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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펜하겐의 덴마크 국립박물관(Nationalmuseet)에는 수천 년에 걸친 덴마크의 역사가 유물로 남아 있습니다. 청동기시대의 태양마차부터 철기시대의 보물, 바이킹 유물과 황금뿔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소장품도 상당합니다.

     

    이번에는 전시실을 빠르게 훑기보다 꼭 봐야 할 대표 유물을 따라 덴마크의 시간을 걸어보겠습니다. 작은 유물 하나에도 생각보다 긴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프레데릭스홀름 운하와 정박한 보트 너머로 보이는 코펜하겐 덴마크 국립박물관 프린센스 팔레 외관
    프레데릭스홀름 운하를 따라 자리한 덴마크 국립박물관. 박물관은 18세기 왕실 저택이었던 프린센스 팔레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 Illya Kondratyuk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덴마크 국립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바로가기

     

     

    1. 3,400년 전 사람들은 태양을 수레에 태웠다

    트룬드홀름 태양마차에서 시작하는 덴마크의 청동기시대

    금박으로 장식된 태양 원반과 말이 바퀴 위에 놓인 청동기시대 트룬드홀름 태양마차
    트룬드홀름 태양마차의 전체 모습. 금박을 입힌 태양 원반과 말이 바퀴 달린 구조로 연결되어 있으며, 북유럽 청동기시대의 태양 숭배와 세계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 Nationalmuseet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첫 번째로 찾아갈 유물은 크기로 압도하는 보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생각보다 작아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말 한 마리가 둥근 원반을 끌고 있습니다. 말과 원반 아래에는 바퀴가 달려 있고, 원반 한쪽에는 얇은 금판이 입혀져 있습니다. 이것이 덴마크 국립박물관을 대표하는 트룬드홀름 태양마차(Trundholm Sun Chariot)입니다.

     

    약 기원전 1400년에 만들어졌으며, 1902년 셸란섬 북서부 트룬드홀름의 습지를 처음 경작하던 과정에서 발견되었습니다. 3,400년 전 사람들이 만든 작은 청동 마차가 오늘날까지 남은 것입니다.

     

    왜 태양의 한쪽 면에만 금을 입혔을까?

    금박이 없는 청동 원반과 말, 바퀴 구조가 보이는 트룬드홀름 태양마차의 반대쪽 면을 재현한 이미지
    트룬드홀름 태양마차의 금박이 없는 면을 재현한 모습. 금빛으로 장식된 반대쪽과 달리 청동 표면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원반에는 정교한 동심원과 나선 문양이 새겨져 있다. 흔히 금박 면은 낮의 태양, 이 면은 밤의 태양과 연결해 해석한다. AI 재현 / 덴마크 국립박물관(Nationalmuseet) 트룬드홀름 태양마차 공식 자료 참고

     

    여기서 원반을 자세히 보세요. 한쪽 면은 금으로 빛나지만 반대쪽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차이가 태양마차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당시 북유럽 사람들에게 태양은 하늘에 가만히 떠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아침이면 나타나 하늘을 건너고 저녁이면 사라졌다가 다음 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밤사이 태양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태양의 움직임을 하나의 거대한 여행으로 이해했습니다. 태양마차는 신성한 말이 태양의 영원한 여행을 돕는 모습을 형상화한 유물로 해석됩니다.

     

    금으로 장식된 면은 낮의 태양, 금이 없는 면은 밤의 태양과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바퀴와 말 역시 태양이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생각을 눈앞의 물건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마차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면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이 보입니다. 3,400년 전 사람들은 이미 청동을 녹여 원하는 형태로 주조하고, 얇게 편 금판을 입혀 정교한 무늬를 새길 줄 알았습니다.

