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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세계문화유산을 따라가면 한 나라의 역사가 세 장소에서 이어집니다. 옐링에서는 바이킹 왕국의 출발을, 로스킬레 대성당에서는 기독교 왕국과 왕실의 역사를, 크론보르 성에서는 바다를 장악했던 덴마크의 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룬스톤에서 왕릉을 지나 《햄릿》의 성까지, 이번에는 유명한 유적을 하나씩 둘러보는 대신 덴마크가 어떻게 하나의 왕국으로 성장했는지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1. 덴마크라는 나라의 시작은 두 개의 돌에 새겨져 있다
옐링에 도착하면 먼저 룬스톤부터 찾아보자

유틀란반도 중부의 작은 마을 옐링(Jelling)에 도착하면 처음에는 조금 의외일 수 있습니다. 거대한 궁전이나 성벽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곳이 덴마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교회 앞에 서 있는 두 개의 룬스톤입니다. 작은 돌은 10세기 고름 왕(Gorm the Old)이 왕비 튀라(Thyra)를 기리며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하랄드 블루투스(Harald Bluetooth)가 세운 더 큰 룬스톤으로 시선을 옮기면 이야기의 규모가 갑자기 커집니다.
이 돌에는 하랄드가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얻고 덴마크인을 기독교도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쪽 면에는 얽힌 용과 동물무늬가 보이고, 다른 면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그리스도상이 나타납니다. 옐링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고분과 한 룬스톤이 옛 북유럽의 이교 문화를 보여준다면, 다른 룬스톤과 교회는 기독교화가 시작된 새로운 시대를 보여줍니다.
고분과 교회를 함께 보아야 옐링이 완성된다

룬스톤만 보고 돌아서기에는 아깝습니다. 주변을 보면 비슷한 크기의 거대한 고분 두 기가 교회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북쪽 고분에서는 목재로 만든 매장실이 발견되었고, 남쪽 고분에는 매장실이 없습니다.

북쪽 고분에서는 눈여겨볼 만한 유물도 나왔습니다. 목조 매장실에서 발견된 작은 은제 옐링 컵(Jelling Cup, Jellingbægeret)입니다. 왕릉을 떠올리면 화려한 보물을 먼저 기대하게 되지만, 이 작은 컵이 중요한 이유는 크기나 재료보다 표면을 뒤덮은 장식에 있습니다.
컵에는 동물의 몸과 띠 모양의 선이 서로 얽혀 이어지는 정교한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장식은 바이킹 시대 미술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양식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오늘날에는 유적의 이름을 따라 옐링 양식(Jelling Style)이라고 부릅니다. 거대한 고분이 당시 왕권의 규모를 보여준다면, 작은 은제 컵은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장식과 미감을 즐겼는지를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그리고 두 고분 사이에는 지금의 흰색 석조 교회가 서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여러 차례 세워졌다 사라진 초기 목조 교회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한 장소 안에 고분, 룬스톤, 교회가 겹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무덤을 만들던 신앙의 세계 옆에 십자가를 받아들인 왕의 기념비가 서고, 그 자리에 교회가 들어섰습니다. 옐링에서는 왕조가 바뀐 것이 아니라 같은 왕실이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이 바뀌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은 유적을 덴마크 국가 형성의 출발점처럼 바라보게 됩니다.
Bluetooth라는 이름도 이 왕에게서 왔다

여기서 조금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나 챙겨두면 좋습니다. 스마트폰과 이어폰을 연결할 때 사용하는 Bluetooth라는 이름은 바로 하랄드 블루투스에서 가져왔습니다.
서로 다른 지역을 하나의 왕국 아래 결합한 왕의 이름을, 서로 다른 전자기기를 연결하는 기술에 붙인 것입니다. Bluetooth 로고 역시 하랄드 이름의 이니셜에 해당하는 룬 문자를 결합해 만들었습니다. 천 년 전 왕의 이름이 오늘날 휴대전화 화면 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룬스톤을 보면 옐링이 갑자기 훨씬 가까운 역사처럼 느껴집니다.
2. 바이킹의 왕들이 떠난 뒤, 로스킬레에는 왕들의 무덤이 쌓였다
붉은 벽돌 성당 하나에 수백 년의 건축이 겹쳐 있다

옐링에서 국가의 시작을 보았다면 다음 장면은 로스킬레 대성당(Roskilde Cathedral)입니다. 코펜하겐에서 기차를 타고 쉽게 갈 수 있지만,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의 폭은 다시 수백 년으로 늘어납니다.

