만 그 위에 새겨진 문장의 힘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꽃과 새까지 보석이 되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에 전시된 18세기 러시아 금제 장신구와 화려한 보석 세공품
    18세기 러시아의 금제 장신구와 보석 세공품. 목걸이와 브로치, 진주와 유색 보석을 활용한 장식에서 당시 상류층의 화려한 취향을 엿볼 수 있다.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원본 사진 참고 · AI 전시 재현

     

    황실과 귀족의 장신구로 시선을 옮기면 분위기는 한층 가벼워집니다. 18세기 러시아의 금제 목걸이와 브로치, 진주와 유색 보석을 활용한 장식에서는 당시 유럽 궁정문화와 연결된 화려한 취향이 드러납니다.

     

    19세기의 황금 밀 이삭 모양 머리 장식은 특히 재미있습니다. 들판의 밀 이삭을 그대로 귀금속으로 옮겨 머리에 꽂는 장신구로 만들었습니다. 가늘고 긴 이삭이 여러 갈래로 뻗어 있어 금으로 제작했음에도 식물 특유의 가벼운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세공가들이 사랑한 것은 식물만이 아니었습니다. 새와 곤충, 꽃과 잎은 귀금속을 만날 때마다 현실보다 더 화려한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서유럽 공작새 브로치와 백조 펜던트
    자연의 형태를 귀금속으로 옮긴 장신구. 왼쪽은 19세기 서유럽의 공작새 브로치, 오른쪽은 17세기 말 서유럽에서 제작된 뒤 19세기 러시아에서 추가 가공된 백조 펜던트다.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원본 사진 참고 · AI 전시 재현

     

    공작새 브로치와 백조 펜던트가 좋은 예입니다. 여기서는 한 가지를 정확히 구분해두는 편이 좋습니다. 두 작품 모두 GIM 소장품이지만 공작새 브로치는 19세기 서유럽 작품이고, 백조 펜던트 역시 17세기 말 서유럽에서 제작된 뒤 19세기 러시아에서 추가 가공되었습니다.

     

    출신지는 러시아가 아니지만 황금 보물실에서는 오히려 이런 작품이 제정 러시아 상류사회의 국제적인 취향을 보여줍니다. 공작의 펼쳐진 깃털과 백조의 곡선처럼 자연에서 가져온 형태가 귀금속과 진주, 자개를 만나 작은 조각품으로 변했습니다.

     

    수백 년 전 장신구인데도 형태가 의외로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오늘날 주얼리 매장에서 비슷한 동물과 식물 모티프를 만나더라도 그다지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시대가 달라져도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은 생각보다 오래 살아남습니다.

     

    황금은 칼에도 올라갔다

    황금이 장신구에만 사용되었다고 생각하면 이 전시의 중요한 한쪽을 놓치게 됩니다. 귀금속은 무기에도 올라갔습니다.

     

    화려하게 장식된 검과 사브르, 단검은 무기로서의 기능과 별개로 소유자의 지위와 명예를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손잡이와 칼집에 귀한 금속과 장식을 더하는 순간 칼은 전투 도구이면서 동시에 보여주기 위한 물건이 됩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19세기 중엽 그로드노 근위 후사르 연대의 킨잘과 샤슈카
    19세기 중엽 그로드노 근위 후사르 연대와 관련된 킨잘과 샤슈카. 화려한 손잡이와 칼집 장식에서 제정 러시아 근위 기병대 무기의 장식성을 살펴볼 수 있다.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19세기 중엽 그로드노 근위 후사르 연대와 관련된 킨잘과 샤슈카를 볼 때는 칼날보다 손잡이와 칼집을 먼저 살펴보는 것도 좋습니다. 킨잘은 코카서스 지역에서 널리 사용된 양날 단검 계열이고, 샤슈카는 기병과 밀접하게 연결된 도검입니다. 러시아 제국의 군사문화 속에서 실전용 무기가 의장성과 장식성을 함께 갖게 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독일 황제 빌헬름 1세와 관련된 1877년경 장식 검과 검집
    독일 황제 빌헬름 1세와 관련된 1877년경의 장식 검. 정교하게 꾸민 손잡이와 검집에서 19세기 유럽 왕실 무기의 화려한 공예성을 확인할 수 있다.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원본 사진 참고 · AI 전시 재현

     

    전시에는 독일 황제 빌헬름 1세와 관련된 1877년경의 장식 검도 등장합니다. 황금 보물실이 러시아에서 제작된 물건만을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왕실과 귀족 사회의 수집, 선물과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귀중한 공예품은 국경을 넘었습니다.