     

    이 정도의 물건은 한 사람의 솜씨만으로 탄생하기 어렵습니다. 금속을 다루는 전문 장인이 필요했고, 청동의 원료인 구리와 주석, 그리고 귀한 금을 구해 오는 교역망도 뒷받침되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귀한 재료와 숙련된 노동력을 의례적인 물건에 쏟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 사회에 자원과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유력한 집단과 사회적 위계가 존재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래서 트룬드홀름 태양마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빛 태양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 뒤에 있던 전문 장인과 장거리 교역망, 그리고 생각보다 복잡하게 조직되어 있었던 3,400년 전 북유럽 사회까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말과 배가 태양을 움직이던 세계

    태양마차를 보고 나면 주변 유물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말과 배, 둥근 태양의 이미지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북유럽 청동기 문화에서 이들은 서로 떨어진 상징이 아니라 태양의 순환을 설명하는 이미지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은 마차는 단순한 장식품보다 훨씬 많은 것을 들려줍니다. 3,400년 전 사람들도 매일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설명하려 했다는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덴마크의 선사시대를 시작하기에 이보다 좋은 첫 유물도 드뭅니다.

     

    2. 뿔 달린 투구의 주인은 바이킹이 아니었다

    벡쇠 투구를 보면 누구나 바이킹부터 떠올린다

    덴마크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청동기시대 벡쇠 투구 두 점과 길게 휘어진 뿔 장식
    기원전 약 900년경 제작된 벡쇠 투구. 길게 휘어진 뿔 때문에 바이킹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바이킹시대보다 훨씬 앞선 북유럽 청동기시대의 유물이다. - Lennart Larsen / Nationalmuseet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태양마차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꽤 익숙한 모습의 물건과 마주칩니다. 양옆으로 기다란 뿔이 솟은 청동 투구입니다.

     

    아마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바이킹’ 일 겁니다. 영화와 만화에서 워낙 자주 본모습이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 바이킹 시대까지 가지도 않았습니다.

     

    눈앞에 있는 것은 벡쇠 투구(Viksø Helmets)입니다. 두 점의 청동 투구는 1942년 셸란섬 벡쇠의 습지에서 발견되었으며, 바이킹 시대보다 훨씬 앞선 청동기시대 말기에 만들어졌습니다.

     

    덴마크에서 실제 뿔 달린 투구가 발견된 것은 맞습니다. 다만 주인공이 바이킹이 아니었던 겁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뿔 달린 바이킹’의 이미지는 훨씬 후대에 만들어졌습니다.

     

    싸우기에는 너무 화려한 투구

    길게 휘어진 뿔과 둥근 눈 장식이 특징인 북유럽 청동기시대 벡쇠 투구 두 점
    한 쌍으로 발견된 벡쇠 투구. 길게 솟은 뿔과 돌출된 눈 장식이 강렬한 인상을 주지만, 바이킹시대의 투구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앞선 북유럽 청동기시대의 의례용 유물로 여겨진다. Lennart Larsen / Nationalmuseet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이번에는 뿔 말고 다른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눈처럼 보이는 장식과 굽은 새의 부리가 있고, 머리 위에는 깃털이나 말총을 꽂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 정도면 적의 칼을 막기 위한 실용적인 장비라기보다 보는 사람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한 물건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래서 벡쇠 투구는 전투보다는 의례나 권위를 드러내는 상황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앞서 태양마차에서 만난 상징의 세계도 여기까지 이어집니다. 동물과 태양, 배를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그 이미지를 사람이 직접 착용하는 물건에 담았습니다. 하늘을 설명하던 상징이 인간의 의식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보입니다.

     

    이번에는 3,400년 전 한 소녀를 만나볼 차례다

    참나무 관 안에 모피와 양모 의복, 청동 허리 원반과 부장품이 남아 있는 청동기시대 에그트베드 소녀의 무덤
    에그트베드 소녀의 참나무 관을 위에서 본 모습. 약 3,300년 전 매장 당시의 의복과 청동 장식, 모피와 부장품이 함께 남아 있어 북유럽 청동기시대 한 사람의 삶과 장례 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Roberto Fortuna & Kira Ursem / Nationalmuseet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태양과 의식 이야기만 계속하다 보면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지나치게 신비로운 존재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 사람의 일상으로 내려가 보겠습니다.