대성당은 약 1170년경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기 시작했지만 공사 도중 프랑스에서 들어온 고딕 양식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거대한 성당을 벽돌로 세웠다는 점입니다. 로스킬레 대성당은 스칸디나비아 최초의 벽돌 고딕 대성당으로 평가되며, 이후 북유럽에 이 건축 방식이 확산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외관을 볼 때는 붉은 벽돌과 두 개의 첨탑만 보지 말고 건물이 얼마나 복잡하게 이어져 있는지도 살펴보세요. 수백 년에 걸쳐 현관과 예배당이 계속 추가되면서 여러 시대의 건축이 한 성당 안에 겹쳤습니다. 로스킬레의 매력은 완벽하게 통일된 건축보다 시간이 건물에 계속 덧붙여졌다는 데 있습니다.
왕릉을 따라가면 덴마크 왕조의 계보가 보인다

이곳에서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왕들의 무덤입니다. 로스킬레 대성당은 15세기 이후 덴마크 왕실의 대표적인 묘역이 되었고, 역대 군주와 왕실 인물들의 무덤이 여러 예배당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왕릉의 모습이 모두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무덤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고, 어떤 공간에서는 바로크와 신고전주의의 분위기가 나타납니다. 왕을 묻는 장소는 같았지만 왕권을 보여주는 미감은 시대마다 달라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유명한 왕 한 사람의 무덤만 찾아다니기보다 예배당 사이를 천천히 이동해보는 편이 좋습니다. 옐링의 룬스톤이 왕 한 사람이 자신의 업적을 돌에 기록한 기념비라면, 로스킬레에서는 여러 세대의 왕들이 하나의 건축물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두 장소를 연달아 보면 덴마크 왕권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보입니다. 옐링에서는 왕이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돌에 선언했다면, 로스킬레에서는 이미 기독교 왕국의 군주들이 성당 안에 묻히는 전통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옐링에서 시작된 변화가 로스킬레에서는 왕실의 전통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로스킬레 대성당은 예배와 교회 행사에 따라 관광객 관람시간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당일 운영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로스킬레 대성당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3. 바다를 지배하려면 성 하나를 어디에 세워야 할까
크론보르의 진짜 주인공은 햄릿보다 외레순 해협이다
덴마크에서 가장 유명한 성을 하나 고르라면 크론보르 성(Kronborg Castle)이 빠지기 어렵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등장하는 엘시노어의 성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에 도착하면 햄릿보다 먼저 바다를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크론보르가 자리한 헬싱외르(Helsingør) 앞에는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의 외레순 해협(Øresund)이 펼쳐집니다. 폭이 좁아지는 지점이라 북해에서 발트해로 들어가거나 반대로 나오는 선박을 통제하기에 이상적인 장소였습니다. 크론보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 핵심도 아름다운 성 자체뿐 아니라 이 전략적인 위치와 북유럽 해상 교역에서 수행한 역할에 있습니다.
성의 대포는 장식이 아니었다

크론보르의 전신은 15세기 초 포메라니아의 에리크 왕이 세운 요새 크로겐(Krogen)이었습니다. 덴마크는 이곳을 이용해 해협을 지나는 선박을 통제했고, 오랫동안 외레순 통행세(Sound Dues)를 거두었습니다.

16세기 프레데리크 2세 시대에는 기존 요새가 화려한 르네상스 성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왕실의 연회와 외교를 위한 궁전인 동시에, 해협을 향해 대포를 겨누는 군사 요새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성벽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면 크론보르의 위치가 갑자기 이해됩니다. 멋진 해안 풍경을 즐기기 좋은 장소이면서 동시에 배가 지나가는 길 자체를 권력으로 바꿀 수 있었던 장소였습니다. 크론보르의 건축보다 먼저 지형을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이 성을 세계적인 무대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햄릿》 이야기를 빼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셰익스피어가 희곡 속 덴마크 왕자의 비극이 펼쳐지는 장소를 엘시노어(Elsinore)로 설정하면서 크론보르는 문학 속에서 또 하나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성의 긴 복도와 안뜰, 어두운 지하 공간을 걷다 보면 왜 이곳이 《햄릿》과 잘 어울리는지도 조금은 이해됩니다. 다만 실제 관람에서는 순서를 바꿔보세요. 햄릿의 성을 보러 왔다가 북유럽의 해상 권력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크론보르를 훨씬 흥미롭게 보는 방법입니다.
4. 햄릿만 보고 돌아서기 아쉽다, 세 세계유산에서 꼭 볼 것
대표 유적 하나보다 서로 연결되는 장면을 찾아보자