     

    이런 검 앞에서는 누가 만들었는지만큼 누가 소유했고 어떤 경로를 거쳐 컬렉션에 들어왔는지도 중요합니다. 화려한 무기는 그 자체로 공예품이지만 동시에 19세기 유럽 왕실 문화가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물건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오면 황금의 역할이 꽤 많이 달라졌습니다. 고대에는 무덤과 몸을 장식했고, 중세에는 귀족의 복식에 매달렸으며, 제국의 시대에는 황실의 선물과 인장, 화려한 무기 위에서도 빛났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황금이 또 하나의 강렬한 의미를 얻은 장소가 있습니다.

     

    궁전의 보석 못지않게 눈부신 금빛이 필요했던 곳, 바로 성화와 제단 앞입니다.

     

    4. 성화와 성배도 황금으로 빛나다, 정교회의 보물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황금 보물실에 전시된 화려한 금제 성물과 성화 장식 유물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황금 보물실. 금과 보석으로 장식한 종교 공예품과 성화 장식 유물들이 당시 금세공 기술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State Historical Museum) 공식 홈페이지 / 원본 사진 참고 · AI 복원

     

    러시아의 황금을 이야기하면서 정교회 미술을 빼놓기는 어렵습니다. 중세와 근세 러시아에서 귀금속 세공 기술이 가장 화려하게 펼쳐진 공간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황금은 왕의 권력을 보여주는 재료인 동시에 신성한 대상을 빛으로 드러내는 재료였습니다. 성배와 십자가, 향로와 복음서에 금과 은이 사용되었고, 중요한 성화에는 진주와 보석까지 더해졌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화려함이 단순한 장식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가장 귀한 것을 신에게 바치는 봉헌의 의미가 그 안에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그림 위에 보석을 입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17세기 《전능자 그리스도》 성화와 금·은·보석으로 장식된 오클라드
    17세기 러시아의 《전능자 그리스도》 성화. 금과 은,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에메랄드, 루비, 진주 등을 사용한 귀금속 장식에서 러시아 성화 장식의 화려함을 볼 수 있다.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원본 사진 참고 · AI 전시 재현

     

    황금 보물실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는 종교 유물 가운데 하나가 《전능자 그리스도》 성화의 귀금속 장식입니다.

     

    러시아 성화를 처음 보는 관람객이라면 조금 신기할 수 있습니다. 이미 완성된 그림 위에 다시 금속 장식을 씌웠기 때문입니다. 성화를 덮는 이러한 귀금속 장식을 흔히 오클라드(oklad) 또는 리자(riza)라고 부릅니다.

     

    그렇다고 그림을 감추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얼굴과 손처럼 중요한 부분은 드러내고 옷과 배경, 후광 주변을 금·은판으로 장식했습니다. 여기에 진주와 보석을 더하면 평면의 그림 위로 금속 장식이 솟아오르면서 성화 전체가 빛을 반사하는 성물로 변합니다.

     

    사진에서는 그리스도의 얼굴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십시오. 금과 은,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에메랄드, 루비, 진주가 작은 공간 안에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 보석의 크기보다 서로 다른 재료를 하나의 화면처럼 조합한 방식이 더 놀랍습니다.