     

    그녀의 진짜 이름은 알 수 없습니다. 발견된 장소의 이름을 따 오늘날 에그트베드 소녀(Egtved Girl)라고 부릅니다.

     

    1921년 유틀란트의 에그트베드에서 참나무 관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안에 묻힌 젊은 여성은 약 16~18세였으며, 기원전 1370년 여름에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몸 전체가 미라처럼 남은 것은 아닙니다. 머리카락과 손톱, 치아와 일부 조직이 보존되었지만, 오히려 그녀를 생생하게 되살려 주는 것은 함께 남은 옷과 소지품입니다.

     

     

    에그트베드 소녀의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양모 블라우스와 끈치마
    에그트베드 소녀가 약 3,300년 전 입었던 양모 블라우스와 끈치마. 실제 무덤에서 출토된 의복으로, 북유럽 청동기시대의 직조 기술과 당시 여성의 옷차림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Roberto Fortuna & Kira Ursem / Nationalmuseet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5

     

    짧은 모직 상의와 끈을 엮어 만든 치마를 입었고, 허리에는 나선무늬가 새겨진 커다란 청동 원판을 달았습니다. 장신구와 함께 뿔로 만든 작은 빗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관의 발치에서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통도 발견되었습니다. 안에는 곡물과 꿀 등을 발효해 만든 음료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곁에는 어린아이의 화장된 뼈도 놓여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알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3,400년이라는 시간이 조금 가까워집니다. 태양마차에서는 하늘을 움직이는 세계를 보았고, 벡쇠 투구에서는 의식을 상상했습니다. 이제 에그트베드 소녀의 옷과 빗 앞에서는 그 세계를 실제로 살아간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거대한 신화에서 한 소녀가 허리에 지니고 다녔던 작은 빗까지. 신들의 세계와 아주 사적인 일상이 같은 전시실에서 만나는 것이 덴마크 국립박물관 청동기 전시의 묘미입니다.

     

    3. 거대한 은솥에는 신과 전사들이 가득하다

    군데스트룹 가마솥, 가까이 갈수록 이상해지는 은빛 보물

    신과 인간, 동물 형상의 부조가 새겨진 고대 은제 군데스트룹 가마솥
    군데스트룹 가마솥. 여러 장의 은판을 이어 만든 거대한 용기로, 표면을 가득 채운 신과 인간, 동물과 신화적 존재의 부조를 통해 당시의 종교적 세계와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을 엿볼 수 있다. Rosemania (Xuan Che)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이제 청동기시대를 지나 철기시대로 이동하겠습니다. 여기서는 발걸음을 조금 늦추는 것이 좋습니다.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은빛 물체 하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은 군데스트룹 가마솥(Gundestrup Cauldron)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고대의 거대한 조리도구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생각이 달라집니다.

     

    약 9kg의 은으로 만든 용기 표면에 사람과 동물, 정체를 알기 어려운 존재들이 빼곡하게 등장합니다. 사슴뿔을 쓴 듯한 인물과 사슴, 코끼리, 무기를 든 전사들의 행렬까지 한 물건 안에 모여 있습니다.

     

    이쯤 되면 부엌에서 쓰기에는 지나치게 화려합니다. 군데스트룹 가마솥은 일상적인 식기보다 특별한 의례와 관련된 물건으로 여겨집니다.

     

    뿔 달린 신은 누구이고, 전사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군데스트룹 가마솥 은판에 새겨진 뿔 달린 인물과 사슴, 뱀 등 여러 동물의 부조
    군데스트룹 가마솥의 대표적인 내부 부조. 뿔 달린 인물이 한 손에는 목걸이 형태의 토르크를, 다른 손에는 뱀을 들고 있으며 주변을 사슴과 여러 동물이 에워싸고 있다. 이 인물은 흔히 켈트 신 케르눈노스와 연결해 해석되지만, 정확한 정체는 확정되지 않았다. Bloodofox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이 유물은 설명부터 읽기보다 은판에 새겨진 장면을 먼저 찾아보는 편이 재미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장면 가운데 하나에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머리에는 사슴뿔이 솟아 있고, 한 손에는 고리를, 다른 손에는 뱀을 들고 있습니다.