세 곳 모두 볼거리가 많지만 모든 것을 같은 비중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옐링에서는 먼저 하랄드 블루투스의 큰 룬스톤을 찾아보세요. 글자만 읽고 지나가지 말고 돌의 여러 면을 돌면서 용 무늬와 그리스도상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도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 고분 쪽으로 몇 걸음 물러나 룬스톤과 교회가 한 공간 안에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세요. 바로 그 장면에 옛 북유럽 신앙과 새로운 기독교 문화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로스킬레에서는 성당 중앙만 보고 나오지 말고 옆으로 이어지는 왕실 예배당들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배당을 옮겨 다니며 왕릉의 형태와 장식이 달라지는 것을 비교하면 한 성당이 여러 시대의 건축사 박물관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크론보르에서는 화려한 왕실 공간만큼 외레순을 바라보는 성벽에 시간을 내보세요. 그곳에서 스웨덴 해안과 배들이 오가는 바다를 직접 보면 통행세와 해상 전략에 관한 설명이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지하 공간의 홀거 단스케(Holger Danske)도 빼놓기 어렵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덴마크 영웅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깨어난다고 전해집니다. 역사적인 성 아래에서 전설 속 영웅까지 만나는 순간, 크론보르는 정치사와 군사사만 남은 유적이 아니라 덴마크 사람들이 오랫동안 이야기를 덧붙여온 장소라는 사실도 보입니다.
5. 코펜하겐에서 어디부터 갈까, 세 세계유산을 여행하는 방법
로스킬레와 크론보르는 당일치기, 옐링은 별도 일정이 좋다
세 곳을 지도에서 보면 여행 방법도 자연스럽게 나뉩니다. 로스킬레 대성당과 크론보르 성은 코펜하겐을 거점으로 각각 당일치기가 가능합니다. 로스킬레는 코펜하겐 서쪽, 크론보르는 북쪽 헬싱외르에 있어 한곳을 충분히 보고 돌아오는 일정이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두 곳을 억지로 하루에 묶기보다는 로스킬레에서는 대성당과 구시가지를 천천히 걷고, 헬싱외르에서는 크론보르와 항구까지 함께 보는 편을 추천합니다. 세계유산은 입구 사진만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기 쉽습니다.
옐링은 유틀란반도에 있어 별도의 일정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빌룬이나 바일레(Vejle)를 여행할 때 함께 묶으면 동선이 자연스럽습니다. 야외의 고분과 룬스톤을 보고 주변 전시까지 살펴보려면 짧은 인증 여행보다는 시간을 조금 넉넉하게 잡는 편이 좋습니다.
세 장소를 보고 나면 덴마크의 역사가 하나로 이어진다
여행 순서를 꼭 역사 순서와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 여행에서는 코펜하겐에서 가까운 로스킬레나 크론보르를 먼저 보고 나중에 옐링을 찾아갈 수도 있습니다.
다만 세 장소를 모두 보고 나면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시간 순서가 만들어집니다.
옐링에서는 바이킹 왕이 새로운 국가와 종교를 돌에 기록하고, 로스킬레에서는 그 기독교 왕국의 군주들이 한 성당에 묻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크론보르에서는 성장한 왕국이 북유럽의 바닷길을 통제하는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세 세계문화유산은 유명한 유적 세 곳을 모은 여행지 목록이라기보다 덴마크 역사의 서로 다른 장면에 가깝습니다. 옐링의 작은 룬스톤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붉은 벽돌 대성당을 지나 외레순을 바라보는 거대한 성까지 이어집니다.
덴마크에서 세계유산을 찾는다면 이름을 많이 체크하기보다 이 세 곳부터 천천히 걸어보세요. 바이킹의 흔적을 보는 여행이 어느 순간 한 나라가 만들어지고 성장하는 과정을 읽는 여행으로 바뀌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