     

    성화를 그린 화가가 얼굴과 손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면 금세공가는 그 주변에 빛나는 또 하나의 화면을 만들었습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17세기 크렘린 공방 제작 《스몰렌스크 성모》 성화의 귀금속 리자
    17세기 《스몰렌스크 성모》 성화의 귀금속 리자. 금속 세공과 보석 장식을 통해 러시아 성화에 귀금속 공예가 결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GIM) 소장.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스몰렌스크 성모》 성화의 귀금속 리자에서도 같은 원리를 볼 수 있습니다. 성모와 아기 예수의 얼굴은 드러나 있지만 그 주변은 귀금속과 보석 장식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오늘날의 감각으로 보면 조금 지나치다 싶을 만큼 화려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가장 귀한 재료를 성화에 바치는 것 자체가 신앙의 표현이었습니다. 금과 보석은 부를 보여주는 물질인 동시에 경외심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바꾸는 재료이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1686년 크렘린 공방 제작 《블라디미르 성모》 성화의 귀금속 리자
    1686년 모스크바 크렘린 공방에서 제작된 《블라디미르 성모》 성화의 리자. 정교한 금속 세공과 진주·보석 장식으로 17세기 러시아 궁정 귀금속 공예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GIM) 소장.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원본 사진 참고 · AI 복원

     

    그중에서도 1686년 모스크바 크렘린 공방에서 제작된 《블라디미르 성모》 성화의 리자는 제작 기술뿐 아니라 봉헌의 역사까지 흥미롭습니다.

     

    이 귀금속 장식은 차르 이반 5세와 표트르 1세, 그리고 소피야 알렉세예브나가 알렉산드로프의 우스펜스키 수도원에 봉헌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황실의 재력과 궁정 공방의 기술, 정교회 신앙이 한 작품 안에서 만난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큰 보석보다 작은 부분이 더 재미있습니다. 반복되는 금속 문양과 진주 테두리, 보석을 하나씩 고정한 작은 세공까지 눈으로 따라가 보십시오. 넓은 금빛보다 이런 세부에서 장인의 손길이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십자가와 향로, 의식의 순간을 황금으로 만들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1652년 귀금속 제단 십자가
    1652년 제작된 귀금속 제단 십자가. 십자가 표면을 정교한 금속 세공과 진주, 여러 색의 보석과 에나멜 장식으로 꾸몄으며 중앙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표현되어 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GIM) 소장.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원본 사진 참고 · AI 복원

     

    성화 옆에서는 1652년의 귀금속 제단 십자가도 천천히 살펴볼 만합니다.

     

    멀리서 보면 먼저 황금빛과 보석이 들어오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중앙의 십자가형을 중심으로 작은 장식과 문양이 빈틈없이 이어지고, 보석과 에나멜이 금속 표면에 색을 더합니다.

     

    작은 면적 안에 조각과 금속공예, 보석 세공이 겹쳐 있어 십자가 전체가 하나의 축소된 제단처럼 보입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1626년 이반 콜톱스키의 귀금속 향로
    1626년에 제작된 이반 콜톱스키의 향로. 둥근 몸체와 돔 형태의 뚜껑을 정교한 금속 세공과 문양으로 장식했으며, 긴 사슬을 이용해 흔들며 향을 피우도록 제작된 러시아 정교회의 전례용 기물이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GIM) 소장.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원본 사진 참고 · AI 복원

     

    1626년 이반 콜톱스키의 향로는 박물관 진열장에서 볼 때와 실제 사용되었을 때의 모습이 꽤 달랐을 물건입니다.

     

    향로 안에 향을 피우고 성직자가 긴 사슬을 잡아 흔들면 금속 몸체가 움직이며 빛을 받았고, 향 연기는 주변 공간으로 퍼졌습니다. 눈으로 보는 금빛에 향기와 움직임까지 더해졌던 것입니다.

     

    지금은 유리 진열장 안에서 조용히 멈춰 있지만 원래는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이런 전례용 기물은 본래의 교회 공간과 의식 속 모습을 상상할 때 훨씬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책도 보물이 될 수 있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1530~1533년 보로프스크 복음서의 금빛 채색 미니어처와 장식 페이지
    1530~1533년에 제작된 《보로프스크 복음서》. 펼쳐진 페이지에는 화려한 테두리와 금빛을 사용한 미니어처가 남아 있으며 그림과 문자, 장식이 하나의 화면을 이룬다. - Wikimedia Commons · Pravmir.ru / 원본 사진 참고 · AI 복원

     

    조금 뜻밖의 보물도 있습니다. 책입니다.