     

    이 인물은 흔히 켈트 문화의 케르눈노스(Cernunnos)와 연결해 설명되지만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이름표를 달고 발견된 신이 아니니, 여기서는 조금의 수수께끼를 남겨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다른 은판에서는 무기를 든 전사들이 줄지어 이동하고, 커다란 인물이 한 사람을 거대한 용기 속으로 집어넣는 듯한 장면도 나타납니다. 의식인지 신화인지, 죽음과 부활을 표현한 것인지 정확한 이야기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군데스트룹 가마솥은 정답을 외우듯 볼 필요가 없습니다. 신인지 인간인지, 의식인지 신화인지 알 수 없는 장면을 하나씩 추측해 보는 것 자체가 관람의 재미입니다. 이야기는 사라졌지만 그림은 남았습니다.

     

    그런데 덴마크의 보물이 덴마크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더 흥미로운 반전은 따로 있습니다. 덴마크 국립박물관을 대표하는 이 보물이 정작 덴마크에서 제작된 물건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가마솥은 기원전 1세기 무렵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제작 기술은 오늘날 덴마크보다 훨씬 남쪽인 남동유럽의 금속공예 전통과 연결됩니다. 반면 일부 인물과 상징에서는 켈트 문화와의 관련성이 거론됩니다.

     

    누가 만들었고 어떤 경로로 북쪽까지 가져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교역품이었을 수도 있고 선물이나 전리품으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은솥 하나만으로도 철기시대 유럽의 사람과 물건이 생각보다 먼 거리를 이동했다는 사실은 분명해집니다.

     

    왜 이렇게 귀한 은솥을 습지에 놓았을까?

    그 긴 여행의 마지막 장소는 덴마크의 습지였습니다. 군데스트룹 가마솥은 1891년 유틀란트 북부의 이탄 습지에서 여러 은판이 분리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앞서 본 벡쇠 투구 역시 습지에서 나왔습니다. 북유럽 선사시대에는 귀중한 물건을 호수나 습지에 의도적으로 바치는 일이 반복해서 나타났기 때문에, 군데스트룹 가마솥 역시 제물로 놓였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은 9kg짜리 보물을 깜빡하고 두고 갔다고 보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귀중한 물건을 물가로 가져왔고, 다시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까지가 이 유물이 품고 있는 수수께끼입니다.

     

    태양을 움직이던 말에서 시작한 관람은 이제 신과 전사들이 새겨진 거대한 은솥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전시실에서는 시대가 크게 움직입니다.

     

    이제 덴마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바이킹 시대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4. 이제 진짜 바이킹을 만날 차례다

    마멘 도끼, 무기보다 무늬가 더 흥미롭다 

    드디어 바이킹 시대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먼저 찾아볼 것은 마멘 무덤(Mammen Grave)에서 나온 도끼입니다.

     

     

    1868년 마멘 무덤의 봉분과 목조 묘실 단면도, 1986년 재발굴 모습과 바이킹시대 목곽묘 구조를 함께 보여주는 재현 자료
    마멘 무덤의 구조와 발굴 기록. 위쪽은 1868년 비에링회이 봉분이 처음 열렸을 당시 기록된 단면도를, 아래쪽은 1986년 재발굴에서 확인된 목조 묘실 흔적 등을 보여준다. 재발굴을 통해 약 2×3m 규모의 묘실과 지붕을 받쳤던 기둥 흔적이 확인되었다. - AI 재현 / 덴마크 국립박물관(Nationalmuseet) ‘The chamber-graves of the Viking Age’ 공식 자료 참고

     

    1868년 유틀란트 중부 비에링회이(Bjerringhøj)의 봉분에서 화려한 무덤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에 묻힌 남자는 서기 970~971년 겨울에 장례를 치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덴마크 국립박물관의 마멘 무덤 출토품 전시를 참고해 재현한 바이킹시대 유물 전시장
    마멘 무덤에서 발견된 도끼와 장신구, 생활용품 등 바이킹시대 부장품이 전시된 모습을 재현한 이미지. - AI 재현 / 덴마크 국립박물관(Nationalmuseet) ‘The grave from Mammen’ 공식 자료 참고

     

    무덤에는 화려한 직물과 두 자루의 도끼, 여러 용기와 커다란 밀랍초가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장례는 아니었습니다.

     

    은 상감으로 새 문양과 복잡한 덩굴무늬가 새겨진 바이킹시대 마멘 도끼의 한쪽 면을 세로로 재현한 이미지 은 상감으로 동물과 식물 문양을 정교하게 장식한 바이킹시대 마멘 도끼 재현 이미지
    마멘 도끼의 양면. 한쪽에는 위그드라실이나 기독교의 생명의 나무를 연상시키는 식물 문양이, 반대쪽에는 북유럽 신화의 굴린캄비 또는 기독교의 불사조로 해석되기도 하는 새 문양이 은 상감으로 새겨져 있다. 이 독특한 장식은 후기 바이킹 미술의 ‘마멘 양식(Mammen Style)’을 대표하는 사례로 꼽힌다. 서로 다른 믿음이 교차하던 10세기 덴마크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다. - AI 재현 / 덴마크 국립박물관(Nationalmuseet) ‘The grave from Mammen’ 공식 자료 참고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마멘 도끼(Mammen Axe)입니다. 철제 도끼 표면에 은으로 복잡한 무늬를 넣었는데, 가까이서 보면 무기라기보다 공예품에 가깝습니다.

     

    장식은 워낙 독특해서 오늘날 10세기 북유럽 장식미술의 한 양식을 이 유물의 이름을 따 마멘 양식(Mammen style)이라고 부릅니다. 도끼 한 자루가 미술사 용어가 된 것입니다.

     

    도끼 한 자루에 두 종교가 함께 들어 있다

    마멘 도끼는 양쪽 면을 비교해 보아야 재미가 살아납니다.

     

     

    북유럽 신화의 세계수 위그드라실과 나무를 중심으로 연결된 여러 세계를 표현한 1847년 도해
    북유럽 신화의 세계수 위그드라실. 거대한 나무의 가지와 뿌리가 여러 세계를 연결한다는 북유럽의 우주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19세기 도해다. - Oluf Olufsen Bagge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한쪽에는 나무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북유럽 신화의 세계수 위그드라실(Yggdrasil)을 떠올리게 하지만, 기독교의 생명의 나무로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약 1000년경 제작된 앵글로색슨 케드먼 필사본에 그려진 성서 이야기와 나무가 등장하는 삽화
    약 1000년경 제작된 《케드먼 필사본》의 삽화. 고대 영어로 옮긴 성서 이야기에 앵글로색슨식 그림을 더한 필사본으로, 마멘 도끼가 만들어진 10세기 후반과 거의 같은 시기의 기독교 시각문화를 보여준다. Bodleian Libraries, University of Oxford / Digital Bodleian / Wikimedia Commons / CC BY 4.0

     

    반대편에는 꼬리를 크게 펼친 새가 나타납니다. 이 역시 북유럽 신앙과 연결해 볼 수도 있고, 기독교에서 부활을 상징하는 불사조로 읽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 정답일까요? 하나를 고르기 어렵다는 점이 오히려 중요합니다.