     

    1530~1533년의 《보로프스크 복음서》처럼 중요한 전례서는 단순히 글을 읽기 위한 책이 아니었습니다. 펼친 페이지에는 문자와 미니어처, 화려한 테두리가 어우러졌고 금빛 장식까지 더해져 한 장 한 장이 작은 종교미술 작품처럼 꾸며졌습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1530~1533년 보로프스크 복음서의 진주와 보석으로 장식된 귀금속 표지
    《보로프스크 복음서》의 화려한 귀금속 표지. 중앙의 십자가형 장식과 성상 패널을 중심으로 금속 세공과 진주, 유색 보석을 배치해 필사본과 귀금속 공예가 결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State Historical Museum) 공식 홈페이지 / 원본 사진 참고 · AI 복원

     

    책을 덮어도 화려함은 끝나지 않습니다. 귀금속 표지 중앙에는 십자가형 장식이 자리하고 그 주변으로 작은 성상과 진주, 유색 보석이 촘촘하게 이어집니다.

     

    오늘날 책을 보호하기 위해 표지를 씌우는 것과는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성스러운 말씀을 담은 책이었기 때문에 그 외형에도 귀한 재료와 뛰어난 기술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책을 펼치기 전부터 이미 무엇을 담고 있는 물건인지 보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차레브나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와 관련된 화려한 귀금속 성배
    차레브나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와 관련된 전례용 성배. 금빛 잔과 채색 성화 메달리온, 정교한 금속 장식에서 러시아 정교회 귀금속 공예의 화려함을 살펴볼 수 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GIM) 소장.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원본 사진 참고 · AI 복원

     

    마지막으로 차레브나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와 관련된 성배를 보면 왕실과 교회의 관계가 다시 만납니다. 예카테리나는 차르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의 딸로, 황실과 관련된 전례용 기물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잔의 몸체와 높은 받침에는 화려한 금속 장식이 이어지고 작은 성화 메달리온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술을 담는 그릇과 비슷한 형태이지만 이곳에서 담는 포도주는 성찬례의 일부였습니다. 그래서 성배는 생활용 그릇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녔습니다.

     

    여기까지 걸어오면 황금이 얼마나 다양한 역할을 맡았는지 분명해집니다. 몸을 꾸미고 신분을 드러내던 금은 교회 안으로 들어와 성화와 십자가, 향로와 책, 성배를 빛냈습니다.

     

    그런데 이제 황금은 다시 성스러운 공간을 빠져나옵니다.

     

    이번에는 제단이 아니라 식탁과 주머니, 옷깃과 책상 위입니다.

     

    5. 보석에서 식탁까지, 황금으로 완성한 제국의 사치

     

    18세기와 19세기로 들어서면 황금 보물실의 분위기가 다시 달라집니다. 종교적인 엄숙함 대신 궁정과 귀족 사회의 취향이 전면에 등장합니다.

     

    귀금속은 놀랄 만큼 생활 가까이 들어왔습니다. 잔과 접시, 상자와 시계, 담뱃갑과 브로치처럼 손에 들고 사용하던 물건들이 금과 은, 보석을 입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생활은 평범한 사람의 일상이 아닙니다. 황실과 귀족, 그리고 제국 최상층의 일상입니다.

     

    식탁도 권력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바이에른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18세기 아우크스부르크 제작 힐데스하임 주교후의 대규모 은식기 세트
    1763년 힐데스하임 주교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베스트팔렌을 위해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제작된 대규모 은식기 세트. 600점이 넘는 은식기와 테이블 장식은 18세기 유럽 궁정에서 식탁이 부와 권위를 보여주는 중요한 무대였음을 보여준다. 바이에른 국립박물관 소장. - FA2010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 원본 사진 참고 · AI 복원

     

    궁정의 연회에서 금·은 식기는 단순한 그릇이 아니었습니다. 수십 명의 손님 앞에 같은 양식의 접시와 잔, 촛대와 테이블 장식이 길게 늘어서는 순간 식탁 전체가 하나의 장면이 되었습니다.