     

    10세기 후반 덴마크는 오래된 북유럽 신앙과 새롭게 받아들인 기독교가 겹치던 시기였습니다. 오딘과 토르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십자가가 들어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멘 무덤의 밀랍초와 도끼의 무늬를 함께 보면 한 시대가 다른 시대로 넘어가는 경계가 눈앞의 물건에서 드러납니다. 전투용 무기 하나가 당시 덴마크의 종교 변화를 보여주는 기록이 된 것입니다.

     

    작은 은화를 따라가면 중앙아시아까지 간다

    은화와 은제 목걸이, 팔찌, 장신구, 은제 용기 등이 함께 놓인 바이킹시대 테르슬레우 은 보물
    덴마크 테르슬레우에서 발견된 바이킹시대 은 보물. 수많은 은화와 꼬아 만든 은제 고리, 장신구와 은제 용기가 한데 모여 있어 바이킹시대에 축적된 부와 광범위한 교역의 흔적을 보여준다. Nationalmuseet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마멘 도끼가 덴마크 안에서 일어나던 변화를 보여준다면, 이번에는 작은 은화를 따라 바깥세상으로 나가보겠습니다.

     

    바이킹 시대에는 은 자체가 중요한 가치의 기준이었습니다. 장신구와 은괴를 그대로 쓰기도 했고, 필요한 만큼 잘라 무게를 달아 거래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테르슬레우 은 보물(Terslev Hoard)입니다. 이 보물에서는 약 6.6kg의 은과 1,751개의 동전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숫자가 있습니다. 1,751개 가운데 1,708개가 이슬람 세계에서 주조된 은화였습니다.

     

    일부 은화는 오늘날 중앙아시아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곳에서 출발한 은이 러시아의 강과 여러 교역로를 거쳐 북유럽의 덴마크까지 들어온 것입니다.

     

    전시장에서는 몇 걸음이면 도끼에서 은화까지 갈 수 있지만, 실제 은화가 이동한 거리는 수천 킬로미터였습니다. 작은 동전 몇 닢이 바이킹 시대의 지도를 생각보다 훨씬 크게 펼쳐 줍니다.

     

    전사만 있었던 시대는 아니었다

    이 은화를 보고 나면 바이킹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집니다. 물론 전쟁과 약탈은 중요한 역사였습니다. 하지만 덴마크에서 발견된 수많은 외국 은화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배는 전사를 실어 나르는 수단인 동시에 사람과 상품, 은을 이동시키는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서쪽으로는 영국과 프랑스로 향했고, 동쪽으로는 러시아의 강을 따라 더 먼 교역망과 연결되었습니다.

     

    마멘 도끼와 테르슬레우 은 보물을 함께 보면 한 시대의 두 얼굴이 선명해집니다. 도끼의 무늬에서는 오래된 신앙과 새로운 종교가 만났고, 은화에서는 북유럽과 먼 세계가 만났습니다.

     

    그래서 덴마크 국립박물관의 바이킹 전시는 검과 투구만 찾기보다 작은 무늬와 낯선 문자까지 살펴보는 편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5. 황금뿔은 사라졌는데 왜 국립박물관에 남아 있을까?

    두 개의 황금뿔은 거의 100년의 간격을 두고 발견됐다

    덴마크 국립박물관 전시실에 갈레후스 황금뿔 복제품과 발견 당시 기록 자료, 금제 장신구가 함께 전시된 모습
    덴마크 국립박물관의 갈레후스 황금뿔 전시. 1802년 도난 후 녹여져 사라진 두 황금뿔의 복제품과 함께, 원래 모습을 전하는 옛 기록과 관련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 Jan Mehlich (Lestat)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마지막 유물 앞에서는 조금 이상한 질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눈앞의 국보가 원본이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요?

     

    덴마크 국립박물관의 유명한 갈레후스 황금뿔(Golden Horns of Gallehus)이 바로 그런 유물입니다.

     

    두 황금뿔은 약 서기 400년 무렵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두 점을 합친 무게는 거의 7kg에 달했습니다.

     

    첫 번째 긴 황금뿔은 1639년 남부 유틀란트의 갈레후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한 세기가 지난 1734년, 첫 발견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두 번째 뿔이 나타났습니다.

     

    두 번째 뿔에는 룬 문자도 새겨져 있었습니다. 내용은 대략 “나, 홀트의 레게스트가 이 뿔을 만들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1,600여 년 전 제작자의 목소리가 물건 위에 직접 남은 것입니다.

     

    황금뿔 표면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이야기가 남아 있다

    인물과 동물, 기하학적 문양이 여러 띠에 새겨진 갈레후스 황금뿔 두 점의 복제품
    갈레후스 황금뿔의 복제품. 약 5세기에 제작된 두 황금뿔은 1639년과 1734년에 각각 발견되었지만, 1802년 도난당한 뒤 녹여져 원본이 사라졌다. 현재 덴마크 국립박물관에서는 남아 있던 기록을 바탕으로 제작한 복제품을 통해 원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 Nationalmuseet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이번에는 황금빛보다 표면의 무늬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람과 동물, 기수, 뿔 달린 인물, 여러 머리를 가진 존재처럼 정체를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형상들이 여러 줄에 걸쳐 이어집니다.

     

    신화나 의례를 표현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정확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황금뿔은 묘한 유물입니다. 문자는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지만, 그림의 이야기는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유물에는 고대의 수수께끼보다 더 극적인 후일담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1802년, 국보가 도난당했고 결국 녹아버렸다

    1802년, 두 황금뿔이 모두 도난당했습니다. 범인은 황금뿔을 통째로 팔지 않았습니다. 결국 녹여 버렸습니다. 수백 년 동안 땅속에서 살아남은 고대 유물이 정작 세상에 나온 뒤 인간의 손으로 사라진 것입니다.

     

    당시는 사진도 3차원 스캔도 없던 시대였습니다. 원본이 사라지고 나니 남은 것은 도난 이전에 사람들이 그려 둔 도면과 그림, 기록뿐이었습니다.

     

    현재 국립박물관에서 보는 황금뿔은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복원품입니다. 우리가 원본의 형태와 룬 문자, 장식 무늬를 짐작할 수 있는 것도 기록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본은 사라졌지만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황금뿔 앞에서는 “이게 진짜인가?”보다 다른 질문이 더 흥미롭습니다.

     

    원본이 사라진 뒤에도 유물의 역사를 보존할 수 있을까?

     

    갈레후스 황금뿔은 그 답을 보여줍니다. 물건 자체는 사라졌지만 기록 덕분에 형태와 문자, 발견 과정과 도난 사건까지 오늘날 다시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만났던 트룬드홀름 태양마차와 배교하면 더욱 선명합니다. 태양마차는 수천 년 동안 땅속에서 살아남아 원형을 전해 주었고, 황금뿔은 땅속에서는 살아남았지만 세상에 나온 뒤 사라졌습니다. 하나는 유물 자체가, 다른 하나는 기록이 과거를 오늘까지 데려왔습니다. 

     

    태양마차에서 황금뿔까지, 이렇게 걸어보자

    처음 방문한다면 모든 전시실을 빠짐없이 보려고 서두르기보다 트룬드홀름 태양마차 → 벡쇠 투구 → 에그트베드 소녀 → 군데스트룹 가마솥 → 마멘 도끼와 테르슬레우 은 보물 → 갈레후스 황금뿔 순으로 먼저 걸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 동선만 따라가도 청동기시대의 태양 신앙에서 철기시대의 의례와 교류, 바이킹 시대의 종교 변화와 장거리 교역까지 덴마크 역사의 큰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마지막 황금뿔 앞에 도착하면 이 박물관의 보물이 단순히 오래되고 값비싼 물건의 목록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해집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무엇을 귀하게 여겼으며, 그것을 어떻게 기억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태양마차는 3,400년의 시간을 건너왔고, 황금뿔은 사라진 뒤에도 기록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사이를 걷는 것이 덴마크 국립박물관을 보는 가장 흥미로운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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