     

    위 사진은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품이 아니라 18세기 유럽 궁정 식탁의 규모를 보여주기 위한 비교 자료입니다. 힐데스하임 주교후를 위해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제작된 600점이 넘는 은식기 세트로, 당시 최고위층의 연회가 얼마나 거대한 귀금속 전시장이 될 수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런 식기를 볼 때 무엇을 담았는지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십 점, 때로는 수백 점의 은식기를 한꺼번에 주문하고 보관하고 관리할 수 있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생각하면 물건 뒤에 있던 권력의 규모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왕실 사이에 오간 귀금속 식기는 외교 선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때 그릇의 가치는 금과 은의 무게만으로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보냈는가가 더 중요했습니다.

     

    때로는 그릇 하나가 외교문서보다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주머니 속에 들어간 작은 사치, 스너프박스

    18세기 금제 스너프박스와 화려한 귀금속 생활 공예품
    18세기 귀족 사회의 화려한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스너프박스와 귀금속 공예품. 작은 상자들은 코담배를 보관하는 실용품을 넘어 취향과 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사교용품으로 사용되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GIM) 소장품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원본 사진 참고 · AI 전시 재현

     

    거대한 식탁과 정반대의 매력을 가진 물건도 있습니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스너프박스, 즉 코담배 상자입니다.

     

    18세기 유럽 상류사회에서 코담배를 즐기는 문화가 유행하면서 작은 상자는 금세공가들의 훌륭한 작업 공간이 되었습니다. 금 표면에 에나멜을 입히고 보석을 더하거나 초상과 문장을 넣어 작은 상자 하나를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주머니 속에 감춰두기만 하는 물건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사교 자리에서 코담배를 꺼내려면 상자를 손에 들고 열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그 작은 물건에 머뭅니다.

     

    황제가 귀한 스너프박스를 하사하기도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받은 사람에게는 값비싼 소지품이면서 동시에 황실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증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거대한 왕관만 권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상자 하나로도 충분했습니다.

     

    파베르제, 보석을 작은 조각으로 만들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파베르제 공방의 대형 아쿠아마린과 다이아몬드 장식 브로치
    1908~191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베르제 공방에서 제작된 브로치. 커다란 아쿠아마린을 중심으로 다이아몬드와 토파즈, 금과 은을 배치한 작품으로 파베르제 공방의 세련된 보석 세공을 보여준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GIM) 소장.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원본 사진 참고 · AI 복원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로 가면 러시아 귀금속 공예에서 재료의 값만큼 디자인과 완성도가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이름이 파베르제입니다.

     

    파베르제라고 하면 황실 부활절 달걀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공방에서 만든 것은 훨씬 다양했습니다. 브로치와 담뱃갑, 액자와 시계, 작은 상자와 탁상 장식품처럼 몸에 걸거나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에도 최고 수준의 귀금속 공예가 적용되었습니다.

     

    사진의 아쿠아마린 브로치는 1908~191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베르제 공방에서 제작되었습니다. 커다란 아쿠아마린을 중심에 놓고 다이아몬드와 토파즈, 금과 은을 더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보석을 빈틈없이 채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중심의 푸른 아쿠아마린이 충분히 돋보이도록 주변 장식을 절제했습니다. 앞서 본 17세기 성화 장식의 빽빽한 화려함과 비교하면 같은 귀금속 공예라도 미감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말라카이트 시계에 숨은 근위기병대의 이야기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 1901년 파베르제 공방의 말라카이트 장식 탁상시계
    1901년 파베르제 공방의 율리우스 라포포르트가 제작한 말라카이트·은제 탁상시계. 근위기병연대 장교들이 연대장 니콜라이 오도옙스키-마슬로프 공에게 증정한 기념품이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GIM) 소장. - Shakk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원본 사진 참고 · AI 복원

     

    파베르제의 작품 가운데 1901년 말라카이트 탁상시계는 겉모습만큼이나 그 사연이 재미있습니다.

     

    이 시계는 파베르제 공방의 장인 율리우스 라포포르트가 제작했습니다. 짙은 녹색 말라카이트와 은을 사용하고, 기마상과 군인상 같은 조각을 더해 작은 시계 하나를 기념비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시계에 군인과 말이 등장했을까요.

     

    이 작품은 러시아 제국의 근위기병연대 장교들이 연대장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오도옙스키-마슬로프 공에게 증정한 물건이었습니다. 장식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이 시계를 받은 사람의 군 경력을 말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연을 알고 다시 사진을 보면 장식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말라카이트와 은, 시계와 기마상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경력과 명예를 기념하도록 처음부터 함께 설계되었습니다.

     

    시간을 확인하는 물건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삶을 기념하는 작은 기념비였습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특별전 《아름다움의 매혹》에 전시된 브로치와 귀걸이, 팔찌, 목걸이 등 화려한 귀금속 장신구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특별전 《아름다움의 매혹: 러시아 보석 장신구의 역사》 전시 모습. 특별 보물실 컬렉션의 브로치와 귀걸이, 팔찌, 목걸이 등 다양한 귀금속 장신구를 통해 시대에 따른 보석 디자인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 Foto.Mos.ru /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GIM) 특별전 《Очарование красоты》 / 원본 사진 참고 · AI 전시 재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브로치와 펜던트, 시계와 작은 장식품까지 둘러보고 나면 황금 보물실은 더 이상 단순한 왕실 보물창고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몸에 걸었던 물건이 있고 손으로 들었던 물건이 있습니다. 식탁에 올렸던 그릇이 있고 기도할 때 바라보았던 성화가 있으며, 공적과 명예를 기념했던 물건도 있습니다.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특별 보물실 소장 브로치와 펜던트, 목걸이 등 귀금속 장신구 특별전 전경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특별전 《아름다움의 매혹: 러시아 보석 장신구의 역사》 전시장. 특별 보물실이 소장한 17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의 다양한 장신구를 한자리에서 선보였다. - Foto.Mos.ru /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GIM) 특별전 《Очарование красоты》 / 원본 사진 참고 · AI 전시 재현

     

    황금보다 오래 남은 것은 사람의 이야기다

    황금 보물실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처음에는 비슷하게 반짝이던 물건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땅속에서 발견된 작은 장신구에는 그것을 몸에 걸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전쟁과 혼란 속에서 귀중품을 숨긴 사람은 언젠가 다시 돌아와 꺼낼 생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보석으로 뒤덮인 성화 앞에서는 누군가 기도했고, 황제가 건넨 선물은 받는 사람에게 평생 간직할 명예였을 것입니다. 귀족은 화려한 스너프박스를 손에 들었고, 근위기병대 장교들은 자신들의 지휘관에게 특별한 시계를 선물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정말 흥미로운 것은 금의 양이나 보석의 크기가 아닙니다.

     

    같은 황금이 시대마다 전혀 다른 의미를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황금은 몸을 꾸미는 장식이었고, 어떤 사람에게는 신에게 바치는 가장 귀한 재료였습니다. 왕과 황실에는 권위와 포상을 표현하는 수단이었고, 장인에게는 자신의 기술과 상상력을 보여줄 재료였습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금을 두드리고 자르고 녹이고, 그 위에 문양을 새기고 보석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을 그 작은 물건들에 남겼습니다.

     

    그래서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의 황금 보물실은 비싼 물건을 모아놓은 전시실로만 바라보기에는 아깝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시대마다 무엇을 귀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재미있습니다.

     

    처음에는 황금빛을 따라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진열장을 지나고 나면 물건을 만들고, 몸에 걸고, 선물하고, 숨기고, 봉헌하고, 그 앞에서 기도했던 사람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황금은 여전히 진열장 안에서 반짝이고 있습니다.

     

    다만 이제는 그 빛 뒤에 숨어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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